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70
070
원작에서 다른 캐릭터를 계승하는 시스템은 없었다. 더군다나 아예 다른 계통의 클래스로 변경하는 경우도.
‘생각지도 못한 제안인데.’
비록 오드람은 레벨이 하락하긴 했어도, 여전히 수준급에 속하는 강자였다.
게다가 토드는 주술사가 보유한 스킬, 운용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후단의 말대로 오드람이 지니고 있던 경지를 물려받는다면 만사가 수월할 거다.
‘근데 그걸 내가 진정 바라는 건가?’
갈등하던 토드는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거미를 바라봤다. 거미는 내심 불안한 듯 다리를 꼼지락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옷깃은 꽉 부여잡고 있다.
사령술사는 피식 웃었다.
“···저는 언제까지고 충복입니다.”
토드의 속삭임에 거미는 으스대듯 움직였다.
혀를 찬 까마귀가 부리를 부딪치다가 되물었다.
―이해할 수 없다.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려는 이유가 뭐냐.
“주술사로선 이미 정점에 한 번 도달해보지 않았습니까. 사령술사는 그러지 못했고요.”
토드의 태연한 대꾸에 까마귀가 폭소했다.
―깍. 깍! 터무니없는 자로다.
“관대한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사령술에 정진하고자 합니다.”
그를 돌아보던 까마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범인과 다른 발상을 지니고 있으니 여기까지 도달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까마귀는 발치에 쌓인 잿가루를 그러모았다.
―화신이여. 이자는 바스러졌다. 그는 무수한 난관과 역경을 이겨냈으나, 결국 인세의 장벽에 무너졌다.
신은 토드를 향해 눈동자를 번뜩였다.
―너는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귀추가 기대된다.
“적어도 제가 모시는 분을 실망시키진 않으려 노력 중입니다.”
놓치지 않고 거미가 거들었다.
―보았느냐. 내 종복의 훌륭함을.
―거들먹대긴.
―이제 물러나라.
거미의 축객령에 까마귀가 코웃음 쳤다.
―그래. 적어도 이번 내기는 그쪽이 이겼으니 선물을 내리도록 하겠다.
까마귀는 발치에 쌓인 잿가루를 가리켰다.
―이 잔해를 담아둬라. 조언이 필요한 때가 있으면 그를 불러내 지혜를 구할 수 있을 거다.
유골로 오드람을 불러낼 수 있는 기회라. 이래도 되는 건지 조금 의문이었지만.
―나의 제안은 언제나 유효하다는 걸 알아둬라. ···사령술사.
까마귀는 날개를 휘둘러 공중으로 솟구쳤다. 돌풍이 구덩이 일대를 휩쓸고, 짙게 남아있던 유황의 자취가 완전히 걷혀나갔다.
후단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토드는 품에서 약병을 꺼내 잿가루를 밀어 넣었다.
토드는 오드람이 지맥에 새겨넣은 주박을 응시했다. 앞으로 이 땅에서 주술은 쇠퇴할 것이다.
자연스레 그 자리는 솔마르 신앙이 대체해나가겠지. 오드람이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스칼바냐르와 제국의 공존이었으니.
아마 필멸의 육신을 잃은 오드람이 이후에도 안식을 찾는 건 요원해 보인다.
‘어쩌면 후단의 전령으로 활동하는 게 스칼바냐르를 지키는 데는 더 낫다고 판단했을지도.’
딸랑.
방울을 흔든다.
토드는 늙은 주술사가 품고 있던 업이 새어 들어오는 걸 느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까마득한 양이었다.
한꺼번에 경지를 여러 단계 뛰어넘을 정도로 아득했다.
하지만 토드는 성급히 의식을 침전시키지 않고, 반석으로 다가갔다.
이스라는 여전히 침묵했다.
‘업 때문에 눈이 멀었어.’
그녀에게 악마는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죽음의 기사는 일회성으로 던져주고 소모할 하수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군소리 없이 이스라는 기꺼이 토드의 명을 따랐다.
