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53
153
파멸의 기사는 여전히 광장의 열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흐릿한 사금빛 동공은 크게 뜨였고, 망자 특유의 안광이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흘러넘쳤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간 본인을 단단히 짓누르던 벽을 하나 깨부순 느낌이네.】
토드는 집게로 조각난 금속 조각을 떼어내며 되물었다.
“후련하십니까?”
입가에 선명한 미소를 그린 이스라가 활기차게 답했다.
【물론이다! 몸에 박힌 파편을 뽑아내는 것보다도 후련하군!】
죽음의 기사 계통에서 상위 개체인 파멸의 기사로 승격한 이후로, 이스라의 성장은 한동안 보이지 않는 천장에 막혀 있었다.
‘대공이 두 번째로 내세운 대전사가 예상보다 강했어.’
토드도 의도적으로 자신의 하수인을 곤경으로 몰아넣을 작정은 아니었다.
그가 정말 거인의 혈통을 타고났는지, 아니면 단순히 유전 상의 돌연변이일진 추후 부검을 해봐야 알겠지만, 힘에 의존하여 밀어붙이는 이스라로선 제약을 건 상태에서 다소 버거운 상대였다.
그럼에도 이스라는 혈투 끝에 상대의 저돌성마저 이용하는 묘리를 터득했다.
‘양 떼를 도살해봤자, 전사의 역량을 성장시켜주진 못하지.’
전사는 역경 끝에 성장한다.
자신의 기사에게 군더만은 적어도 겨뤄봄 직한 상대로서 충분했다.
옆구리에 앉은 피딱지를 긁어보니 파여나간 부위가 제법 깊었지만, 이전보다 수복이 원활했다.
한계를 넘어서니 그간 이스라가 전투 중에 축적한 경험치가 반영된 것인지, 수치상으로 보이는 능력치 상승폭도 월등했다.
가뜩이나 이스라는 고위 망자로서 기본적인 육체 기량도 우수한데, 완성된 형태를 넘어 규격 외의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 셈.
원래 같으면 적이 차례대로 상대해줄 거란 발상은 순진하고 어리석은 게 맞다.
하물며 여긴 이제 게임도 아닌 데다, 대공도 남은 기회를 안배하지 않고, 곧장 기세를 꺾을 작정으로 군더만을 내세웠을 테니까.
‘···근데 이대로 가면, 이스라에게 경험치를 톡톡히 먹여줄 수 있겠어.’
사령술사는 음흉하게 웃었다.
게다가 이스라가 처치한 자의 업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다.
얼룩진 자국을 알코올로 말끔히 닦아낸 토드는 마력을 거둬들였다.
【···벌써 끝인가?】
어째서인지 망자의 안광에 미련이 묻어난다.
“예.”
【이래 보여도 아까 내장이 튀어나왔네!】
토드는 태연히 아마포를 풀어내며 답했다.
“전부 수복해서 넣어드렸습니다. 당신의 기량이 죽음의 기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는데, 당연히 기반이 되는 육신도 더 견고해졌죠. 수복이 더 수월할 수밖에요.”
【크흠.】
입술을 삐죽이던 파멸의 기사는 어째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치였으나, 잠자코 투구를 눌러썼다.
마침 대기실에 마르커스가 들어왔는데, 그는 양손에 자루를 쥐고 있었다.
【심문관한테 이런 상스러운 일을 시키는 건, 네놈밖에 없을 거다! 사령술사!】
절그럭!!
탁자 위에 울리는 소리가 제법 묵직하다.
휘파람을 불며 꾸러미를 풀어본 토드는 반짝이는 동전을 들어 보였다.
“1회차에 비하면 배당률이 제법 비등해졌군요. 다음부턴 금화로 걸어야겠습니다.”
의자에 걸터앉은 마르커스가 혀를 찼다.
【나는 네놈이 내기 따위에 그만한 돈을 거는 걸 이해하지 못했거늘, 네놈보다도 더한 거금을 갖다 바치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더군! 타락한 인간들 같으니···!】
역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심문관답게, 마르커스는 그만한 돈내기가 성립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차피 이스라는 계속 승리할 테니, 우리도 이김에 쏠쏠한 수확이나 땡겨봅시다.”
이스라가 팔짱을 낀 채로 물었다.
【헌데 토드, 어차피 본인이 확정적으로 연승을 거둔다면 자연히 상대에게 돈을 거는 이들은 줄어들 테니, 그리 큰돈을 벌진 못하지 않겠나?】
오호, 나름 이스라는 배당률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확실히 기사들은 심문관에 비해 세속적인 면모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너무 파멸의 기사를 무시한 걸지도.
토드는 머쓱한 미소를 흘리며 꾸러미를 잠갔다.
“누구나 일확천금을 갈구하죠. 아무리 당신이 연전연승을 거두더라도 만일의 행운을 노리는 자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역배를 노리는 놈들은 항상 있을 수밖에.
더욱이 뫼를렌푸르트에는 선제후들이 끌고 온 용병 무리와 병사들이 가득했다.
