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52
052
마드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귀찮은 놈 하나 상대했네. 시장 쪽으로 튀어나오려 하길래, 미리 명계로 진입해서 때려잡았지.”
산 자는 명계에 진입할 수 없다.
아마 주술사가 레벨 70부터 배울 수 있는 「유체이탈」을 사용한 거로 보였다.
“자네와 더불어 여러 인재가 간밤의 소동을 통제해준 덕에, 그나마 놈이 조금 약화된 편이었다네.”
간밤에 악마까지 강림했다면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을 것이다.
“···확실히 소멸시켰습니까?”
“달아났네.”
토드가 침음을 삼켰다.
“놈을 끝장내진 못했네만, 상처는 확실하게 새겨주고 왔네. 아마 당분간은 심연에서 기어 나올 엄두도 못 낼 거야.”
“그렇지 않아도 어제 난동을 주도한 자들에게서 흑마법의 자취가 짙더군요. 왜 놈들이 이 도시에 악마를 소환하려는 겁니까?”
마드로가 성주를 향해 손짓했다.
“에른스트, 와인 한 병 갖다주게.”
성주를 시종처럼 부려먹는 것도 놀라운 광경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군말없이 선반에서 술병을 꺼내왔다.
“고맙네.”
그가 손가락을 꼼지락대자 절로 코르크가 빠져나왔다. 한 번에 반절 가까이를 비운 마드로는 토드 앞에서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스칼바냐르에서 이렇게 질좋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건 축복이지.”
생김새로만 봐선 사과주나 럼 따위를 마셔댈 것 같은데.
“에다리크는 북방식민정책으로 세워진 다섯 도시 중 하나일세. 여전히 제국인들과 북부인들 간의 융화가 성공적이진 않았으나, 적어도 한 울타리 내에서 공존까진 도달한 상태지.”
“저는 개인적으로 식민정책이라는 말의 어감이 썩 좋게 들리진 않는군요.”
마드로가 쓴웃음을 삼켰다.
“정확히는 개척이 올바른 표현이겠지. 어쩔 수 없었네. 적어도 제국 측에서 호응할 만한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면 순록대공이 이 계획에 자금을 댈 일은 없었을 테니.”
토드는 팔짱을 낀 채로 그를 응시했다.
“당신은 왜 제국과 협력하는 겁니까.”
“나 말고도 이미 스칼바냐르를 등지고 제국에서 일거리를 찾는 이들도 많네. 왜 나는 안될 거라고 생각하나?”
“그야···.”
오드람.
주술사들이 우상으로 우러러보는 대주술사.
스칼바냐르에 존재하던 신화 속 괴물들을 수도 없이 처치했고, 평생 문명인들의 공포로 군림한 자.
온 북부인들이 우러러보는 영웅.
그랬던 이가 북부를 제국처럼 발전시키려는 계획의 책임자라니.
뭔가, 무언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었다.
토드가 말을 흐리자 피식 웃은 마드로가 성주를 향해 말했다.
“에른스트. 단둘이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네.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게나.”
“마드로 님, 이자를 신뢰하시는 건 알지만, 지금 상태가···.”
마드로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보였다.
“괜찮네. 토드와 나는 서약까지 걸어놨으니, 자네가 우려하는 일은 없을 거야.”
토드를 훑어보던 성주는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마드로가 어깨를 들썩였다.
“흐흐, 저 녀석은 나와 어려서부터 봐와서 그런지, 때론 자신이 이제 이곳의 지배자라는 걸 망각한다니깐.”
성주는 이미 백발이 성한 중년인데.
“얼핏 두 분은 비슷한 연령대로 보입니다만.”
마드로는 술병을 비웠다.
“이 몸은 잘 늙지도 않지. 축복이라 여겼던 때도 있었다만, 이젠 귀찮을 따름이야.”
주술사의 회색 눈동자엔 짙은 피로가 묻어났다. 그는 하염없이 토드를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이 땅에 가족이나 친척도 없는 혈혈단신이네. 이전의 출생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네. 이젠 백골이 된 영감들의 말마따나,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졌다고 했으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토드 역시 아주 오래전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떨어진 이여. 흩어진 이여. 오르는 분이시여. 그대는 벼락과 같이 이 땅에···.’
분명 스승님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저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마드로가 히죽 웃었다.
“어쩐지. 나는 자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낯이 익은 느낌이었네. 마치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형제나,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하지만 그것만으론 우리의 이 유대감을 설명하긴 어렵겠지.”
“······.”
둘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마드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거 아나? 토드. 누군가를 들여다본다는 건, 반대로 상대방 역시 들여다볼 껀덕지를 열어주는 꼴이라네.”
그는 자신의 미간 사이를 가리켰다.
“보통 레벨을 확인하려면 시선이 여기로 쏠리지. 이 너머에 영혼을 담는 그릇이 들어있거든.”
토드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언제부터 눈치채셨습니까?”
이젠 가릴 것도 없지.
“오드람.”
“내내 의심은 하고 있었네. 다만 자네의 시선이 곧장 내 미간으로 향하는 걸 보고 확신했지.”
