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85
085
“필요한 건 다 챙기신 거죠? 해독제, 붕대, 파상풍 방지약···.”
“호들갑은. 어차피 죽을 상황이면 단명종들은 뭘 해줘도 죽어.”
키레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라즐은 기어코 와이스탄의 배낭을 꾹꾹 눌러 담았다.
테렉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흑마법사 소굴이라면 이 정도 인원만으론 부족해 보이는데. 이게 전부인가?”
“4번 지하 하수로는 내부가 워낙 협소해서, 대규모 인원이 기동하기엔 적합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교전 초기에 하워드 씨를 보조해주신다면, 알아서 처리해주실 겁니다.”
와이스탄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토드를 응시했다.
“츳, 우리가 잡으러 간다는 놈들이나, 이 녀석이나. 뭔 차인진 솔직히 모르겠지만.”
그는 흑마법사 토벌에 사령술사가 동행한다는 점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리자드맨들은 딱히 신봉하는 신앙은 없지만, 대체로 마법을 선호하진 않는다.
“라즐. 이번 일도 생명 수당 포함해서 챙겨주는 거 맞지?”
“물론입니다.”
키레는 와이스탄의 배낭을 두드리며 외쳤다.
“그럼 꾸물대지 말고 출발하자고. 이 하루살이들이 다 늙어버리기 전에.”
하수로로 향하는 인원은 7명.
사령술사 토드, 수습생 산시아, 파멸의 기사 이스라, 흡혈귀.
오크 방패수 테렉, 활잡이 와이스탄, 엘프 암살자 키레.
일단 골목길 지리에 밝은 키레가 앞장서서 일행을 이끌었다.
판가우는 해가 저물면 더 활기를 띠는 곳이다. 괜히 이목이 끌리는 걸 피해 키레는 요리조리 인적이 드문 길목을 찾아냈다.
얼핏 판자나 벽으로 막혀 있을 법한 곳도 키레의 손길이 닿으니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뒤따르던 이스라가 작게 속삭였다.
【도무지 사람이 다닐 법한 곳이 아니거늘. 이런 곳에서 길을 찾아내다니. 뾰족귀답게 신통한 재주일세.】
그러자 엘프의 귀가 쫑긋댄다. 곧장 지적이 날아든다.
“야. 깡통. 남의 귀 지적질하기 전에 네 갑옷 좀 잘 추스르며 걸어. 우리 지나간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거야?”
아무래도 골목이 비좁은 탓에 이스라의 견갑이 연신 벽에 긁히며 불쾌한 소음을 내고 있었다.
이스라가 안광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젠장. 저걸 용케 들었군.】
어째 이스라는 엘프를 향해 그리 호의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이스라. 혹시 기사도 전집에서 이종족들을 배척하는 구절이 있습니까?”
왠지 기사들이라면 있을 법도 하다.
【무슨 소릴! 무와 용맹, 충성심을 숭상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강인한 육신만 있다면 누구나 기사가 될 수 있는 게 기사도 전집의 가르침이라네.】
파멸의 기사는 안광을 좁혔다.
【그러나 저 오만한 족속들만은 안되네. 뾰족귀들은 신의라곤 모르지. 정정당당한 대결은 기피하면서, 저들의 암기나 독약, 주문 따위에 목숨을 잃은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하나?】
엘프는 특유의 민첩함이나 높은 지능 덕에 암살자나 마법사로 육성하기에 좋은 종족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스라는 분통을 터뜨렸다.
【잘 주시해야 하네. 토드. 밑에서 오히려 자네 발목을 잡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아무렴요.”
주변을 둘러보던 키레는 돌연 외진 구석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넝마를 걸친 부랑자가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안쪽 동태는 어때?”
“아무 움직임이 없었어요. 나오는 놈도 없었고요.”
키레가 은화를 던지자 부랑자는 누가 볼세라 잽싸게 챙겼다.
“그래. 계속 지켜보고 있어. 우린 아마 아침이나 정오에 나올 것 같으니까.”
슬쩍 토드 일행을 훔쳐보던 부랑자는 다시 골목의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믿을 만한 사림입니까?”
“내가 시의회에 소속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녀석이야. 이따금 부랑자 조합에서 소식을 물어오는 정보원이지.”
“그렇군요.”
키레는 길거리 출신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출신과 배경을 극복하고 시의회 친위대로 선정될 만큼 실력이 있다는 걸까.