“온 도시의 주목이 이 결투에 쏠려있습니다. 그만큼 상당한 돈이 오가니, 칼질로 풀칠하는 자들로선 한 번 배팅이 터지면 단숨에 은퇴할 만한 거금을 벌어들일 수 있겠죠.”
이스라의 안광이 사이하게 번뜩인다.
【흐음···!】
토드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당신의 패배를 간절히 바라는 놈들에게 그런 행운을 안겨줄 순 없지 않습니까.”
투구 속 안광이 휘어졌다.
【물론이네! 그 어리석은 놈들의 주머니를 단단히 털어먹어야겠군! 기사도 전집에 따르면 믿지 않는 자에겐 불운이 따르나니!】
“배당률이 낮아지겠지만, 베팅 금액을 더 올립시다.”
신이 난 이스라가 동조했다.
【네크로폴리스로 돌아갈 땐 마차에 금화 자루를 가득 담을 수도 있겠군! 그만한 돈이라면, 저잣거리에서 기사도 문학이나 여러 신작들도 사가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그냥 가판대에 있는 책은 전부 쓸어갑시다!”
이스라의 안광이 격하게 타올랐다.
【하, 하! 하. 좋다! 뫼를렌푸르트의 낭만 시집, 기사도 소설, 모험담은 전부 본인 차지다!!】
여지없이 사령술사와 그의 하수인이 벌이는 촌극에 마르커스는 혀를 찼다.
【불경한 멍청이들···! 회개하라! 더러운 금화에 타락한 놈들 같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토드는 원래도 뫼를렌푸르트가 마음에 들었지만, 이젠 마음의 고향이 될 것만 같았다.
시청에서 처치한 흑마법사들의 시신도 잘 숨겨뒀지, 대악마를 처치하며 다량의 업도 벌었지, 주요 하수인인 이스라의 성장에 용병들의 코 묻은 금화까지 제공하다니.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도시다.
‘금화가 최고야. 늘 짜릿해.’
자금이 넉넉하면 네크로폴리스 건설에 필요한 석재와 석영, 사암을 비롯해 더 좋은 품질의 방부제, 하위 망자들을 무장시킬 갑옷이나 무장까지 추가로 구매할 수 있다.
하수로에서 연명하던 사령술사로선 누구보다도 세속적일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지만, 왜 이리 달콤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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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대전사, 끓는 기름의 기사로 나선 상대는 하이젠베르크 대주교 휘하의 성전사였다.
딱 봐도 대주교의 성화에 끌려 나온 것으로 보인 성전사에게선 의욕이나 대의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철컥.
그 앞에 새카만 갑주를 차려입은 이스라가 마주 서자, 군중들이 환호했다.
“흑기사! 흑기사!”
“무적의 이스라 경!!”
만민의 존경을 받아 마땅할 성전사보다 죽은 자가 환호를 받는 상황이라니. 하이젠베르크 대주교는 인상을 팍팍 쓰며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스릉─.
파멸의 기사가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 들자, 성전사의 다리가 위태롭게 후들거렸다.
이스라는 팔을 뻗어 칼끝을 땅에 비스듬히 겨눴다.
알버, 이른바 광대 자세. 상대의 반응을 엿보기에 좋은 태세다.
이스라는 차분하게 상대를 노려봤다.
말없이 육신의 형태로 던지는 고함이다.
들어올 테면 들어와 봐라.
정오의 햇살이 눈부실 정도였으나, 투구에 맺힌 안광은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히익···!”
안색이 하얗게 질린 성전사는 급기야 주저앉고 말았다. 대번에 군중들이 그를 향해 야유했다.
“겁쟁이 새끼! 성전사단에 입단하면서 불알이라도 바치고 들어갔냐!!”
“일어나! 등신아! 난 믿음으로 너한테 금화를 다 박았다고!”
벌떡 몸을 일으킨 하이젠베르크 대주교가 삿대질해댔다.
“신성 모독이다! 방금 불온한 발언을 한 놈들을 끌어내라!”
하지만 광장에 모인 군중이 원체 많은 까닭에,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놈들을 일일이 추려내기도 요원했다.
【기껏 선공을 양보했거늘, 그대가 오지 않겠다면···】
앞으로 몸을 내뻗은 이스라는 순식간에 간격을 좁히고 근접했다.
【본인이 가겠네.】
부웅!!
이스라의 칼이 섬광처럼 수직을 갈랐다. 기겁한 성전사가 황급히 검을 뽑아 가로막는다.
차앙!
검이 충돌한 순간, 즉시 이스라는 허리를 틀어 성전사의 상단을 향해 수평베기를 날렸다.
“컥!”
투구 측면을 얻어맞은 성전사의 몸이 크게 휘청인다.
비틀거리는 상대를 향해 검자루를 비틀어 사선으로 긋고, 꺾어 베기.
터덩, 탕!
오른팔을 얻어맞고, 가슴팍을 찔렸다.
갑주를 걸치고 있더라도 타격은 누적된다.
성전사가 반격할 요량으로 하단에서 올려 벴으나,
캉!!
