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온에어(1)
“나쁘지 않은데요?”
“제법이네요.”
“애니메이션은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아직 채색에 들어가기 전, 선 작업만 되어있는 그림을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중간 과정.
약간의 상상력을 필요로 했지만, 메시지와 구도, 연출을 확인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드를 열어본 썬더 기획 사람들은 기대를 뛰어넘는 퀄리티에 몸을 책상 쪽으로 당기며 집중력을 높이고 있었다.
“흐음.”
그러나 박재형 CD의 표정엔 아직 큰 변화가 없었다.
대학생의 작업물이란 편견을 떼놓고 봐도 제법 봐줄 만한 수준이긴 했으나,
‘그 깐깐한 광고주를 확 넘어가게 하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해.’
A급 정도가 아닌, 히트작을 원하는 광고주의 취향에 들지 떠올려보면 어딘가 아쉽고 부족함이 있었던 거다.
“몇 개나 더 남았어?”
박재형이 건조하게 묻자, 외장하드를 먼저 검수했던 3팀 팀장이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
“어, 3편 더 남았는데, 하나는 그저 그렇고 마지막 두 개가 제가 볼 땐 제일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래?”
“두 작품이 색채가 완전히 다른데요. 만약 애니메이션 쪽으로 밀어볼 거라면 두 개를 다 시안으로 올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다른데?”
“아, 여기 샘플 이미지입니다.”
3팀 팀장이 새로운 파일을 재생하기 전, 두 개의 이미지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
“오.”
“와.”
“예쁜데요?”
“스타일 좋네.”
두 장의 샘플은 백현대 광고 수업에서도 선두에 섰던 3조의 작업과 수현이 속한 8조의 작업물이었다.
전통적인 셀애니메이션의 느낌을 따라간 3조의 샘플 이미지는 깔끔한 인상에 안정적인 느낌을 주었고, 거친 회화의 맛을 살린 8조의 샘플 이미지는 마치 명화의 한 장면 같은 깊이와 확실한 개성을 드러냈다.
“오영우 팀장.”
그리고 두 장의 그림을 쓰윽- 훑어본 박재형이 3팀 팀장을 불렀다.
“몇 년 일했지?”
“네?”
“몇 년 일했냐고.”
“어…… 8년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감이 없나?”
“……네?”
설마 애니메이션 광고는 영 아니란 말을 하려는 건가?
3팀 팀장 오영우가 헷갈린단 얼굴로 다음 영상을 재생할지 말지 망설일 때였다.
“이게 어떻게 박빙이야? 눈 뜬 봉사야?”
박재형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확실하잖아. 어떤 게 보석이 될 원석인지 말이야. 이렇게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데!”
박재형이 턱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더 볼 거 없어. 저 샘플로 만들 애니메이션만 재생해 봐.”
박재형이 수현 조의 애니메이션 샘플 이미지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거야. 저거면 K제과 광고주의 콧대도 완벽히 눌러버릴 수 있어.’
그리고 곧 재생된 애니메이션은 그 예감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이건 절대 놓쳐선 안 돼.’
박재형은 저도 모르게 손에 든 종이컵을 꽉 움켜쥐었다.
그 바람에 컵 안에 들어 있단 커피가 흘러 박재형의 손을 적셨으나, 그의 시선은 스크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
두 시간 후.
띠리리링-.
저녁을 먹으러 동료 교수들과 식당에 온 이태훈 교수가 전화벨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여보세요? 이태훈입니다.”
-이태훈 교수님? 저 썬더 기획 오영우입니다.
시끌시끌하게 떠드는 소리에 한쪽 귀를 막고 통화하던 이태훈이 깜짝 놀라며 전화기 화면을 확인했다.
“아아, 오영우 팀장님?”
-네, 통화 괜찮으신가요?
“잠시만요. 제가 밖이라 잠깐 조용한 곳으로 가볼게요.”
동료들에게 눈짓하며 식당을 벗어난 이태훈이 조용한 골목을 찾아 들어가며 다시 물었다.
“네네. 괜찮습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보내주신 광고 영상 중간 샘플 때문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 그거요.”
이태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학생들에게는 매 시간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가르쳐왔으나,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맡은 강의인데다가 기업과의 콜라보란 미션이 끼어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다.
그런데 예고 없이 담당자가 따로 전화를 걸어오니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긴장됐다. 그리고,
-저, 괜찮으시면 저희 CD님을 바꿔드려도 되겠습니까?
