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92
092
“가우트리트 씨 정도의 명장이라면 실력만큼이나 입도 무거우시리라 믿겠습니다.”
토드의 시선을 피한 드워프는 재차 갑주를 쓸어내렸다.
“이건··· 아무리 봐도 마법사와 일개 기사가 소유할 만한 값어치의 물건이 아닌데.”
“성 하나를 팔아치워도 구하지 못할 테죠.”
“그걸 알고도 이걸 가지고 다녔단 말인가?”
경악하는 가우트리트와 달리, 이스라는 어리둥절한 눈치였나.
【그랬나? 그 갑주가 그리도 귀한 물건이었다고?】
“크흠.”
헛기침으로 눈치를 준 토드가 재빨리 덧붙였다.
“제 기사가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서, 이 갑주의 제대로 된 유래는 잊었습니다. 귀한 물건이니만큼, 분란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는 게 최선이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가우트리트는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진 않았다.
“이 갑옷은 로다빙 대제 때 유행하던 양식으로 만들어졌네. 상당히 오래된 것이지. 중무장한 기병들이 전장을 휘젓던 시대의 유물이야.”
그 말에 이스라가 반색했다.
【진정한 기사들이 즐겨 사용하던 갑옷이란 말인가!】
드워프는 대번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갑옷은 10년도 안 되어 자취를 감췄네. 용수염 산맥 전투에서 장창으로 무장한 고지대 용병들에게 제국의 기사들이 크게 참패한 원인으로 지목받았지. 로다빙 대제는 패전의 충격으로 말년에 죽어버렸고.”
엮인 비화가 썩 긍정적이진 않군.
그가 갑주를 두드렸다.
“실전성은 둘째치고, 치장에만 신경 쓴 까닭에 거추장스러운 장식만 많아. 요즘 만들어지는 판금 갑옷들과 동떨어져 있지.”
토드가 보기에도 가우트리트의 혹평은 타당했다.
‘룩과 성능이 꼭 비례하지 않긴 해.’
이곳에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중보병들이나 기사들이 입는 판금 갑주를 살펴보면 대체로 장식은 고사하고 부위마다 중량이 분산되도록 정교한 형태로 고안되어 있다.
그에 비하면 일단 이스라의 갑주는 어깨 장식부터 가슴팍의 해골 장식까지 요란 법석했다.
【흥! 그자들은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본인은 이 갑주를 입고도 무수한 적들을 상대했다만!】
‘이스라. 당신도 생전엔 이 갑옷을 입고 싸웠다가 죽지 않았습니까.’
입을 꾹 다문 토드 대신에 가우트리트가 답했다.
“물론 개중에는 이 갑옷처럼 문양을 새겨 방어력을 보완한 물건들도 있었겠지. 하지만 이 힘을 끌어내려면 자격이 있어야만 해. 내가 듣기론 평생 칼을 잡아도 거기까지 도달하는 자들이 많지는 않다고 들었고.”
다시 기세등등해진 이스라가 으스댔다.
【역시. 본인이야말로 그 갑주를 다룰 자격만은 충분하지.】
파멸의 기사는 넌지시 토드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비록 생전에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만.】
마주 본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여튼 이 갑옷은 로다빙 대제가 정복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휘하 기사단장들과 총애하던 가신들에게나 하사했을 물건이야. 그중에서도 이렇게 해골 장식을 남발해댄 것이라면··· ‘저주받은 갑옷’이 아닐까 싶군.”
【저주받은 갑옷이라! 실로 무시무시한 이름이군!】
가우트리트가 딱 잘라 말했다.
“무시무시하긴 하지. 그 뒤로 오랫동안 그 갑옷을 입고 출전한 자들이 죄다 전사하거나, 가문에 좋지 못한 일이 닥쳤으니. 그 뒤로 워낙 주인이 자주 바뀐 탓에 누가 소유했는지도 잊혀졌네.”
“그렇게 유명한 물건이라면 소유주가 누구인진 유추할 수 있지 않습니까?”
드워프는 고개를 저었다.
“괜히 저주받았다고 불리겠나? 그런 흉악한 물건이라면 누가 입고 전장에 나서겠나. 여전히 소장품으로서 가치는 있을 테니, 창고나 진열장에 처박아두기야 했겠지. 하지만 갑옷을 비롯해 검이나 방패, 창 같은 물건들의 본분은 전쟁 병기야. 오랫동안 전장에 나서지 못하면 유명한 기사조차 명성을 잃는 것처럼, 이 갑옷도 자연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거지.”
그는 팔짱을 낀 채 혀를 찼다.
