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00)
#100. 완벽한 파트너 제작 발표회
>완벽한 파트너> 제작 발표회의 포토 월 앞에 선 재인은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멈추길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좀 긴 것 같은데.’
재인이 먼저 단독 사진을 찍고 강여진과 같이, 다시 강여진 혼자 포토 월 앞에서 사진을 찍는 순서였다.
그의 차례가 되어 포토 월에 섰을 때였다. 어쩐지 먼저 촬영한 다른 배우들보다 촬영 시간이 길었다. 기분상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고 실제로 그의 단독 촬영은 다른 이들보다 길었다.
‘눈부시다. 시상식도 아닌데 오늘 조금 심한걸.’
사진 촬영은 재인이 단상에 오르는 강여진을 마중하는 순간에도 두 사람이 마스킹한 위치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이 커플 같은 포즈를 취하기도 전인데 어마어마한 플래시가 터졌다.
이런 취재진의 관심이 작품 때문이면 좋겠지만, 그건 아닐 듯했다. 워너비원과 조세형의 문제는 해명이 끝나지 않았고, 재인의 응급실 사건은 며칠 지나지 않은 시기라 관심이 지대했다.
“포토 타임 마무리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제작 발표회는 방영 하루 전이라는 촉박한 개최 시간을 빼면 무척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포토 타임, 인터뷰, 홍보 영상 감상.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뤘다가 연 제작 발표회라서 그런지 구성이 상당히 심플했다.
“김고운 감독님 전작에 대한 부담은 없으셨나요?”
“제가 전작에 대한 부담은 없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전작들이 잘되었나 봅니다.”
“그냥 잘된 정도는 아니지요, 감독님.”
“하하하. 네.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사실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중간에 진행자가 끼어들어 김고운 감독 전작 성적에 관해 말을 보탰다. 꾸준히 평균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전작에 대한 부담은 항상 느낍니다. 그런데 솔직히 부담보다는 고맙다는 마음이 더 큽니다. 그 덕분에 좋은 배우들이 제 손을 외면하지 않거든요. 같이 출연하고 싶다 제작사에 먼저 말을 꺼내 주시는 배우도 계시고요. 강여진 배우가 제작사에 먼저 말을 꺼내 준 것도 다 그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강여진 배우님이 먼저 출연하시겠다고 하셨군요.”
“네, 김고운 감독님하고는 꼭 한 번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감독님 작품 들어가신다는 소식에 제가 먼저 나섰죠. 이번이 아니면 도저히 시간이 안 날 것 같았거든요.”
“정말이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습니다.”
감독의 대답에 자연스레 강여진이 끼어들고 그녀는 그대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같은 질문인데요. 전작인 영화 성적이 상당히 좋았는데요. 차기작 선택이 고민되거나 부담되지는 않으셨나요?”
“고민은 당연히 많았어요. 부담도 컸고요. 전작이 잘 되어서라기보다는 작품을 선택할 때 항상 겪는 문제예요. 어떤 작품이 시청자분들의 사랑을 받을지 모르니까요.”
한동안 감독과 강여진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인터뷰의 시작에 걸맞은 은근히 상대를 띄워 주는 질문이 지나고 재인에게도 질문이 돌아왔다.
“전작이 끝나고 바로 차기작에 들어가셨는데요. 컨디션은 괜찮으신가요? 김현민, 이주환, 주하성, 한규리 씨 등 쟁쟁한 선배 배우들과 합을 맞춰 왔는데요. 힘드신 부분은 없으십니까? 이번 작품 역시 선배이신 강여진 씨랑 작품을 하시는데요. 촬영장에서 호흡은 잘 맞으십니까?”
“네, 컨디션은 좋은 편이에요. 작품 들어가기 전에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고, 감독님이나 스태프분들이 많이 배려해 주셔서요. 아까 말씀하신 선배님들과는 같이 연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힘든 점은 딱히 없었어요. 다들 편하게 연기를 하셔서 덕분에 저도 편하게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연기도 조금씩 발전했고요. 강여진 선배님도 마찬가지세요. 장난스러운 성격이시라 가끔 놀리시긴 하는데, 잘 맞춰 주셔서 기분 좋게 촬영하고 있어요.”