다음 말은 이태훈을 한 번 더 긴장시켰다.
“네? CD님요?”
-오늘 내부회의에서 백현대 영상을 함께 봤는데, 그걸 보고 궁금한 점이 있다고 하셔서요.
“아, 네. 괜찮습니다.”
이태훈이 핸드폰을 쥔 손에 한 번 더 꾸욱 힘을 주었다.
아직까진 이 전화가 좋은 소식을 주려는 건지, 절망을 주려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태훈 교수님? 저 썬더 기획 박재형 CD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흥분한 박재형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좋은 소식이겠구나!’
스르륵 긴장이 풀리며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박재형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목소리로 백현대 학생들의 과제물을 칭찬하고 있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백현대라 해도 아직 대학생인데 분명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이디어도 그렇고, 표현하는 방식이 아주 놀라웠습니다.
“하하. 좋게 봐주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그런데 아직 중간 과정이라.”
-네, 안 그래도 그 부분 때문에 전화를 드렸는데요.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박재형이 말을 이었다.
-샘플대로 정말 완성이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8조 영상요. 이대로만 완성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아니, 절대 무조건 이대로 완성돼야 합니다. 가능하겠죠?
“네?”
순간 이태훈 교수의 등줄기에서 주르륵-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같은 시각 오유나의 집.
“한 번만 더 해보자.”
“아, 안 돼.”
“또오? 대체 왜!”
수현의 말에 애들이 나지막한 신음 같은 소릴 내뱉었다.
“딱 한 번만. 한 번만 더해보자. 응?”
그러나 수현은 굽힐 생각이 없는 얼굴로 애들을 설득했다.
“이대로도 느낌 괜찮은데, 왜에.”
“그러게. 난 좋은 것 같은데.”
“아니야. 수작업 느낌을 살린 건 좋은데 터치가 너무 어지러워. 조금씩 눌러주는 게 나을 것 같아.”
“어디부터 어디까지?”
“설마, 전부?”
“아니. 앞부분만 잡자. 도시 부감이랑 싸이클 선수가 등장하기 직전까지.”
“히익. 앞부분 조금이라 해도 거긴 오브제가 엄청 많은 구간이잖아.”
“맞아. 언제 다해.”
“조금만 힘내자. 그래도 이왕 고생하는 거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면 좋잖아.”
중간 과정 발표 후, 본격적인 채색 작업에 들어간 수현과 친구들은 생기를 잃고 과제 지옥에 빠져 있었다.
예상했던 부분에 대비를 했는데도 몇 가지 문제가 툭툭 튀어나왔던 거다.
‘이태훈 교수님이 왜 말렸는지 알겠네.’
수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통적인 회화의 느낌을 살리는 애니메이션이 가능하겠느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던 이태훈 교수.
그때마다 수현은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는데, 막상 작업에 들어가니 이태훈 교수가 우려했던 부분이 뭔지 깨달아졌다.
‘큰일이다. 너무 산만해 보여.’
한 장, 한 장.
수작업으로 일일이 칠한 그림들.
색감의 위치를 정해놓고, 바로 전 프레임과 최대한 비슷한 느낌으로 다음 장을 그렸으나, 사람의 손으로 그리니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걸 수백 장 연결하고 보니 각각의 오차가 크게 드러나 터치가 마치 춤을 추듯 움직였고, 전체적인 톤이 무척이나 산만해 느껴졌던 것.
‘경기 장면에는 그래도 도움이 돼. 터치가 크게 움직이는 게 오히려 격렬한 느낌을 강조하니까. 문제는 앞부분인데.’
수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광고의 첫 부분.
거장의 명화 같은 도시 그림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며 사이클 경주로 이어지는 도입부는 광고를 보는 사람들에게 단번에 충격과 호감을 일으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입이 떡 벌어지는 스케일과 스타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색을 입히자 감정이 과잉된 연기를 볼 때 느껴지는 불편함 같이 뭔가 부담스럽고 어지럽고 산만한 느낌까지 강하게 들었던 거다.
‘오브제가 많은 데다가 카메라 워킹이 화려한 구간인데 터치까지 움직이니까 시선을 뺏길 요소가 너무 많아진 거야. 여기선 최대한 터치를 눌러주는 것밖엔 방법이 없겠는데, 적당한 느낌을 잡아낼 때까지 무식하게 그리고, 또 그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건가. 하…….’
한 번만 더 그려보자고 했지만, 한 번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지는 미지수였다.
