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53
053
오드람은 에다리크를 잘 부탁한단 말만 남기고는, 거의 혼절하다시피 잠들었다.
그의 회복까지 5일.
어차피 악마에게서 입은 상흔은 회복 물약이나 약초 따위론 치유할 수 없으니, 놈들과 수두룩하게 싸워온 오드람의 계산은 정확할 거다.
문을 닫은 성주가 물었다.
“···자초지종은 듣고 왔나?”
“그렇습니다.”
“아마 놈들도 마드로 님의 상태를 알고 있겠지. 어느 때보다도 도시가 위태롭네.”
“일단 저는 오드람 씨가 몸을 추스를 때까진 에다리크의 방어를 도울 생각입니다. 성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요.”
성주가 쓴웃음을 흘렸다.
“진짜 이름까지 들었다니 내가 왈가왈부할 게 있겠나. 오드람 님께서 이토록 신뢰하신다면.”
오드람이 왜 가명을 사용하는지는 의아했지만, 본인이 굳이 말하지 않았으니 토드도 캐묻진 않았다.
“주교가 길길이 날뛰는 걸 봐야 할 테니,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음··· 그분들은 제가 알아서 상대해보겠습니다.”
당연하지만 홀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상석에 앉은 성주가 오드람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는 와중에도 사제들은 토드를 쏘아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쇠렌이 슬그머니 속삭인다.
“사령술사 양반. 근데 저 건너편에 있는 양반 말이오. 내가 어제 봤던 거 같소.”
“쇠렌 씨가 어제 다녀오신 곳이라면··· 사창가 아닙니까?”
“제일 인상 험악해 보이는 양반 말이오. 그놈들이 제가 마지막 손님이라고 했었는데, 내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거든.”
주교치곤 꽤 고상한 취향이 아닐 수 없다.
“확실한 겁니까?”
“망토를 눌러쓰고 있었어도, 코에 난 사마귀는 확실하게 봤지. 틀림없소.”
성주가 말을 마치자, 곧장 주교가 토드를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아무리 마드로라고 하더라도, 죽은 자를 일으키는 마법사라니! 저자가 흑마법사들과 다를 게 뭔가!”
성주가 이마를 짓눌렀다.
“카시미로, 그는 어젯밤 거주 구역에서 보호받지 못했던 시민들을 구해내고, 폭도들을 물리쳤소.”
“그것만으로 어찌 저놈을 신뢰할 수 있나? 원래 기만과 술책은 저 사특한 족속들의 주특기지! 분명 저놈에겐 다른 속셈이 있을 게 틀림없다!”
자리에서 일어난 주교가 근위대와 경비대를 향해 다그쳤다.
“뭣들하고 있나! 당장 저자를 잡아들이지 않고! 애당초 저런 불길한 자를 여기 들인 것만으로도 죄악이다!”
병사들이 주교와 성주 사이의 눈치를 보는 가운데, 토드는 품에서 문서를 집어 들었다.
“카시미로 주교님. 주교님께서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건 유감입니다. 다만 저를 체포하실 수는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토드는 직접 체포 면책권을 성주에게 건네줬다.
내용을 훑어내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술사 토드 하워드의 신분은 켄젤슐리텐 변경백이 보장하고 있소. 이곳 에다리크 또한 엄연히 제국의 권역이니만큼, 여기서도 이 문서는 유효하네.”
주교는 연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모두가 속고 있는 게 틀림없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사악한 마법사를 변호한단 말인가? 마땅히 구주의 뜻을 따르는 신자라면, 저 불결한 족속들의 의도를 의심하는 게 응당 맞는 도리 아닌가!”
“적어도 난 마드로 님의 안목을 믿소.”
“나 또한 마드로가 이 땅에서 일궈낸 공헌을 부정하진 않지만―”
인상을 와락 구긴 주교가 대꾸하려던 차였다. 돌연 병사가 홀에 급히 들이닥쳤다.
“성주님! 성주님! 식별되지 않은 병력이 사방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벌써 시작된 건가.’
1일 차부터 몰려올 줄이야. 하긴, 줄곧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면 지금 만한 때도 없겠지.
“병력의 숫자가 어느 정도인가?”
“대략 3천에서 4천 정도입니다.”
성주가 눈을 질끈 감았다.
토드로선 좀 의아한 일이었다.
일전에 있던 프론지 성채에 비하면 에다리크는 훨씬 견고한 성벽이 감싸고 있어 수성에 용이한데.
토드가 물었다.
“수비 병력이 얼마나 남았는진 모르겠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방어해볼 만한 하지 않습니까?”