“이런. 제가 미숙했군요. 저도 다른 플레이어를 만나본 건 처음이라, 나름 숨겼던 건데 말입니다.”
오드람이 어깨를 으쓱였다.
“···다음부턴 들키지 않도록, 시선 처리까지 신경 써야겠군요. 이미 말은 가려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미구현이라는 단어를 꺼낸 것도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습니까?”
“물론이지. 거기서 동공 반응이 없길래, 조금 긴가민가했었네.”
“그랬군요.”
“원래 다들 그렇게 배워나가는 거지. 다만 이 땅의 생태가 뉴비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다는 건 명심해두게나.”
“원래 유명했잖습니까. 불친절하고, 알아야 할 건 많은데, 이유도 모르고 계속 죽고.”
“참으로 개 같은 게임이지.”
오드람의 중얼거림에 토드가 키득거렸다.
“그런 점 때문에 이 게임을 몰입해서 즐겼던 게 아니겠습니까.”
“원래 대중성과 거리가 먼 게임을 붙잡고 있는 놈들의 취향이야, 뻔하지.”
“그렇지요. 여정에 더해지는 고행과 역경, 전부 자극입니다···! 그걸 극복할 때 그 짜릿한 감각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지요.”
가만히 토드의 말을 경청하던 오드람은 미묘하게 표정을 구겼다.
“자네, 이 땅에서 몇 년 살았나?”
“흠, 아마 올해가 15년째일 겁니다.”
“그럼 이미 혼동을 겪을 시기는 한참 지나지 않았나.”
“무엇을요?”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에 오드람은 낮게 속삭였다.
“토드. 여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네.”
“예. 현실이지요.”
“헌데 자네는 마치 이 모든 걸, 여전히 놀이처럼 즐기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군.”
토드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이상합니까?”
“······적어도 자네는 어떻게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이 땅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부 진짜일세. 가짜가 아니란 말이네.”
“흠, 가짜와 진짜요.”
토드는 구석에서 나무 의자를 끌고 와, 오드람 앞에 마주 앉았다.
“가짜거나, 진짜거나. 저는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달라진 게 없다니···.”
“우리가 게임에 플레이할 때, 설령 그 세계가 가짜라고 하더라도 우린 진심으로 몰입하지 않았었습니까.”
게임에서, 내가 선택한 역할에 충실한다.
한때 교회의 성자였다가, 북부를 이끄는 영도자가 되고, 세상의 균형을 위해 고행을 자처하는 승려가 되었다가, 도둑 조합을 이끄는 밤거리의 거두가 되고.
이제는 방황하는 목소리들을 인도하는 사령술사로.
“지금도 저는 몰입하고 있는 겁니다. 그 태도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드람이 헛웃음을 흘렸다.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군.”
언뜻 토드는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렇습니까? 당신이라면 이걸 이해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유감이군요.”
“이런 세상에 떨어지고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뭐, 기왕 전 떨어진 김에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살자는 주의입니다. 제가 그토록 열광하던 게임이잖습니까.”
토드는 의자를 쓸어내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전생? 현실? 지구? 거기선 제게 어떠한 역할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가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더군요.”
원체 삶이 시궁창 같았어야지.
혹자는 자신의 생애를 가리켜 가상세계로의 도피라고 명명할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게임이 켜질 때 이르러서야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인지했지만.
“그나마 여기선 제게 역할이 부여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 사실에 감사하고, 안도할 따름입니다.”
사령술사가 히죽 웃었다.
“적어도 여기선 내게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흐, 중세풍 세계관에서 네크로맨서라니. 듣기만 해도 그 과정이 그리 즐거워 보이진 않네만.”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예, 첫 1년은 공동묘지를 배회하고, 5년은 심문관을 피해 하수도에서 전전긍긍하다가, 2년은 시체 묻어주면서 삯을 받고, 매번 도망치고, 쫓겨나고, 바퀴벌레처럼 연명하는 게 늘 있는 일이었죠.”
돌이켜보면, 솔직히 즐거운 추억은 아니다.
그럼에도 유의미한 체험이었다.
“그걸 전부 겪고도 여전히 여기가 재밌는 놀이처럼 느껴지나?”
토드는 추후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예. 이 정도면 정말 살아갈 의미로 넘치는 세상 아닙니까?”
컨텐츠로 가득한 갓겜이다.
그 속내를 알아들은 오드람이 낄낄댔다.
“자네는 미쳤네. 미치다 못해, 정신이 마모되었군.”
“뭐, 방어기제일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전 만족스럽습니다.”
웃음을 그친 오드람이 술병을 들이켰다.
“그렇군. 난 여기 떨어진 순간부터 매일이 지옥이었네.”
“그랬나요? 안타깝군요. 어찌 보면 저와 당신은 동일인이거나, 분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인데. 어째 다른 감상을 느꼈을까요.”
의아해하는 토드를 향해 오드람이 이빨을 드러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주변엔 배를 가른 인간 제물들로 가득했었네.”
아마 주술사의 인트로였던가.