보통의 그림을 그릴 때보단 힘을 뺐지만, 한 장만 떼놓고 봐도 참 잘 그린 그림이다 싶을 정도로 수현 조의 애니메이션은 높은 퀄리티로 제작되고 있었다.
그러니 짧은 구간이라도 채색을 새로 하고, 그걸 확인하는 과정이 보통의 애니메이션보다 배로 힘들었는데, 그걸 몇 번 더 반복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으니 큰일이었다.
‘정말 컴퓨터가 아쉽네.’
수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들을 다독이긴 했지만, 수현 역시 엄청난 작업량에 지쳐가고 있었다. 타협할 만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 조바심이 나고 초조하기도 했고.
그때였다.
“어라?”
수현이 PCS 폰에 착신된 문자메시지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오늘 무슨 요일이지?”
“수요일.”
“근데 왜 내일 보자고 하시지?”
“누가?”
“이태훈 교수님이 우리 조, 내일 잠깐 연구실로 오라고 하시는데? 작업물도 챙겨서.”
“엥. 금요일 수업인데 왜 내일이야?”
“아니, 미리 검사한다는 거야? 왜? 우리만?”
수현도 마찬가지 의문이 들었으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글쎄. 가보면 알겠지. 여튼, 내일 다들 시간은 되는 거지?”
“난 내일은 4교시면 끝이야.”
“나는 목요일엔 아예 수업이 없어.”
“나도 4교시.”
“좋아, 그럼 점심 먹고 찾아뵌다고 할게.”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태훈 교수에게 답장을 보냈다.
***
“작업은 잘 돼가고?”
다음 날 오후.
이태훈 교수의 연구실에 불려간 수현과 친구들이 눈치를 살피며 쪼르르, 소파에 줄지어 앉았다.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수업 전, 이태훈이 수현의 조를 따로 호출한 일도, 그 자리에 권인호 교수가 함께 있는 것도.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요.”
수현이 조심스럽게 답하자 이태훈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만치가 않지? 애니메이션이 그래. 보는 건 순간인데 제작 과정은 지난하지.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들어가는 수고도 보통이 아니고.”
그리고는 조금 초조한 얼굴로 수현이 들고 있는 외장하드에 눈길을 줬다.
“먼저, 작업물 좀 확인해볼까?”
교수실에 비치된 파워 매킨토시는 오유나의 집에 있는 것보다 사양이 달렸지만 짤막한 동영상을 재생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달칵.
파일을 실행시키자 꿀꺽 이태훈과 권인호가 긴장한 얼굴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수현 조의 광고 애니메이션이 순식간에 재생됐다.
***
“기대 이상이야.”
“이 정도면 됐다.”
영상을 보고 난 후 두 교수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아졌다.
“뭐가요?”
“……?”
무슨 이야긴가 싶어 눈을 굴리자 두 교수가 시선을 마주치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썬더 기획에서 중간 과제를 보고 따로 연락을 해왔어. 그러니까 부스터 음료 광고 영상을 맡은 광고대행사 말이야.”
“아…….”
이태훈 교수는 광고대행사 내부에서 수현 조의 애니메이션이 무척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것과 어떻게 해서든 샘플대로 영상을 완성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은 일을 전해주었다.
“헐…… 미친.”
미완성 과제만으로 광고대행사가 자기들의 과제를 CF로 점 찍었다는 말.
너무 놀란 차윤희는 교수 앞이란 것도 깜빡 잊은 채, 비속어로 감탄하다가 다급히 입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평상시라면 그 모습에 핀잔을 줄 박선화도 마찬가지로 놀란 터라, 입만 벌리고 있었다.
“와…….”
“정말, 정말인가요?”
“그래.”
놀라는 모습이 귀여운 건지, 이태훈 교수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좀 미리 보자고 했던 거야. 작업 상황을 확인해야 그쪽에도 제대로 된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이태훈이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간다면 큰 문제 없겠어. 너희가 제작한 샘플 이미지 느낌을 제대로 살려냈네. 잘했다. 고생했어. 조금만 더 힘내주고!”
한시름 놨다는 얼굴. 이태훈은 중간 과정 점검 당시, 샘플이미지를 확인하고도 그 수준을 애니메이션에서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 내내 우려를 표했다.
그런데 막상 채색 과정을 한 번 더 확인하자 이제는 됐다, 안심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뇨. 문제가 있어요, 교수님.”
모두가 놀랄 때도 혼자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조언을 구하고 싶었어요.”
수현이 눈을 빛내며 자세를 바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