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13
213
비밀을 드리우던 베일은 불타고,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요람은 헝클어졌다.
제아무리 퀴셍달이 현혹의 권능을 난사해대며 발악해도 그림 리퍼가 본신을 제압한 이상, 일행은 속속 분신체들을 제거했다.
덩그러니 머리만 남은 일부가 토드의 발치에 굴러왔다. 지팡이를 들어 마무리 지으려는데, 놈이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지상 역시. 무저갱과. 크게 다르지 않아.”
울컥 피를 쏟아낸 악마가 조소했다.
“삶은 어디서나······ 고통으로 얼룩져있지.”
토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나는 그들의 염원을 이뤄줬을 뿐이야. 한낱 환상일지라도. 고통이나, 좌절도 없는 이상 속에서······.”
지팡이로 머리를 굴려 시선을 맞춰줬다. 네모난 동공이 깜빡였다.
“염원을 이뤄준다고요.”
토드는 냉소했다. 자세를 숙인 사령술사는 나직이 속삭였다.
“저는 고통이란, 필수불가결하다고 믿습니다.”
악마의 권세가 약화되면서 점차 쿠텐슈타드의 정경이 드러난다. 여타 악마들이 휩쓸었던 점령지들과 달리, 도시는 비교적 멀쩡했다.
단지 불그스름한 막에 휘감긴 인간들이 곳곳에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것만 빼면.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은 성장하려면 고통을 수반해야만 해요.”
“······헛소리! 넌 외신들이 도래하기 이전의 세상을 아느냐? 어린 필멸자야.”
잘려나간 목울대를 들썩이던 퀴셍달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땐 이 땅에 죽음도··· 고통도, 투쟁 또한 없었다! 모두가 완전하며··· 불멸한 영속을 누렸었지! 너흰 외부로부터 침입한 기만자들에게 속은 거다.”
“아하. 그게 이쪽 세계관의 창세 신화인가요?”
“우린 이 땅을 파괴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옛 조물주들의 뜻이 미쳤던 토대로 회복하기 위해 준동한 것이지. 불완전성을 덜어내고···”
아무래도 주절대는 악마에겐 보다 와닿는 예시가 필요해 보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토드는 문득 부서진 잔해 밑을 눈여겨봤다.
먼지에 뒤덮인 고치.
온통 불과 피로 번들거리는 이곳에서 다른 이라면 신경 쓰지 않을, 티끌이나 다름없는 것.
토드는 조심스레 바싹 마른 허물을 들어 올렸다.
“당신이 말하는 원래 세상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회색 껍질의 형태는 사뭇 수의와 닮았다.
정지된 채로 꼼짝 않고, 영원불멸한 채로 꿈만 꾸는 것. 어떠한 미동이나 변화도 없다.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요.”
악마의 눈자위가 일그러졌다.
“재미······? 일생의 대부분을 시름하고, 앓다가 몸부림치는 게 네겐 재미란 말이냐?”
손톱 끝으로 고치를 훑어내리던 사령술사는 작게 날숨을 불어넣었다.
“삶이란 말입니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불완전성에 나를 던져가며 완성시키기에 재밌는 거예요.”
“선탁자인 네 처지와 저기 잠든 이들이 같다고 생각하나?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조곤조곤 속삭이고, 바스락거린다.
“왜 다를 거라 생각하십니까.”
사소한 약동에서 시작된 변화가 하릴없이 꿈만 꾸던 죽음을 일깨운다.
“가령 이 고치 안엔 뭐가 들어있을진 모르지요. 기껏 공을 들여 보살펴도, 다른 이들이 보기엔 흉측한 각다귀나 보잘것없는 파리 따위가 튀어나올 수 있어요.”
퀴셍달의 힘을 구속하고, 장막 전체에 한기를 퍼뜨려 장악했던 것과 비교하면 극히 사소한 작업이었다.
단지 고치 속에서 작게 되뇌이는 목소리에 귀 기울였을 뿐이다.
“하지만 무엇이 나올지 기다리며 느끼는 설렘. 그 기분이 재미있잖습니까.”
