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84
084
방문을 나선 토드는 부검 결과와 앰플을 이용해 흡혈귀를 사역해보겠다고 제안했다.
예상외로 라즐은 흔쾌히 수락했다.
“가해자를 길들일 수 있다면야 환영이죠. 저희는 하워드 씨가 의원님을 다시 일으키는 상황까지도 상정하고 있었거든요.”
의원 정도면 나름 고위직 아닌가. 토드도 반발을 생각해 섣불리 의원을 망자로 일으켜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거기까진 상부와 상의를 해야 하는 정도 아닌가요?”
“아, 시의회에선 이번 일에 한해서 제게 전권을 부여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되살아난 의원님을 목격하는 게 아닌 이상, 아마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토드는 앰플을 흔들었다.
“우선 피해자를 일으켜 증언을 듣는 건 차선책으로 두겠습니다.”
만에 하나 흡혈귀 사역에 실패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지다.
의원이 생전에 미혹되었던 정황이 유력한 만큼, 확실한 증언을 기대하긴 어렵다.
―크으으···!
그라워볼프 공작령에 있던 스킨 워커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저열한 지성. 상대적으로 뛰어난 신체 능력.
저돌적인 늑대인간들과 달리, 흡혈귀들은 거동이 은밀하다.
흑마법사들도 전쟁에 대비하여 병력을 육성하고 있다면, 자연히 이런 개체들이 활약할 여지는 충분할 것이다.
‘어째 내가 번번이 빼먹는 느낌이지만.’
흡혈귀의 팔을 절개한 토드는 정맥을 찾아냈다. 흡혈귀답게 출혈량이 적고, 살이 금방 자란다. 재빨리 앰플을 꽂아 넣자 맞물린 살점이 게걸스럽게 결정이 섞인 산시아의 혈액을 빨아들였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녀의 피를 받아들인 흡혈귀가 몸을 뒤틀었다.
“산시아, 제 옆으로.”
산시아를 옆에 세운 토드가 흡혈귀 앞에서 향로를 쥐었다.
“사령술사 토드가 부른다.”
흡혈귀는 사령술사만큼이나 희귀한 존재다.
그들도 사령술사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토벌로 인해 씨족이 완전히 절멸되었다.
흑마법사들이 어쩌다가 흡혈귀 인자를 입수했는진 몰라도, 이들 역시 망자.
현재 토드의 수준에선 충분히 복속할 수 있다.
괴성을 흘리는 흡혈귀를 향해 토드가 읊조렸다.
“나는 그대 족속을 잘 안다. 밤의 그늘에서 불멸을 영위하는 밤피르. 혈액 섭식하는 스트리고이. 위대한 귀족들의 후예, 이제는 혈족조차 잃어버린 미천한 종자.”
괴로워하던 흡혈귀의 움직임이 점차 잦아든다. 놈이 숨을 헐떡이며 토드와 시선을 마주했다.
“눈을 떠라. 하인이여. 그대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에 굴종하라.”
흡혈귀의 붉은 동공에 진녹색 빛이 섞여든다.
토드가 코앞에서 손을 움직이자, 시선이 따라온다.
놈은 성공적으로 하수인이 되었다.
“산시아. 결박을 풀어보세요. 놈은 당신에게 복종할 겁니다.”
그녀는 사슬을 풀어내다가 여의치 않자, 힘으로 끊어 버렸다.
속박에서 풀려난 흡혈귀는 나직이 으르렁대더니 산시아 옆에 몸을 웅크렸다.
그녀는 당혹스러운 투로 물었다.
“이 녀석이 왜 이러는 건가요.”
“흡혈귀는 엄연히 당신의 피로 사역된 하수인이니까요.”
“제가 흡혈귀가 아님에도요?”
“원래 늑대인간과 흡혈귀는 전승 상으로 혼동되는 경우가 많은데, 기원을 따져보면 아주 오래전에 갈라져 나온 동종입니다. 비록 모습이나 특기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요.”
산시아는 그리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흡혈귀를 응시했다.
“걱정 마세요. 어차피 오래 데리고 다니진 못할 겁니다. 이렇게 인자가 미약한 녀석은 1개월 이내에 육체가 붕괴합니다.”
이 녀석에게 배양한 인자는 형편없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원형을 자신이 입수할 수만 있다면, 이런 하인 등급에 속하는 흡혈귀가 아닌, 귀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엄연히 뱀파이어는 죽음의 기사보다 급이 높은 고위 망자다.
‘지금보다 레벨은 더 올려야겠지만.’
“그럼 놈에게 정황을 들어볼까요.”
산시아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흡혈귀를 향해 물었다.
“왜 의원을 물어뜯어 죽인 거냐.”
그토록 살벌해 보이던 흡혈귀의 인상이 새삼 천진난만해 보일 줄은 몰랐다.
“너는 누구의 명령을 들었던 거지?”