“글쎄. 사령술사. 그중에 전사들이 얼마나 끼어있으리라 보오?”
“적어도 놈들에게 성벽을 무너뜨릴 화포만 없다면야 별문제가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뒤이어 다른 병사가 뛰어들어왔다.
“성주님! 놈들이 정문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거기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성주님께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마침 놈들이 먼저 날 부르는군. 궁금하면 같이 가서 확인하세나.”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시죠.”
///
성벽 아래, 온통 새카만 물결처럼 적들이 몰려와 있었다.
대부분이 중보병이었는데, 그중에서 동물 가죽을 뒤집어쓴 경보병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겉으로 느껴지는 흉포한 기세가 여기까지 미친다.
토드 옆에 서 있던 이스라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들의 투쟁심이 느껴지네. 우리를 향한 맹목적인 적의로군.】
“실로 그렇군요. 일단 저들에게 화포나 여타 병기가 보이지 않는 건 그나마 희소식입니다.”
확실히 스칼바냐르인들이 대포까지 끌고 다닐 형편은 안되는 모양이었다.
【하, 하! 하. 최고지 않은가···! 그 고약한 화약 냄새 없이 순수하게 철과 피로 맞붙는 전장이라니! 오오, 기대되는구나!】
죽음의 기사가 안광을 이글거렸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면, 마땅히 본인의 위명 또한 드높아질 테지.】
성주가 성벽 위로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아래에서도 뿔 투구를 눌러쓴 거한이 걸어왔다.
그는 자신의 등에 메고 있던 폴 엑스를 땅에 내려찍었다.
콰직-!!
그리곤 대뜸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성벽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에 병사들이 주춤댔다. 거한의 포효에 북부인들의 군세가 덩달아 소리쳤다.
“올비르! 올비르!”
“거인의 아들!”
거한은 의기양양한 투로 외쳤다.
“스칼바냐르의 대지에 기생하는 외부인들이여! 나는 알란툼의 군장, 올비르다!”
그는 성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역겨운 벽돌로 쌓은 도시가 멸망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네놈들이 항복하더라도, 모조리 척추를 갈라 도나르께 바치겠노라!”
그러자 에른스트 성주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왜 나를 부른 것이냐! 이 역겨운 도적들의 우두머리 놈아!”
“그럼에도 그 너머에 우리의 동포들이 사는 걸 안다. 나는 그들의 피가 흘리는 걸 원치 않으므로, 내일 동이 틀 때까지 그들을 내보내라! 그리하면 적어도 고통 없이 죽여주마.”
“여기 있는 모두가 에다리크의 시민이다! 출생에 상관없이, 이 도시를 터전으로 잡고 사는 이라면!”
대번에 올비르는 비웃음을 흘렸다.
“나는 어젯밤 도시에서 일어난 일을 안다. 네놈들의 수하에서 탄압받던 동포들이 들고 있어났거늘. 그걸 애써 부정하는 것이더냐?”
“가증스러운 혓바닥을 놀리지 마라. 이교도 놈. 네놈들이 흑마법사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간밤의 폭동은 음험한 사술로 말미암은 것이지, 이 도시에선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
올비르가 도끼를 뽑아 들어 성주를 겨눴다.
“내일까지 말미를 주겠다! 분명 경고했지만, 투항하려는 동포들을 보내주지 않으면, 도나르께 맹세코 곱게 죽이진 않을 테니.”
그 말과 함께 올비르는 자신의 군영으로 성큼성큼 돌아갔다.
성주가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그를 뒤따르던 사제들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토록 토드를 견제하더니, 이젠 신경도 안 쓰고 저들끼리 은밀히 소곤대면서 바삐 걸음을 옮기는 게 아닌가.
다들 분위기가 침울한 와중에 이스라는 건틀렛을 틀어쥔 채로 외쳤다.
【기사도 전집 가라사대, 그대여. 공성전은 언제나 피할지어다! 설령 진흙탕 속에서 벌이는 몸싸움이더라도, 좁은 골목에서 맞붙는 난투극이더라도, 비가 떨어지는 날의 행군조차도 이에 견주질 못하니. 공성전은 양쪽 모두가 괴롭고, 고되고, 지루한 발버둥의 연속이라!】
“공성전의 참혹함을 잘 드러낸 대목이군요.”
안광은 여전히 세차게 타올랐다.
【암! 참혹하고야 말고! 그만큼 끊임없는 싸움이 계속해서 벌어진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스라는 연신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있던 츠바이헨더를 흔들어댔다.
