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96
096
기병들이 많다.
이들 모두가 기사는 아니겠지만, 이스라도 이토록 많은 기수들을 대면한 건 처음이었다.
평소와 달리 장검 대신, 랜스를 차고 있자니 이루 말 못할 고양감이 느껴진다.
이스라를 훑어보던 뵈트거가 입을 열었다.
“에두아르드!”
그의 부름에 중무장한 기수가 앞으로 나섰다.
“시간이 없다. 뚫어내라.”
에두아르드는 인근에서 명망 높은 싸움꾼이었다. 그는 무시무시한 생김새의 영마를 보고도 거리낌 없이 달려나갔다.
【오호, 이자에겐 두려움이 없구나!】
감탄한 이스라 역시 등자를 걷어찼다.
상대방은 겨드랑이에 랜스를 끼운 채 맹렬히 접근한다.
파멸의 기사로 거듭나면서 둔해졌던 감각은 한층 보강되었다. 인간을 상회하는 동체 시력이라면 충분히 창끝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피하고 싶진 않군.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
기사도 전집의 묘사에 따르면 갑옷은 무사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인간은 견뎌낼 수 없는 충격이라고 한다.
과연 기사도 전집의 서술은 과장된 것일까? 자신이라면 버텨볼 만하지 않을까.
‘무릇 기사도 전집에서도 지식이란 탐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에 옮김으로써 진정 실현해야 의미가 있다고 가르치는 법!’
멀쩡한 기사도 전집의 가르침은 이스라를 거쳐 몸으로 직접 체감해봐야겠다는 엉뚱한 해석으로 이어졌다.
부쩍 좁혀든 둘의 거리.
양측의 창이 각각 상대를 타격했다.
터엉!!
“제대로 들어갔다!”
뵈트거 쪽에서 환호성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탄성이 무색하게, 바닥을 뒹구는 건 에두아르드의 군마였다. 안장에서 내동댕이쳐진 그의 목이 반대편으로 꺾였다.
이스라는 에두아르드의 말을 노렸고, 에두아르드는 정확히 이스라를 타격했지만, 그녀는 버텨냈다.
벙찐 이들 앞에서 이스라는 유유히 고삐를 잡아챈 채로 돌아서는 여유까지 보였다.
【제법 묵직하군!】
충격량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확실히 위협적인 일격이다.
【허나 버틸 만한 정도로다.】
정면에서 랜스를 맞고도 멀쩡한 모습에 기수들이 질겁했다. 파멸의 기사가 말없이 창을 겨누자,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치는 군마들이 속출했다.
수백 명이 도리어 한 명에게 압도당하다니. 이건 뵈트거 자신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데니스, 자닉, 피슐러, 엘마르, 로렌스!”
이를 악문 그가 이스라를 가리켰다.
“한꺼번에 몰아쳐라!”
이번엔 5명이 달려든다. 안광을 가늘게 뜬 파멸의 기사는 기수들을 응시했다.
‘가장 강한 놈.’
망자의 시야로는 갑옷과 육신 속, 감춰진 영혼의 불꽃이 보인다. 이스라는 그중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타오르는 자를 발견했다.
이스라는 물러서지 않고 거침없이 그를 향해 돌진했다. 이쪽에서 오히려 달려드니 상대방에게서 당황한 기척이 느껴진다.
투구 속 표정을 읽을 순 없어도, 몸의 자세나 호흡으로 간파할 수 있었다.
【흡!】
기합을 흘린 이스라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랜스를 돌연 내던졌다.
쐐애액-!
랜스의 길이는 4.5m가 넘는다. 이스라는 그걸 한 손으로 집어 던지는 기행을 선보였다.
설마 상대도 저걸 투창처럼 집어던질 거라곤 생각 못 했는지, 급히 왼쪽 팔에 차고 있던 방패를 들어 올렸다.
으직!
방패 채로 꿰인 몸이 날아간다. 뒤이어 좌측에서 한 명이 붙는다.
후웅!
이스라는 급히 어깨를 비틀어 창을 피해내곤, 장검을 뽑아 장대를 내리쳤다.
우측과 뒤쪽에도 한 놈씩 붙는다. 놈들은 이스라와 영마를 동시에 노릴 작정이었다. 이스라가 따로 지시를 내릴 필요 없이 영마는 유려하게 좌측으로 선회했다.
이스라의 견갑을 스친 랜스가 불똥을 튀긴다. 동시에 뒤쪽에서 붙은 기수는 마갑이 덧씌워지지 않은 부위를 노리고 창을 찔러넣었다.
후웅.
분명 찌르는 감각이라곤 없고, 마치 연기를 가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손끝에서 한기가 치밀었다. 그는 허탈하게 탄식했다.
“허어.”