【그륵.】
“어떤 연유로 피해자와 같은 곳에 있었던 거고!”
흡혈귀는 태연히 자신의 머리를 긁적일 뿐.
그 뒤로도 산시아가 거듭 질문을 던졌으나 흡혈귀는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거의 1시간 가까이 어르고, 달래봤음에도 소용이 없다.
“스승님. 이 녀석은 쓸모가 없어요. 지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아요. 어린아이나 짐승과 다를 바 없어요!”
돌연 흡혈귀가 입을 열었다.
【목마르다.】
“라즐 씨. 혹시 혈액이 비치되어 있습니까? 동물의 것도 상관없습니다.”
“안 그래도 미리 준비해뒀습니다.”
준비성이 철저한데. 가죽 주머니에 담긴 피를 마신 흡혈귀는 인상을 찡그렸다.
【다음엔 인간 피로 부탁한다.】
산시아는 답답한 듯, 분통을 터뜨렸다.
여전히 흡혈귀는 귀를 후비며 태연자약하게 굴고, 다른 사람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라즐에겐 다소 흥미롭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정말 유아 퇴행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군요. 피의 저주가 지성을 쇠퇴시킨 걸까요? 아니면 흡혈귀 인자가 저열해서, 영락한 존재로 거듭난 부작용일까요.”
토드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라즐 씨는 흑마법이나 이쪽 분야에 발을 담그지 않으신 것치곤, 용어 사용이나 지식이 정통하시군요.”
“하하. 아무래도 상대하려면 잘 알아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산시아는 흡혈귀를 앉혀놓고 기 싸움을 벌였다. 라즐은 그 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광경은 상당히 우스꽝스럽지만, 저래 보여도 놈은 시의회의 의원을 산 채로 살해하고, 도주 중에도 10명 넘게 부상을 입힌 괴물입니다. 저런 존재를 시의회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낸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가만히 서 있던 이스라가 돌연 흡혈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태 다른 이들에게 썩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흡혈귀는 이스라를 보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파멸의 기사를 살폈다.
【네 녀석, 집이 어디냐.】
이스라의 물음에 흡혈귀가 더듬더듬 답했다.
【집, 집? 집이 뭔가.】
【눈을 처음으로 떴을 때, 일어난 곳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기울이던 흡혈귀가 낮게 중얼거렸다.
【깊은 곳. 어둡고 축축한 바닥에서. 난 깨어났다. 그것 밖엔. 기억 안 나.】
아무래도 사망으로 인한 기억 소실이 상당해 보인다. 유아 퇴행에 가까운 행태도 그 영향일 지도.
【거기가 어디 있는지, 우리도 데려가 줄 수 있겠느냐?】
그러자 흡혈귀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이스라를 돌아봤다.
【내. 내가 왜. 너를 거기로 데려가냐.】
이스라는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원래 친해지려면, 상대방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네!】
【당연. 당연한 일?】
흡혈귀는 고개를 돌려 산시아를 바라봤다. 정말 맞냐고 묻는 듯한 눈빛에 그녀도 동조했다.
“그, 그래. 거기가 어디인지 말하렴.”
입술을 물어뜯던 흡혈귀는 구부정한 자세로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멀다. 골목 돌고, 계단 내려가서. 하수구 밑으로··· 빙빙 돌아간 다음엔.】
흡혈귀는 손짓까지 동원해가며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묘사했다.
이스라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자신이 어디서 깨어났는진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 모양일세.】
“대단하군요. 녀석의 입을 열게 만들다니.”
【흠흠. 별거 아닐세. 원래 아이처럼 미숙한 존재들에겐 그에 맞는 언어로 말해줄 필요가 있는 법이니.】
가만히 흡혈귀의 설명을 들은 라즐은 침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흡혈귀가 말한 대로라면, 4번 지하 하수로 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같은데···. 거긴 진입이 쉽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요?”
“4번 지하 하수로는 검은 개 거리 외곽에 있는데, 이 일대가 전부 폭력단원들의 구역입니다. 집창촌과 주점이 밀집해 있어서, 외부인이 들어왔다간 곧바로 제지당할 겁니다.”
【그깟 무뢰배들은 별 문제 될 것 없네. 여태껏 우리가 어떤 놈들을 상대해왔는지 알지 않나.】
“문제는 그들 중에 숨어있는 흑마법사들의 끄나풀이 누구일지 알 수 없다는 거죠. 게다가 하수로 내부의 구조가 상당히 깊고, 복잡합니다. 거긴 워낙 위험한 곳이라, 시의회에서도 쉽사리 접근하기 어렵고요.”
토드가 흡혈귀를 가리켰다.
“하지만 저런 놈들이 도시의 지상으로 슬슬 기어오르고 있으니, 시의회에서도 영영 방치해둘 순 없겠군요.”
라즐이 한숨을 흘렸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위험하다 하더라도, 수천 명이 격돌하던 전장이나 악마가 강림한 사원에 견줄 바가 되겠는가.