“네놈 말마따나, 하찮은 미물에 불과한 사체에 불과하다. 거기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냐.”
고치가 꿈틀거린다.
“우리가 보기엔 대수롭지 않을지 몰라도, 이 안에 들어있을 피조물에겐 이 고치가 전부일 테죠.”
힘겨운 발버둥 끝에 아이는 아늑한 품을 떠나 비로소 개화한다. 머리부터 비집고 나온 미물은 간신히 다리를 뻗어 토드의 손끝에 매달렸다.
토드는 미소를 그리며 작고 연약한 생물을 쓸어내렸다.
“영영 꿈만 꿔서는 자라지 못합니다. 물론 모두가 피어나진 못하겠죠.”
나방은 숨을 고르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내 천천히 날개를 펼치며 검녹빛으로 만개하는 모습에 악마가 동공을 부릅떴다.
“너, 너. 지금···”
“그 치열한 서사와 과정이 구슬프지만, 실로 경이롭지 않습니까?”
나방은 홀연히 토드를 떠나갔다.
어찌 보면 간결해 보이는 조화.
그러나 만인의 환상을 조작하는 퀴셍달조차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재주였다.
“이토록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자라지 못하고 갇힌 채로 지녀야만 한다니. 그건 회복이 아니라 박제겠죠.”
토드는 용골 지팡이를 쥔 채 속삭였다.
“그 미학을 알지 못하는 당신이 안타깝군요.”
악마가 침묵했다.
유유히 핏물 범벅이 된 대낫을 끌고 온 그림 리퍼는 지면을 훑으며 일렀다.
【한 마리······ 남음.】
죽음의 전령은 그 자체만으로 짙은 그림자를 몰고 다닌다. 끊임없이 용암을 흘리던 악마의 머리 역시 천천히 서리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슬쩍 토드가 낫에 손을 걸쳤다.
“그런데 이대로 집행하기엔 이놈이 지상에 미친 해악이 지대합니다.”
공허한 망토 자락 너머가 구겨진다.
【예외··· 있을 수 없음.】
낫 위에 걸친 손끝이 단숨에 괴사되었지만, 토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놈에 대한 심판을 유예하려는 게 아닙니다. 단지 동등하게 지상에서의 심판 역시 치르자는 거죠.”
토드는 목에 걸린 성물함을 꺼내 보였다. 완연히 이빨을 드러낸 거미 장식을 보곤 그림 리퍼가 낫을 거둬들였다.
【죄의 자식··· 위험함. 지상에서의 구류··· 취약점이 있음】
“그만큼 화로는 확실히 밝힐 수 있을 겁니다. 더군다나 놈의 육신은 무수한 제물을 바쳐 현현한바, 이대로 명계로 집행하기엔 희생자들의 원념에 찬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이대로 소각하기엔 너무 아깝다. 아직 몸뚱이는 쓸 구석이 많았다. 대악마도 강림시키려면 어마어마한 공물을 소모하는데, 잉걸불 의원이라는 명함이 붙어있다면 부차적인 업도 상당한 양.
토드의 속내를 알아차린 그림 리퍼가 뚱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사령술사··· 간교해짐.】
토드는 싱글벙글 웃으며 용골 지팡이를 겨눴다.
“이게 다 어머니와 흑색 학파를 위한 일입니다. 제가 사익을 위해서 이런 위험한 놈을 지상에 붙들어 놓을까요.”
콰직.
무너진 육신에서 강대한 의식이 끌려 나온다. 놈의 영혼이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에 토드가 손아귀를 뻗어 얽매었다.
여타 거미줄에 걸린 놈들은 죄다 비명을 지르거나 있을 수 없는 횡포라며 절규하곤 했는데, 퀴셍달은 체념한 듯 낮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끝장이니 말해다오. 거미는 휘하에 새로운 신격을 거느리려는 거냐?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제가 어머니의 저의를 감히 재단할 지위는 아니지만···.”
말꼬리를 늘어트린 사령술사는 성물함을 닫으며 읊조렸다.
