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1
021
프론지 성채에서 벌어진 전투가 끝나고 이틀이 지나서야 휴그가 도착했고, 해 질 녘에 이르러 요코프가 나타났다.
가신들은 여지없이 편을 가르고 뒤늦게 합류한 둘을 맹렬히 비난했지만, 변경백이 크게 나무라지 않아 어영부영 넘어갔다.
이로써 집결한 변경백의 병력은 3천.
이리공의 군세가 와해된 직후이니만큼, 변경백은 지금이 반격하기에 적기라고 판단했다.
엿새 가까이 성채에서 주둔하던 변경백의 군대가 마침내 이리공의 영토를 향해 출병했다.
쫓기듯 들어왔던 때와 달리, 성채를 나서는 병사들의 발걸음이 당당했다.
선두에 변경백의 병력이 앞장서고, 중간에는 콩고물을 기대하는 장사치들이, 자연히 후미를 토드의 망자들이 맡았다.
아무래도 병사들이 망자를 껄끄러워한 탓이 컸다.
토드의 전공을 높이 산 변경백이 아량을 베푼 덕에 해골 서약병들은 전리품 중에서 품질이 좋은 것들로 새로 무장했다.
이스라는 비록 갑주가 일부 그을렸지만, 오히려 검은색이 마음에 든다며 기름을 먹여 도색까지 마친 상태였다.
한편 이 사령술사의 일당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하나 끼어 있었으니.
“···그나저나 에스터리츠 양. 저희와 함께 움직이면 시선이 곱진 않을 텐데요.”
카리나는 승마에 익숙하진 않은 지, 연신 안장 위에서 꼼지락거리면서도 마차에 올라타기를 거부했다.
“너와 일련의 무리를 감시하는 건 내 의무야. 사령술사와 거닌다고해서 사람들이 마탑의 마지스터를 수상하게 보겠어?”
【그럼, 그럼! 송장이나 만지는 사령술사와 불에 환장한 방화광의 사회적 평판은 하늘과 땅 차이일세! 무인의 관점에선 둘 다 별다를 바 없는 요술쟁이들이네만. 하, 하.】
입술을 오므린 카리나가 으르렁거렸다.
“야···! 이제 살아난지 꽤 지났잖아? 저거, 정신이 돌아오긴 하는 거야?”
“글쎄요. 어쩌면 원래 저런 사람이었을 지도 모르죠.”
【기사도 전집에 따르면 마술은 세상의 섭리를 기만하는 시시한 수작에 불과하네! 그런 사도를 통해선 결코 강해질 수 없지! 진정 몸과 정신을 수양할 수 있는 방도는 무도, 단 하나뿐이로다!】
고개를 내저은 카리나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낭만있지 않습니까.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난 기사가 추구하는게 기사도라뇨.”
“낭만?”
마법사가 차갑게 조소했다.
“지금 시대에 그런 걸 추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남아있을 것 같아? 우린 지금 적어도 백년 전에나 돌아다녔을 망령이랑 동행하고 있는 거야.”
카리나의 비아냥에 이스라가 군마의 목을 두들겼다.
【오, 듣지 말거라. 핀스터. 종일 알아보지도 못할 괴상한 고서나 들여다보고, 솥단지에 나방 따위를 끓여 먹는 서생들이 기사도에 대해 뭘 알겠느냐! 저들은 너와 나의 힘을 질시하기에 험담하는 거란다.】
전장에서 주운 녀석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지, ‘핀스터’라는 이름까지 붙여준 모양이었다.
“쯧! 칼자루 찬 무뢰배들의 안 좋은 버릇까지 있네. 마법사를 천시했다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말이야.”
【핫. 하! 이미 사특한 사령술사를 섬기고 있는 마당에, 고작 요술쟁이의 불길한 예지 따위가 두려울 것 같나? 올테면 와보라지! 본인은 죽음마저 극복한 몸이니-!】
생각해보면 일행 중에 기사와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으면, 시종일관 서로 견제하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게임 내에서 텍스트로만 출력되던 상호작용을 직접 구경할 줄이야.
둘이 으르렁거리거나 말거나 토드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 와중에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쓸고 지나간다.