“느닷없이 낯선 곳에 떨어졌는데, 주술사들은 나더러 핏물 섞인 죽을 먹으라 강요하더군. 말도 통하지 않아서, 나는 부족에서 오랫동안 타박받았네.”
“잠깐.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요?”
“당연한 게 아닌가. 게임이 현실로 이식된 건지, 어떤 원리로 이 세상이 구현된 건지 몰라도, 여긴 게임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디테일들이 별도로 존재하잖나. 스칼바냐르 말을 자유롭게 하기까지 5년이 넘게 걸렸네.”
그렇다기엔 자신은 소통에 별문제 없었는데.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던 토드는 문득 짧게 탄식했다.
‘언어 패치가 적용된 게 3회차부터였나.’
그 전엔 영문으로만 하다가, 공식 언어 지원에서 한국어가 추가된 건 무도승을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이런 사소한 차이가 삶의 궤적을 극명하게 가른 것이다.
“하여튼 별로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니, 늙은이의 넋두리는 접어두지. 어쨌거나 나는 이런 스칼바냐르의 행태에 환멸을 느꼈고, 이곳을 바꾸고 싶네.”
“북부를 바꾸신다고요.”
“스칼바냐르를 계도하는 것이지. 적어도 더 나은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다섯 개 도시는 내가 애착을 들여 가꾼 산물들이나 다름없네. 스칼바냐르인들 중에도 내게 호응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달갑지 않게 여기는 자들도 많았지.”
오드람은 갈라진 살갗을 짓눌렀다.
“주술사들의 혼란을 내가 중재하지 못했고, 그사이 발생한 분란에 흑마법사 놈들이 끼어들었네. 그 뒤로 저들은 나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당신에겐 이 도시가, 경험치를 전소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정도로 소중합니까?”
“······늙은이의 아집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주술은 제물을 요구하지. 가장 효과적인 건 인간이고.”
“짐승이나 피를 바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드람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네. 토드. 까마귀 신은 관대하지 않지. 이지를 초월하는 상대와 싸우려면, 더 큰 대가가 필요하기 마련이네.”
레벨 78의 초인이라도, 악마에게서 입은 상흔은 여전히 낫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자기 자신을 공양하다 보면, 당신은 죽을 겁니다. 오드람.”
“죽음이라! 그야말로 내가 못내 바라는 것이지. 나는 줄곧 이 모든 게 끝나기를 바랐다네. 자네는 다음날 일어났음에도 악몽이 끝나지 않는 기분을 아나?”
“마모된 건 오히려 당신 같군요.”
“이 땅에서만 60년 넘게 살았네. 난 이제 지치고, 늙었어. 나로 인해 누군가가 죽고, 죽여야 하고, 이런 건 지긋지긋해. 차라리 망가진 늙은이의 육신이라도 장작불에 던져넣는 게 속 편하지.”
오드람은 넌더리를 냈다.
“하지만 당신이 없으면 북방식민정책에도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닙니까?”
“이미 제국은 충분한 자본을 투자했고, 사업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네. 아마 나 없이도 충분히 궤도에 올랐으리라 믿네.”
빈 술병을 내려놓은 그가 속삭였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요른카리로 향하는 것이지. 저항 운동을 주도하는 건 흑마법사와 결탁한 주술사들일세. 그들의 맥을 영영 봉인한다면, 자연히 와해될 테니.”
토드가 나직이 물었다.
“진정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오드람?”
“애당초 난 이 땅에 죽으러 들어온 거네. 토드. 잘 생각해보게. 내가 자신을 제물로 삼는 짓을 언제부터 했을 것 같나.”
레벨 99에서 78까지. 게다가 레벨이 높아질수록 축적된 경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동안 소모된 양이 어느 정도인지, 더불어 감소된 수명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제 눈엔 이미 당신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짙군요.”
오드람이 코웃음쳤다.
“아직은 때가 아니네. 요른카리에 닿을 때까진, 이 질긴 목숨을 끌고 가야겠지.”
이를 악문 오드람은 자신의 손목을 매만졌다.
“하지만 자네도 느꼈다시피, 이건 끝이 아니네. 놈들은 어떻게든 에다리크를 무너뜨리고 싶어 하네. 내가 부상을 입은 건 놈들도 알고 있을 테니, 곧 공세가 이어지겠지.”
“그럴 테죠. 여전히 성의 혼란은 수습되지 않았고, 밤사이 손실된 병력도 상당한 걸로 들었습니다.”
주술사가 낮게 말했다.
“닷새. 아마 회복까지 걸리는 시간일걸세. 그동안 자네가 나 대신 에다리크를 지켜주게나.”
토드가 팔짱을 꼈다.
“흠, 저는 이틀 내로 떠날 생각이었는데요.”
그러자 오드람이 스스럼없이 말했다.
“요른카리에서 의식을 마친 뒤에, 내가 지고 있던 모든 경험치를 자네에게 넘겨주겠네. 그 정도면 충분한 보수가 되겠나?”
“그걸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는 거였습니까?”
토드의 질문에 오드람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떡하긴. 마무리를 자네가 치면 되지. 이것도 후단 앞에서 맹세하면 되겠나?”
사령술사는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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