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68)
#168. 파랑새
박태용은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이는 것이 외곽의 버려진 약수터이길 바랐다. 각성제 부작용으로 혹시라도 폭주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몰래 찾아갔던 그곳이길 바랐는데…….
“박태용 씨 정신이 드십니까?”
“……네.”
“이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병원인가요?”
“비슷합니다.”
박태용의 기억이 어디까지 남아 있는지 간단한 확인을 마친 연구원이 침대에서 벗어나자 의료진이 곁으로 다가갔다.
문진을 위해서였다. 수치는 정상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기계로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 본인에게 직접 답을 들으면서 확인해야 했다.
“혹시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냥 배가…….”
“배요? 배 어디가 아픕니까?”
“아픈 건 아니고요. 배가 고파요. 목도 마르고요.”
“…….”
일 년 가까이 정신을 잃고 누워 있던 박태용의 상태는 무척 좋았다. 깨어난 직후 허기를 느낄 정도로 신체 장기의 상태도 좋았고, 본인의 상태가 어떻다 밝힐 만큼 인지 능력도 정상이었다.
“……외견상으로도 본인 의견으로도 이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유례없는 경우인 만큼 한동안은 섭식에 주의하면서 경과를 지켜봤으면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직전에 재인의 치유를 받기도 했고 연구소에서 지속적인 박태용의 건강을 관리해 와서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각성제에 의한 강제 각성이라도 각성이라서 그런지 신체 능력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수많은 낯선 사람을 앞두고도 허기를 토로할 정도로 강렬한 허기를 느끼는 것이 일반적으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환자의 반응과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박태용 씨 식사는 곧 배달될 겁니다. 잠시 쉬고 계십시오.”
“네.”
의료진의 진료가 끝난 걸 확인한 수석 연구원이 사람들을 병실에서 물렸다. 아무리 이상이 없더라도 이제 갓 정신을 차린 사람의 병실에 십수 명이 모여서 지켜보는 것은 비상식적이었다.
“정말로 깨어났군요.”
“…….”
“처음 재인 씨가 부작용 환자를 치료했다고 연락했을 때는 설마 했습니다. 놀라운 능력을 지니긴 했지만, 이런 일까지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능력이라고 보기엔 너무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하죠.”
지방 길드 연구소에서 절대로 볼 일 없는 낯선 사람인 선우현 중령의 말에 누구도 쉽게 맞장구치지 않았다. 박태용이 유의미한 변화를 보이는 시점에 해당 건을 군사 기밀로 지정한 문서를 들고 나타난 상대라서 경계가 심했다.
그런 그의 말을 받아 준 것은 박연화였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재인의 근거리 경호를 전담하게 될 박연화 팀을 대표해서 사실 확인을 위해 연구소에 직접 방문한 그만이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재인 씨께서 각성제 부작용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일단은 대외비 등급입니다.”
“네.”
“현재 이 일이 안보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 분석 중입니다. 결과는 아직이지만, 기밀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으음!”
“눈 가리고 아웅일 수 있으나 박태용 씨의 회복에 관한 이유는 다른 것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마침 적당히 꾸며서 대기 좋은 이유도 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서류상 박태용은 산마루 길드 산하 연구소에서 개발한 신약의 임상 실험에 참여한 거로 되어 있었다.
선우현이 가리킨 것은 재인이 그를 치료한 사실을 감출 수 없다면, 다른 이유를 대자는 것이었다. 신약의 부작용을 앓는 박태용을 재인이 치료한 거로 둔갑시키자는 뜻이었다.
“전 찬성이에요.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를 얕은 수긴 한데, 당장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맞습니다. 이재인 씨한테 사람을 치료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 한은 언젠가는 밝혀질 사실입니다만, 시간이 필요한 것도 맞습니다.”
“그런 생각은 곱게 접어 두세요. 우리 재인 씨는 하시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실 거예요. 앞으로도 지금처럼요.”
“진정하십시오. 저희 쪽도 이재인 씨에게 그런 일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게 가능한 분도 아니시고요.”
“잘 알고 계시네요. 그 생각이 바뀌지 않으셔야 해요.”
“믿질 않으시는군요.”
선우현이 짐짓 안타깝다는 듯 과장되게 어깨를 늘어뜨렸으나 박연화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재인에게 연락을 받고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군사 기밀로 지정하는 문서를 꾸려서, 정확히 박태용이 깨어나기 직전에 연구소를 방문한 사람이었다.
상황 판단도 빠르고 집요하기로는 스토커 못지않은 사람이 선우현이었다. 그는 재인을 강제하지 않겠다고 했지, 재인의 주변을 통제하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선우현은 재인이 각성제 부작용 환자를 다시 치료하는 일이 없도록 주변을 통제하고 남을 사람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이 상황이 나쁘진 않아. 치러야 하는 대가만 적당하다면 한국이라는 거대한 보호막이 생기는 건 괜찮은 상황이야.’
말은 까칠하게 했지만, 박연화는 내심 선우현의 등장을 반기고 있었다.
일개 길드가 나서서 정보를 통제하는 것보다 확실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나서는 게 당연히 효과가 좋았다. 무엇보다 상대는 이미 한 차례 재인에게 도움을 받은 상태라 다른 어떤 곳보다 훨씬 우호적이었다.