늪지와 저지대로 가득했던 쾨흘링과 달리, 뵐케 주는 이따금 야트막한 둔덕이 있을 뿐, 전체적으로 완만한 지대가 이어졌다.
덕분에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너머 새파란 하늘의 궤적이 물결치듯 굽이친다.
그중에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조각 하나.
“소프트콘처럼 생겼군.”
“뭐?”
“별거 아닙니다. 날씨가 좋지 않습니까?”
눈매를 좁힌 카리나가 답했다.
“원래 이상한 놈인 건 알고 있었는데, 넌 진짜 이상한 거 같아.”
토드가 낄낄거렸다.
“저도 압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스크림이 어떻게 생겼는진 안다.
정작 맛이 어땠는진 잊어버렸다.
식은 정어리 파이가 얼마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지, 삭히다 못해 썩어버린 치즈가 어느 정도의 어두운 빛깔을 띠는지, 먹기 좋은 귀리죽의 질감은 어떤지, 입이 심심할 때 씹기 좋은 설탕당근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민물송어, 방풍뿌리, 쥐고기, 살구, 펜넬, 리크, 자빠귀구이, 렌즈콩, 육두구, 파슬리.
이것들의 맛과 색, 그리고 향은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누구보다도 몰입했던 세상에 직접 체화되는 것.
첨단 문명을 향유하던 현대인에게 있어 저주인가, 두문불출하던 하류 인생에겐 축복인가.
같은 상황에 어느 누구를 던져 놓더라도, 받아들이는 건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령 ‘누군가’는 이 세상에 살던 인간이 그저 현대에 살던 타인의 환영을 체험한 것이라 여기거나,
‘혹자’는 세상의 가혹함을 견디지 못해 부서진 채로 하염없이 겉돌고,
‘어떤 이’는 이를 사명으로 여겨 자신만의 질서를 관철하기 위한 고행을 거듭하고 있을지,
‘아무개’는 현실과 가상의 괴리감에 사로잡혀 원래 세상으로의 귀환을 필사적으로 도모한다던가.
누구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달아날 곳이 없는 현실이라면 즐기는 게 낫지 않겠나?
토드는 휘파람을 불며 까딱대는 군마 고유의 율동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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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도로에서 떠돌이 행상이나 밭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들을 마주쳤으나 하나같이 시큰둥했다.
수천 명의 무장한 장정을 마주쳐도 지붕 위 닭 보듯, 하던 일에 여념이 없더니 토드의 일당에 한해선 반응이 조금 유별났다.
“시, 시체가 이 벌건 대낮에 돌아다니다니!”
아예 손가락질하며 벌벌 떠는 사내를 향해 토드가 태연히 대꾸했다.
“왜요. 살아있는 송장은 처음 보십니까?”
농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쟁기를 내던지고 달아난다.
【못된 장난은 치지 말게. 사령술사. 가엾은 농민들이 뭔 죄라도 지었던가.】
카리나가 거들고 나선다.
“애초에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부터가 못된 정도가 아니라, 악행의 정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것도 그렇군! 그렇다면 마땅히 사특한 사령술사다운 악행이렸다! 하, 하. 하!】
껄껄 웃은 이스라의 눈이 반짝인다.
【더 하시게! 사령술사! 말리지 않을 테니!】
생각지도 못한 조리돌림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합을 맞추고 양쪽에서 타박하는 게, 제법 매서운 합동기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뵐케 주에 들어선 지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적병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덕분에 변경백의 군대는 별다른 저항 없이 무사히 적지에 입성했다.
벌판에는 야트막한 돌담과 무너진 옛 성곽 따위의 유적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이따금 보이는 작은 집들은 하나같이 창과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적대적이진 않은 것 같은데, 그리 환영받는 모양새도 아니네요.”
【당연하다. 어차피 외적의 침입도 아니고, 이웃 제후들 간의 싸움이니 민초들은 불똥이 튀진 않을까 노심초사할 뿐이다.】
물론 일부 병사들이 저들의 집을 들러 은화를 주고 곡식 따위를 받아오는 일은 있었다. 언제나 군량은 넉넉히 준비해도 모자랄 일이 없었다.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니.
수확이 끝난 뒤의 밀밭을 지나가는 병사들은 주변의 한적한 풍경에 울적해진 눈치였다.
