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24
224
무엇이 이토록 강대한 자를 쓰러트렸단 말인가. 명실상부 주신이라 불릴만한, 이 땅에서 으뜸가는 교세를 지녔음에도.
손을 뻗어 더듬어봐도 유해는 닿지 않았으며, 부패한 냄새도 나질 않았다.
안타깝게도 한낱 피조물에게 관념만으로 전능자의 사인을 규명할만한 통찰력이나 지혜는 없었다.
여러 사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볼 순 있겠으나, 이내 관뒀다.
‘죽음은 관대하지.’
누구나 죽을 수 있다. 절대적인 명제는 신들조차 거스르지 못한다. 사령술사라면 그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도 아니었다.
그러나 성전사의 안구엔 실핏줄이 도드라졌다.
“멈춰! 감히 네가 신체에 손을 댄다고? 진노가 두렵지 않아?!”
비록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지언정 모든 게 명확해졌다. 토드는 동정심을 담아 속삭였다.
“당신을 이해합니다.”
휘청인 안톤의 잇몸 사이로 으득으득,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네 따위가 뭘 안다고···!”
“누구나 이 사실을 맞닥트렸다면 크게 좌절했겠죠.”
피조물은 지상을 살피려면 눈이 필요하다. 반면 천상의 섭리는 그렇지 아니하다.
“얼마나 허망하고, 한편으론 분개했을지. 차마 그 참담함을 헤아리기 어렵군요.”
지표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이라 그런지 머리맡의 온기가 한층 선명히 느껴진다.
“닥쳐. 닥쳐! 목을 비틀어주마.”
내내 귓가에서 맴돌던 속삭임은 노래가 되었다.
“안톤. 모든 생명은 이 땅에 거쳐 갔던 죽음을 거름 삼아 자라납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닌, 과정이죠.”
위태로이 걷던 안톤은 거칠게 헐떡였다.
“너만 죽으면 이룰 수 있다. 배회하는 이들에게 다시금 신앙의 등불을 비출 수 있을 테고, 주께서도 능히 사망으로부터 돌아오시매, 쇠락해가는 세상을 회복시킬···”
“쇠락?”
토드가 어깨를 들썩였다.
때론 불신자에겐 증언보단 명확한 징후가 필요한 법. 하여 토드는 그에게 직접 보여줬다.
여태껏 호명했던 영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원대한 심혼이다. 드넓은 바닷물을 손아귀로 담으려 몸부림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광채에도 불구하고 사령술사의 상념은 또렷했다.
‘전부 담을 필요는 없어.’
능히 세상을 주무를만한 전능함이 손끝에 있었지만, 토드는 기꺼이 떠나보냈다. 미약한 조각일지라도 자신이 쥘 몫으론 충분하다.
“안 돼! 안 돼!!”
죽어가던 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청을 높인 성전사가 황급히 뛰쳐나갔다.
그토록 갈구하던 빛이었는데. 무심하리만치 성전사를 지나쳐간 물결은 구름 너머로 사라진다.
핏물이 말라붙은 백색 갑주엔 그림자가 드리웠다. 광명이 오롯이 비추는 건 남루한 망토 걸친 이. 끝내 닿지 못한 곳에 놈이 서 있었다.
사령술사는 조심스레 덮어둔 손바닥을 펼쳤다.
작은 엄지손가락 마디 하나.
신의 형상이라기엔 조금의 위엄도 없었으며, 거룩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투박하기까지 했다.
“신께서 임종하신 게 아닙니다. 상징이 죽었을 뿐이지요.”
담담한 어투는 성전사의 전신에 끓어오르던 피를 꺼트렸다. 혈기가 그치자 극한의 탈력감이 인다.
“태양은 변함없이 지상을 헤아릴 테고, 기거하는 자들은 계속 살아갈 겁니다.”
안톤이 되물었다.
“그럼 피조물들은 이 가혹한 땅에서 누굴 등불 삼아 살아간단 말이냐.”
견고한 갑주엔 성전사가 거쳐온 삶의 얼룩이 가득하다. 아무리 수선을 거듭하더라도 지워지지 않을 역사가 그의 투쟁을 방증했다.
“여전히 절대적 존재에게 기대는 분들도 계시겠죠. 그게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토드는 손가락을 쓸어내렸다.
“결국 우린 별수 없이 땅에 빌붙고 살아가는 족속들에 지나지 않아요. 이젠 마냥 하늘만을 우러러볼 게 아니라, 지상에 시선이 미쳐야겠죠.”
힘겹게 주저앉은 성전사가 중얼거렸다.
“신앙의 종말은··· 이 땅에 파멸을 몰고 올 거다.”
사령술사는 빙긋 웃으며 정정했다.
“선택의 폭이 조금 늘어난다고 해두죠.”
“모두가 너처럼 받아들이진 못해. 나와 같이 격렬히 저항하거나, 견디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자들도 수두룩할 거다.”
“원래 성장에는 고통이 수반하는 법입니다.”
