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50)
#150. 서포트 순서
캐릭터 이미지가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어도 촬영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처지라 끝날 때까지 이대로 달려야 했다.
그런 마음은 작가와 감독, 출연자와 스태프 누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르지 않아야 했다. 현실은 달랐지만.
“오늘도 대본이 늦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게 매니저님 잘못도 아닌데요. 그런데 초반에는 대본이 빨리빨리 넘어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고 났을 때도 3주밖에 안 쉬었잖아요.”
“맞습니다. 초반에는 그랬다고 알고 있습니다.”
겨우 3주 만에 촬영 현장이 정상화된 이유에는 대타 배우를 빨리 구해서 사고 수습이 용이했던 부분도 있지만, 대본이 빨리 나와서 촬영을 많이 해 둔 부분도 있었다.
완성도 높은 대본을 쭉쭉 뽑아내던 작가가 있어서였는데, 어떻게 된 건지 최근에는 대본이 제때 오지 않았다. 촬영 하루 전에 받으면 양반으로 심할 때는 한 회 대본을 몇 번에 나눠서 받기도 했다.
‘나는 그래도 나은 편인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냐.’
시스템의 메모 기능으로 대사를 훔쳐볼 수 있는 그와 다르게 다른 배우들은 촬영 직전에 받는 대본을 미친 듯이 외워야 했다. 그를 제외한 배우들은 시간이 촉박해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곁눈질할 틈도 없었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카메라에 담기지 않을 위치에 대본을 두고 컨닝을 하면서 촬영을 하곤 했다.
물론 그런 꼼수도 대본이 와야 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촬영 준비를 다 해 놓고도 대본이 오지 않아 손가락만 빨고 있는 상황에선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너무 늦는군요. 사정을 알아봐야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멀리 감독과 조연출이 핸드폰을 붙들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게 보였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듯 줄곧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오늘 촬영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첫 촬영 후에 기대 많이 하셨는데, 좀 그러네.’
재인은 감독 쪽으로 향하는 최상호가 이유를 알아 오길 바랐다. 만약 그가 해결할 수 있는 이유 때문이라면 나설 의향도 있었다.
지금 당장은 찍어 둔 분량이 있어서 어떻게든 넘어가고 있지만, 대본이 늦어지는 상황이 일주일만 더 이어지면 쪽대본에 생방송으로 드라마를 찍어야 했다. 그런 일은 가능하면 벌어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 * *
재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연예인에게는 공식 스케줄이라는 게 있었고, 재인 역시 여느 연예인처럼 공식 스케줄을 공지하고 있었다.
“스케줄을 알면 뭐 해? 접근이 쉽지 않은데.”
촬영장과 집을 오가는 무척 단순한 스케줄인데도 파고들 틈이 없었다. 촬영장에는 그곳을 지키는 각성자뿐 아니라 수백의 일반인이 있었고, 집은 촬영장보다 더 접근하기 어려웠다.
빌리 브라운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재인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강제적인 방법을 쓸 마음은 없었다. 그런 방법을 쓰면 만나는 게 어렵진 않겠지만, 환심을 살 수는 없었다. 경계심만 높아질 뿐이지.
‘환상적으로 생겨서 그런가? 꼭 환상의 동물처럼 만나기 어렵군.’
같은 땅을 밟고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만나기 어려웠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을 만큼 들지 않았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가지고 싶은 욕심만 커질 뿐이었다.
물론 욕심을 전부 드러낼 생각도 없었다. 그는 보석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보석이 어디에 있을 때 가장 빛나는 지도 잘 아는.
“그래서 이러고 있는 거지만, 조무래기들한테 방해받아도 웃을 정도로 너그럽진 않다고.”
“누가 조무래기야! 우린 재인 님을 지키는 중이라고.”
“어린애들까지 나서서 지켜야 할 만큼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데.”
“안전하신 게 당연하지, 재인 님이신데.”
멀리서 촬영장을 내려다보는 빌리 브라운의 앞에 청소년 무리가 나타났다. 남녀가 골고루 섞인 일행은 기세 좋게 앞에 나선 것과 다르게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빌리 브라운은 은밀하게 재인의 주변을 돌면서 누군가는 알아차리지 않을까 했었다. 그게 이런 어린애들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재인을 좋아하는 사람을 해칠 생각 없으니 긴장 풀라고. 더더군다나 여기서 소란을 피울 마음은 없다고. 괴물이 사는 나라에서.”