“어차피 길잡이도 있으니, 이 김에 제가 놈들을 뿌리 뽑고 오겠습니다. 시의회 측에서도 사태 규명뿐만 아니라, 방지까지 바라시는 거니.”
원흉인 흑마법사들을 이 도시에서 몰아내면 토드로서도 나쁠 건 없다.
토드의 말에 라즐이 반색했다.
“역시 하워드 씨. 명성에 걸맞는 용담이십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소탕까지 임해주신다면야 저희 입장에선 감사하죠.”
“여기서 머뭇거릴 필요 없이, 해가 지는 대로 곧장 출발하겠습니다. 흡혈귀는 해가 떠 있는 한 움직이지 못하니까요.”
라즐이 당황했다.
“아, 오늘 당장요?”
“예. 어차피 놈들에게도 우리가 흡혈귀의 소식이 들어가봤자, 나름 대비를 하지 않겠습니까. 준비를 갖추기 전에 급습을 하는 게 나을 듯 합니다.”
이스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옳다. 무릇 흑마법사 같은 음험한 놈들이라면 온갖 비겁한 술수를 안배해놓을 테지! 놈들의 태세가 갖추어지기 전에 속전속결로 분쇄해야 하네!】
라즐은 급히 끼어들었다.
“하지만 하워드 씨의 강점은 여타 마법사들과 달리, 하수인들을 활용한 수적 우위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긴 합니다.”
“흑마법사들의 은거지는 하워드 씨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곳입니다. 저희도 원해서 흑마법사들과 공존하는 것이 아니죠. 이 인원만으로 향했다간, 자칫 하워드 씨도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손을 비빈 라즐이 덧붙였다.
“저희 측에서 인원을 파견해드리겠습니다.”
“인원이라···.”
“이들은 시의회에 정식으로 고용되어 활동하는 친위대 병력들입니다. 실력뿐만 아니라, 신용도 확실하니 하워드 씨의 일행분들에게 폐를 끼칠 일은 없을 겁니다. 아마 일전에 몇 분 마주치셨을 겁니다.”
그 리자드맨이나 엘프를 가리키는 걸까.
토드로선 고기방패가 생기는 셈이니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여차하면 망자로 세울 수 있는 좋은 자원들이지.’
“그리 많은 숫자는 필요 없을 듯합니다. 괜히 규모만 커져봤자, 시선만 끌 테니까요.”
라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 그중에서 엄선된 실력자들로 보내겠습니다.”
“좋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호출하는 대로 단시간 안에 모일 수 있을 겁니다.”
황급히 올라가는 라즐을 바라보며 이스라가 속삭였다.
【어차피 우리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나? 하수인은 가는 길에 자연히 생겨날 텐데.】
“그래도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흑마법사들은 파괴적인 마법을 구가하는 놈들이니, 한 번만 막아줘도 쓸모를 다하는 거죠.”
고개를 끄덕인 이스라가 중얼거렸다.
【가급적이면 그 리자드맨이 있었으면 좋겠군. 덩치가 큰 것이, 주문 3번은 받아낼 것처럼 보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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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쉬고 있던 토드 일행은 해 질 무렵에 이르러 밖으로 나섰다.
라즐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아, 하워드 씨. 오셨군요. 이쪽이 제가 데려온 시의회 산하 친위대분들입니다.”
라즐이 예고한 대로 3명.
하나같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이었다.
‘인간이 없네.’
붉은빛이 감도는 피부의 오크 전사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테렉이네. 내 방패로 자네를 지켜주겠네.”
“반갑습니다. 테렉 씨.”
“이분은 아까 입구에서 만나 뵀었죠? 와이스탄 씨입니다.”
여지없이 가죽으로 몸을 동여맨 리자드맨은 혀를 날름댔다.
“몸이 떨리는군. 그나마 하수구같이 축축한 곳으로 간다면 좀 나으려나.”
어째 벌써부터 골골대는 것이, 그리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이스라는 떡대가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눈치였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무장한 여인이 건성으로 손을 흔들었다.
“안녕, 너희가 귀찮은 일들은 못 만들어 안달난 놈들이었구나.”
나른해 보이는 눈매에 뾰족한 귀.
처음 의사당에 왔을 때, 카운터를 지키던 그 엘프였다.
쓴웃음을 흘린 라즐이 그녀를 가리켰다.
“이분은 키레. 후미에서 여러분을 호위해주실 겁니다. 쌍검의 달인이시죠.”
그녀가 하품하며 중얼거렸다.
“난 누굴 지켜주기보단, 상대를 처죽이는 게 더 적성에 맞는데.”
언행이나 사용하는 무기로 보아, 아무래도 제일 먼저 죽어 나갈 사람은 정해진 것 같았다.
‘엘프 망자도 나쁘지 않지. 신속한 발걸음 특성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