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94
094
샤이퍼는 루카스의 직계 제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스승의 명령으로 인근 도시의 흑마법사들과 협력 관계를 맺으러 파견되었는데, 막상 돌아와 보니 루카스는 죽었고, 추종자들은 전멸했다.
게다가 판가우 내의 감시까지 강화되어 졸지에 도시 밖으로 쫓겨난 신세.
‘줄곧 기다렸다.’
오로지 복수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수중에 남은 재산은 정보 중개료로 지불했다.
막대한 비용이 들었지만, 사령술사 놈이 에베르호펜으로 출정한다는 자세한 경로까지 알아냈으니 가치는 있었다.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다. 밤중의 산길을 지나가고 있으면서 등불 하나 없는 게 기이했지만, 샤이퍼는 마부석을 향해 신중히 지팡이를 겨눴다.
쩌엉!!
마차가 멈춰섰다. 연기가 걷히고, 비교적 멀쩡한 마차의 외관에 샤이퍼가 미간을 좁혔다.
‘마차 따위에 주문 저항 문양을 새겨넣다니. 시의회가 놈을 작정하고 밀어줄 생각인가.’
시의회는 판가우에 자리 잡은 흑마법사들과 은연중 협력 관계에 있었다. 연구 자금도 지원해주면, 전쟁 물자를 조달해줬는데, 쾨흘링 분쟁 이후로 연이어 계획이 실패하면서 저들의 태도도 돌변했다.
‘놈의 목을 뽑아 보내줘야겠어.’
경고의 의미론 이만한 수단도 없다.
다른 흑마법사들이 물었다.
“마차를 완전히 박살 낼까요?”
“아니. 마력을 아껴라. 어차피 놈들은 나올 수밖에 없어.”
그가 낮게 속삭였다.
“놈은 시체를 부린다. 마차에서 뭔가 튀어나오는 즉시, 날려버려.”
샤이퍼의 말이 무색하게, 마차 안에선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냥 마차째로 날려버리는 게 어떻습니까? 놈들이 틀어박혀서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는데.”
“그만한 주문을 시전하면 사령술사 놈도 마력의 유동을 느낄 거다. 어차피 급한 건 놈이지, 우리가···”
돌연 샤이퍼는 목덜미에서 한기를 느꼈다.
재빨리 몸을 돌린 그의 손아귀에서 불꽃이 쏟아져 나간다.
【끼야아악!!】
화염을 뒤집어쓴 망령이 녹아내렸다. 덩달아 주변의 흑마법사들도 일제히 등 뒤에서 접근한 망령들을 향해 주문을 쏟아냈다.
“어느 틈에···!”
그 사이 마차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창백한 빛과 더불어 홀연히 나타난 말은 갈기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 하! 하. 지루하게 마차나 타고 갈 줄 알았더니! 감히 본인의 행차를 막아 세운 기특한 놈들이 누구더냐!】
파멸의 기사가 내지르는 고함에 흑마법사들의 몸이 덜덜 떨렸다.
제아무리 금지된 학문에 정진하더라도, 생명체로서 고위 망자가 풍기는 기운으로부터 저항할 수 없다.
【친히 죽음을 안겨주겠노라!】
영마가 내달린다.
급히 추종자들이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이 먼저 도달했다.
콰직, 콱!!
가슴팍을 찌르고, 어깨를 도려낸다. 제대로 된 무장도 갖추지 않은 자들에겐 오러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흑마법사들이 영마에게 제동을 걸기 위해 주문을 낭송하던 차에, 마차에서 추가로 인영이 뛰어내렸다.
【불경자들이 가득하구나!】
일순간 주변을 환히 밝히는 빛에 흑마법사들이 동요했다.
이건 교회의 성전사들이 사용할 법한 권능이었다.
샤이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왜 솔마르의 사낭개가 사령술사와?”
분명 흑마법사의 눈엔 심문관의 몸뚱이를 사로잡는 속박이 보였다.