“진짜요? 우리 안 해칠 거예요? 재인 님도?”
“말투가 공손해진 거 맞지?”
“맞아요. 그래서 진짜로 재인 님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굴지 않을 거예요?”
“……그래.”
해치지 않겠다는 말만 했을 뿐인데도 눈에 띄게 경계심을 거두는 일행에 빌리 브라운이 속으로 혀를 찼다.
경계를 거두면서도 확인 사항이 구체적으로 바꾸는 게 머리는 나쁜 것 같지 않은데,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안전한 한국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위기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습이 내심 못마땅했다.
“괴물이 누구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
“알려주세요. 재인 님이 계시는 곳에 괴물이 있으면 안 된단 말이에요.”
“그 괴물은 건드리지만 않으면 얌전하니 신경 꺼도 된다.”
“그럼 됐어요. 재인 님만 안 건드리면 우리도 상관할 마음 없어요.”
일행의 리더로 보이는 아이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재인만 건드리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너희, 재인과 무슨 관계지?”
“재인 님은 우리 주인님이세요. 아니. 주인님이시지만, 주인은 아니에요.”
“무슨 뜻이지?”
“우리는 주인님으로 생각하는데, 재인 님은 그냥 동생 취급하세요. 곧 정식 키퍼도 되는데 말이죠. 아직도 만날 때마다 밥 잘 챙겨 먹냐, 아픈 데 없냐 그런 것만 물어보세요.”
재인이 부탁하면 경호도 할 수 있고 힘든 심부름도 할 수 있는데 그런 건 한 번도 부탁하지 않는다며 아쉬워하는 아이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많아야 열다섯 정도로 봤던 아이들이 정식 키퍼가 될 수 있는 성인을 앞둔 나이라는 것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빌리 브라운의 관심은 아이들이 재인을 만났다는 사실뿐이었다.
“재인을 만났나?”
“당연하죠.”
“어떻게 만났지?”
“처음에는 서포트 하면서 만났는데요.”
“서포트?”
비정상적인 방법 말고도 재인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빌리 브라운의 몸이 달았다. 귀찮게 하는 아이들을 쫓아 보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경계심 없이 풀어놓는 정보에서 그가 바라는 것을 이룰 방법이 보였다.
“배우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나? 스폰서가 필요할 정도로?”
“아니, 서포트라니까요. 무슨 스폰서예요? 재인 님께 스폰서가 왜 필요해요.”
“그러니까 스폰서가 서포트를 해 줘야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닌가?”
“아니라니까!”
“그럼 서포트가 왜 필요한데!”
빌리 브라운이 재인을 해칠 사람인가 떠보던 박원영은 진심으로 답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스폰서 사건으로 연예계가 시끌시끌한데 재인한테 스폰서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해 대는 남자가 짜증 났다.
빌리 브라운 역시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잘만 건네주던 정보를 하필이면 중요한 대목에서 끊을 게 뭔가. 재인을 지원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서 말을 멈추면 지금까지 들은 게 말짱 꽝이었다.
“원영아. 이 아저씨가 말하는 건 진짜로 스폰서 같아. 이상한 의미 말고 스포츠 선수 후원하는 그런 거.”
“진짜?”
“어.”
박원영과 빌리 브라운이 눈싸움을 하는 사이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목소리에는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싸우는, 싸울 이유도 없는 일에 힘을 빼는 두 사람을 한심하게 여기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아저씨. 우리가 말하는 서포트는 응원 같은 거예요.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한테 선물도 보내고 고맙다는 메시지도 보내고 하는 거요.”
“그게 뭐야? 그건 그냥 팬이 연예인한테 하는 거 아닌가?”
“맞아요. 그거예요.”
설명을 들은 박원영과 빌리 브라운은 입을 닫았다.
연예인 팬의 조공 문화에 무지한 빌리 브라운과 어긋난 스폰서 관행에 시야가 좁아진 박원영의 착각에서 비롯된 말다툼이었다. 애초부터 싸울 이유가 없었다.