재인이 마이크를 잡고 답변을 끝내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진행자가 누굴 골라야 할까 고민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이재인 씨는 얼마 전 개인적인 일로 세간에 화제가 된 일이 있지 않습니까. 방영을 앞둔 시기에 벌어진 사건으로 촬영에 지장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촬영 전부터 동료 배우와 불화설을 일으키고, 촬영 도중 벌인 사건으로 일정에 차질을 빚은 것은 배우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 아닙니까?”
재인은 기자의 말이 질문을 하는 것인지 자신을 힐난하기 위한 것인지 헷갈렸다. 답을 듣기 위한 게 아닌 그저 그의 화를 돋우기 위한 것 같았다.
“어느 분에게 촬영장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분하고 그리 친하시지 않은 것 같네요. 배우의 자질은 제가 논할 주제가 아니고요. 다음 질문이요.”
재인은 고분고분하게 대답해야 했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례한 상대를 무시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예의는 갖출 만큼 갖췄다. 굳이 같이 진흙 바닥에 내려설 이유가 없었다.
“이재인 씨는 데뷔 이래 눈부신 커리어를 쌓아 가고 계시는데요. 사생활도 행복하십니까? 자기 자식을 외면하고 진정으로 행복하신지 궁금하네요.”
“스타 라운지의 박선미 기자님이라고 하셨죠? 작품 외의 질문에 제가 답해야 할까요?”
“…….”
“답이 되었길 바라요.”
제작 발표회장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작품에 관련된 내용도 아니고, 이미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 기사까지 낸 내용을 일부러 현장에서 묻는 게 무슨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
‘촬영은 잘되고 있고.’
제작 발표회 영상도 홍보에 쓰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촬영하고 있을 테지만, 재인은 시스템으로 따로 촬영했다. 속된 말로 어그로를 끄는 기자들의 면면을 기록해 두었다.
진행자가 제지했지만, 작품과 관련 없는 사적인 질문이 몇 번 더 이어졌다. 그때마다 재인은 질문이 실망스럽군요, 저한테 하는 질문이 맞나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라고 답하며 기자를 상대하지 않았다.
“이상 인터뷰를 마치고 >완벽한 파트너>의 영상을 감상하겠습니다.”
붉으락푸르락한 감독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해서일까, 진행자가 예정보다 빨리 영상 송출을 언급했다.
하이라이트 장면을 편집한 영상은 십 분 남짓이었다. 스크린 속 재인은 제작 발표회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무례한 기자들에게 철벽을 치던 모습과 다르게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유혹적이었다.
“영상 재밌게 보셨나요. 감독님과 배우분들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완벽한 파트너>의 제작 발표회를 마칩니다.”
영상 감상 후에 짧은 소감과 인사말을 하는 시간에도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재인에게 시비조로 질문하던 기자들이었다. 끝까지 흥분하지 않고 무시한 그에게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소란을 피웠다. 주변의 다른 기자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재인 씨한테 저렇게 하는 사람 처음 봐. 난 재인 씨 얼굴만 보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던데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나도 재인 씨 얼굴 보면 있는 화도 풀어지거든. 뭘 받아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니지. 미튜브에 영상 다 올라갈 텐데 뭘 믿고 저러는 건지.”
“에이, 설마 기자가 뭘 받아먹고 그러겠어. 그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그런 게 아니라면 기자가 그냥 저러겠어? 클로버 엔터 지독한 건 유명하잖아.”
제작 발표회장을 정리하는 스태프들의 뇌리에 같은 시간대에 방영하는 드라마 제목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 예전에 김고운 감독에게 시청률로 완패당한 모 감독의 신작이 있었지만,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우리 감독님도 언플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기자를 섭외해서 제작 발표회를 망치는 건 너무 유치하지 않나?’
배우들이 떠난 제작 발표회장에 찝찝한 표정의 스태프들만이 남았다.
* * *
-퍽! 퍽! 퍽!
김 실장은 다시 한번 회사의 헬스장을 찾았다. 업무에 바빠서 거의 이용객이 없는 헬스장은 스트레스를 풀 일이 있을 때 찾기 좋았다.
‘죽어라! 쓰레기들!’
‘감히 우리 재인 씨한테 그따위 무례한 질문을 해 대!’
‘지네들 싸움에 누구를 가져다 붙이는 거야!’