“어찌 방도가 없겠습니까?”
어깨 위에 앉아있던 거미가 속삭였다.
―무저갱의 검,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도, 입힌다. 상처를. 보일 것이다. 네 눈에도.
물리적 외상이라면 토드가 수복해줄 수 있다. 그러나 열기가 아른대는 검붉은 상흔은 토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류의 부상이다.
―다만, 너는, 넘었다. 벽을. 동시에, 우리를 얽매던 속박이, 걷혔으니. 새로운 은혜를 베풀겠다.
토드는 조심스레 이스라 옆에 거미를 내려놓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스라의 위로 기어 올라간 거미는 유유히 실을 자아냈다.
거미는 어머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피조물이다. 거미는 직조하는 존재. 거미줄을 뿌려 덫을 깔아놓고, 거기 걸려드는 생물들을 섭식한다.
죽음, 계획, 순환을 의미하는 표상으로서 부합된다.
이스라의 육신이 고치처럼 휩싸였다.
직조를 마친 거미가 읊조렸다.
―기억하는가. 일전에 받았던, 애가를.
“전송의 애가요. 기억합니다.”
―이제 네가 보유한 업을, 하수인에게도 불어넣을 수 있다.
돌연 자신의 다리를 꺾는 모습에 토드는 불안해졌다. 부러진 다리의 단면에 무수히 작은 손가락들이 자라났다가 쇠퇴하기를 반복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분이셨다.
“어머니. 이제 힘이 돌아오신 게 느껴집니다. 서책의 형태가 아니라 직접 나타나시는 것만 해도 그렇고요. 근데 어째 전승 방식은···”
―취하라.
자신을 바라보는 홑눈이 단호했다.
개인적으로 생식을 마다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매번 고역이었다.
공손하게 다리를 받아든 토드는 눈을 질끈 감고 입에 가져갔다.
와작, 와작.
차라리 악마의 생살을 씹어먹어도 이보다 낫지 않을까. 토드는 최대한 혓바닥을 닿지 않으려 어금니로 씹었다. 닿을 때마다 꼬물대는 감촉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
―섭식은, 필멸자가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 필연적으로 죽음을, 동반한다.
―그로부터 순환의 섭리를, 깨우치는 것이니라.
보통 전갈이나 거미 같은 절지류는 튀김으로 먹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건 기름에 튀겨도 도저히 구제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겨우 삼킨 토드가 입가를 훔쳤다.
“···확실히 정신이 번쩍 들긴 하군요.”
토드는 자연스레 업을 하수인에게도 옮기는 방식을 깨우쳤다.
대체 어떤 원리인진 모르겠지만, 충격적인 맛과 질감 때문에 정신이 개변이라도 하는 걸까.
―업을 받은 하수인은, 격의 상승을, 이룰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파손된 부위는 수복될 것이니.
진화! 토드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죽음의 기사가 승급한다면, 그다음은 파멸의 기사였지.’
지금도 이스라는 어지간한 인간들 상대론 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 괴물이라 불릴 만한 놈들을 잡으려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
―냉정히 말해서, 대단치 않다. 저 기사의 기량은.
“압니다.”
―차라리, 여기서 저 하수인은 전송하고, 찾는 게 어떤가. 다른 망자를.
―전사들은 많다. 죽음을 유예하려는. 보다 나은 기량의.
이스라의 승격은 적지 않은 업을 요구했다.
엄연히 망자의 역량은 생전의 실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어쩌면 여기서 이스라를 환송하고, 다른 망자를 찾는 게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스칼바냐르는 전사들의 땅이고, 죽어가는 자들은 많으니.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럴 순 없습니다.”
짐짓 토드가 낮게 읊조렸다.
“저는 저 기사가 마음에 듭니다.”
―어떤 부분이?
토드가 히죽 웃었다.
“저와 마찬가지로 적지 않게 미쳐있거든요.”
어깨를 들썩인 토드는 이어 말했다.
