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59)
59화. 공작(1)
한동안 수현은 자신이 본캐와 부캐로 분리된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영국에서 부쩍 성장하며 화가로의 길에 접어든 수현과 입시를 앞둔 한국의 고등학생 수현.
간극은 컸으나,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삶이 휘몰아치며 또 여러 가지 이벤트를 내어놓았던 거다.
그 첫 번째가 신학기 반장선거였다.
“네가 후보에 나가겠다고?”
박선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차윤희를 쳐다보았다.
“신의 손, 수현이 정도라면 모를까. 차윤희 네가 무슨 반장이야.”
“와, 얘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네? 수현이가 무슨 반장 같은 걸 하냐? 작품 활동하기도 벅찬데. 그런 건 나 같은 중생들이나 하는 거지.”
“아, 그런가?”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에 차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이 그런 박선화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반장선거는 왜?”
수현이 아는 과거엔 없던 일이었다.
차윤희는 인싸이긴 했으나, 귀찮은 일은 칼같이 자르는 성격이었고 학생회 활동이며 교무실을 들락거릴 일이 많은 학급 임원 일엔 눈곱만큼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왜 달라진 걸까?
“설마, 종현 선배 때문에?”
그냥 넘겨짚었는데 차윤희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헐. 진짜야? 너 진짜 사랑 때문에…….”
박선화의 요란한 입을 막으려 차윤희가 달려들었고, 잠시 몸싸움이 일어난 후.
“도와주라.”
차윤희가 간절한 표정으로 수현과 박선화를 바라보았다.
이종현.
세현예고 최고의 인기남이자 차윤희의 짝사랑이자 첫사랑 상대.
외모, 성격, 집안 어디 한구석 빠지는 데가 없는 금수저. 당연하게 학급 임원을 도맡아온 모범생이기도 했다.
차윤희는 지난 학기가 끝나기 직전, 이종현에게 초콜릿을 비롯한 작은 선물들을 조공으로 바치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바 있었다.
영국에서도 몇 번 엽서를 보냈다고 했고 거기서 사 온 작은 기념품들도 벌써 선물로 건네주었고.
“그래서, 뭐 사귀기로 한 거야? 고백, 받아준대? 그래서 같이 임원 일 하면서 학생회 데이트라도 하자고 한 거야?”
박선화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캐묻자 차윤희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지금은 이성 교제 할 시기가 아니래.”
“어?”
“선배 이제 고3이잖아. 입시니까. 집중해야 할 거고. 중요한 시기잖아.”
“음.”
“그렇구나?”
이종현은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고3을 설렁설렁 보낼 생각이 없을 거다. 당연한 반응이겠지.
그렇게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차였네.”
박선화가 피식 웃었다.
“뭐?”
“자고로 남자란 말이야.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내는 생물이거든. 고3이고, 고시 준비생이고 간에 사랑에 빠지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니까?”
“너 진짜.”
묵직한 공격에 차윤희가 씩씩대자 박선화가 고개를 흔들며 차윤희의 등을 토닥였다.
“어쩔 수 없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인 거니까. 근데, 윤희야. 이럴 땐 오히려 잠깐 멀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한번 거절했는데 네가 학생회에 얼쩡거리고 하면, 오히려 종현 선배 맘이 멀어질 수도 있어. 잘 생각해봐.”
진지한 박선화의 조언에 차윤희가 씩씩대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이거 내 생각 아니야.”
“어?”
“종현 선배가 먼저 말 꺼낸 거라고.”
“뭐야?”
“진짜?”
뜻밖의 말에 수현과 박선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희도 알다시피 종현 선배는 디자인과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실기동에서도 접점이 별로 없고.”
“학생회라도 해야 선배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선배가 먼저 권하더라고.”
툴툴대던 차윤희가 뭐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수줍은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뭐야? 얘 왜 웃어? 무섭게?”
“뭔데 그래?”
“아니이. 이번에 영국 다녀와서 내가 선물을 드렸는데…… 선배가 너도 이제 2학년이네? 하면서 몇 반이 됐냐고 물어보더니, 생각보다 공부도 잘했구나. 하면서 임원 해볼 생각이 없냐고 하는 거야.”
“오, 정말?”
“얘들아, 이거 혹시…… 신호 아닐까?”
눈을 빛내는 차윤희를 본 수현과 박선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무슨 신호?”