“쉬운 일처럼 지껄이는군.”
안톤이 한숨을 흘렸다.
“그거 아나? 난 이 땅에 가장 먼저 떨어졌다. 그때부터 지금이나 유일하게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난 이 세상을 못내 사모하여 견디지 못할 지경이라는 거다.”
토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뭘 좀 아시는군요.”
“여긴 환상과 신비가 살아 숨 쉬고, 사람들은 명예와 신의를 알았단 말이다.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고, 고결한 관습이 존속했다. 그에 비하면 이전 삶에서 겪었던 세상은 어땠지?”
말미에 이르러 성전사의 어투엔 적개심이 묻어났다. 토드를 상대할 때보다도 맹렬한 혐오가.
“의지할 기반을 잃은 세태는 지옥이 강림한 것만도 못했다. 인간에겐 신이 필요해.”
고개를 기울인 토드가 나지막이 물었다.
“···실례지만, 이 게임 시작했을 적엔 한창 히키 짓에 몰두하던 때 아니었나요? 골방 폐인이 시대정신을 논하기엔 좀···.”
치부가 들통난 안톤은 와락 역정을 냈다.
“내가 여기 보내진 까닭엔 분명 드높은 안배가 있으리라 확신했었다! 주의 피조물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악을 배제하는 것! 장차 안전하고 이상적인 세상으로 만드는 게 성전사로서 의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 성전사라면 이래야지.
안톤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냈다.
“수십 년간 이 땅에 들끓는 사교도들과 사악한 짐승들을 퇴치하는 데만 몰두했다. 내 모든 걸 바쳤어.”
그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태양 교단의 권위가 미치는 땅에선 질서를 흔들만한 위협은 제거되었다. 중앙 교구에선 내게 시성 절차를 행했고, 공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지. 그쯤 이르러 난 모든 사명을 완수했노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거기까지 토드가 기억하는 성전사 플레이의 결말.
“그런데 평화가 임하자 신자들은 교회의 슬하를 떠나갔다.”
면면을 분노로 일그러트린 와중, 그가 낄낄거렸다.
“배은망덕한 놈들 같으니라고.”
돌이켜보면 이 땅에 당도했을 무렵, 이곳엔 으레 있을 법한 정신 보정 따윈 없었다.
화신이라 해도 살과 피로 만들어진 피조물.
설령 뒤집어쓴 껍데기가 달라졌더라도 거기 안착한 알맹이가 한없이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건 변함없었다.
“그래서 난 분란을 일으킬 숙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로소 구주의 저의를 이해했지. 그토록 전능하신 분께서 어찌 이 땅에 악을 방조하셨는지도.”
저런. 토드가 탄식했다.
힘겨운 숨을 토해낸 성전사의 안색은 파리했다. 여전히 사령술사의 손 위에 올려진 신체는 어떠한 징후도 발현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계시였다.
“그릇된 길이란 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신화가 죽은 세상에서 나 같은 놈들이 무슨 의미가 있지?”
한기가 엄습한다. 성전사가 벌벌 떨었다.
“인생은 스토리 게임처럼 명확한 결말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픈 월드죠.”
그 앞에 토드가 무릎을 낮췄다.
“끊임없이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몸부림의 연속일지 모릅니다.”
“철학자 행세 따윈 집어치워.”
안톤이 으르렁거렸다. 토드는 히죽 웃었다.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살 통통하게 오른 구더기나 거미 배때지나 얼마나 빵빵해졌는지를 보고 시신의 경과를 유추할 순 있어도, 삶의 의미는 죽기 직전까지 이르러서도 모르지 않을까요.”
그런 놈이 내게 훈계를 늘어놓아? 욕지기는 목청 밑에서만 끓어올랐다. 끝이 머지않았음은 둘 다 인지했다.
“그러니 기왕이면 즐겁게 체험하는 거죠. 무한한 컨텐츠! 선택지에 따른 보상과 좌절까지도!”
토드의 입가가 싱글거렸다.
“난 널 이해할 수 없다.”
안톤은 피를 뱉곤 낮게 중얼거렸다.
“삶을 놀이처럼 즐기라니.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어.”
혀를 찬 토드가 그를 다독였다.
“미안합니다. 안톤. 제가 당신을 잘못 키웠군요.”
융통성과는 거리가 먼 플레이를 고집했던 눈덩이가 이렇게 굴러올 줄이야.
얼떨결에 위로를 받게 된 꼬락서니는 성미에 견디질 못하겠던지, 안톤이 눈을 뒤집고 반항했다.
“당신은 성전사로서 충실했을 뿐이겠죠. 당신의 뜻을 존중합니다.”
이내 꿈틀거리던 육체가 잦아들었다. 위태롭던 맥박 역시 간헐적으로 끊어진다.
문득 안톤이 물었다.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제게 자격이 있을지나 모르겠습니다.”
“하긴, 기대도 안 했다.”
허탈한 미소를 흘린 성전사가 중얼거렸다.
