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93
093
“엄밀히 따님분들은 작위 상속자가 아닐 텐데, 무슨 명분으로 이의를 제기한 겁니까?”
“각하께서 자네의 체포 면책권을 작성해준 건을 카셀미어 주교후가 문제 삼았네. 그는 각하가 흑마술에 미혹된 것이 틀림없다며 유언장과 상속 지정이 부당하다고 지적했지.”
교회가 또 발목을 잡는군. 토드는 턱을 쓰다듬었다.
“제아무리 성직제후라 하더라도 사사로이 세속제후의 사정에 일일이 간섭하기 어려울 텐데요.”
인상을 찡그린 크리슈토프가 답했다.
“···그게, 하인리히가 교회와 연줄이 닿아 있었네. 비록 그놈이 죽으면서 파벌은 와해되었지만, 남은 놈들이 주교후에게 몰려가 고발을 한 모양이야.”
“골치 아프군요.”
방백, 제국백에 주교후까지.
거기다 내부의 분열된 가신들도 가담했다면 크뤼거 편에 남은 이들이 많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제국 의회에서 제정한 대제후 칙령에 따르면 변경백위에 해당하는 제후는 명목상 3개 이상의 봉토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네.”
“그런 법이 있었습니까?”
크리슈토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황실의 위세가 드높았던 시절에 제정된 법일세. 비록 요즘에 와선 유명무실해졌지만, 그걸 트집 삼아 베벨부르크 제국백이 개전을 선언했으니 말이야.”
현재 슈테판 변경백이 보유한 봉토는 4개.
에베르호펜, 쾨흘링, 뵐케 주, 멜다비어 주.
일개 변경백이 다스리기엔 지나치게 넓은 권역이었다.
‘이리공과의 분쟁에서 무리하게 집어삼킨 토지가 독이 되었구만.’
아무리 이리공이 폭정을 휘둘렀다곤 하지만, 그라워볼프 공작가가 오랫동안 다스려온 뵐케와 멜다비어는 통치가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이미 분쟁으로 인력과 자원을 소모했는데, 상속 문제로 뒤숭숭하다면 누구라도 탐낼 만하겠지. 가뜩이나 지금처럼 어지러운 시대라면.
“사전에 협상은 없었습니까? 상대방이 제시한 조건은요.”
“변경백령을 해체하여 5개 권역을 분할하여 각각 제국백과 방백에게 할양한 다음, 멜다비어 주는 주교후가 파견한 사제와 더불어 공동 권역으로 통치하자는 내용이었지.”
그렇게 되면 변경백에게 남은 봉토라곤 늪지대로 가득한 쾨흘링과 통치에 미온한 뵐케 뿐이다.
너는 똥땅만 가지고, 알짜배기 노른자는 자신들이 챙겨 먹겠다는 심보였다.
“전쟁하자는 소리군요.”
“2주 가까이 양측의 사절단이 왕래했지만, 차도가 없었네.”
보통 제후들 간에 분쟁이 발생하면 권역 내 봉토에서 병사를 모집하는 게 관례다.
때론 분쟁과 관련 없는 곳에 징집관을 보내 용병을 선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는 않았다.
더군다나 판가우가 어떤 도시인지를 감안하면 여기서 모집하는 용병들의 질이 어떨진 뻔한 일.
‘그럼에도 판가우에서 병사를 데려갈 정도라면 크뤼거 쪽 사정이 얼마나 안 좋은진 뻔히 보이네.’
그만큼 그는 절박하다.
“이리공과의 분쟁이 종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전비는 충분합니까?”
“···급한대로 뵐케의 직물과 멜다비어에서 채굴하는 광석들로 채권을 사들이고 있네.”
빚을 져서 충당하고 있다는 소리다.
아직 상속 절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크뤼거로선 이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로선 이 전쟁에서 패배하면 끝장이다.
“크뤼거 경께서 여러모로 곤경에 처하셨군요.”
“그를 도와주게. 토드.”
토드는 깍지를 낀 채로 속삭였다.
“단순히 신의만으로 나서기엔 사안이 무겁군요.”
엄밀히 토드는 크뤼거의 가신도 아니다.
자신에겐 그를 도울 의무가 없었다.
게다가 정 크뤼거를 비롯해 변경백 일가가 실각하더라도, 판가우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다져둔 상황.
혈혈단신으로 협상을 요청하던 빈털터리 신세 때와는 위상이 사뭇 달라졌다.
“···우리도 호의만으로 구걸할 생각은 없었네.”
크리슈토프는 품에서 끈으로 봉해진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하단에는 변경백의 도장이 찍혀 있고, 대리자인 크뤼거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다만 본문은 공백이었다.
“자네가 원하는 걸 말하게.”
백지 수표라.
토드는 손끝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적어도 우리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약속하지.”
“무엇이든지요.”
“대신 자네의 마법으로 우릴 확실한 승리로 이끌어주게. 이리공과의 일전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토드가 낄낄거렸다.
