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58)
58화. 결과
“그게 무슨 소리야?”
질문하는 목소리가 어쩐지 멀리서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쿵쿵. 갑자기 거세진 심장 뛰는 소리에 말소리가 흐려질 정도였다.
“영국 주요 일간지에 우리 전시가 대서특필됐대. 한두 군데도 아니고 무려 열 군데가 넘는 곳에서 이번 전시 소식을 전했다는 거야.”
“헉.”
수현이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물론 이 전시회에 제임스 리의 작품이 있었다는 게 가장 이슈를 끄는 대목이긴 했어.”
“어. 그렇겠지.”
수현이 동감하며 고개를 반복해 끄덕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참여한 전시가 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열 군데 넘는 언론사가 기사로 다루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엔 한 괴상한 익명 전시회에 제임스 리가 신작을 들고 참여했다, 이 부분이 포인트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가 생기더래.”
“무슨?”
“제임스 리가 인터뷰를 했거든.”
스티브가 씩 웃었다.
“이 재미난 전시 기획 아이디어를 낸 건 자기가 아니라 자기의 첫 제자이고, 그녀가 한국에서 온 천재 소녀라고 말이야.”
“뭐어?”
순간 수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거기에 캐서린이 다시 불을 지폈고 말이야. 캐서린, 기억하지? 그 세계적인 평론가.”
“알지, 당연히 알지. 그날 이야기도 오래 나눴는데.”
수현이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캐서린이 우리 전시회에 대한 기획 기사를 썼대. 제임스 리와 준, 그밖에 유명 작가들을 처음 발굴했던 당시를 떠올리면서, 그때와 같은 전율을 아주 낯선 그림 한 장에서 느꼈다고 말한 거야. 수현,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짐작하겠어?”
빙그레 웃는 스티브. 그리고 온화한 얼굴로 끄덕여주는 강유진 관장.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박선화.
수현은 잠시, 만약 이게 몰래카메라라도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건 행운일 거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설마, [창>이야?”
“그래! 수현! 네 그림 [창>이 아주 난리가 났대!”
스티브가 몸을 흔들며 껄껄 웃더니 수현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천재의 탄생이라고, 대체 누가 그린 그림이냐며 너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단 거야. 갤러리로 방송국과 신문사, 잡지사들의 문의가 빗발쳤대. 근데 넌 한국에 왔잖아? 그러니 더 몸이 달아서 난리가 난 거지. 마치 신데렐라를 쫓는 왕자들처럼.”
“신데렐라?”
“마법이 풀리기 전에 구두 한쪽을 남겨두고 사라진 신데렐라. 영국에선 지금 그림 한 점을 남겨두고 사라진 너를 신데렐라로 부르고 있다는 거야.”
“허어.”
낯 뜨겁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소식에 수현의 얼굴이 멍해졌다.
강유진 관장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스티브에게 한마디 했다.
“중요한 걸 빼먹었잖아, 스티브.”
“네?”
“수현의 그림이 어떻게 팔렸는지도 얘기해줘야지.”
“아, 맞다.”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크를 넘긴다는 손짓을 하자, 강유진 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현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전시 첫날, 캐서린이 네 그림에 제시한 가격은 만 유로였어. 음, 우리 돈으로 따지만 천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지.”
“헉. 정말요?”
수현이 한 번 더 놀랐다.
지난 세현예고 미술 전시회에서도 천만 원이란 금액에 경매에 오르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상을 노린 부모들이 자기 자식 그림값을 올리기 위해 경쟁을 벌이다 치솟은 가격.
미술계에서 열리는 보통의 경매 행사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수백만 원대 작품임을 수현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갤러리는 경매와는 달리 그림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1차 시장.
이름값이 붙어도 천만 원 이상의 가격을 제안하긴 어려운데, 자신의 그림이 작자 미상 상태로 큰 금액을 받게 됐다니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란다. 상황이 아주 재밌게 흘러갔어.”
강유진 관장이 조금 신난 표정으로 다음 말을 이었다.
“전시 3일 차에 신원을 밝히지 않은 한 남자가 이 그림을 사고 싶다고 가격을 올려서 제안했대. 갤러리는 다시 캐서린에게 연락했고, 캐서린은 다시 가격을 올렸고.”
“세상에.”
“만약 보통의 전시처럼 그림값이 미리 정해진 상태에서 판매됐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 그런데 익명의 전시회로 기획하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든 바람에 이런 해프닝이 생긴 거라고 갤러리에서 설명하더구나.”
1차 마켓인 갤러리는 그림값을 정해두고 판매자를 찾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은 익명 전시회이니만큼 그림값을 미리 공개하지 않기로 작가들과 갤러리가 합의한 바 있었다.
그림값을 공개하는 건 작가의 인지도를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니, 익명 전시회의 의의가 사라진단 판단 때문이었다.
다만 이 방식은 이름값이 있는 작가들에겐 손해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 리와 준, 나머지 프로 작가들이 흔쾌히 승낙해 마치 경매처럼 가장 높은 금액을 제안한 손님에게 그림을 파는 것으로 룰을 정했던 거다.
그리고 그 수혜를 수현이 가장 크게 입은 모양이었다.
“물론 갤러리에서도 양심적으로 나서긴 했어. 경쟁이 이상한 쪽으로 붙어서 거품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 날, 작가가 누군지 밝히면서 원한다면 구매 의사를 철회해도 된다는 강수를 뒀거든.”
“알고 있어요. 관계자분이 캐서린에게 설명하는 걸 들었었거든요.”
“그래, 맞아.”
강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시 첫날 캐서린이 결국 [창>의 주인이 너란 걸 눈치챘었지?”