자세가 흐트러진 기수를 향해 이스라는 가차 없이 장검을 휘둘렀다. 녹색 빛이 어린 장검은 투구를 가르고 그의 두개골을 절단했다.
핏물을 흩뿌린 이스라는 연이어 맞붙은 기사들과 뒤엉켰다.
백병전 상황에 이르자 저들도 랜스 대신 쇠꼬챙이에 가까운 에스토크를 뽑아 들었다.
【하, 하! 하. 그래! 덤벼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여!】
얼핏 저들도 칼끝에 새파란 기운이 아른거린다. 제법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지만, 이스라에게 흠집조차 남기지 못했다. 이스라는 그들을 무참히 도륙했다.
마지막으로 창이 부러졌던 자가 도리깨를 들고 달려오자 영마가 자진해 앞발을 들어 올리며 울부짖었다.
―끼이익!!
영마의 귀곡성에 달려오던 군마가 소스라치게 놀랐는지, 급격히 멈춰섰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기수를 내려다보며 이스라가 코웃음 쳤다.
그녀가 고삐를 몰아 앞으로 다가서자, 군마는 제 주인을 버려두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아, 아···!”
피를 질질 흘리던 기사는 손에서 놓친 도리깨를 주우러 기어갔으나, 무참히 영마의 발굽이 그를 짓밟았다.
【정녕 이게 다냐! 너희는 방백의 기병대라 들었거늘, 이 중에 본인을 상대할 무인은 단 한 명도 없단 말이냐!】
이스라의 오만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섣불리 나서는 이가 없었다.
뵈트거가 내보낸 6명은 하나같이 하사관이나 종사에 해당하는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을 상대로 박빙의 싸움을 벌인 것도 아니고, 무참히 박살을 내버렸으니 자연히 전의가 바닥을 쳤다.
뵈트거는 황당한 심정이었다.
‘이 무슨,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생전 슈테판 변경백이 휘하에 저런 무시무시한 기사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무래도 쾨흘링 분쟁이 외부엔 그리 전해지지 않아, 이스라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도 있었다.
파멸의 기사는 뵈트거의 악몽을 현실로 옮길 존재였다.
【하, 하! 하. 정녕 네놈들이 오지 않겠다면, 이쪽에서 가마.】
덩어리째 으스러진 군마의 사체에서 파멸의 기사는 랜스를 뽑아 들었다.
영마가 달린다.
달려오는 파멸의 기사를 바라보며 뵈트거의 부관이 소리쳤다.
“뵈트거 경!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저 기사는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단 한 명이다. 제아무리 나라도 이만한 숫자를 상대로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해.’
그럼에도 파멸의 기사는 거리낌 없이 일선에 나선 기병들과 충돌했다. 랜스를 내던진 이스라는 장검을 휘두르거나, 상대를 걷어차 떨구고, 쥐고 있던 창을 빼앗아 도리어 찔러버렸다.
이들 하나하나가 방백이 막대한 돈을 들여 육성한 중기병들이었다. 그럼에도 파멸의 기사는 거침없이 갑옷을 가르며 아군의 틈바구니를 누볐다.
장검에 맺힌 검녹색 휘광은 꺼지는 일 없이, 오히려 세차게 타올랐다.
【하, 하! 하.】
기이한 웃음소리와 아군의 비명이 동시에 울려 퍼진다. 어둠 속에서 푸른 불꽃처럼 휘날리는 영마의 갈기는 지독히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 위에 올라탄 기사는 수십 명의 기병에 둘러싸이고도 끝끝내 홀로 빠져나온다.
급기야 칼끝이 뵈트거를 향했다.
【네놈!】
녹색 안광이 부리부리한 빛을 발했다.
【네놈이 여기서 영혼의 불꽃이 가장 밝구나!】
파멸의 기사는 누구보다도 충직한 하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이 내린 명령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기골도 제법 쓸만해 보이는군. 좋은 하수인이 되겠어.】
이스라가 파멸의 기사로 거듭나면서, 죽음의 기사 수용량에 여유가 생겼다.
무릇 기사라면 계속 홀로 싸우는 게 아니라, 마땅히 기사단을 이뤄야 하는 법!
명백히 자신을 노리는 눈빛에 뵈트거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뵈트거도 나름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지였지만, 그의 판단은 휘하의 부하들과 사뭇 달랐다.
“퇴각한다! 아군과 합류한다!”
그러곤 말머리를 돌려 부리나케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줄행랑을 치는 모습에 자세를 잡던 이스라가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이놈! 지휘관이란 놈이 가장 먼저 도망을 쳐!】
이스라가 추격에 나섰지만, 사방에서 기수들이 달라붙는다.
“뵈트거 경을 지켜라!”
안광을 일그러트린 이스라는 격분에 찬 외침을 쏟아냈다.