“주교후가 이 분쟁에 관여했다면, 이전과 달리 교회가 직접적으로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으시겠습니까?”
“이미 크뤼거 경은 마음을 굳히셨네. 그게 아니라면 판가우에서 장의사 일이나 하고 있다던 자네를 수소문했겠나.”
깃펜을 집어든 토드는 망설임 없이 양피지에 적어 내렸다.
자신의 이름까지 새긴 토드는 크리슈토프에게 양피지를 돌려줬다.
“슈피어슐로트 성채. 그곳과 일대의 땅을 원합니다.”
일찍이 이리공이 거처로 삼았던 성.
산시아와도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판가우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것만으로 족하나?”
“언제나 그렇듯, 분쟁에서 발생한 시신들과 전리품에 대한 양도 권리도요.”
양피지를 챙겨간 크리슈토프가 답했다.
“얼마든지. 자네가 병사로 일으킬 수 있는 자들이라면 모두 부리게. 이길 수만 있다면.”
그의 눈동자는 결연했다.
고개를 기울인 토드가 물었다.
“외람된 말입니다만, 크리슈토프 경은 왜 그렇게까지 해서 크뤼거 경을 따르시는 겁니까?”
“무슨 뜻인가.”
사령술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경의 충정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까지 상황이 불리한데, 여전히 크뤼거 경의 곁을 지키는 까닭이 궁금해서요.”
망토를 거둔 크리슈토프는 자신의 조카와 더불어 몸을 일으켰다.
“나는 다젤이라는 곳에서 평생을 나고 자랐네. 에베르호펜의 권역 내에 속한, 크진 않지만 작지도 않은 마을이라네.”
그는 허리춤에 찬 장검을 두드리며 답했다.
“제국백이 그곳을 원하더군.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네.”
“그렇군요.”
“경전에서 가르치길 신께선 언제나 절박한 자들을 시험에 들게끔 한다더군. 정녕 이게 신의 뜻이라면, 나는 사령술사의 손이라도 잡을 걸세.”
크리슈토프는 마치 사령술사가 솔마르와 대척점에 선 자처럼 곡해했지만, 정작 토드는 빛의 신과 나름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 밑의 졸개들과는 소통이 원활하진 않으신지, 좀 트러블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 여기서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있어, 사흘 뒤에 에베르호펜으로 향하겠습니다.”
“그리 하게.”
“살펴 가시지요.”
크리슈토프와 요코프를 환송한 토드는 즉각 저택에서 일행을 불러모았다.
변경백의 상속 분쟁을 두고 참전하겠다는 내용에 특히 이스라가 환호했다.
【오오! 전쟁이라! 마침내! 집안 내부의 싸움이라, 또 본인의 서사시를 쌓을 무대가 마련되었군!】
그녀는 여전히 몸에 맞지 않는 갑옷을 들썩이며 외쳤다.
【하루빨리 갑주가 수리되어야 할 텐데 말이야!】
여지없이 산시아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분쟁이 마무리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연이은 싸움이라면 변경백도 적지 않게 부담이 될 텐데요. 더군다나 판가우에까지 징집관을 보낼 정도라면···.”
“그만큼 병사로 차출할 인력도 부족하다는 방증이겠지요.”
“물건들을 사 오는 길에 광장에 모인 자들을 봤지만, 하나같이 어설펐어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거에요.”
“오히려 좋습니다. 그만큼 전투에서 빨리 전사할 테죠. 하수인으로 부릴 망자들이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아직 산시아는 수습생이라 그런지, 사령술사다운 사고방식이 부족했다.
쉽사리 납득하지 못하는 제자를 위해 토드가 덧붙였다.
“분쟁에 참여하는 대가로 슈피어슐로트 성채와 일대의 땅을 약속받았습니다. 이 정도면 동기 부여가 되나요?”
그러자 산시아가 곧바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성채를요···?”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슈피어슐로트는 산시아에게 있어 복합적인 곳이다.
“예.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을 겁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산시아는 낮게 속삭였다.
“저는 이미 흑색 학파에 귀의한 몸. 가문과 유산은 더는 제게 의미가 없어요. 스승님.”
토드가 빙긋 웃었다.
“기특하군요. 산시아. 다만 슈피어슐로트 성채는 확보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판가우와 그 일대를 잇는 거점이 될 테니까요.”
“정 스승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그녀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토드 앞에서 표정을 속일 순 없다.
사령술사의 눈에는 그녀의 내부에서 몰아치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뻔히 들여다보인다.
아마 제자는 이번 분쟁에 좀 더 의욕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 분쟁에서는 휘말리기만 하는 성탑 위의 공주님 같은 신세였다면···.’
이제는 직접적으로 전쟁터를 누비는 당사자가 되어 목격하고, 행동하게 될 것이다.
무수한 인간이 쓰러질 장소야말로 사령술사의 소양을 기르기에 적합하다.
본격적으로 그녀에게 경험치를 먹여 키울 작정이었다.