“누군진 몰라도 하필이면 이 흉악한 물건을 끄집어낸 탓에, 기어코 망각의 세월을 넘어 내 앞에서 도달했지만.”
이스라를 빤히 바라보던 토드가 넌지시 물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습니까?”
파멸의 기사는 심각한 눈빛으로 대꾸했다.
【전혀 모르겠네. 맹세컨대, 누군가에게서 빼앗거나 훔쳐온 것만은 절대 아닐세.】
상자에서 나머지 부위를 꺼내든 드워프는 연신 한숨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갑옷이라면 창칼 따위론 흠집도 내기 어려울 텐데.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건가? 고철 쪼가리가 따로 없어.”
이스라가 씨익 웃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자네는 감히 상상도 못할 역경과 싸움, 그리고 도전의 연속이었지!】
토드와 이스라를 살피던 가우트리트가 수염을 씰룩였다.
“이 갑옷에 얽힌 사연만큼이나, 네놈들 이야기도 복잡해 보이는군.”
가우트리트는 태연히 파스티다가 쥐고 있던 술병을 낚아채고는, 의자에 앉았다.
“내가 먼저 제안을 하지. 나는 이런 무기들과 얽힌 이야기들을 좋아하네. 그렇지 않아도 시체를 부리는 마법사와 그를 따르는 기사에 대한 소문도 내심 흥미가 있었어. 그래서 라즐 놈이 작업장을 선발한다기에 내가 먼저 접촉을 했었고.”
“저희에게 관심이 있으실 줄은 몰랐군요.”
“당연한 거 아닌가? 몇백 년 만에 나타난 사령술사라는데, 흥미가 동할 수밖에.”
술로 목을 축인 드워프가 깍지를 꼈다.
“이 갑옷을 입고 상대했던 적들과, 관련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게. 다 들어보고 나서 이 갑주를 수리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흠. 이 상황에서요?”
여전히 토드가 불러낸 망령들이 드워프들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우트리트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코웃음 쳤다.
“나를 위협해봤자, 어차피 네놈에게도 득 될 일은 없지 않겠나. 이 자리에서 내 목을 치고 시체로 일으킬지언정, 살아있을 때만큼이나 섬세한 작업을 해줄 거란 보장도 없을 거야.”
가우트리트는 시의회의 비호를 받는 장인이다. 게다가 주변의 감시도 없는 걸 확인했으니, 굳이 척을 질 필요도 없겠지.
“좋습니다. 어디 가서 당신이 이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으리란 보장은요?”
“내 수염에 걸고 맹세하지. 금화 한 수레를 끌고 오지 않는 이상, 떠벌리지 않기로.”
【돈만 주면 얼마든지 입을 열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드워프가 히죽 웃었다.
“이봐. 재미난 이야기라면 어떻게 평생 참고 지내나. 내 성격상 평생 함구하란 약속은 수염에 걸고 못 해. 설마 그만큼 흥미진진할 거란 자신도 없는 건가?”
드워프의 도발에 안광이 가늘어진다. 토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파멸의 기사는 파스티다를 놓아줬다.
【쾨흘링에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하지. 나는 소속 없는 떠돌이 기사였고, 전투에서 패배하여 무수한 시체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네···.】
새삼 토드는 그녀에게 재담가의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령술사의 부름을 받아 죽음의 기사로 일어났던 일, 이리공과의 대결, 스칼바냐르에서 죽은 군장을 다시 잠재운 일과 악마와의 대적에 이르기까지.
경청하는 가우트리트와 더불어 파스티다까지 맥주병을 끼고 이스라의 이야기를 듣느라 혈안이었다.
여태까지의 행적을 타자의 입으로 듣자니 조금 낯부끄러운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무래도 이스라는 기사도 전집을 즐겨본 탓에 특유의 과장된 수사나 어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리하여 말이 죽는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였으나!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기사도 전집에 따른 돌격 정신에 의거하여!! 적들에게···】
당장에라도 대장간 구석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이 세상의 현지인인 가우트리트와 파스티다에겐 이게 당대의 자연스러운 생활 양식이리라.
대장장이로 활동하면서 숱하게 많은 기사들을 봐왔을 테니.
이스라는 망자인 탓에 지치지도 않고 몇 시간을 떠들어댔다.
【···하여 이게 사령술사와 죽음의, 아니. 파멸의 기사인 본인이 겪어온 일들이라네. 본인의 명예를 걸고, 틀림없이 일어난 사실일세!】
드워프들의 시선이 뒤따르자, 마지못해 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부풀린 내용이 있긴 해도, 전부 일어났던 일입니다.”