“저는 멀찍이서 관찰하는 것보단, 곁에서 직접 들여다보는 게 더 재밌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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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이 걷히고, 토드의 하수인들은 도시 곳곳에 널린 피막을 해체하는데 착수했다.
비교적 근래에 갇힌 사람들은 미몽으로부터 생환했으나, 이미 깊게 잠긴 자들에게서 꿈을 거두면 숨이 멎는다.
퀴셍달 정도의 악마가 뿌린 권능이라면 고위 주교라도 구제할 도리가 없다.
안식 또한 자비의 일환이라는 흑색 학파의 방침 아래에 토드는 제자들을 보내 가솔들의 여부를 묻도록 조치했다.
존속을 바라는 이들은 시체나 다름없는 몸뚱이를 수레에 싣고 떠나갔지만, 평안을 바라길 원하는 자들은 사제의 입관 하에 마지막 숨을 거둬들였다.
“꿈에 갇힌 자들이 계속 살아남을까?”
카리나의 물음에 토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권능의 주체가 사라진 이상, 못해도 한 달 안에 사망할 겁니다. 저들은 조금이나마 친지의 연명을 지켜볼 순 있겠죠.”
식물인간이라도 소달구지에 끌고 가는 이들은 그나마 여력이 있는 편이다. 얼핏 도시의 외형은 멀쩡해 보이더라도 왜곡이 미친 내부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것이라곤 전무했다.
하물며 난민으로 전락한 이들에겐 살아있는 입마저 부담이다.
도시 앞에 늘어선 화장터가 자욱하게 구름을 일으켰다.
원래 같았으면 죽음을 선사하는 행위에 극렬히 반발했을지 모를 일이나, 입술을 곱씹던 카리나는 말없이 눈을 감을 뿐이었다.
나름 묵상으로 사자들을 애도하는 마법사와 달리, 사령술사는 거리낌 없이 화로에 소금을 뿌리며 성물함을 거머쥐었다.
연녹빛 불길이 번뜩일 때마다 즉각 화로가 세차게 일렁였다.
―갸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에 인상을 찡그린 카리나가 눈을 떴다.
“야, 지금 이 분위기에서 그놈을 지지고 싶어?”
“괜찮습니다. 어차피 영감이 트인 자가 아니고선 못 듣거든요.”
성물함의 진가는 어머니께 담긴 영혼을 진상하여 권능과 지식을 갈취하는 데 있었다.
아무리 온갖 예식이나 규율로 포장하더라도 결국 모든 숭배의 근간은 공양이다.
흑색 학파의 오랜 적대자였던 마귀를 불태우는 것만으로 어머니꼐선 크게 기뻐하신다.
“더군다나 일대에 떠나가는 영가들에게 있어 이보다 감미로운 장속곡도 없지 않을까요.”
―끼이익!!
이쯤 되면 통쾌하기보단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다.
“너도 대단하다. 진짜. 악마를 잡아두고 불 고문한다는 발상은 홍염 마탑의 원로들이라도 두손 두발 다 들겠어.”
영혼의 화로가 타오를수록 자연히 사령술도 강화된다. 토드를 비롯해 흑색 학파에 속한 모든 사령술사들의 권능이 증진되는 셈이니, 이보다 탁월한 전력 증진도 없었다.
‘지역을 지키는 수호정령이나 애먼 사람을 잡아다 영혼을 던져놓는 것보단 낫지. 피의 업도 안 생기고, 하도 원한을 산 놈이라 도리어 눈물의 업이 해소된다.’
이놈들이라면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토드의 눈엔 악마들이 영혼들에게 부담 없는 친명계 원료처럼 보였다.
“악마들이 흘리는 비명은 물질계를 타고 나아가. 자칫 제 동족들을 불러들일 수도 있어.”
카리나의 경고에 토드는 도리어 히죽 웃었다.
“제국 도처에 악마들이 흩어져있는 게 더 골치 아프죠. 이 김에 놈들을 몰아서 사냥할 수 있다면 민생도 편해지고, 저도 좋고요.”
“미친······.”
“영혼이 소멸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온도를 조절하는 게 관건이랍니다.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태우면 이것들이 권능을 회복해서 탈출할 궁리만 엿보더라고요.”