【저 겁쟁이 놈! 네놈이 죽어서 다시 일어서면, 기사도 전집에 입각한 정신 교육부터 시켜주마! 기필코 네놈을 잡아 죽이겠다!】
뵈트거는 뒤에서 들려오는 망자의 포효에 식은땀을 흘렸다.
‘빌어먹을. 저런 괴물이 여기 있을 줄이야. 그래도 아군은 몇천 명이다. 제아무리 저런 놈이라도···!’
그러나 그는 정작 후미의 본대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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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트거의 기병 중대가 먼저 치고 나간 뒤, 방백과 휘하의 가신들이 이끄는 보병대가 텅 빈 주둔지에 도착했다.
남아있던 기수들이 방백을 향해 말했다.
“적은 모두 도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뵈트거 경이 앞서 단독으로 적을 추격 중입니다.”
그러자 하켈이 소리쳤다.
“경솔한 처사요! 당장 그를 불러들여야 합니다!”
이에 방백은 차분한 어조로 그를 타일렀다.
“진정하시게. 하켈 경. 주변을 둘러보게나. 적들은 수레까지 내버려 둔 채로 떠났네. 이렇게 급히 철수했는데, 아직도 있지도 않을 매복을 의심하는 건가?”
하켈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지만, 항변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수색은 완료되었나.”
“병사들이 대략적으로 야영지와 그 인근을 뒤졌으나, 적병은 없었습니다.”
“수고했네. 그렇다면 뵈트거 경에겐 추격을 지속하게끔 두고, 병사를 나눠 적이 두고 간 물자를 확보하도록 하게.”
“주군. 이것들을 섣불리 취해서는 안 됩니다. 혹여 적의 수하에 있는 사령술사가 어떤 사악한 술수를 부려놨을지 모를 일입니다!”
방백은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질린 표정이었다.
“하켈 경. 당신은 어찌 그리도 그 요술사를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소. 이리공이 실각한 건 그의 가문에 있던 저주 탓이지, 변경백의 군사가 뛰어났거나, 마술 때문이 아니지 않았소.”
“그건 와전된 소문입니다. 다들 이리공의 저주에만 관심을 기울이지만, 저는 친우에게 쾨흘링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전해 들었습니다! 이리공의 패전은 순전히 마법사 한 명에 의한 술수에···”
“그만. 그만하시오. 어차피 이곳은 정리되었으니, 병사들과 더불어 물자 수급과 주변 경계나 감독하도록 하시오.”
이미 방백은 승기를 점했다는 생각에 도취되어 있는데, 자꾸만 하켈이 간섭해대니 심기가 적지 않게 거슬렸다.
‘쯧. 저 노인네는 지나치게 걱정이 많단 말이야. 이제 내가 방백인데, 아직도 날 후계자 때처럼 생각해서 잔소리나 해대고.’
방백의 병사들은 크뤼거 군이 주둔지에 버려둔 장비와 곡물을 챙기는 데 열중했다. 그렇지 않아도 말에게 먹일 건초가 부족하던 참이었는데, 수레에 가득 담긴 걸 보고 보급관이 만족스러워했다.
“좋아! 이 정도면 2주는 충분히 먹이겠구만. 거기 담은 양배추는 다 치우고, 이거나 담아!”
그의 지시에 병사는 볼멘소리를 꾹 억눌렀다.
‘시팔. 가뜩이나 우리 먹을 건 없다더니, 말새끼 처먹을 건 꾸역꾸역 챙기는구먼.’
저들끼리만 작게 욕지기를 중얼대며 건초를 퍼나르던 병사는 문득 안에서 걸리는 감촉에 기겁했다.
“억! 이게 뭐야?!”
건초를 뒤지던 병사는 안에서 인간의 손가락을 들춰냈다. 다른 병사가 인상을 구겼다.
“이런, 씹. 송장이잖아. 이 미친 새끼들. 여기다 왜 이딴 걸 처박아놨···”
돌연 말라붙은 손가락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지푸라기들이 떨어지면서 극도로 팽창된 시신들의 얼굴과 뱃가죽이 훤히 드러났다.
멀찍이 떨어진 곳,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시전 범위가 닿는 위치에서 야영지를 응시하던 사령술사는 나직이 입을 떼었다.
“시체 폭발.”
콰앙-!!
조각난 뼈 무더기와 핏물이 사방에 튀겼다.
연이어 야영지 곳곳에서 일어난 폭발에 방백의 병사들이 부산해졌다.
한편 토드는 그간 축적된 업을 헤아렸다.
‘음. 이스라가 기병들은 잘 붙들어놓고 있네.’
피의 업이 미친 속도로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어김없이 날뛰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파멸의 기사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육체 스펙이나 자체적으로 흘리는 공포, 쇠퇴 아우라 덕분에 방백의 기마대론 절대 막을 수 없었다.
