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어긋난다는 것(1)
3월 10일 금요일 점심시간, 여자 화장실.
쏴아아-.
종이비누를 꺼내 꼼꼼하게 손을 씻는 김하영 옆으로 스윽- 그림자가 졌다.
쏴아아-.
바로 옆 세면대 물을 틀고 손을 씻기 시작하는 아이. 바로 3반의 오유나였다.
“엇.”
오유나의 존재를 눈치챈 김하영이 멈칫했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려 했는데 오유나가 자신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것이었다.
‘하아.’
김하영이 슬쩍 콧등을 찡그렸다.
“친구는 가려서 사귀어라. 같은 학교 다닌다고 다 같은 급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진한우유 회장인 아버지는 평소 김하영에게 친하게 지내야 할 애들에 대해 일러주었었다. 장민영, 이주호, 최주희를 가까이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가능하면 오유나랑 인맥을 잘 만들어둬. 성인이 되면 더 자주 보게 될 아이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가장 강조한 인맥은 바로 오유나였다. 그러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대.
그렇게 김하영이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을 때.
타앗.
“앗, 차가워!”
손 씻기를 마친 오유나가 탁탁. 손을 털었고, 그 물방울이 김하영에게 제대로 튀었다.
“어머.”
태연한 얼굴로 김하영을 바라보는 오유나.
“거기에 있었니?”
“뭐?”
황당한 반응에 볼이 파르르 떨렸지만, 김하영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무슨 생각을 깊이 하고 있었나 봐? 누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아, 생각은 했지.”
오유나가 씨익 웃어 보였다.
“진짜 신기하네? 나, 네 생각하고 있었거든. 근데 어떻게 딱, 네가 내 옆에 나타났지?”
“어? 그래?”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김하영.
오유나가 하하, 따라 웃다가 천천히 미소를 거두며 물었다.
“너, 요즘 재밌는 일 하고 다니더라?”
“어?”
“파티 연다며? 너희 반 애들만 특별히 초대해서.”
쿵.
순간 김하영은 자기 심장이 발바닥까지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 잘못한 건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뭔가가 꼬였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파티가 오유나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을.
“아, 별거 아니야. 그냥 같은 반 된 기념으로 밥 한번 먹자고.”
“아, 성적 좋은 1반 애들끼리만?”
“어?”
변명처럼 뱉은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었다. 김하영이 빈정대는 오유나의 표정을 재빨리 스캔했다.
“그런 건 아니고, 어휴, 내가 생각이 짧았네. 유나야, 너 이번 주 토요일에 뭐해?”
“토요일?”
“어, 그 파티. 내일 오후 1시에 열 거거든. 혹시 너 시간 되면 와줄 수 있어?”
“하.”
오유나가 코웃음을 쳤다.
“이건 무슨 예의야?”
“어?”
“내가 거지니? 초대를 선심 쓰듯 이딴 식으로 해?”
“아니, 그게 아니라. 난 급한 마음에…….”
김하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해. 유나야. 내가 당황해서, 자꾸 실수하네. 근데 진짜 오해하지 마. 내가 유나 너를 절대 무시하거나 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생각이 짧았던 거야. 너무 정신없어서. 내가 좀 급해서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어.”
“그래?”
오유나가 서늘하게 김하영을 바라보았다.
“내가 제대로 초대할게. 초대장 바로 준비해서 정식으로 보낼게. 아, 그리고 네 친구들도 데리고 와. 열 자리 정도는 충분히 더 만들 수 있거든? 아니면 유나 네 맘에 드는 애들이 누군지 알려주면 내가 걔들한테도 초대장을 보낼게. 아, 내일 리무진도 따로 불러줄 수 있어.”
“흐음.”
김하영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거울에 비친 자기 미모를 확인하는 오유나.
김하영이 쩔쩔매는 걸 보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는 상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사과가 될까?”
“어?”
“일단 난 토요일에 시간이 안 돼.”
“뭐?”
“선약이 있거든.”
“하아. 그렇구나.”
“그러니까 옮겨.”
“어?”
“일주일 정도 미루는 건 어때? 네 파티 말이야.”