“이스라는 자신의 이름은 잊어버렸으면서, 즐겨보던 기사도 문학의 글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버린 기사. 그럼에도 자신이 평생토록 갈구하던 이상만큼은 잊지 않았다.
“게다가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죠. 끝내 전장에서 허무하게 죽었음에도, 이스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러도 사용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떠돌이 기사가 수세에 몰린 전장에서 어떤 운명을 맞이할 지는.
그럼에도 그녀는 달아나거나, 목숨을 구걸하는 일 없이 돌격을 감행하다가 용맹하게 죽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그게 기사다운 행동이니까요.”
―그건 어리석거나, 무모한 게 아닌가.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에 부합된다고 판단하면 목숨까지 내던진다. 낭만 있지 않습니까?”
토드는 새하얀 실타래에 휩싸인 이스라를 쓸어내렸다. 이렇게 보니 마치 수의를 입혀놓은 것만 같았다.
“더욱이 여인의 몸으로 기사도를 자청하는 모습이, 꼭 어려운 길로만 돌아가려는 누군가가 생각나서 말입니다.”
거리낌 없이 토드는 업을 쏟아부었다.
이만한 양이라면 대번에 50까지 도달할 수도 있었겠지만, 기꺼이 자신의 기사를 위해 안배했다.
일정량을 나누어준 뒤에, 본격적으로 우화가 시작되었다. 실타래들이 풀리면서 녹색 섬광이 이스라에게로 내려앉았다.
거미가 토드를 향해 나직이 일렀다.
―훌륭하다. 종복이여.
―한때, 나를 섬기는 자들은 거리낌 없이 망자들을 거두고, 강제로 억압하며, 힘을 휘둘렀다.
홑눈이 번뜩였다.
―죽음을 거스르는 권능은, 그것만으로도 막대한 권세가 뒤따르는 힘.
―그러나 힘에 취한 자들은, 순환을 관조하는 본분을 잊고, 죽음에 대한 경외를 망각했노라.
―마땅히 죽음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생명의 무게조차 가벼이 여기는 법.
흑색 학파의 과거. 토드의 스승은 함구했고, 내내 어머니도 들려주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교만해진 무리는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났노라.
―그들의 패악은 극에 달했고, 교회와 영매들, 거기에 마법사들까지 합세하여 교단을 봉하였다.
―나는 그들의 성토를 외면했고, 순환의 순리를 유지하려 했던 소수 계파만을 존속시켰나니.
비단 사령술사들의 절멸에 다른 집단만이 관여한 건 아니었다. 그들이 섬기는 신조차 사령술사들을 방조했다.
애초에 그들이 자처한 파멸이었지만.
―오래도록 나는 내 신자들의 부름을 듣지 않았노라.
―허나 너를 본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저는 선대가 저질렀던 과오를 번복하지 않겠습니다. 어머님.”
―이제 장차 시대가 죽음의 인도자들을 부르고 있다.
―곧 이 땅에는 무수한 생명들이 덧없이 질 때가 올 것이니.
―그때는 네가 세상의 부름에 응답하게 될 것이노라.
거미의 속삭임은 예언에 가까웠다.
작은 미물들조차 폭풍의 기운을 느끼고 몸을 움츠리는 가운데, 사령술사는 폭풍우가 몰아닥친 땅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거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허공에서 뻗어 나온 손가락들이 토드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이건···.”
―일찍이 자신의 걸작을 생전에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대장장이가,
―나머지 반은 죽어서 제작한 검이니.
―날의 안쪽은 물질계에서, 바깥쪽은 명계에서 만들어졌노라.
어두운 빛이 감도는 장검이었다.
언뜻 외형상으론 특이한 점은 없었지만, 손잡이를 잡아보니 무게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그러나 휘둘러보니 순식간에 쇳덩어리를 쥐고 있는 듯한 묵직함이 실렸다.
범상치 않은 유물이다.
―그대와 기사의 유대감을 높이 사, 내리는 하사품이노라.
토드는 부복한 채로 고개 숙였다.