시체 폭발의 여파로 사상자가 꽤 발생하긴 했어도, 그래 봤자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수십 명 정도.
‘진형 붕괴와 더불어 신호 겸이지.’
곧 방백의 본대가 들어온 주둔지 뒤편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마침 크뤼거도 도착했네.’
방백의 군대는 후방에서 적이 나타나자 당황했지만, 이내 빠르게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번엔 짐 사이에 숨겨둔 것들이 아니라, 땅에 묻어둔 것들 차례다.
숨을 가다듬은 토드는 재차 속삭였다.
“시체 폭발.”
콰앙!! 쾅!!
매설해둔 시체는 모조리 소모했다. 유의미한 타격이 들어간 상태에서 크뤼거의 병사들과 방백의 병사들이 충돌했다.
‘음. 그래도 잘 안 밀리네.’
선두에서 맞붙은 장창병들은 빽빽하게 밀집하여 서로의 등을 맞대고 크뤼거의 병사들을 밀어냈다.
양측 보병진은 지지부진한 몸싸움만 벌일 뿐, 어느 쪽이 뚜렷하게 미는 경향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크뤼거 쪽이 숫자에서 열세인 상황이라 도리어 주둔지 밖으로 방백의 군대가 서서히 밀어내고 있었다.
‘어휴. 저기다가 화염구 하나만 떨궈도 속이 다 시원할 텐데.’
비좁은 주둔지에 바글거리는 방백의 군대를 보고 있자면 절로 답답한 기분이었다.
토드도 계속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시체 폭발로 소진한 마력이 어느 정도 차올랐을 즈음, 산시아를 향해 말했다.
“산시아. 주둔지 반대쪽으로 접근해야겠습니다. 절 보호해주세요.”
“네.”
격전이 벌어지는 곳은 피해 사선으로 향한 토드는 목책에 가로막혔다.
“이런, 여길 넘어야 하는데.”
“실례하겠습니다. 스승님.”
번쩍 토드를 안아 든 산시아는 훌쩍 목책을 뛰어넘었다. 엄청난 도약력에 토드도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데요?”
그 사이, 뒤를 지키고 있던 병사가 둘을 목격했다.
“너흰 뭐냐! 갑자기 목책으···”
콰직.
순식간에 병사를 해치운 산시아는 손톱을 가다듬었다.
“별말씀을.”
주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은 산시아가 되물었다.
“그래서 스승님. 이제 어쩌시게요? 여긴 교전의 한복판인데요.”
“이쪽에 시체를 묻어둔 곳이 있거든요. 아마 이쪽에 당한 녀석들이 있을 텐데···”
은밀히 천막 뒤로 향한 토드는 수레 앞에서 널브러진 몸뚱어리들을 찾아냈다.
“최대한. 여기 있는 녀석들 좀 모아주시겠습니까?”
향로를 꺼내든 토드는 빽빽하게 뭉친 적 보병진을 곁눈질했다.
“저렇게 많은 놈들을 상대하려면, 최대한 큰놈이 필요하니까요.”
실처럼 자아낸 마력이 시신들을 엮는다. 시체 폭발로 적당히 용해된 부위들이 맞물리고, 하나의 형상을 이뤄간다.
곧 살점의 잔해 속에서 토드의 기이한 피조물이 깨어났다.
【오, 오오오! 걸자악- 부활! 나 살았다!】
환호성을 지르며 떠들어대는 살점 거인의 모습에 토드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건 전에 봤던 개체의 자아가 아닌가? 희한하네. 원리가 뭔진 모르겠지만.’
“아니, 이제 넌 걸작 정도가 아니다. 대작이다!”
살점 거인은 어리둥절한 투로 중얼거렸다.
【대자악? 대작이 더 좋은 건가?】
“그래! 네 몸을 돌아봐라! 이전보다 더 크고, 강력하지 않느냐.”
거인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힘쎄고 강함!】
적어도 50명 이상의 육신으로 빚어낸 녀석이다 보니, 비록 급히 구축했어도 크기가 상당했다. 이미 방백의 병사들 중 일부가 살점 거인을 목격하곤 소동을 일으켰다.
“저기 나를 적대하는 놈들이 있다. 가서, 네 힘을 보여줘라! 내 피조물의 위대함을!”
흥분한 살점 거인은 핏물을 뚝뚝 떨구며 주둔지 앞으로 향했다.
【오오오! 대작! 위대하다! 바로 간다!】
쾅! 쾅!!
땅을 울리는 굉음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주둔지에서 솟구친 기괴한 존재에 방백이 중얼거렸다.
“솔마르시여.”
거인이 발을 굴렀다. 단숨에 10명 넘는 병사가 짓밟혀 으스러졌다.
인간의 육신을 욱여넣어 뭉친 거구의 살점 덩어리가 아군을 공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