씨익 웃으며 무리한 요구를 하는 오유나. 그 말에 김하영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무슨 드레스코드도 있다며. 나도 옷도 준비하고, 데리고 갈 친구들 명단도 뽑아봐야 하는데, 당장 내일은 무리지 않겠어?”
“아. 근데 유나야.”
김하영이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파티를 내일 열어야 하는 이유가 있거든. 깜빡, 널 생각 못 하고 기분 상하게 한 건 미안한데…… 날짜는 좀 맞춰주면 안 될까?”
“뭐?”
“대신 옷이랑 다른 필요한 건 내가 다 준비할게. 시간만 좀 맞춰줘. 너 선약, 내일 종일 있는 거야? 조금만 당기거나 미뤄주면 안 될까?”
“하.”
다시 싸늘해진 공기가 화장실을 맴돌았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네.”
“어?”
“난 우리가 조금은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좀 실망스러워서 말이야.”
“유나야.”
김하영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애초에 한수현 무리를 엿 먹이려고 시작한 파티였다. 그러니 한수현의 생일에 맞춰 반 애들을 초대하는 게 핵심이었고.
그런데 너무 흥분해 즉흥적으로 일을 벌인 걸까.
그 일이 유나의 심기를 건드렸고, 생각지 못한 변수가 되어 김하영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걸 어쩌지? 한수현을 엿 먹이고, 다음 주 반장선거에서도 이기려면 내일이 적기인데. 하아. 근데 이 일로 오유나랑 멀어지면 그건 또 큰 손해잖아.’
김하영이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그럼 이건 어때?”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오유나의 눈치를 살피는 김하영.
“뭐가?”
오유나가 귀찮다는 듯 물었다.
“어, 내가 어떻게서든 보상할게.”
“보상?”
“유나, 네가 원하는 걸 뭐든 말해봐. 내가 뭐든지 들어줄게. 그러니까 소원권 같은 거. 그걸 내가 준다고.”
김하영이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미안한데, 파티 날짜를 옮기긴 어렵거든. 이미 준비도 다 끝났고, 반 애들 다 내일로 알고 있기도 하고…….”
말끝을 흐리는 김하영.
오유나가 그런 김하영을 묵묵히 보다가 활짝 웃어 보였다.
“뭘 그렇게 쫄고 그래.”
“어?”
“농담이야. 내가 설마 하루 전날 파티를 취소하라고 하겠어?”
“……어, 그렇지.”
“가봐.”
“어?”
“가보라고. 쉬는 시간 끝났잖아.”
오유나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더니 먼저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뭐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덩그러니 남은 김하영.
뭔가 껄끄러웠지만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아.”
김하영이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
다음 날, 아침 2학년 3반 교실.
“알아봤어?”
오유나의 질문에 심복 노릇을 자처하는 애 하나가 바쁘게 입을 열었다.
“여기저기 물어봤더니 그 파티, 좀 수상한 부분이 있더라?”
“뭔데?”
“그게, 1반 애들 전부 초대받은 게 아니래.”
“어?”
“딱 세 명만 빼고 초대했다던데?”
“세 명 누구?”
오유나가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다.
“한수현이랑 박선화, 그리고 차윤희.”
“흐음. 한수현이면 지난번 그랑프리, 걔지?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애.”
“맞아.”
“박선화는 일선화랑 딸이고, 차윤희도 차수혁 작가님 딸이고. 나쁠 게 없는데? 걔들을 왜 뺐을까?”
오유나가 가볍게 묻자 주변에 몰려든 애들이 저마다 생각한 걸 내놓았다.
“걔들이 1반에서 지금 제일 튀거든.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
“튀어?”
“성적도 괜찮은데다가 애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고 인기도 꽤 있고. 아, 그리고 셋이 완전 단짝이래. 방학 때 영국도 함께 다녀왔다더라고.”
“그래?”
“왜, 지난 전시회 때, 경매에서 처음엔 김하영이 제일 잘 나갔잖아. 그러다가 그 누구야, 외국인 심사위원. 그 사람이 나타나서 상황이 뒤집혔고.”