그럼에도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변함없이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엄벌을 내리소서!】
빛으로 이뤄진 망치가 흑마법사들을 내리쳤다.
한쪽에선 유령말을 탄 기사가 날뛰는데, 칼을 휘두를 때마다 서너 명씩 픽픽 쓰러지고.
반대편엔 시체가 틀림없는 성전사가 빛을 뿜으며 신성을 발휘한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광경이었지만 샤이퍼는 애써 정신을 다잡았다.
“마차! 마차를 확보해! 안에 있는 놈들을 쳐!”
그의 불호령에 추종자들이 마차 안으로 들어섰지만,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럿이 나가떨어졌다.
마차에서 죽은 시체들을 끌어낸 인영이 곧장 샤이퍼를 돌아봤다.
“이런, 제기랄.”
어둠 속에서 짐승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안광에 비친 발톱에 핏자국이 선연했다.
짐승의 뒤에 선 사령술사가 속삭였다.
“일어나라.”
딸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지고, 피투성이가 된 시신들이 하나둘 일어선다.
샤이퍼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응수했으나 이미 사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마력이···!’
지팡이 끝에 달린 자수정이 서서히 빛을 잃는다.
“샤, 샤이퍼님! 도망쳐야 합니다! 사방에 시체들이 가득합니다!”
인상을 구긴 샤이퍼는 손을 뻗어 흑마법사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여기서 어디로? 스승님도 죽었고, 거점도 붕괴되었다.”
“악, 아.”
샤이퍼에게서 뻗어 나온 가닥들이 흑마법사의 육신을 뒤덮었다.
“살아서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나? 어리석긴.”
순식간에 흑마법사의 얼굴이 생기를 잃는다.
메마른 몸뚱이를 내던진 샤이퍼는 지팡이를 다잡았다.
자수정에 요사스러운 빛이 다시 맺혔다.
그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토드는 눈을 반짝였다.
‘생기 흡수. 저렇게 마력을 채우는구나.’
명상을 통해 마력을 충전하는 마법사들과 달리, 흑마법사들은 다른 개체로부터 착취하는 방식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사령술사인 토드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
“그나마 이들 중엔 좀 쓸만하겠는데요.”
샤이퍼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이를 갈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살아남은 인간이라곤 자신뿐.
“하···!”
되살아난 시체들이 자신을 향해 손을 치켜든다.
낭송을 마무리 짓기 전에 재빨리 머리를 터뜨렸으나, 사방에서 주문이 빗발친다.
토드는 최대한 샤이퍼가 자신을 노리지 못하도록 공을 들여 흑마법사들을 조종했다.
자연히 그들을 부리면서 알지 못했던 속성도 파악했다.
‘흑마법사들은 주문이 마력과 생명력을 동시에 소모하는구나.’
극도로 살상력에 치중된 특성만큼이나 자기 파멸적이다.
주문을 사용할 때마다 자기 자신을 갉아 먹어야 한다니.
‘두고두고 부려먹기엔 역시 힘들겠어. 이래서 악마들한테 매달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럼 저 샤이퍼란 녀석은 아껴가며 사용하자.
화력은 확실하니, 긴박한 상황엔 소방수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겠지.
미소지은 토드가 입을 떼었다.
“그대는 언젠가 시들어야만 하는 존재임을 깨달으라.”
노화가 적중했다. 점점 샤이퍼의 혈색이 창백해진다. 저주에 적중된 상태에서도 샤이퍼는 끝끝내 다른 망자들을 모두 무력화시키며 발악했다.
“네놈만은··· 복수를!”
“의지가 대단하군요.”
눈동자에 핏발이 선 샤이퍼를 향해 토드가 빙긋 웃었다.
퍽!
영마가 샤이퍼를 들이받았다. 그는 허리가 접힌 채로 공중에 떠오르더니, 요란하게 바닥을 굴렀다.
【에잉, 무장도 빈약한 데다 너무 약골이라 싱겁네. 다음엔 좀 더 제대로 차려입은 놈들이었다면 좋겠어!】
“흑마법사 잔당들이 제대로 된 무장을 할 만큼이나 돈이 있겠습니까.”