【하, 하! 하. 얕군!】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힌다.
“아아···!”
히죽 웃은 이스라가 걸친 칼날을 반 바퀴 돌리자, 속절없이 성전사의 검이 반대편으로 꺾였다.
분명 법궤 아래 요사스러운 술법은 금지되었는데, 파멸의 기사는 요술을 부리듯 검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아예 이스라는 날과 칼자루를 거머쥔 채 몽둥이로 두드리듯 성전사를 흠씬 두들겨 팼다.
속절없이 얻어맞던 성전사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질 못했다.
토드가 씨익 웃었다.
‘압도적이군.’
이스라가 성전사를 걷어찼다.
바닥을 나뒹군 성전사는 칼자루까지 놓친 채 쉬이 일어나질 못했다.
“흐, 흐으!”
성전사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허덕인다.
그를 지켜보던 파멸의 기사가 입을 열었다.
【목숨이 아깝다면 기권하게. 솔마르의 전사여.】
이스라는 바닥에 장검을 꽂아 넣으며 선언했다.
【기사도 전집에 따르면 언제나 자비와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라 가르치니, 자네가 원한다면 아까운 목숨을 거두지 않겠네!】
이미 투지를 상실한 성전사에게선 공포의 냄새가 완연했다.
“사, 살려···.”
그러자 하이젠베르크 대주교가 고함쳤다.
“에크하트! 구주의 병사가 사특한 피조물에게 목숨을 구걸하느냐! 끝까지 싸워라! 여기서 물러서면 네놈을 파문하겠다!”
이스라는 혀를 차며 읊조렸다.
【차라리 목숨을 구하게. 그대는 아직 젊으니, 성전사를 그만두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갈 여력은 있지 않겠나.】
“일어나 맞서라!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교단의 위신을 더럽힐 작정이 아니라면!”
대주교의 겁박에 성전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위태롭게 장검을 거머쥐었다.
“나, 나는, 형님이 거금을 들여 기부금을 내준 덕분에 방탕한 생활을 겨우 청산했소. 이, 이젠 여기서 물러서면···”
성전사의 목에 걸린 광륜표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죽는 것보다 못한 신세지. 하핫!”
이스라의 안광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런가.】
“그, 그러니··· 이미 죽어버린 시체 따위가 날 동정하지 말라고!”
성전사는 눈이 돌아간 채 달려들었다.
전력 질주로 달려오는 성전사의 기세는 나름 흉흉했다. 그들도 평소 수도원에서 단련을 거듭하는 무인이니만큼, 어설픈 뜨내기라면 받아치지도 못하고 상반신이 찢겨나갔으리라.
그러나 상대는 파멸의 기사.
검에 힘을 실어 수평으로 휘둘렀다.
콰악!!
장작 찍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성전사의 몸이 장검과 더불어 토막 났다.
이스라는 담담히 피 묻은 광륜표를 건져냈다.
【본인이 자네를 기억하겠다. 에크하트 경.】
환호성을 지르는 이들, 탄식하는 자들, 광장에 모인 무수한 이들의 영혼이 한데 엉켜 세차게 명멸한다.
‘기분이 썩 좋지 않군.’
망자의 안광이 가늘어졌다.
예의 하이젠베르크 대주교는 성전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긴커녕, 주변의 수행원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애당초 정당한 이유로 개최된 결투도 아니지 않은가.’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자신이야 저 간악한 무리가 토드에게 뒤집어씌운 오명을 걷어내기 위함이다.
군중들은 승자에게 환호하고 미소를 보내주나, 죽어간 패자들에겐 눈물조차 흘려주지 않았다.
‘역겹다.’
이스라는 선제후들이 앉은 좌석으로 나아갔다.
【하루의 말미를 줄 것도 없이, 다음 상대를 내보내라!!】
사자가 울부짖는 듯한 포효에 하이젠베르크 대주교가 딸꾹질했다.
【본인은 이 명예롭지 못한 싸움을 오래 끌고 싶지 않으니.】
“저, 저···! 끄엑, 오만한 놈이···! 끄엑.”
두꺼비처럼 목을 들썩이는 대주교의 추태에 대공이 인상을 구겼다.
이스라의 요청에 따라 시도우 대주교가 손을 까딱였다.
“피고 대리인의 요청을 윤허한다.”
네 번째, 불의 기사.
이번에도 이스라가 물었다.
【자네도 기권할 생각은 없나?】
시도우 대주교의 대전사로 나선 성전사는 좀 전에 죽은 에크하트와 달리, 자신만만한 태도로 굴었다.
“나는 성 지몬 수도회의 알베르톨트다! 네놈처럼 사악한 마술로 말미암아 탄생한 존재와는 결단코 타협하지 않···”
【그렇다면─】
서걱!!
단칼.
성전사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칼날을 거둔 파멸의 기사가 대신 단말마를 고했다.
【어머니 죽음이 건네는 손길을 받아들이라. 성전사여.】
이제 남은 상대는 하나.
군중들은 아무개의 죽음에 열렬히 환호한다.
이스라는 속히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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