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오리지널러티(2)
“확실히 옥석이 가려지는군요.”
“기권으로 보이는 그림도 많고요.”
“들으셨습니까? 어제, 5시부터 시험장을 빠져나간 응시자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아예 포기한 거죠.”
“흠. 그런데 희한하긴 하네요. 이게 그렇게 또 까다로운 주제는 아니었는데…….”
다음 날, JK 그룹 중앙 연수원 체육관.
어젯밤까지 뜨거운 열기로 불타올랐던 시험장에 20명의 심사위원이 엄숙하게 모였다.
한국화, 서양화, 조소, 도예, 디자인 등 참가 분야에 따라 그룹 지어 듬성듬성 떨어뜨려 놓은 300개의 작품.
심사위원단은 그 사이를 쇼핑하듯 천천히 거닐며 작품 수준을 대강 가늠하고, 들고 있던 평가지에 몇 가지 특이사항을 끄적였다.
곧 날카로운 평가가 시작됐다.
“어찌 보면 주제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생각들이 다 거기서 거기네요.”
“사실 나무와 낫이라고 하면 추수하는 풍경같이 목가적인 분위기가 1차적으로 떠오르긴 하니까요.”
“색감도 비슷비슷해요. 신록을 표현한 작품 아니면, 가을을 상징하는 황금빛을 주로 썼어요. 뭐, 아직 고등학생들이니 사고의 깊이가 기성 작가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요. 흠흠.”
“그래도 개중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건 평이한 작품보다 가산점을 줘서 차이를 둬야겠어요.”
“허어. 하지만 특이해 보이려고 무리수를 둔 응시자도 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저 그림은 나무에 열리는 과실을 낫으로 표현했잖아요? 저 작품은 나무로 만든 낫을 보여주고 있고요. 나무와 낫이란 주제에 충실하긴 하지만, 그래서 뭘 나타내려는 건지 공감이 되질 않아요. 주제의 부재죠.”
“그저 눈에 띄려는 시도였겠죠. 흠흠.”
“그래도 대범한 시도를 했다는 건 인정해야지 않겠습니까? 비슷비슷하게 안전한 작품을 찍어내듯 만드는 게 우리 전국대회의 정신은 아니니까요.”
“하하. 일단은 각자 점수를 주고 통과자를 결정할 때 다시 의견을 조율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미리 여론을 형성하거나 특정 작품을 가리키면 불공정한 심사가 될 수 있으니.”
조용조용한 말로 주고받지만, 초장부터 불꽃이 튀었다.
심사위원들은 제 라인이 아니다 싶은 그림들은 어떻게든 흠을 잡아 깎아내렸고, 그럼 반대편은 발끈하며 반박하다 반격을 노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1차 시험 때보다도 확실하게 심사위원단의 노선이 둘로 갈렸다는 점이었다.
아주 노골적이고 유치했다.
“허어. 세상에! 황 화백님. 여기 이 그림 좀 보시죠.”
그리고 황 화백 측근 한 명이 호들갑을 떨며 황 화백을 불렀다.
황 화백을 호출했으나, 과한 리액션을 하는 폼이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려는 행동이 분명했다.
“이야. 이게 군계일학 아니겠습니까. 도무지 고등학생 그림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군요. 수준이 무척이나 높아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감탄하는 측근.
황 화백이 흐뭇한 얼굴로 그가 가리킨 그림을 보았다.
시험 직전, 자신이 미리 확인한 그림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아주 차분한 성정을 가진 친구가 그린 모양입니다. 시험장이 혼란스러웠다고 들었는데, 흔들리지 않고 잘 그려냈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황 화백.
마음이 무척이나 흡족했다.
‘성실이가 이름값을 하는구나.’
중앙예고 강성실 미술과장은 자신이 일러둔 대로 아주 쓸만한 재목을 골라왔다.
전국대회니 뭐니 권위를 내세워도 결국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되는 적당한 수준의 대회.
승기를 잡는 방법이야 뻔했다.
남들보다 반 계단, 혹은 한 계단 정도만 우위를 선점하는 것.
그러니 괜히 예술가 병 걸린 사춘기 애처럼 무리수를 두기보단 퀄리티를 확실히 올리는 데에나 집중하라 단단히 일러두었다.