그녀는 입에 천을 덧대며 속삭였다.
“이 밑에서부터 하수로 입구야. 냄새가 고약하니 코는 단단히 막아두는 게 좋을걸.”
감각이 예민한 산시아는 이미 아까부터 미리 마스크를 차고 있었고, 바둥대는 흡혈귀의 안면 하단을 묶고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비위가 강한 편이라.”
키레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정말? 단순히 악취 문제가 아니야. 칙칙한 마법사 씨. 부패한 퇴적물들이 유독한 연기를 만들어낸다고. 기절해도 난 모른다?”
토드는 태연히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이보다 더한 곳에서도 별 이상이 없었던지라.”
토드가 은거 생활 동안 머물렀던 은신처도 여기와 비슷한 곳이었고, 썩어가는 시체들로 가득한 매장지에서 잠을 청했던 적도 있었다.
엘프는 코웃음 쳤다.
“그래. 뭐. 본인이 그러시다면야. 이제 여기서부턴 그놈이 앞장서는 거지?”
산시아의 손짓에 흡혈귀가 하수로의 입구를 돌아본다.
【밑으로··· 더 어두운 곳에. 집. 있다.】
그를 바라보던 와이스탄이 중얼거렸다.
“츳, 말이 어눌한 게 영 신뢰가 가진 않는데. 도시에서도 이 하수로의 깊이를 아는 자가 몇 없다고 들었다. 흑마법사들이라면 거의 밑바닥에 은신처를 구축했을 텐데.”
방패를 동여맨 테렉이 답했다.
“그래도 거기서부터 이 위까지 올라온 놈 아니겠나. 기억을 하고 있다면 어련히 안내하겠지.”
“쯧··· 만약 놈이 엉뚱한 길이나 함정으로 안내한다면?”
“그럼 뚫어내면 그만이지 않나.”
오크는 도끼자루와 자신의 손에 끈을 묶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네만, 하워드. 저놈이 우리를 물어뜯진 않는 게 확실한 거요?”
“예. 흡혈귀는 확실히 통제하에 있습니다.”
와이스탄은 옆구리에 차고 있던 화살을 미리 시위에 매겼다.
“최소한 갑자기 피를 빨겠다고 날뛰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츳. 난 출혈이 잘 멎질 않아서.”
장검을 뽑아 든 키레가 낄낄거렸다.
“아서라. 흡혈귀도 차갑게 식은 도마뱀 피보단 뜨끈한 인간들 피를 선호하지 않겠어?”
“우린 피가 차가운 게 아니라,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체질인 거다.”
잡담을 나누다 보니 녹슨 철창이 통행을 가로막았다. 굳게 걸린 사슬을 헤아린 키레가 표정을 구겼다.
“단단하게 묶어놨네. 이건 못 풀겠는데.”
“비키시게.”
앞으로 나선 테렉이 신중하게 도끼를 치켜들었다.
카앙, 캉!
도끼질 몇 번에 얽혀 있던 사슬이 널브러진다. 그가 힘주어 빗장을 비틀자 철창이 젖혀졌다.
“괜히 쇠에 긁히는 일 없도록 하시게. 독이 발려져 있으니.”
들어가는 입구부터 순탄하지가 않다. 하수도의 바닥은 축축하고, 미끈거렸다.
수로를 따라 판가우 내부를 순환한 오수들이 흘러내려 가는데, 온갖 역겨운 부유물이 둥둥 떠다녔다.
이따금 기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터졌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가끔 물속에서 첨벙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스라가 안광을 이글거렸다.
【제길, 저 속에 뭔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군.】
“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런 곳이라면요.”
사방에 업이 짙다. 도시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으니, 지상도 멀쩡할 리 없지.
지나가는 길마다 유기된 시신들이 있는 건 덤이었다. 하나같이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도시의 폭력배들이 유기한 것으로 보였다.
‘돌아가는 길에 저 사람들까지 수습해줄 수 있으려나.’
체력적 안배를 생각하면 여기서 지상까지 시신을 옮기는 건 도저히 무리다.
안타깝지만 속으로 묵념을 빌어주는 데 그쳤다.
돌연 키레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10시 귀퉁이 뒤에 여섯.”
보이지 않는 공간 너머임에도 키레는 확신에 찬 투였다.
“적대적인 상대입니까?”
토드의 물음에 키레는 입천장을 혀로 두들겼다. 동시에 그녀의 귀도 움찔거린다.