“사령술사한테 고해성사를 늘어놓는 놈 따위, 무저갱보다 어울리는 장소가 있겠나.”
토드는 다소 모호한 미소를 흘렸다.
“글쎄요.”
마지막까지 망치를 쥐고 있던 손아귀가 힘을 잃었다. 토드는 고요한 동공을 감겨줬다.
“조만간 거길 찾아갈 생각이긴 한데, 우리가 거기서 재회할 것 같진 않네요.”
아마 뒷말까진 닿았을 것이다. 의식이 끊기더라도 청각은 마지막까지 잔존하는 감각이다.
단지 그가 어디로 떠나갔을진 토드도 알지 못했다.
본디 화신은 이 땅에 얽매인 존재가 아니어서 그런지, 어떤 형태로든 이곳의 내세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 사실은 함구한 채로 토드가 속삭였다.
“바라건대, 돌아가겠나이다.”
토드는 안톤의 시신을 부여잡은 채로 하강했다. 지휘관이 사망했음에도 여전히 네크로폴리스에선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상으로 돌아오니 그림자에서 호리호리한 인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야, 어디 갔다 온 거야? 벌써 기사단장 모가지만 열댓 넘게 족쳤는데, 이것들은 아직도 팔팔하게··· 히익!”
불평을 늘어놓던 라노는 발치에 놓인 시신을 보곤 기겁했다.
“그, 그 새끼 맞지? 진짜 뒤졌어?”
괜스레 칼끝으로 옆구리를 콕콕 찌르려 드니 토드가 표정을 구겼다.
“망자에 대한 예우가 아닙니다. 칼 치우세요.”
서슬 퍼런 음성에 라노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 알았어. 승질내긴. 어차피 날도 안 드는구만.”
힘겹게 망치를 치켜든 사령술사의 음성이 네크로폴리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성전은 끝났다.”
이미 빛기둥이 솟구쳤던 탓에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 있었다.
성전사들은 토드의 손에 들린 무구를 주시했다.
“투항하여라. 난 그대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망자들이 먼저 일제히 무기를 거두자, 경계하던 성전사들 역시 하나둘씩 날붙이를 떨어트렸다.
악다구니는 그치고 바닥을 구르는 냉병기들의 소음만 요란하게 귀를 때린다.
“산시아.”
토드가 잠시 부재한 사이 하수인들을 지휘한 수제자는 극도로 피로해 보였다.
“네, 스승님.”
“중앙 교구에 서신을 작성하세요. 성 안토니오와 아빠티사 기젤라의 주검은 정중히 예우하여 보내겠다고.”
“전사자를 제외한 포로들은 전원 생환 조치토록 할게요.”
“물론입니다. 단, 무장은 모두 해제시키세요.”
교회에서 주조한 갑옷과 무기들은 질 높은 공방에서 만들어진 상등품들이다. 망자들에게 입히려면 잿물에 담금질하고 일주일간 신성을 빼내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제자들이 도맡아서 해줄 일이다.
“···그리고 장례 미사엔 저도 참가할 거라 언질해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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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여전히 무저갱의 침공이 드센 상황임을 고려하여 아덴티아 포스텔룸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기젤라는 생전의 공적을 인정받아 사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덕분에 두 남녀는 나란히 간격을 두고 묘소에 안장될 수 있었다.
“천상의 성인들이여. 오소서. 권좌 가운데 나란히 선 천사들께서 그들을 가려내어 비추소서. 아득히 드높은 아버지께 그들을 바치나니. 영원한 안식이 그들에게 머물기를―”
대주교가 경건하게 추도문을 읊던 도중, 파멸의 기사가 안광을 바짝 좁혔다.
【꼭 하얗게 맞춰 입은 게 수의가 아니라 결혼식 때나 입을 법한 모습일세.】
망자의 뒤틀린 심미안이란. 도무지 종잡을 구석이 없었다.
귀에다 대고 속삭인 내용이었으나 하필 옆자리에 마르커스가 앉아있었다. 심기가 거슬렸는지 눈자위를 부릅떴다.
【정녕 이 불충한 자가···!】
헛기침을 삼킨 이스라는 괜히 팔꿈치로 토드를 건드렸다.
【자네가 보기에 본인에게도 어울릴 것 같나?】
그나마 남아있던 일말의 경건함마저 팍 식는 기분이다. 토드가 쓴웃음을 흘렸다.
“글쎄요. 망자가 입는 옷이니, 그럴 지도요.”
대체 어떤 점에서 마음에 들었는진 몰라도, 이스라는 퍽 흡족한 눈빛이었다.
【다만 본인은 누워서가 아닌, 선 채로 입을 것이라네!】
끝내 마르커스가 낮게 뇌까렸다.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내가 친히 네놈의 관짝을 닫아줄 수도 있다. 파멸의 기사.】
【48년은 아직 한참 멀었네. 심문관!】
아무리 낯짝 두꺼운 토드라도 망자를 송환하는 경건한 자리에서까지 하수인들의 추태를 묵인하긴 어려웠다. 둘 다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