이왕이면 한국 화단에서 좋아하는 작가들의 색채를 곁들이라는 조언을 얹으면서.
그러자 강성실은 투표 판을 흔들어 ‘나무’가 주제에 선정될 수 있게 하겠다며 몇 가지 스케치를 꺼내 보여줬다.
마침 거기에 있던 그림 하나가 그럴듯하다 싶었는데, 그것과 똑같은 그림이 아주 고급스럽게 완성돼 자신의 눈앞에 놓였던 거다.
‘성실이 놈도 이 아이도 제법 재주가 있어. 이대로만 가면 큰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그렇게 황 화백이 김민준의 그림에 만점을 줄 때였다.
“허어.”
“하하.”
“나 참.”
웅성웅성.
대각선으로 5미터쯤 떨어진 곳에 심사위원들이 몰려들었다.
“놀랍네요.”
“하, 주제를 이렇게 확장하고 해석하다니.”
“아주 섬세하고 감수성이 좋아요. 날카롭고 대담하고.”
“저는 평가보단 감상을 좀 더 하고 싶군요.”
황 화백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몰려든 쪽은 남 화백 무리였다.
‘쇼하고 있네. 우리 쪽에서 누굴 밀어주는 것 같으니까, 너희도 선수를 들이미는 모양인데.’
그런데 황 화백의 미간이 한 번 더 사납게 찌푸려지는 일이 생겼다.
‘……저 사람이?’
자신이 내내 끌어들이려 눈독을 들였던 세인예술대 권인호 교수가 남 화백 쪽 무리에 섞여 바닥에 놓인 그림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저 눈치 없는 인간이. 정말 한국 물정을 몰라서 저러나? 빤히 보이는 놀음에 장단을 맞추고 있어?’
심기가 불편해지는 황 화백.
그러나 심사는 해야 하니 자신도 얼마 후엔 그 그림 앞으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
튀어나올 듯 커진 황 화백의 두 눈.
“이게 뭐야?”
순간 속마음이 툭,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네?”
곁에 있던 측근이 눈을 끔벅였고,
“하하. 황 화백님이 보시기에도 괜찮습니까? 정말 참 대단한 그림입니다. 그렇지요?”
남 화백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파고들었다.
“흠흠.”
말을 아끼는 황 화백. 일단은 부자연스럽게 억지 미소를 지었다.
“쯧쯧. 너무 멀리 갔군요.”
그리고 황 화백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나쁘진 않다만, 주제에서 크게 벗어난 그림 아닙니까? 생각을 너무 깊이 하다가 동떨어진 곳에 낙하한 건지, 아니면 제시된 주제를 무시하고 미리 준비한 구상을 무작정 그린 걸 수도 있겠군요.”
“허.”
“아니 그게 무슨.”
황당한 듯 황 화백을 노려보는 반대쪽 심사위원들.
황 화백의 말은 분명 억지였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게 본디 꿈보다 해몽인 경우가 많은 법.
인지도며 위세가 높은 황 화백이 그렇다고 우기면 또 여론이 그렇게 몰려가기에 충분했다.
“흐흠. 그렇게 볼 일일까요?”
그런데 그때,
자기 편에 설 거라 믿었던, 적어도 중립은 지킬 거라 생각했던 권인호 교수가 나섰다.
“이 그림은 나무와 낫을 표면적으로 묘사하기보다 본질적인 의미에 파고들었다고 보이는데요.”
“뭐요?”
“나무가 의미하는 것과 낫이 의미하는 것. 우리가 흔히 메타포라 부르는 것들 아닙니까. 이 참가자는 그걸 아주 적절하게 활용했어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습니다. 나무와 낫에서 생명과 죽음, 시작과 끝, 단절과 연결, 밝음과 어둠 같은 의미를 끄집어낸 거니까요.”
권인호가 잔잔한 미소를 띠며 화제가 된 수현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게다가 표현이 유치하거나 부족함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제약이 많은 대회에서 이만한 충격과 감동을 주는 그림을 만나볼 수 있을 거라곤 솔직히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허어, 이봐요. 권 교수.”
황 화백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밀리면 뒤에 가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도 있겠단 불안이 덜컥 그의 마음을 흔들었던 거다.