“아마 그랬을 거예요. 제임스 리와 함께 얘기하면서 어느 정도는 알아차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 캐서린은 네가 고등학생이고 무명의 작가라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그림값을 올렸어. [창>을 꼭 갖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던 거지.”
“감사한 일이네요.”
“근데, 캐서린만 안목이 좋았던 게 아니었던 거야. 전시 3일 차에 나타난 남자가 처음으로 가격을 올렸고, 캐서린이 다시 올렸고, 그 남자가 또 가격을 올렸어. 그리고 이번엔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단다.”
“누가요?”
수현은 이제 뒷이야기를 듣기가 겁이 날 지경이었다.
영국의 추억을 뒤로하고 그리운 마음을 품은 채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대체 영국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윌터 센슨이라고 꽤 유명한 수집가야. 영국 미술계의 큰손으로 알려졌지.”
“네에? 근데 그런 분이 왜.”
“그 양반이 엄청난 개코, 아니. 음…… 감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거든. 수집 가치가 있는 물건을 알아보는 눈이 뛰어나기로 유명해. 어쨌든 그 사람이 덤벼드는 바람에 삼파전이 된 거지.”
강유진이 흥분하며 빨라진 말의 속도를 애써 누르며 다음 말을 이었다.
“물론 윌터는 네 그림에만 눈독을 들인 건 아니었어. 제임스 리의 그림과 준의 작품에도 큰 액수를 불렀다고 하거든.”
“네에.”
“여튼 결과가 아주 재밌는데 말이야. 수현이 네 그림은 결국 3만 달러까지 올랐고, 최종 낙찰자는 윌터로 점쳐졌었대.”
강유진의 말에 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점쳐졌었다는 과거형의 말. 그렇다면 또 한 번 반전이 있었단 얘길까?
“그리고 전시회 마지막 날 드디어 촤르륵- 암막이 걷히고 그림의 진짜 주인 이름이 밝혀졌지.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단다.”
“무슨 반전요?”
“실망하지 마?”
강유진이 눈썹을 쓰윽 올리며 말했다.
“윌터는 네 그림을 포기했어.”
“아.”
수현이 살짝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경쟁이 붙으니 궁금한 마음에 끼어들었다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고 아니란 판단을 했을 수도 있으니까.
동양에서 온 어린 초짜 화가의 그림이라니, 투자 가치가 없다고 느꼈을 거다.
“결국 그림은 캐서린이 차지하게 됐지. 2만 3천 유로에 말이야.”
“허어.”
그것만 해도 엄청난 돈이었다. 이 시기 환율이 유로당 천 원 정도니 2천 3백만 원이란 어마어마한 금액에 그림이 팔렸단 소리였다.
게다가 세현 예고 전시회와는 또 다른 점이 있었다.
전시회에선 그림이 아무리 높은 금액에 팔린들, 본래 취지가 자선경매이니만큼 판매 수익은 기부금으로 돌아갔다.
다시 말해 그림의 주인인 학생들에겐 금전적인 혜택이 전혀 없던 것.
하지만 이번 전시는 갤러리에게 줄 40%의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수익금이 전액 수현의 계좌로 들어오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게 대략 1,380만 원.
이런 엄청난 돈을 내가 가져도 되는 걸까.
단 한 점의 그림일 뿐인데.
겨우 한 달, 겨울 방학을 투자한 결과물일 뿐인데.
예전에도 수현은 그림을 팔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가장 높게 책정된 그림이 100만 원이었으니, 20배가 넘는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뒤죽박죽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수현은 조금 어지러워졌다.
“엄청나네요.”
얼얼한 얼굴로 짧게 감상을 말하는 수현.
“근데, 너무 큰 금액이 아닐까요?”
“응?”
“제 그림의 가치가 이 정도나 되는 건지 모르겠어서요.”
수현의 말에 강유진이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러게 말이야. 어마어마한 금액이긴 해. 하지만 수현아. 그렇다면 네 그림은 얼마에 팔리는 게 적당할까?”
강유진 관장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네?”
“어느 정도면 네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만족할만한 가격일까? 어느 정도면 거품 없이 작품의 가치를 잘 환산한 금액이라 할 수 있을까?”
“글쎄요.”
“후훗.”
막상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수현을 보며 강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창>이 엄청난 결과를 낸 건 맞아. 어쩌면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제임스 리의 첫 번째 제자라는 점, 유럽에선 변방으로 보는 한국, 거기다 고등학생이 작가라는 점이 신비로운 요소로 작용했을 수도 있지. 어쩌면 그게 거품이 됐을 수도 있어.”
“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단다.”
“네?”
“먼저, 캐서린에 대한 건 걱정할 이유가 없어.”
강유진이 수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다정하게 말했다.
“네 그림 가격은 벌써 오르고 있단다.”
“어…… 그게 무슨.”
“벌써 2배나 올랐어. 언론에서 하도 난리를 치니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현실이 될 가능성도 커.”
강유진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걸 결정하는 건 이다음부터일 거야.”
“다음요?”
“다음 전시, 다음번에 그릴 네 작품. 거기서도 네 가치가 증명된다면, 더 많은 사람이 널 인정하게 되겠지. 네 그림을 더 좋아하게 될 거고.”
묵직한 무언가가 쑤욱- 수현의 가슴을 미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 부담감이기도, 기대로 인한 떨림이기도 했다.
‘그래, 첫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관장님의 말씀대로 이건 시작에 불과해.
어쩌면 반짝하고 사라지는 신기루.
그걸 붙잡아 현실로 만드는 건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거야.
그럼 난 또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지.’
여러 감정으로 물드는 수현의 얼굴을 잠자코 바라보던 강유진이 말했다.
“하지만, 서두를 건 없단다. 수현이 넌 앞으로도 평생 그림을 그리게 될 운명이니 말이야.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맛있는 밥부터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