향시 긴장의 끈을 붙들어 매던 병사들은 뵐케의 부드러운 공기에 흠뻑 취해 있었다.
고삐를 쥔 이스라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럴 때가 가장 위험하네. 엄폐할 만한 곳도 없는 개활지인 데다가, 병사들의 군기가 느슨해졌지. 해가 떠 있는 동안이면 모를까, 적이 야음을 틈타 급습해올 수도 있겠군.】
그 말에 토드도 동의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리공이 공격해온다면, 행군을 멈추고 야영지를 꾸리는 순간이거나, 오늘 밤일 듯하군요.”
이스라의 안광이 넘실거렸다.
【불침번을 서는 놈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텐데 말이야··· 지금 병졸들이 걸어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순탄하게 일이 흐를 것 같진 않다.】
카리나도 종일 안장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게 힘에 부쳤는지,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어느새 발맞춰 걸어가던 행렬에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고향 이야기에 부풀어 오른 병사들은 잡담을 나누거나, 아예 눈이 반쯤 감긴 채로 비틀거리는 놈도 있었다.
분대장들이 눈을 부라리며 이따금 고함쳤지만, 해가 저물어갈 즈음에는 저들도 꽥꽥대던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잘만 나아가던 행렬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이젠 아예 정지했다.
토드 역시 손을 들어 망자들을 멈춰 세웠다.
곧 앞쪽에서 기수가 달려왔다.
“사령술사님. 각하께서 야영을 명하셨습니다.”
“알겠네. 우리도 근처에 머무르지.”
노을이 땅 끝자락에 머무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앞쪽의 병사들이 구덩이를 파고, 천막을 세우느라 분주한 것에 비하면 토드는 상대적으로 한가했다.
어차피 망자들이 제 주인을 위해 대신 말뚝을 세워주니, 불씨만 피우면 된다.
토드가 삭정이를 뒤척이며 낑낑대고 있는데, 카리나가 한숨을 흘렸다.
“비켜봐.”
그녀가 짧은 주문을 낭송하자,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오! 역시 요술쟁이! 몇 안 되는 쓸모가 발휘되는 순간이로다. 비록 본인은 망자라 모닥불의 온기가 거추장스럽지만 말이네!】
그러면서 이스라는 서약병들과 더불어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망자들은 본능적으로 불을 꺼리는 기질이 강한 탓이었다.
이를 간 카리나가 중얼거렸다.
“어째 짜증나는 말버릇도 제 주인을 닮아가는거 같지 않아?”
헛기침한 토드가 못들은척 주전자를 올렸다.
인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보니 익숙한 얼굴에 반색했다.
“아, 피에트 씨. 쇠렌 씨. 마차는 편안했습니까?”
“늘어지도록 잤지.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야.”
간만에 모인 일행이었다. 슬쩍 헛기침한 쇠렌이 품에서 염장한 돼지고기를 꺼내 들었다.
“흐흐, 몰래 꿍쳐왔어. 냄새가 찝질한게, 국물에 녹여먹이면 기가 막힐 거야.”
“손버릇하곤···”
카리나가 혀를 차자 쇠렌이 시시덕거렸다.
“어허. 마법사 아가씨가 이걸 못 먹어봐서 그래. 이렇게 여행길에 불 피워놓고 끓여먹는 스튜는 어디가서 돈 주고 먹지도 못한다고.”
간만에 쇠렌이 솜씨를 발휘하는 사이, 토드가 피에트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부탁한 일은 잘 되었는지요.”
“아무래도 우리가 자네와 동행했다는걸 알고 있어서, 적지 않게 경계를 받았다네. 말문을 트기까지 이틀이나 걸렸지.”
입으로 술병의 마개를 깐 쇠렌이 덧붙였다.
“이게 아니었으면 더 오래 걸렸을걸. 젠장. 게티그 그 자식은 에일 3병을 까고 나서야 아가리를 털더라고. 미친 술고래 같으니. 이게 전쟁통에 얼마짜린데.”
흩날리는 불길을 바라보던 토드가 되물었다.
“상인들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피에트가 끌끌댔다.