“그래요. 뭐, 백번 양보해 메타포라 칩시다. 그럼 더 수상하지요. 당일 투표로 정해지는 주제에서 재빨리 이런 메타포를 뽑아내고 퀄리티 있는 작품으로 완성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그것도 고등학생이 말입니다. 메타포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린 거라면, 더더욱 그 과정이 공정했을 것 같지 않단 생각이 드는군요.”
주제와 동떨어진 걸 그린 거란 억지가 통하지 않자, 이번엔 부정행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내비치는 적반하장의 황 화백.
그에게 앞뒤가 맞는 논리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보단 엉뚱한 그림에 관심이 쏠리지 않게 시선을 돌리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흠. 당일 투표에 누군가 개입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겠네요.”
다행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권인호. 황 화백이 반색했다.
“그러니 말입니다. 이거 좀 꺼림칙해요. 여튼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조사를 할까요?“
그러자 권인호가 황 화백의 말허리를 싹둑 자르며 되물었다.
“뭐요? ……조사?”
“혹시라도 누가 투표에 개입했다면 큰일 아닙니까? 의혹이 생길만한 일이라면 묻어둬선 안 되고요. 예년보다 규모도 커졌고,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중요한 대회인데요.”
순간 황 화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인간이 왜 이러지?
여태 단 한 번도 발톱을 드러낸 일 없이 그저 나태하게 지루하단 표정으로 자리나 지키던 인물이었다.
설마 뭘 알고 있나?
황 화백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제자 강성실이 쓴 작전엔 증거가 없다. 자신이 강성실에게 뭔가를 지시했다는 것도.
하지만 만에 하나, 혹여나, 실수한 게 있었다면? 놓친 게 있었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
넘겨짚는 권인호의 말에 황 화백이 제대로 넘어갔다.
“흠흠.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결국 한발 물러서는 황 화백에게 권인호가 활짝 웃어 보였다.
“그렇죠. 우리가 작품을 심사하러 온 거지, 무슨 수사를 하러 온 건 아니니까요. 그러니, 작품의 배경에 괜한 의심을 품기보단 느껴지는 그대로 심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크게 웃는 권인호.
그러자 몇몇 심사위원이 허허, 따라 웃었다.
“어쨌거나 좋은 작품, 가능성 있는 루키를 찾는 게 우리 일이니까요. 와, 그런데 이 대회 정말 재밌네요. 엄청나게 흥미롭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권인호의 말에 황 화백 쪽 무리는 떨떠름한 얼굴이 됐고, 남 화백 쪽 무리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됐다.
황 화백의 편에 서거나 중도파일 거라 예측되던 인물.
그가 처음으로 주관을 내세우며 황 화백과 충돌한 거다.
사실 이런 돌발행동은 권인호 본인조차 계산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권인호는 심사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자기 역할에만 집중하다가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런 그가 감정을 드러내며 소신을 펼친 건, 뜻밖에도 흥미로운 그림을 한 장 발견했기 때문이었고.
‘썩어빠진 인간들. 지들끼리 흙탕물에서 뒹구는 거야 내 알 바 아니지만…….’
권인호가 고개를 저었다.
고만고만한 대회라면 피곤한 알력 다툼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하필, 웃기지도 않는 견제에 묻혀서는 안 될 아주 뛰어난 작품이 한 점 눈에 띄었던 것.
‘이건 황 화백의 억지대로 미리 그려오거나 구상한 그림이 아니야. 그냥 자연스럽게, 제 실력대로 그려진 거다. 그러니까 체급이 다른 애가 섞인 거야. ……어디서 이런 애가 뚝 떨어졌을까. 하, 입시 미술에 찌든 고등학생 중에 이런 걸 그려내는 애가 있을 줄이야. 어쩌면 거창한 대회 취지에 맞는 걸출한 신인이 발굴될 수도 있겠어.’
아직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부푸는 기대를 누르기 어려웠다.
그렇게 권인호의 정리로 한결 가라앉은 심사장에선 다시 견제와 계산이 점철된 심사가 이어졌고,
그즈음.
논란의 중심이 된 당사자인 수현은 이런 사건은 꿈에도 모른 채 꿀 같은 휴식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