‘반향음을 통해 파악하는 건가.’
“자세를 보아하니 우릴 기다리고 있어. 귀퉁이 옆으로 세 갈래 통로가 있는데, 거기에 더 숨어있을 수도.”
토드가 나직이 읊조렸다.
“이스라.”
앞장서려는 파멸의 기사를 향해 테렉이 속삭였다.
“내가 오른쪽을 봐주지. 자네는 왼쪽으로 치고 나가게.”
【흠.】
작게 기합을 흘린 이스라는 장검을 틀어쥐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단박에 그녀의 신형이 뛰쳐나갔다.
터터텅!!
‘쇠뇌 소리.’
그래도 이스라의 갑주를 뚫진 못한다. 비명이 울려 퍼지고, 연이어 후두둑 바닥에 엎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덜그럭.
느닷없이 벽이 열리더니, 불쑥 칼이 튀어나온다. 재빨리 키레가 단검을 내던졌다.
“칵!”
이마에 맞은 사내의 몸이 요란하게 바닥을 굴렀다. 키레가 뒤를 돌며 외쳤다.
“이쪽에서도 온다!”
사방에서 딸깍, 철커덕. 미세한 소음들이 토드의 신경에 포착됐다.
천장. 바닥. 벽면.
이스라와 테렉은 앞쪽에서 추가로 몰려온 놈들과 드잡이질을 벌이고 있었다.
양쪽을 번갈아 가며 살피던 와이스탄은 뜬금없이 허공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팽!
화살에 얻어맞은 형체가 휘청이다가, 수로 위로 떨어진다.
첨벙!!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달려오고 있네?’
파충류 특유의 마름모꼴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샛노랗게 번뜩이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들이 아니다. 어쩌면 저놈이랑 못해도 친척 정도는 되겠는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로에서 부글대며 형체가 튀어나왔다.
신속하게 시위를 매긴 와이스탄은 머리에 명중시켰다.
“츳, 이제 좀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리자드맨은 어깨에 두르고 있던 털가죽을 내던지며 히죽 웃었다.
토드가 향로에 불을 밝히자, 희미한 녹광이 컴컴한 하수로의 통로를 뻗어 나갔다.
벽을 타고 아른거리는 그림자의 숫자가 심상치 않다.
단검을 뽑아낸 키레에게서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씨. 너무 많은데?”
“화살 개수는 충분하다.”
“멍청아. 여기 환경이 불리하잖아. 사방이 뚫려있다고.”
“환경은 오히려 좋다. 고향 땅처럼 따뜻하고, 축축한데. 윗동네보다 친숙해.”
키레는 양손에 쥔 날을 긁어대며 소리쳤다.
“몸에 잔뜩 걸친 털가죽이나 벗고 나서 말해.”
“안 그래도 떼어내고 있었다.”
마냥 토드도 여유를 갖기엔 바닥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크.”
발을 찌르려는 칼날을 피하자, 날렵하게 솟구친 인영이 토드를 노려봤다.
“크으으···!”
‘반쯤 흡혈귀화된 인간인가? 이 녀석은 죽이면 망자로 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겠네.’
놈이 달려들기 전에, 앞으로 나선 산시아가 손톱을 휘둘렀다.
촤악!!
“무리하진 마세요. 산시아. 부담이 많이 가지 않습니까.”
손목 어귀까지 변형된 손에 핏자국이 흥건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녀는 벽을 타고 달려온 놈의 팔을 끊어내곤, 수로 쪽으로 힘껏 내던졌다.
라이칸스로프의 육신답게 산시아는 이깟 저열한 흡혈귀 잡종쯤이야 가뿐하게 처리했다.
다들 교전에 임하는 와중에, 흡혈귀만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흠, 이 기회에 하수인을 부려봅시다. 저 녀석에게 연결된 마력의 흐름이 있죠?”
“예···.”
“의식을 집중해보세요.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말을 건다는 느낌으로 외치는 겁니다. 나가서 싸우라고.”
산시아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마력을 일으켰다. 그런데 자꾸만 주변에서 달려드는 놈들 때문인지, 집중하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촤악-!
발톱으로 다른 놈의 얼굴을 찢어발긴 산시아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소리쳤다.
“이익, 너도 나가 싸워! 이 답답한 놈아!”
그녀의 호령에 고개를 기울인 흡혈귀가 껑충 뛰어올랐다.