“어머니의 관대함에 감사드립니다.”
거미의 육신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파편의 형태로 강림하는 건 여전히 제약이 있는 모양.
―망자들을, 가엾게 여기거라. 나의 하인이여.
―연민을 담아, 그들을 존중하되, 순환의 의무는, 이행되어야만 한다.
“명심하겠나이다. 영면하소서.”
신이 떠나가시고, 어느새 이스라를 휘감고 있던 실타래들은 온데간데없어진 뒤였다.
여전히 갑옷에 악마가 새긴 흔적은 여실히 남아있었으나, 예의 검붉은 자국들은 말끔히 걷힌 뒤였다.
‘도시에 들리면 이김에 갑옷도 새로 맞춰야겠네.’
또 돈이 적잖게 깨지게 생겼다.
아마 문양을 따로 맞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파멸의 기사가 된 이스라는 이제 초인의 경계에 들어섰으니, 그녀가 자신의 육신에 좀만 익숙해진다면 장비에 의존하던 시절보다 훨씬 강해질 테니까.
이윽고 투구 속에 안광이 맺혔다.
눈을 부릅뜬 파멸의 기사는 우악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으-아-아! 이 악마 놈! 고작 그게 전부냐! 이 몸의 칼을 받아라!】
그러나 주변이 고요하자 이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이스라는 토드를 보곤 호들갑을 떨었다.
【토드! 왜 여기 있나? 어서 그 점쟁이를 살려내지 않고! 기껏 놈의 시선을 돌려놓았거늘!】
토드는 쓴웃음을 흘렸다.
“이스라. 싸움은 끝났습니다.”
【뭐라?】
“잠시 안 좋은 꿈을 꾸신 모양입니다.”
불현듯 안광을 깜빡이던 이스라는 토드의 설명을 듣곤 탄식했다.
【그래서 놈은 죽었다고.】
“예.”
이스라는 분통을 터뜨렸다.
【원통하도다! 놈의 목은 본인이 쳐야 했거늘! 하지만 이 또한 본인의 수양 부족이니, 누구를 탓하리오!】
“아닙니다. 이스라. 전적으로 제 실책이었습니다. 이스라. 놈을 당신과 붙여선 안 됐는데.”
이스라는 무슨 소리냐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어찌 그게 자네의 실책인가! 사령술사! 싸움이라는 게 상대를 가려가면서 할 수 있었다면, 그게 시합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기사된 자라면 마땅히 섬기는 자의 명령에 따라 적을 격퇴해야 하는 법!】
건틀릿을 불끈 쥔 이스라는 안광이 형형하게 번뜩였다.
정말 한결같은 마음가짐이다.
“지극히 기사다운 마음가짐입니다. 이스라.”
토드의 맞장구에 이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나저나 자네 손에 들린 검은 뭔가?】
“아. 그렇지 않아도 여신께서 당신의 활약을 높게 사셨습니다. 그분이 하사하신 검입니다.”
이스라는 조심스럽게 토드에게서 검을 건네받았다. 한참이나 검을 들여다보던 이스라는 손잡이와 날을 쓸어내리더니, 거머쥔 채로 감탄했다.
【훌륭하군···! 이 검의 이름이 뭔가?】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이름이 따로 있는 것 같진 않더군요. 대장장이가 생전에 반을 만들고, 나머지 반은 죽어서 주조한 검이라고 합니다.”
사악-!
이스라가 횡으로 검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정교하게 벼려낸 면도날 같았다.
“당신이 이름을 지어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안광을 오므린 이스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두렌달이라고 짓겠네! 이 검은 분명 서사시에 본인과 더불어 이름을 날리게 되겠지! 하, 하! 하.】
파멸의 기사는 창백한 장검을 쥔 채로 희희낙락했다.
악마에게 쓰러졌을지언정, 전혀 기죽지 않고 다음에는 기필코 자신이 막타를 치겠다는 다짐까지.
토드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런 기사를 또 어디서 구하겠다고.’
투자한 업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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