가우트리트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빈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야말로 광인의 일대기구만.”
【본인은 언제나 싸움을 갈구하지. 여전히 군공에 목말라 있다네.】
이글거리는 이스라의 안광을 마주한 드워프가 낄낄거렸다.
“나는 살면서 많은 전사들을 봐왔지만, 그쪽처럼 죽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싸우려는 자는 처음이야.”
【온 세상이 본인의 이름을 알 때까지, 멈추지 않을 작정이로다.】
“명예를 좇다가 불나방처럼 사그라지는 이들도 많지. 하지만 죽지 않는 기사라면··· 주인과 더불어 무기들도 오래 갈 수 있겠지.”
【그래서. 할 텐가? 말 텐가. 대장장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듣던 가우트리트가 몸을 일으켰다. 이리저리 몸을 푼 드워프가 망치와 정을 챙겨 들었다.
“좋아. 갑옷을 새것처럼 고쳐주지. 그 외에 더 필요한 게 있나?”
토드는 일찍이 이스라가 요청했던 물건들을 떠올렸다.
“단창 세 자루. 장창을 베어낼 만한 길이의 대검 한 자루, 도리깨가 필요합니다.”
조수인 파스티다가 옆에서 재빨리 물건들을 적어내렸다. 그는 눈썰미만으로 부위들을 파악하고, 견적서를 완성했다.
“상당한 금액이 필요할 텐데, 거기다 문양의 보수까지 감안하면···”
절그럭.
망령들이 탁자에 묵직한 자루를 내려놓았다.
“전부 금화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습니까?”
자루를 들어 무게를 어림해본 가우트리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뒤에 오게. 그렇지 않아도 요즘 잠은 무던히 자놨으니, 신나게 두들겨야겠어.”
이스라가 감탄했다.
【4일 만에 끝낸다고. 과연 드워프 대장장이답군. 가공할 작업 속도야.】
황급히 토드가 속삭였다.
“3일입니다. 이스라.”
【커흠! 거, 3일이나. 4일이나. 그게 그거 아니겠는가!】
이런 맥락 상의 무지도 한글 패치가 이식된 탓에 발생하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토드는 황급히 이스라를 떠밀며 대장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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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가우가 어수선한 와중에 토드는 안치소에 틀어박혀 루카스의 일지를 탐독하는 데 열중했다.
사령술과 관련된 지식은 그간 막혀 있던 경지의 상승에도 도움이 되었다.
‘넋의 거울은 명계로 향하는 통로도 겸하지만, 저 너머에서 특정한 영을 불러낼 수도 있구나.’
일종의 소혼식을 행할 수 있었는데, 소법을 모르는 루카스는 제물을 바쳐 악한 영들만을 불러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느 정도 조건이 맞는 영을 불러낼 수도 있겠는데.’
유심히 일지를 읽어내리던 토드는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
―죽은 영혼은 자신과 얽힌 상대와 긴밀히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가령,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 번민 따위로 엮인 대상이라면 거울 너머로 불러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침 적절한 존재를 떠올린 토드는 즉각 망자들을 부려 넋의 거울을 뒤뜰로 옮겼다.
한창 수련에 매진하던 이스라는 난데없이 거울을 옮기는 망자들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사령술사? 그 거울은 왜 여기에 가져온 것인가?】
“이스라. 쾨흘링에서 부렸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이스라의 안광이 울적해졌다.
【오. 핀스터말인가. 그 충직한 녀석은 죽어서도 본인을 유독 잘 따랐었지. 본인의 실책이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을.】
알면식이 없는 영가를 불러내려면 11개의 초. 생전에 드높은 무위를 달성한 영령은 18개. 그에 비하면 애착이 있던 동물은 4개면 충분하다.
초에 불을 밝힌 토드는 4개를 거울 앞에 놓고, 이스라에게 짚을 쥐여줬다.
“거울 너머로 휘파람을 불어보세요. 말을 부를 때처럼.”
【으음, 잘 모르겠다만. 일단 알겠네.】
이스라는 토드의 조언대로 나직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소법. 죽은 자를 부르는 목소리.
원작 세계관에서 소리는 중요한 개념이다.
마법사들이 주문을 시전할 때 낭송이 필요하듯, 사제들도 기적을 구사하려면 기도문을 외쳐야 하고, 드래곤들의 힘은 목소리에 깃든 힘에 근간을 둔다.
‘사령술사도 근본이 캐스터라 낭송이 필요하지.’
토드는 마력을 실어 거울을 일깨웠다.
홀연히 거울에서 흘러나온 바람이 촛불을 흔들고, 차례로 촛대가 하나씩 꺼져나갔다.