“선배도 나한테 조금은 관심 있는 게 아닐까 해서.”
“응?”
“그러니까 같이 학생회 하자고 그런 거 아닐까? 당장 사귀는 건 어렵겠지만 자주 볼 기회를 만들어 보자, 이런 뜻 아니야?”
얘를 어쩌면 좋니.
박선화가 측은한 눈으로 차윤희를 바라보았다.
“생각이 너무 나가는 거 아냐? 그냥 공부 잘하니까 임원 해보라고 권한 걸 수도 있지. 남자들 진짜 단순하다고. 너나 일일이 의미 부여하는 걸걸?”
“음. 우리가 종현 선배 마음까진 알 수 없지만.”
팩트로 때리는 박선화를 슬쩍 만류하며 수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네 마음은 확실히 알았으니까 도와줄게.”
“어?”
“반장선거, 나가고 싶은 거지? 우리가 확실히 밀어준다고.”
“진짜?”
좀 전까지 울상이던 차윤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맑게 개었다.
***
“짜증 나.”
교실 뒷문에서 화장실로 이어지는 복도.
김하영이 수현과 박선화, 차윤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래?”
“김하영, 왜?”
“뭐 땜에 그러는데?”
김하영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장민영, 이주호, 최주희가 김하영의 심기가 어지러워진 이유를 궁금해했다.
“아, 쟤들 좀 안 봤으면 좋겠다.”
김하영이 턱짓으로 수현과 박선화, 차윤희를 가리켰다.
최형욱 선생이 지난 미술전시회 사건으로 잘린 후, 김하영을 비롯한 장민영, 이주호, 최주희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촌지를 좀 쥐여주면 알아서 시험 준비며 과제를 해결해주던 선생이 사라졌으니 성적이 곤두박질친 건 당연한 일.
그나마 아버지가 붙여준 고액과외 덕분에 겨우 학과점수를 올려 턱걸이로 1반에 들어올 수 있었다.
‘쪽팔려. 본래라면 1반 상위권으로 들어가 반 분위기를 휘어잡았을 텐데, 창피하게 커트라인에 걸친 성적이라니…….’
김하영은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분하기도 짜증 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정직하지 않았던 자신이 아닌, 자기가 응당 누려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한 수현과 그의 친구들을 향하고 있었다.
“안 보긴 어렵지. 1년 내내 같은 반일 텐데. 어쩌면 3학년까지도.”
장민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민영 역시 애들과 선생님의 관심이 자기 무리가 아닌 수현의 무리로 쏠리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데 얘들 왜 갑자기 친해진 거야?”
“맞아. 셋 다 1학년 1학기까지만 해도 조용하지 않았어?”
“특히 박선화. 쟤 작년까진 좀 또라이에 아웃사이더였잖아. 어쩌다 저기 붙어서 눈꼴시게 깝치고 다니지?”
“야야, 제일 꼴 같지 않은 게 한수현이야. 쟨 거지잖아.”
“그러니까. 하, 한수현 쟤 무슨 특별전형으로 들어왔다는 소문도 있었지?”
“진짜?”
“몰랐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평민이 어떻게 세현예고에 들어왔겠어.”
근거 없는 모함을 늘어놓으며 쑥덕거리던 애들은 얘기를 나눌수록 더 열이 받는지 차츰 흥분하며 선을 넘기 시작했다.
“지난번 미술전시회도 솔직히 말이 안 돼. 제임스 리, 그 사람. 진짜 세계적인 작가 맞아?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냐?”
“크큭. 그러니까. 시차 적응 못 해서 뭘 잘못 본 거 아니었을까?”
“흠. 그리고 그랑프리도 솔직히 심사위원 한 명의 취향인 거잖아. 개인의 취향. 어쩌다 얻어걸린 걸로 역시 신의 손이니 뭐니, 꼴값들을 떨고 떠받드는 거 어이없어 정말.”
“난 그거 보다 무슨 특전으로 영국 갔다 왔다고 깝치는 거 못 봐주겠더라. 솔직히 여기 영국 안 가본 사람이 어딨냐? 촌스럽고 쪽팔리게 영국, 영국, 노래를 부르고 있어.”
“그거면 다행이게? 나 아까 지나가다가 슬쩍 들었는데, 쟤들 중 한 명이 이번 반장선거에 나올 생각인 것 같던데?”