“뭐, 군대 꽁무니에 붙은 장사치들이 뭐 있겠나. 뭘 팔더라도 한 푼 더 받으려고 안달 난 놈들이네. 당장 변경백이 한 번이라도 패배하면 죄다 달아날 속셈으로 가득하지.”
“그렇지 않아도 흑마법사 양반, 당신에 대해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였소. 그래서 내 당신을 적당히 팔아먹으며 동전 좀 쏠쏠하게 챙겼고.”
토드가 피식 웃었다.
“어쩐지 요즘 저녁때마다 귀가 간질간질하더군요.”
솥을 수저로 뒤적거린 쇠렌이 답했다.
“적어도 험담은 안 했으니 걱정 말라고. 내가 두 눈으로 본 것만 읊어줬으니까. 그치들이 어떤 소감을 느꼈을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고개를 기울인 피에트가 낮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망자를 부리는 힘에 대해선 두려워하는 마음이 크네.”
“그럴 테죠.”
“머지않아 저들이 변경백을 떠난다면, 자네에 대한 소문을 제국 곳곳에 퍼뜨릴 걸세. 입이 무거운 족속들은 결코 아니니. 그래도 괜찮겠나?”
모닥불이 세차게 휘날린다. 거기 비친 녹색 눈동자도 일렁였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날 즈음엔, 제 운신의 폭이 늘어날 테니까요.”
“아무리 체포 면책권이 있다 하더라도, 한동안 자네의 이름이 제국에서 오르내릴걸세. 분명 자네의 힘을 문제 삼을 자가 한둘이 아닐 텐데, 그때까지 변경백이 자네를 위해 위협을 무릅쓸 거라 생각하나?”
“글쎄요. 그건 그때가서 두고 볼 일이죠.”
“으음, 그럼 차후에 향할 행선지는 정해뒀나?”
“구체적으로 정해둔 곳은 없습니다만. 북부는 어떻습니까?”
대번에 쇠렌이 미간을 좁혔다.
“북부? 거긴 여기보다 거지 같은 땅이요. 길바닥에 얼어 뒤진 송장을 개새끼가 물어뜯고, 아직도 미개한 옛 신앙을 고수하는 늙은이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동네지. 거기 날씨를 몸소 겪으면 여긴 지상 낙원이 따로 없을걸?”
“아뇨, 뭐. 저야 분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지라.”
“케흠, 내가 흑마법사 양반의 행선지를 두고 왈가왈부할 건 없다만, 행운을 빌지. 그 빌어먹을 곳이야 있어야 할 건 없고, 없어도 될 건 넘치는 곳이니!”
피에트 역시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북부라··· 장차 다가올 전란을 피하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닌 것 같네. 어차피 그곳도 제국의 권역에 속한 이상, 필연적으로 운명을 함께할 테니.”
토드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전란이요.”
그릇에 스튜를 나눠담은 쇠렌이 거들었다.
“그래. 게티그, 그 양반이 작년에 제도에 들려서 나름 중앙 소식에 빠삭한데, 황제가 오늘내일한다더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송장을, 중앙 교회의 사제 수십 명이 숨만 붙여놓고 있다는 소문이 허다해!”
입맛을 다신 피에트가 정정했다.
“워낙 호사가들이 황궁의 은밀한 내막을 부풀려 얘기하는 걸 좋아하니, 어느 정도 걸러 들을 필요는 있네. 아무래도 황제 폐하께서 병세가 깊은 건 맞네만, 목숨이 위중한지는···.”
“아니! 그럼 젊은 시절 버릇 못 버려서, 허구한 날 별장에서 사냥질이나 하던 양반이, 1년째 궁궐에만 틀어박혀 있다는데! 그게 뭐겠어? 황천 어귀에 뱃놀이하러 왔다갔다 한다는 거지! 아뇨?”
“떽!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지금은 여기 우리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자칫 황실 모독죄로 경을 칠 수도 있네!”
슬쩍 변경백의 병사들이 있는 쪽을 돌아보던 쇠렌이 너스레를 떨었다.
“저놈들은 송장 무서워서 오지도 못하는데, 뭘. 그래도 한 병에 금화 백 닢짜리 성수를 억수로 갖다 들이부을 테니, 한 3년은 넉넉히 살 수 있을 거요. 그게 애초에 살아있는 건지나 의문이지만.”