‘저열한 자식이 꼭 저 같은 방법을 써요.’
한참 동안 샌드백을 발로 찬 김 실장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주 가루가 되게 까이도록 만들어 주지. 내가 진짜 얌전히 재인 씨 서포트만 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현장 경험도 많고 경력도 긴 김 실장은 인맥 관리에 힘을 크게 쏟는 편이었다. 특히 현장에서 물러나 섭외와 계약 등을 전담한 후론 그에게 들어오는 소식이 꽤 많았다. 그 안에는 업계를 통째로 혼란에 빠뜨릴 만한 건수도 있었고, 몇몇 업계 관계자만 나락으로 떨어뜨릴 만한 정보도 있었다.
‘마약 건을 푸는 건 너무 과해. 그건 배우 쪽만으로는 안 끝나.’
김 실장은 제작 발표회 건을 사주한 감독의 작품에 출연 중인 배우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번 건은 주변을 때리는 것보다 감독을 직접 때리는 게 나았다.
‘편집은 조연지 감독이 맡았다니, 한번 찾아가 보고. 현장 스태프로 누가 있더라?’
김 실장은 오래간만에 착한 일을 하기로 했다. 모 드라마 감독의 폭언과 갑질에 시달린 스태프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작은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다.
* * *
제작 발표회 다음날 >완벽한 파트너>의 첫 방송일. 촬영진은 첫 방 저녁 회식을 위해서 일찌감치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저녁 회식을 위해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재인은 혼자 튀었다. 마치 화보 촬영 중인 단정하지만, 꽤 화려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회식 장소와 어울리지 않았다.
“잘 다녀와. 방송 전에 올 거라고 했지?”
“네, 선배님은요? 식당으로 바로 안 가세요?”
“스파에 들렀다 가려고. 나이는 못 속이나 봐. 며칠 이어서 촬영했다고 온몸이 쑤시네.”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사과하지 마. 그리고 네가 아침 첫 타임 같은 힘든 타임 다 맡아 줬잖아. 이 정도는 별스럽지도 않아.”
응급실 사건이 있던 날 강여진이 그와 스케줄을 바꿔 줬다. 덕분에 그녀는 쉬는 날 없이 연속으로 촬영장에 출근해야 했다. 보통은 이삼 일 촬영하면 하루 정도는 쉬게 일정이 짜여 있는데, 이번에는 일주일 내내 촬영장을 지켰다.
“전엔 더했어. 나 데뷔 초에는 보름 동안 집에 못 간 적도 있다니까.”
“보름이나요?”
“응, 내가 스물 때니까, 십오 년 정도 전이긴 한데. 그때는 진짜 스태프고 배우고 촬영장에서 살았어. 지금은 확실히 여건이 좋아진 거야.”
“힘들었겠다.”
“우리 현장은 감독님이 휴차일을 꼭 지키는 편이라 다행이지. 지금도 몇몇 제작사는 여전하더라고. 주 52시간은커녕 80시간, 100시간 일 시키는 곳이 아직도 있다니까. 어디라고 말은 못 하지만.”
일주일에 100시간? 쉬는 날 없이 하루에 14시간 이상씩 일해야 주에 100시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그 얘기 진짜예요?”
“진짜야. 수도권에선 좀 덜한데, 지방에서 촬영할 땐 그런 곳 아직도 많아.”
“지금도요?”
“응, 지금도.”
강여진과 같이 출연자 밴을 주차해 둔 구역으로 이동하면서 들은 얘기는 놀라웠다. 사실인가 싶어서 최상호를 돌아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강여진의 얘기가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공공연한 비밀이긴 한데, 배우들 사이에서 꺼리는 제작사랑 감독이 몇 있어. 너도 조심해. 아니다, 너는 걱정 없겠다.”
“예?”
“회사 의견 귀담아들으라고. 쇼케이스 잘 다녀와. 이따 보자.”
“네. 이따 봐요, 선배.”
재인은 강여진을 배웅하고 차에 올라탔다. 강여진의 얘기는 동종 업계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서 마음이 쓰이긴 했지만, 그만 관심을 거뒀다. 지금은 그보다 더 관심이 쏠리는 일이 있었다.
고대하던 워너비원의 컴백 쇼케이스에 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