“크흠! 재인의 팬이 되면 직접 만날 수 있나?”
“그래도 쉽게 볼 수 없어요. 우리처럼 팬 카페 간부 정도는 되어야 보죠.”
“팬 카페?”
“네. 재인 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박원영은 팬 카페 활동과 서포트에 관해 짧게 설명했다. 재인이 촬영에 들어갔을 때 했던 밥차 서포트와 아동 도서 기부 행사에서 경호를 맡았던 일도 설명했다.
“다음 서포트는 언제 하지?”
“그게 원래 이번에는 우리 차례인데요.”
“무슨 문제라도?”
“지난번에요. 서포트를 디바인 스타 회장님이 혼자서 해 버려서요. 디바인 스타 카페 회원들이 불만이 많이 쌓였대요. 그래서 우리 차례인데 바꿔 줄 수 있냐고…….”
“바꿔 줄 건가?”
바꾸지 말라는 뜻을 담은 빌리 브라운의 질문에 박원영이 고개를 저었다.
클로버 엔터에서 촬영에 방해될 수 있다며 서포트는 한 작품에 한 번만이라고 못 박았었다.
많지 않은 기회를 양보할 마음은 없었다. 아무리 상대가 많은 도움을 받은 디바인 스타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가 디바인 스타를 상대하기는 어려워요. 그쪽이 인원도 많고 모금 규모도 크거든요. 회장님도 무섭고.”
“금액은 문제가 아니지. 내가…….”
“맞아요.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재인 님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문제죠. 담판 지어야겠어요. 이번 서포트는 못 넘긴다고요.”
“좋아. 그런 태도야.”
서포트 모금액의 차이는 자신이 메꿀 수 있었다. 재인과 접점을 만들 수만 있다면야 그런 푼돈 따위 아깝지도 않았다.
빌리 브라운은 멀리 보이는 촬영장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 디바인 스타의 인원이 얼마나 많든 회장이 얼마나 무섭든 상관없었다. 재력이 됐든 무력이 됐든 일반인은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 * *
‘그런데 이 괴물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고!’
팬 카페 신화 간부들을 따라 담판을 지으러 찾아온 변호사 사무실에서 빌리 브라운은 뜻밖의 사람을 마주했다.
어떤 빌런이라도 한국에 오면 저절로 얌전하게 행동하게 만드는 괴물. 집요함이라는 단어가 인간으로 승화된 듯한, 빌런 사이에서도 절대로 척지고 싶지 않은 인물 1위에 당당히 랭크된 심판자 테오를 마주했다.
“김태오입니다. 미스터 블랙우드?”
“크흠! 빌리엇 블랙우드입니다.”
“…….”
“…….”
김태오와 빌리 브라운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데에 전문 투자자와 변호사라는 위장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에는 무슨 일로?”
위장을 유지하자는 뜻을 먼저 내비친 것은 김태오였다.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위장이긴 해도 재인이 그를 변호사로 알고 있는 동안은 가면을 내려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서포트 때문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디바인 스타한테 서포트 순서를 넘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서포트는 저희 쪽으로 넘겨주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아니거든요. 생각해 본다고만 했었거든요.”
“여러분은 곧 연수에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차영 씨는 입학 준비를 위해서 출국하셔야 하고요. 서포트를 준비할 여유가 없을 텐데요.”
“여유 많아요! 완전 많아요! 다 할 수 있거든요. 그치?”
박원영의 말에 친구들이 전원 고개를 끄덕였다. 바쁘긴 하지만, 재인의 서포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정식 키퍼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 훈련 외에 정식 대원들과 임무를 수행하는 실전 연수를 받아야 했다. 9월에 입학 예정인 차영을 제외한 이들은 연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몸도 만들고 임무에 필요한 강의도 들어야 했다.
“블랙우드 씨는 무슨 일로?”
“이 아저씨는 저희를 도와주러 오신 거예요. 이번에 서포트할 때 도와주시기로 했거든요.”
“들은 대로. 서포트할 때 돕기로 했지. 모금이든 인원이든 뭐든. 그러는 김태오 변호사는 왜 이 자리에 있는 거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를 악문 김태오가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팬 카페 디바인 스타의 회장 직함이 새겨진 명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