이에 카리나가 코웃음 치더니, 분명하게 읊조렸다.
“3년? 어림도 없어. 길어봤자 1년이야.”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에스터리츠 양.”
“너도 알고 있었을 텐데? 사령술사. 고작 변방 제후들 간의 드잡이질에 불과했다면, 내가 여기까지 왔으리라 생각해?”
“물론 아니죠.”
돼지고기가 조금 질겼는지, 인상을 쓰며 질겅인 카리나가 말을 이었다.
“마탑의 꼭대기에 가본 적 있어? 거기서 밑을 내려다보면 마치 지상에 있는 것들이 하찮아 보이고, 나와 아무 상관 없는 미물처럼 느껴져.”
이곳의 마탑은 마천루에 가까운 불가사의들이다. 비록 토드도 게임상으로만 방문해봤지만.
“그럼에도 결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마탑조차 온 땅을 호령하는 황금 권좌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어. 그래서 누구보다도 마탑은 황실 동향에 민감하고.”
흠. 황제가 반쯤 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라면, 진작 선제후들과 유력 제후들 간에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겠군.
“이미 힘 있는 자들은 은밀히 세력을 모으고 있겠군요.”
“벌써 한참 됐어. 이미 선제후들은 휘하의 전력을 확정지었고.”
“···그렇다면 변경백과 이리공도?”
카리나는 말없이 턱을 까딱였다.
짐짓 쇠렌이 목소리를 낮춘 채로 물었다.
“그럼, 마법사 아가씨. 변경백이··· 황제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거요?”
집중하고 있던 피에트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아, 이 무식한 작자 같으니. 왜 결론이 그따위로 나나?”
“아니, 뭐요! 지금 얘기만 들어보면 저 마법사 아가씨가 여기 와 있으니, 마탑에서 변경백 나리한테 줄을 대고 있는 거 아뇨?”
이마를 짚은 피에트가 고개를 내젓자, 쇠렌이 되물었다.
“황제 자리, 그거. 높으신 양반들이 어디 모여 갖고, 저들끼리 대충 인기 투표해서 뽑히는 거 아니었소? 옛날에 그 지럴하다가 똥통에 빠져서 죽었다고도 하더만.”
“황제란 게 표 준다고 아무나 되는 줄 아나? 그럴 거면 선제후 자격을 작성한 황금 칙서는 왜 있고, 선출을 위한 제국 의회는 뭣하러 있겠는가?”
인상을 구긴 쇠렌이 씨부렁댔다.
“씨부럴, 거. 그쪽은 아는 거 많아서 좋겄소. 똑똑하면 하늘에서 포도주라도 한 병 더 떨궈주나?”
혀를 찬 피에트가 정정했다.
“이건 상식이네.”
머리를 벅벅 긁은 쇠렌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쇠렌의 머리로 제국의 복잡한 국내 정세에 대해 논하기엔, 과부하가 오는 모양이었다. 가뜩이나 머리에 털도 부족한데, 상식도 부족한 사내였다.
그래도 토드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머리 나쁜 재담꾼은 주변에 두는 것만으로도 재밌지 않나.
“그래서 결론이 뭐요?”
“슈테판 변경백, 이리공 디트마흐, 둘이 지지하는 선제후가 각각 다른 겁니다. 이 분쟁은 황제 선출을 두고 벌어진 전초전인 셈이지요.”
여전히 쇠렌은 영 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거로 보였지만, 대강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나저나, 이거, 뭐··· 엄수해야 하는, 비밀. 그런 거요?”
눈알 굴러가는 모습이 약삭빠른 쥐새끼 같은 모양새라 토드가 웃었다.
“애초에 발설해서는 안 될 내용이었으면, 이렇게 불가에서 떠들었겠습니까.”
대번에 쇠렌이 화색을 띄웠다.
“오! 좋아. 이 정도면 게티그한테서 한 병 반 정도는 받아먹을 수 있겠구만.”
식사는 무난하게 끝났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던 토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너머 반쯤 걸친 하현달이 창백한 빛을 희미하게 뿌리고 있었다.
본격적인 적지에서의 첫날밤.
평소보다 오늘 밤은 유독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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