【오히려 좋다! 더욱이 우리는 이 도시를 지켜내기 위해 싸우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요.”
【하, 하! 하. 공존을 위해 애쓰려는 수성자들! 수적 열세는 명백하나, 삶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맞선다! 그런 이들을 돕기 위해 칼을 든다니! 이 얼마나 훌륭한 구도가 아닐 수 없겠나!!】
오랜만에 신이 났네.
어째 과몰입하는 모습이 그 주인에 그 하수인이라고. 이스라는 누구보다도 전투 준비에 만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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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명.
“턱없이 부족하군요.”
경비대장이 한숨을 흘렸다.
“간밤에 죽은 녀석들이 상당했어. 어쩔 수 없었지.”
경비대와 근위대를 포함하여, 현재 에다리크의 수비 병력은 채 400명이 되질 않았다.
근위대장이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아마 싸울 수 있는 장정들을 모조리 동원한다면 얼추 300명 정도는 추가로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모든 구역을 틀어막기엔 턱없이 부족하군.”
“지금은 장정들뿐만 아니라, 아녀자부터 노인까지 돌이라도 들 여력이 있다면 성벽 위에 세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성주님.”
“···그렇지 않아도 스칼바냐르인들의 민심이 동요하고 있다던데, 모두에게 소집령을 내린다면 어찌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싸우려 들겠나.”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 전부가 여기서 죽고 맙니다! 성주님! 지금이라도 종을 울리고, 소집 명령을 내리셔야 합니다.”
경비대장이 말했다.
“마드로님께서 깨어나시려면 닷새만 버티면 되는 거 아냐. 적어도 성벽이 있는 한, 그 정도는 사내들만으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다짜고짜 모든 사람을 싸움에 내모는 건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그러자 근위대장이 눈썹을 뾰족하게 세웠다.
“너도 북부 출신이라, 놈들에게 동조하려는 거냐?”
“이게 뭔 개소리야, 씨팔.”
“처음부터 방비를 철저하게 세워둬야지! 도시가 함락되면 제국인들은 모두 학살당한다. 그럼에도 알량한 마음가짐으로 수성에 임하려는 건 어차피 네놈들은 같은 태생이니,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심상 때문 아닌가? 가트릭.”
“호프만, 난 네가 그리 상상력이 풍부한진 몰랐군. 이 김에 근위대 일은 때려치우고, 작가나 하지그래?”
성주가 단호히 선언했다.
“둘 다 자중하게.”
그럼에도 여전히 뾰족한 수는 도출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닷새를 버텨야 하지만, 적들은 사방에서 에다리크를 에워싸고 있었다.
분명 놈들도 사방에서 공세를 가할만한 여력은 없겠지만, 수적 열세가 관건이었다.
“지난밤의 손실이 뼈아프군. 화포 기술자였던 토르벤도 죽었다고.”
각각 네 방향의 문 위에 배치된 대포를 정비할 기술자마저 죽었다고 한다.
회의장의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가운데, 가만히 상황을 경청하고 있던 토드가 나섰다.
“성주님, 제겐 이 상황을 타개할만한 수가 있습니다.”
그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성주가 조금 겸연쩍은 투로 물었다.
“자네에게···?”
“그렇습니다. 우선 간밤의 폭동으로 죽은 자들의 시신을 한 곳으로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설마, 그들을 전부···.”
“예. 여기 계신 가트릭 경과 호프만 경도 술집에 있던 제 하수인들을 목격하셨겠지만, 제 힘은 죽은 자들을 수족으로 일으키는 데서 비롯됩니다.”
적지 않은 수가 죽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폭도들은 피의 업으로 일으키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은 눈물의 업으로 불러세운다.
“더불어 소집령으로 새로 소집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기존의 병사들에게 계약을 추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계약이라니?”
토드가 태연하게 답했다.
“시신 양도 각서입니다.”
사망 즉시, 귀하의 시신은 사령술사에게 귀속된다. 단, 그 기한은 에다리크의 공성전 동안에 한정 지으며, 전투가 종료된 이후에는 성주와의 합의하에 장례 절차를 치름.
터무니없는 제안에 경비대장조차 질색했다.
“대체··· 왜 이런 계약이 필요하다는 건가?”
“사전에 마법으로 계약을 묶어놓으면, 그 자리에서 쓰러지더라도 곧장 망자로 일으킬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야 전력상에 손실이 없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미리 동의를 받아놓고 망자로 일으키면, 소모되는 눈물의 업도 감소한다.
훨씬 효율적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도덕적 물의나 비난에 대해선 감수해야겠지만.
성주는 입술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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