마찬가지로 동석하고 있던 마르커스는 코웃음을 흘렸다.
【카셀미어 주교후님이라. 휘하에 두신 성기사단이 출전하겠군.】
“오. 아시는 분이십니까?”
【물론. 내가 알기론 신앙심이 매우 독실하신 분이시다.】
글쎄. 독실하다라.
제후의 작위 상속 분쟁에 끼어든 것을 보아 의도가 좀 불순해 보이는데.
생전 마르커스의 직위는 심문관에 불과했다.
그는 고위 주교들의 부패에 무지할 확률이 높다.
아니면 알고도 외면하거나.
적어도 교회와 종교에 대한 그의 광신적 열망으로 보아, 전자겠지.
‘이 기회에 우둔한 사내의 시야도 틔워줘야겠어.’
거기에 기사단까지 더불어 처리한다.
토드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마르커스는 용케 눈치채곤 삿대질했다.
【설령 내 육신이 타락했을지라도, 내 몸뚱이로 신앙의 형제들을 향해 칼을 돌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이번 분쟁에 당신을 데려가되, 교전에 참여시키진 않을 겁니다.”
다소 예상과 다른 토드의 말에 마르커스는 눈을 좁혔다.
【전투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무슨 속셈이냐.】
“당신은 가서 장차 발생할 부상자들을 돌보십시오. 본래 신께서 인간에게 신성의 파편을 내리신 건, 병자들을 보살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멋대로 구주의 뜻을 곡해하지 마라. 사령술사.】
“당신이 이마저도 따르지 않겠다면, 강제로 의지를 억압하여 형제들과 싸우도록 내몰 수밖에요.”
【악독한 놈 같으니.】
마르커스는 치를 떨었지만, 차라리 죽여달라고 성토해봤자 사령술사는 귀 등으로도 듣지 않을 놈이었다.
그는 성검의 손잡이를 부여잡은 채로 말했다.
【···거기서 이 검을 뽑는 일은 없어야 할 거다.】
“좋으실 대로. 단, 병자들의 치료는 확실하게 하시는 겁니다? 더불어 죽은 자들에 대한 추모예배도요.”
전쟁터에선 눈물의 업을 수급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변경백 진영이 수적 열세에 있는 만큼, 토드가 일일이 장례를 치르며 수확하는 것도 어폐가 있었다.
이쪽에 대해선 마르커스로 전담 마크를 붙여둘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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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정까지 남은 말미가 조금 빠듯했으나, 판가우에 남아있던 피에트의 도움으로 짐은 그럭저럭 꾸릴 수 있었다.
‘일행 중에 살아있는 인간이 둘뿐이라 막상 짐은 대부분이 방부 용품이네.’
쇠렌은 그간 벌어들인 돈을 쓰느라 흥청망청 놀고 있었고, 피에트는 조만간 수도로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제 보부상 신세는 면했으니, 본격적으로 상회까지 차려볼 계획인 모양이었다.
‘제국 중앙의 소식에 정통한 인맥이 생긴다면 나쁠 것도 없지.’
예전 같았으면 이런 험지에서 마차 바닥이 심하게 덜컹거렸겠지만, 출정 소식에 라즐이 따로 편의를 봐준 덕에 제법 값비싼 마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마부는 따로 구할 필요 없이 적당한 망자를 추려내 말들을 몰고 있었다.
망자로 일어난 마부는 먹고, 자고, 쉴 필요 없이 온종일 마차를 끌고 간다.
이 시대에 한대 밖에 없는 자율 주행 마차의 완성이었다.
‘이대로 무난하게 에베르호펜까지 가기만 하면 되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하품을 하려던 차였다.
콰앙!!
돌연 폭음과 더불어 마차가 멈춰섰다.
‘역시 어딜 가도 쉽게 가는 법이 없지.’
마부와 달리 말들은 살아있는 놈들이었는데, 조용한 것으로 보아 폭사한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이스라의 안광이 일렁였다.
【평범한 도적 떼는 아닌 것 같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기껏해야 지나가는 마차를 터는데 폭발까지 일으키진 않겠죠.”
【자네는 괜찮나?】
“음. 조금 긁힌 것 같습니다.”
그러자 따끔하던 팔뚝에 은은한 빛무리가 어린다.
마르커스는 무심히 중얼거렸다.
【흑마법사 놈들이 틀림없다. 그들이 풍기는 역겨운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군.】
판가우에선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다가, 도시를 빠져나오자마자 매복하고 있던 놈들이 습격한 모양이었다.
“라즐이 꽤 튼튼한 마차를 가져다주긴 했군요. 비록 말은 다 죽었고, 마부는 두 번 죽었지만, 안에 있는 승객들은 무사하니.”
산시아가 속삭였다.
“오고 있어요. 스승님. 어떻게 할까요?”
토드는 일행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다들 가급적이면 머리만 피해주세요.”
가는 길에 흑마법사 시체들도 주워가고.
나쁠 것 없지.
토드는 넋의 거울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