그 와중에 샤이퍼는 바닥을 기어 지팡이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발톱을 뽑아든 산시아가 단호히 그의 손등을 찔렀다.
“끄윽, 극···.”
그를 대신해 지팡이를 주워든 토드는 작게 감탄했다.
“주문의 파괴력을 증대해주는 지팡이군요.”
하지만 살상 주문이 적은 사령술사에겐 그리 쓸모있는 옵션은 아니었다.
게다가 향로나 방울과 달리, 지팡이는 몸에 은닉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들고 다녀봤자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알릴 뿐이다.
또각.
끄트머리를 부러트린 토드는 자수정만 쏙 빼가곤, 몸통을 내려놓았다.
“이건 잘 쓰겠습니다.”
숨을 헐떡인 샤이퍼가 중얼거렸다.
“이미 네놈을··· 주시하는 자들이 많다. 내가 여기서 쓰러지더라도, 언젠간-”
콰직. 파멸의 기사는 샤이퍼의 목에서 장검을 뽑아냈다.
【쯧, 요술쟁이들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말이 많군. 시간을 너무 지체한 것 같지 않나?】
“마부가 죽었으니, 저들 중에서 말을 몰 수 있는 자가 있는지 추려봐야겠습니다. 덩달아 다음 마을에서 말도 갈고요.”
【음. 아무래도 성문에서 죽은 말들을 몰고 갔다간 경비병들이 기겁하겠군.】
“산시아. 그 녀석 좀 마차에 실어주겠습니까? 방부 처리는 가는 길에 합시다.”
그러자 마르커스가 인상을 구기며 투덜댔다.
【그 불경한 놈의 시체와 더불어 마차에 타고 가라는 건가? 당장 태워버리진 못할망정!】
“어허. 마르커스. 이리 섭섭한 말씀을. 하수인으로 부려먹기에 적당한 죄인을 어찌 헛되이 보내주겠습니까?”
말들을 일으켜 세운 토드가 히죽 웃었다.
“죽음으로 치르지 못한 죗값이 남아 있다면 몸뚱이로 마저 갚고 떠나가야지요.”
성검을 갈무리한 마르커스가 몸서리쳤다.
【지독한 놈 같으니. 내가 보기엔 네가 저놈들보다 더하다.】
“다소 억울한데요.”
소탕은 수월하게 끝났지만, 기분이 썩 개운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경로가 탄로 났습니다. 이거 서둘러서 움직여야겠군요.”
라즐인가? 아니,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튼튼한 마차를 마련해주진 않았겠지.
판가우에서 오밤중에 출발했는데, 정확히 토드 일행이 향하는 동선에 매복한 걸 보면 우연이 아니다.
여전히 밤중의 산길은 어둡다. 마차는 이전보다 다소 덜컹거리긴 해도, 에베르호펜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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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 법석한 술집 안에선 여지없이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술꾼들이야 뒤엉켜 몸부림을 벌이는 게 일상이다. 그 난장판으로부터 한 발 치 떨어진 자리에서 구경하는 재미로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도 있었다.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와 달리, 한적한 구석 자리에선 하염없이 담뱃대에서 연기만 피어오른다.
망토를 푹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았으나 어차피 술집이야 온갖 수상한 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신경 쓰는 이도 없었다.
혼자 의자를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한 사내가 동석했다.
망토 쓴 자가 낄낄거렸다.
“이런 곳에 어울리시는 분은 아닌데.”
“나라고 여기 못 올 이유라도 있나?”
망토 밑으로 불꽃이 일렁였다.
“아니, 뭐···. 평소에 여기까지 찾아오진 않으시길래. 술이라도 한잔 시켜드려?”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은 없어서 말이네. 지정 의뢰를 하나 하지.”
망토 쓴 이는 즉각 사내가 건넨 양피지를 낚아챘다.
고개를 숙이고 내용을 훑던 이가 망토를 걷어냈다.