“맞아. 한수현이 그랑프리 상으로 영국 가게 된 거잖아. 어쨌든 그 바람에 김하영이 완전히 찌그러졌으니까…… 자존심 문제 아닐까?”
“흐응.”
그제야 뭔가 그려진단 얼굴로 오유나가 미소 지었다.
‘김하영, 이거였어?’
그다지 관심 두지 않는 상대였으나, 예중 시절부터 봤으니 김하영이 어떤 성격인지는 대충 알았다.
항상 관심에 목마르고, 시선 끄는 걸 좋아하는, 그리고 자기 걸 뺏기는 걸 참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성격.
‘갑자기 웬 파티인가 했더니 전시회 때 일등을 놓친 분풀이를 하려던 거였나 보네.’
심증을 굳혀가는 오유나에게 또 다른 소식통이 새로운 정보를 풀어놓았다.
“근데 이거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는데.”
“뭐가?”
“오늘이 한수현 생일이래.”
“어?”
“한수현 생일이랑 김하영이 갑자기 연 파티 날짜가 같더라고.”
“아, 그래? 진짜? 그게 정말이야?”
얘기를 들은 오유나가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러자 소식을 물어온 애가 신이 나서 말을 더 보탰다.
“1반 애들도 수군수군하더라. 다분히 고의적인 냄새가 풍긴다고. 한수현 생일날 파티를 열고, 한수현이랑 걔 친구들만 초대하지 않는 거. 확실히 이상하잖아.”
“그러네. 와. 진짜 짱이다. 김하영 진짜 대단하네.”
오유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날짜를 절대 바꿀 수 없다고 하더니, 이런 거였나? 와, 정말 놀랍다, 놀라워. 이 천박함이 너무 놀라워.”
그리고 한참 즐거운 표정을 짓던 오유나가 정색하며 소식을 물어온 애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래서, 걔들은 뭐 한대?”
“어?”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세 명 말이야. 셋이서 생일 파티라도 한대?”
“글쎄. 그것까진 잘…….”
“알아봐 줄래?”
고개를 흔드는 아이에게 오유나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어?”
“딱하잖아. 생일날 이런 취급이라니. 뭐 하는지 한번 물어봐 줘. 그래도 같은 과 친구인데, 내가 축하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래.”
오유나가 햇살처럼 웃었다.
***
4교시가 모두 끝났다.
웅성웅성.
애들이 눈치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근데 오늘 한수현 생일이라며?”
“진짜? 난 몰랐어.”
“와, 이거 대박 찝찝해. 이번 파티, 한수현이랑 박선화, 차윤희 셋만 초대 못 받았다던데?”
“허어. 정말이야?”
중립이거나 수현 무리를 좋게 보던 애들은 불편한 마음에 표정이 어두웠다.
의도치 않게 같은 반 친구를, 가장 축복받아야 할 생일날 따돌리게 되다니.
그러나,
“가자!”
박선화가 모른 척 씩씩하게 짐을 들고 먼저 일어났고.
“준비 다 했지?”
차윤희가 보조 가방에 가득 담아온 스프레이와 페인트, 각종 그림 도구를 탕탕 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가자.”
수현이 두 친구를 보며 활짝 웃었다.
며칠 전, 스티브가 알아본 정원동 벽화 봉사 허락이 무사히 떨어졌고, 학교 앞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스티브를 만나 목적지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애들 표정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네.’
수현이 별 감정 없이 반 애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친구들을 뺀 파티가 오늘 열릴 예정이었고, 어쩌면 김하영이 일부러 자기 생일을 노렸을 수도 있다는 건 이미 며칠 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별 데 다 에너지를 쏟는다.’
알맹이는 한참 어른인 수현에게 이런 유치한 공작은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뭣도 모르고 휘말려 불편한 상황에 처한 애들이 조금 딱할 정도였고.
‘어쨌거나 빨리 자리를 피해 주는 게 서로 덜 불편하겠지.’
수현이 가방을 챙기고 쓰윽- 뒷문으로 향할 때였다.
드르륵.
뒷문이 힘차게 열리더니,
“여기 한수현 있어?”
뜻밖의 인물이 수현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