돌연 무언가가 이스라의 손에 쥐어있던 짚을 앗아갔다.
【아니. 웬 놈이냐!】
일렁이는 거울 너머, 익히 이스라가 기억하던 형체가 걸어 나온다.
【핀스터!】
대번에 달려나간 파멸의 기사는 군마의 목을 얼싸안았다. 그녀는 즐거운 아이처럼 재잘거리며 2번 죽었던 말을 반겼다.
‘죽은 말을 불러낸 것만으로도 마력 소모가 만만치 않네.’
추후 혼령을 불러들이는 건 조금 이후의 일이 될 것 같다. 거진 절반 이상을 빨아들였으니.
“제가 예상했던 대로, 그 말은 당신과 강한 결속으로 이어져 있군요. 이스라.”
【그런가!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핀스터!】
그래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토드도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땅히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게 어떨까요.”
군마를 돌아본 이스라가 감탄했다.
【그런 것 같네! 욘석! 갈기도 불타오르고, 생김새도 훨씬 위풍당당하군!】
푸르스름한 몸체는 반투명한 기운이 감돈다.
자체적으로 흐릿한 빛을 발하고 있음에도 지면에 그림자가 남지 않았다.
【자네가 이 녀석과 본인의 인연을 다시 이어준 셈이니, 자네가 이름을 지어주게나!】
“제가요?”
이걸 나한테 떠넘기다니. 당황한 토드는 주인과 마찬가지로 안광이 선명한 말을 응시했다.
영마(靈馬)에게 어울리는 이름은 뭐라고 지어야 하나.
고민하던 토드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블루레이는 어떻습니까.”
【블루레이? 그건 무슨 뜻인가?】
“서쪽 국가들의 말로는 청색 섬광이라고 합니다.”
【청색 섬광이라! 멋지군! 좋네! 앞으로 이 녀석의 이름은 블루레이로다!】
실로 파멸적인 네이밍 센스다.
단순히 외형만 보고 떠올린 이름은 아니었다.
영마와 관련해 어울릴 법한 명칭을 두고 고민하다 보니 토드의 무의식중에 연상된 개체가 하나 있었다.
‘뭐 어때. 적어도 그 녀석은 색깔이 연두색도 아니면서 이름이 그랬는걸.’
가볍게 승마한 파멸의 기사는 영마의 갈기를 쓸어내렸다.
【하, 하! 하.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블루레이! 앞으로 네 녀석도 본인이 벌일 살육의 여정과 함께할 것이다!】
끼이이익, 영마가 우렁찬 귀곡성을 토해낸다.
때마침 문을 연 마르커스가 뚱한 표정으로 토드를 불렀다.
【사령술사. 웬 사내놈 둘이 네놈을 찾아왔다.】
“손님입니까?”
【모르겠다. 급히 네놈을 봐야겠다고 성화를 부리더군.】
희희낙락하는 파멸의 기사와 영마를 뒤로 하고, 토드는 급히 응접실로 들어갔다.
이미 자리에는 초조한 기색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토드는 곧바로 그를 알아봤다.
“크리슈토프 경?”
“오랜만이오. 토드.”
일찍이 슈테판 변경백의 가신들 중, 토드를 지지했던 파벌의 우두머리. 그의 옆에는 조카인 요코프도 동행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찾아오셨습니까?”
침을 삼킨 크리슈토프가 입을 열었다.
“각하의 상태가 위중하네. 이미 임종까지 얼마 남지 않으셨다고 의사가 선언했었지.”
“안타깝게도, 이리공이 남긴 부상으로부터 회복하지 못하셨군요.”
“더 큰 문제는··· 각하의 따님들께서 작위 상속에 이의를 제기하셨네.”
토드는 눈썹을 치켜떴다.
“크뤼거 경이 상속 대상자로 지정된 게 아니었습니까? 사전에 합의한 유언장 내용대로라면.”
목이 타는지, 물을 마시는 크리슈토프를 대신하여 요코프가 답했다.
“상속을 그렇게 하기로 선언하셨지만, 서자에게 친가의 봉토를 넘길 수 없다는 게 그분들의 뜻입니다. 현재 두 따님의 사위인 모이텐슈하임 방백과 베벨부르크 제국백이 병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크리슈토프가 침통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원래 피붙이 간의 싸움이 더한 법이지. 더욱이 배다른 형제라면.”
고개를 들어 올린 그가 토드를 응시했다.
“크뤼거가 내게 직접 부탁했네. 자네를 불러와달라고.”
사령술사의 입가에 오묘한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