“흐, 안 그래도 이 녀석한테 관심이 있었는데 말이야.”
연신 파이프에서 아른거리는 불빛이 입가에 걸린 삐딱한 미소를 선명하게 밝힌다.
사내의 맞은편에 앉은 상대는 라노였다.
“토드 하워드. 최근 제국 동부에서 나타난 사령술사일세.”
“아,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홍염 마탑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이 녀석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거든.”
“자네가 다른 이의 이야기를 캐묻고 다니는 줄은 몰랐는데.”
“아,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서 말이야. 그도 그럴게, 사령술사들은 사라진 지 오래됐잖아.”
“자네도 흑마술 유물들에 관심 있나?”
고개를 저은 라노가 씨익 웃었다.
“아니, 난 당신과 달리 케케묵은 골동품들엔 관심 없어.”
사내는 작은 꾸러미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즉각 내용물을 풀어놓은 라노는 단검 끝으로 하나하나 헤아렸다.
“선수금이네. 그자를 포섭하게. 내가 보냈다고 말해도 상관없고.”
라노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앙? 포섭하라고? 대공 나으리, 나 말재간이 그리 안 좋은 건 잘 알 텐데?”
그녀가 단검을 휘젓자, 흐트러져있던 보석들이 주머니로 밀려 들어간다.
칼자루를 거둔 라노가 스산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멱 따는 일이라면 모를까.”
“그가 제안을 거절한다면. 처리해도 좋네.”
즉각 뒤에 등을 기댄 라노는 휘파람을 불었다.
“엄청 단호하네.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작정 아니었어? 당신, 흑마법사들이랑 친하게 지내더만.”
“적어도 흑마법사들은 내게 원하는 바가 확실하지만, 이자의 동기는 파악하기 어렵네. 말하자면··· 혼돈의 화신 같은 작자이지.”
“아하, 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친놈이니. 수하에 두기 어렵다면, 차라리 치워버려라?”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괜한 변수는 살려둘 이유가 없는 법이지.”
거리낌 없이 돌아서려는 그를 향해 라노가 되물었다.
“그럼 콘라트. 나를 굳이 살려두는 이유는 뭐야?”
사내는 코웃음 치며 답했다.
“자네는 순전히 돈만 보고 움직이지 않나. 어차피 제국에서 나보다 더 많은 금화를 내어줄 자가 없을 텐데.”
라노가 히죽 웃었다.
“그건 그래. 우리 콘라트 대공 전하만한 물주가 따로 없긴 하지.” 제자리에서 회전한 단검이 주머니와 동시에 벨트로 빨려 들어갔다. “빨리 황제 자리나 해처먹으라고. 앞으로 썰어댈 놈은 존나게 넘쳐날 거 아냐.”
“곧 머지 않았다. 그자는 처리가 중요하니, 자네가 직접 와서 보고하게.”
히죽 웃은 라노가 과장스럽게 고개를 숙이곤, 큰 소리로 떠벌렸다.
“암요. 암요. 만수무강하시길. 폐하.”
이미 소란스러운 술집 내에서 라노의 외침은 금세 묻혔다.
대공이 술집을 나선 뒤, 라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들 집합.”
그녀의 한마디에 그토록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무색하게, 사방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손아귀에서 주사위를 굴리던 라노는 곁에 있던 놈을 향해 양피지를 던졌다.
“그놈. 최근에 어디에 있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판가우랍니다.”
귀를 후비적댄 라노는 고개를 꺾었다.
“멀리도 있네. 씨부랄. 나 갔다 올 테니까, 가게 잘 지키고 있어. 새끼들아.”
문고리 앞에 선 그녀는 주사위 2개를 던졌다.
바닥에 맞물린 주사위의 눈은 각각 4와 5. 굴림 성공이다.
문고리를 돌리고, 어느새 그녀는 다른 여관에서 유유자적 모습을 드러냈다.
-독수리의 눈 여관.
손을 비빈 라노는 입술을 훑었다.
‘어디로 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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