“뭐어? 진짜야?”
“하 씨. 짜증 나. 나 확 자퇴해버릴까?”
정신없이 욕을 하던 애들은 수현과 박선화, 차윤희 중 하나가 반장선거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에 한 번 더 크게 동요했다.
“쟤들… 아무래도 그냥 두면 안 되겠지?”
그리고 애들의 불만이 자기 뜻과 정확히 일치하는 걸 확인한 김하영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아무래도 주제를 알게 해줘야 할 것 같지 않아?”
독기 어린 김하영의 얼굴에 주춤하는 장민영, 이주호, 최주희. 그러나 곧 흥미진진하단 눈빛을 지어 보였다.
“뭐, 난 찬성. 나대지 못하게 기 좀 눌러줄 필욘 있어 보여.”
최주희가 고개를 흔들었고,
“내가 미남계라도 써볼까? 걔들 차례로 꼬신 다음에 확 차버리는 건 어때?”
이주호가 제법 반반한 얼굴을 쓸어내리며 반쯤 진담인 농담을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하영이 그녀다운 유치하고 치사한 계략을 떠올렸다.
“한수현. 학기 초에 생일이지 않았어?”
“그랬나?”
“작년에 우리 담임. 애들 생일마다 챙겨줬잖아. 한수현이 1번이었던 것 같은데? 혼자 나와서 선물 받았던 거 기억나.”
“오, 그랬나? 김하영 기억력 짱이다.”
“근데, 한수현 생일은 왜?”
“니들 말이야. 한수현 생일이 정확하게 언젠지 좀 알아 와봐.”
김하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어? 그건 왜?”
“내가 같은 날, 파티를 좀 열어보게.”
“파티?”
“그래. 같은 반이 된 기념으로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려고.”
“뭐? 진짜?”
김하영의 말에 나머지 셋이 깜짝 놀랐다.
“여기서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 똑똑히 알려줘야겠어. 그리고, 우리 중에서도 한 명 나가자.”
“어딜?”
“반장선거.”
“어?”
“쟤들한테 반장 자릴 그냥 넘겨줄 순 없잖아?”
김하영이 입술을 뒤틀며 서늘하게 웃었다.
***
며칠 후.
세현예고 2학년 1반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너, 그거 받았어?”
“어. 너도?”
“와, 나도 받았는데?”
삼삼오오 모인 애들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김하영, 친구 초대한 적 거의 없지 않아?”
“맞아. 중학교 때도 집에 데려간 건 극소수였을걸?”
“어. 생일파티도 그레이스 호텔 룸 빌려서 열었잖아. 와, 리무진까지 학교로 보내서 애들 다 태워가지고. 그때, 엄청났는데.”
“맞다, 맞다. 무슨 연예인도 불렀다고 했잖아. 완전 잘 나가는 애들만 불러서 제대로 놀았다던데.”
“흐음. 근데 이번엔 왜 많이 부르는 거지?”
“그러게. 게다가 집으로 초대라니. 걔네 집, 수영장도 있다며?”
모두 김하영에게 비밀 초대장을 받은 애들이었다.
초대일시는 3월 11일 토요일, 오후 1시.
이동은 4교시 수업을 마친 후 학교 앞으로 올 전용차를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김하영이 이렇듯 어마어마한 파티를 기획해 애들을 초청할 수 있던 이유는 김하영의 집이 진한 우유 오너 일가기 때문이었다.
우유와 치즈, 아이스크림, 각종 유제품을 다루며 시장을 선도한, 대한민국 우유 브랜드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기업.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은 물론,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 가도 가장 앞줄에 있는 게 진한 우유니 김하영의 집이 얼마나 대단한 재력가인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거나 김하영은 진한 우유의 김기욱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귀한 막내딸로 가지고 싶은 건 한 번도 놓치는 일 없이, 그럴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자기 뜻대로 친구들과 반 분위기를 주무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다분히 고의적으로 수현의 생일인 3월 11월에 맞춘 파티 초대장을 반 아이들에게 보냈던 거다. 정확하게는 한수현, 차윤희, 박선화를 제외한 모든 애들에게.
‘별것도 아닌 것들이.’
애들이 모여들어 자신이 건네준 초대장 얘기를 하는 걸 볼 때마다 김하영은 승리에 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김하영이 간과한 문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