단숨에 천장에 붙은 흡혈귀는 다른 놈을 부여잡곤, 게걸스럽게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아무리 저열한 흡혈귀라도 잡종보단 강하네.’
“잘했습니다. 당신은 체질상 가급적이면 그 힘을 꺼내지 않는 게 좋습니다. 사령술사는 일선에 나서기보단 하수인을 활용해 안전한 위치를 사수할 수 있지요.”
토드가 향로를 흔들자, 널브러졌던 몸뚱이들이 비틀대며 일어섰다.
【으, 으으···.】
“저쪽 모퉁이를 막아라.”
토드의 외침에 되살아난 잡종들이 통로 한 곳을 틀어막았다. 덕분에 일행이 수월하게 몰려오는 잡종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흡혈귀에겐 나름 만족스러운 포식이었는지, 입가에 피가 흥건했다.
산시아는 머리를 짓누르며 말했다.
“머리가 상당히 아프네요.”
“점차 익숙해질 겁니다. 이 감각에 능숙해질수록 더 많은 하수인을 부릴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이 처음으로 사역했던 하수인이 시체 쥐였던 걸 감안하면, 저급 흡혈귀라도 수습생에겐 지나치게 과분한 하수인이다.
‘앞으로 산시아에게도 경험치를 먹여야 해. 그래야 하수인 개체 수를 더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대강 소탕이 마무리된 후에, 키레가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여기 계속 있어봤자 좋을 게 없겠어.”
테렉도 피가 흥건한 방패를 털면서 동의했다.
“동감이네. 후속 병력이 더 들이닥치기 전에 내려가세나.”
반면 이스라는 안광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하, 하! 하. 이 얼마만의 격렬한 싸움인가! 앞으로 이 시궁창에서 어떤 놈들이 튀어나올지, 정말 기대되는군!】
그런 이스라의 당찬 포부가 무색하게, 그녀는 10분도 안 되어 곤경에 처했다.
【아니! 쇠를 통째로 삼키다니! 뭐 저런 악독하고 끔찍한 존재가 있나!!】
그녀는 부식된 견갑을 부여잡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와이스탄도 혀를 내두르며 활을 거뒀다.
“츳, 안 통한다. 설마 저놈이 여기서 자라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정말 여길 지나가야 해? 우회로는 없어?”
키레의 다그침에도 불구하고 산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이 기억하는 길은 저쪽이에요. 자칫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간 여기서 방향을 잃을 수도 있어요.”
“상황 한 번 엿 같네, 진짜···.”
토드 일행의 앞에 부정형의 거대한 형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슬라임, 그중에서도 사람의 악의를 먹고 자라나는 엑토플라즘이다.
워낙 몸집이 커서 상대적으로 움직임은 굼뜨지만, 반대편으로 향하는 좁은 길목을 틀어막고 있는 게 문제였다.
키레는 말없이 놈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는 토드를 향해 물었다.
“이봐. 당신도 나름 마법사잖아. 뭔가 저놈을 해치울 방법 같은 건 없어?
“아, 해치우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뭘 그리 망설이고 있는 거야?”
토드는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떻게 하면 훼손을 최소화해서 표본을 구해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엑토플라즘도 영체 속성을 보유한 개체.
육신을 구성하는 핵만 정교하게 분리할 수만 있다면 특성을 얻을 수 있다.
“알고 있는 주문 같은 거라도 사용해. 우리가 가진 무기는 통하지 않는다고.”
슬라임 분류에 속하는 부정형 몹들은 물리 내성이 높은 데다가, 영체까지 붙은 엑토플라즘은 사실상 물리 피해에 면역이나 다름없다.
“그게, 저도 지금 당장은 직접적인 피해를 가할 수 있는 주문이 없습니다.”
“뭐어? 이 쓸모없는 자식.”
황당해하는 키레의 앞에서 토드는 품속의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대신, 망령은 마법 피해를 가할 수 있죠.”
손거울을 깨트리자, 안에 있던 망령들이 비명을 지르며 흘러나온다.
동시에 손에 끼고 있던 서리 반지까지 문지르며, 사령술사가 속삭였다.
“몸통부터. 안쪽으로 천천히 갈라내라. 조심스럽게.”
젤리는 얼려 먹으면 꿀맛이지.
빙결 효과로 최대한 붕괴를 막으면서 핵을 꺼낸다.
던전 토벌 중에 이런 소소한 파밍은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