포획해둔 개체 수가 늘어나니 자꾸만 이것들이 모의를 벌인다. 주기적으로 기강을 다질 필요가 있었다.
무슨 냄비 뒤집는 것도 아니고, 토드는 태연히 화로를 들썩이며 소금을 뿌렸다. 특별히 마르커스에게 부탁해 정제된 소금이 불꽃에 닿을 때마다 마귀들의 까무러치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주군.】
스트레이커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성자 안토니오가 군대를 이끌고 네크로폴리스 쪽으로 진군하고 있다 합니다.】
“위치와 규모는요?”
【제국군 측 척후에 따르면 성전사단 일만사천, 도보 상으론 한 달 거리랍니다.】
뻔히 활개 치는 악마들은 내팽개치고, 이쪽으로 곧장 달려오시겠다라.
“아직 여유는 있군요. 우리도 중앙 권역 수복은 마무리 지었으니, 이만 네크로폴리스로 복귀합시다.”
【그렇다면 저희를 따라온 추종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흑단기사의 안광이 서늘하게 흩날렸다.
【그들은 아군의 행군 속도를 저해합니다. 냉정히 성전군과의 일전에서 도움 될만한 전력도 아니고, 자칫 가담할 우려도 있습니다.】
행렬 중엔 열렬한 추종자들이 대거 포진했으나, 그렇지 않은 자들도 더러 있었다. 단지 사자의 군대가 병장기나 일부 물건을 제외하면 전리품을 취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는 얌체들이다.
【전부 망자로 복속시켜, 네크로폴리스의 깃발 아래 들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당연히 주군께선 승낙하지 않으시겠죠.】
토드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어차피 추종자들을 떨쳐낸다 하더라도, 하수인들의 느린 걸음걸이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 같진 않네요. 그냥 내버려 둡시다.”
【그럼 그들을 네크로폴리스로 데려갑니까? 거긴 산 자들이 살만한 환경이 아닐 텐데요.】
“판가우로 보내죠. 가뜩이나 요즘 시 의회가 유례없는 일손 부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데, 라즐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줄 겁니다.”
황폐해진 여타 제국의 권역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화가 비껴간 북부 지역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들었다.
판가우는 하굿둑에 위치한 도시이니 강으로 연결된 네크폴리스 입지상 나쁠 건 없었다.
‘솔직히 살아있는 노동자들이야 내겐 계륵이긴 한데, 그래도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니 살려서 방생은 하자.’
【허나 주군. 비록 안토니오가 반쪽짜리 성전군을 이끌고 있다곤 하나, 성전사로만 구성된 군대는 아군에게도 위협적입니다.】
순수한 교회의 군대는 망자의 군대와 닮은 구석이 많다. 종교적 열의로 무장된 터라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그만한 군집이라면 신성력 샤워를 퍼부어대며 휴식 없이 행군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성가신 상대이긴 합니다. 아마 야전에선 당연히 필패할 테고, 네크로폴리스에서 수성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겠죠.”
카리나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래서, 어쩔 거야. 이대로 그 광신자한테 목이라도 내어주게?”
토드는 느물거리는 입꼬리를 늘어트렸다.
“안톤이 간과한 게 있다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겁니다.”
겨울이야말로 망자가 기동하기에 적당한 온도와 습기가 갖춰진 절기다.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사령술사의 시선은 세차게 타오르는 화로에 미쳤다.
“거기에 아까. 악마의 비명이 동족을 불러낸다고 하셨죠?”
대번에 카리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손을 싹싹 비빈 토드가 뇌까렸다.
“어디 그분들은 무저갱의 마귀들을 상대로 얼마나 잘 싸우는지 꼭 한번 보고 싶네요.”
상호 간에 만전의 상태로 맞붙는 대회전? 그런 건 우리 업계에 있을 수가 없어. 뭐하러 사령술사가 성전사랑 정정당당히 붙어준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할 작정이었다.
‘전부.’
토드는 한없이 의식을 하강시켰다.
어느덧 그가 올라선 층계는 90.
천장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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