“결론이 어느 정도 난 것 같네요. 그럼 저도 한마디 할게요.”
연구소 내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 의견이 합의점을 찾았다. 사실 굳이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선우현이 내놓은 답이 제일 정답에 가까웠기에 동의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사람들, KH 길드와 산마루 길드에서 대표로 나온 사람들과 연구원, 의료진 마지막으로 키퍼 일행까지 두루두루 둘러본 박연화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친분을 내세워 재인 씨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하지만 태용이는…….”
“아니요. 세상에 안타까운 사람은 수두룩해요. 그 모든 사람을 재인 씨가 구할 수는 없어요. 재인 씨는 신이 아니에요. 재인 씨한테 누군가의 생사를 선별하게 하지 마세요. 그럴 의무도 없으시고 그런 일을 원하지도 않으세요.”
“…….”
“다음번도 이번처럼 잘 풀릴 거라고 장담할 순 없죠. 제 말을 이해하셨을 거로 생각해요.”
박연화는 마지막 말을 산마루 길드 측 대표, 선우현과 차례로 눈을 맞추면서 뱉었다. 가벼운 말투로 꺼낸 말이었지만, 그 밑에 깔린 경고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절대로 재인을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이용하지 마라. 만약 이 말을 어기는 경우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 보복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약속하지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 크흠!”
“말조심하세요.”
“예, 예. 재인 씨는 절대 거위 같은 게 아니지요.”
“…….”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다는 우화를 인용하려는 선우현을 박연화가 째려봤다. 흔하게 인용하는 문장이지만, 배를 가른다는 표현을 재인한테 사용하는 게 거슬렸다. 거위에 비유하는 것도 별로였고.
“혹시 파랑새는 괜찮습니까?”
“파랑새……. 괜찮네요.”
“파랑새가 곁에 있을 때가 행복한 거란 걸 잘 압니다. 다른 파랑새를 찾을 생각도 없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게 둘 생각도 없습니다. 곁에 있을 때 딴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끔 잘 대해 줄 겁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겠어요.”
거위에서 파랑새로 바뀐 후 내놓은 선우현의 말에 박연화가 날카로운 눈빛을 거뒀다.
박연화와 다르게 몇몇은 완벽하게 수긍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키퍼 부대의 중령인 선우현이 그렇게 말하는데 그 말에 반박할 사람은 없었다.
* * *
클로버 엔터에선 김 실장과 최상호가 재인의 독립영화와 차기작 스케줄을 위해서 발품을 팔고, KH 길드에선 박연화 등이, 키퍼 부대에선 선우현 등이 각성제 부작용 환자 치유 건을 조용히 마무리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재인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방 하나는 등산이랑 캠핑 장비 전용 방으로 쓰실 거예요. 옷이랑 장비가 상당히 많아서 따로 보관할 방이 필요하시대요.”
“주방은 조리대를 널찍하게 만들고 싶어요. 집에 베이킹을 배우는 사람이 있거든요.”
“이 층 방의 화장실 세면대는 높이 조절이 되는 거로 바꾸고 싶어요. 갓난아이가 있어서요.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아이가 크면 쓰기 편하게 세면대 높이를 낮출 수 있게요.”
“정원 수돗가 넓이를 넓히고 무릎 높이로 물을 채울 수 있게 고쳐 주세요. 조카들이 여름에 물놀이를 할 수 있게요.”
독립할 때 집 리모델링을 맡았던 업체를 만나 부모님이 입주할 집을 어떻게 꾸밀지 상의하고 있었다.
출연을 확정하긴 했어도 온전한 대본이나 참고 자료가 손에 들어오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급한 일들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더 바라시는 부분이 있으시면 미리 말씀하세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솔직히 두 분 다 집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는 타입은 아니라서요.”
“형 말이 맞아. 난 지금 넣은 오디오 룸이나 피트니스 룸도 과하다고 생각해. 분명 쓰지도 않고 그냥 비워 둘걸.”
“주말마다 등산이나 캠핑하러 다니신다고 하셨죠? 부럽네요. 그럼 짐 옮기시기 편하게 주차장이랑 가장 가까운 방을 장비 방으로 고칠게요. 수돗가는 이쪽으로 옮기고 여기를 선룸으로 개조해서 캠핑 분위기도 내실 수 있게 하고요.”
“괜찮네요. 그렇게 바꾸면 아이들 노는 거 지켜보기도 편하겠어요.”
인테리어 업체는 KH 길드원의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 공사를 대부분 맡아서 하는 곳답게 따로 요구하지 않아도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설계에 반영했다. 덕분에 상담은 원활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럼 이 조건에 맞춰서 설계한 뒤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수고하세요.”
“수고.”
“들어가세요.”
재인은 편하게 말을 놓는 재현을 말리려다 말았다. 수년간 한 달에 두세 번가량 만났다고 하더니 상대도 그런 태도를 꽤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여간. 사무실에 드나드는 직원이랑 다 아는 사이일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많이 건물을 부숴 먹었다는 건지.’
리모델링에 VIP 할인을 받는 유례없는 서비스를 받을 정도로 자주 이용했다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녁은 먹고 들어갈까? 현서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우응. 그거요. 밥 이렇게, 이렇게 해서 먹는 거요.”
“주먹밥?”
“네.”
“닭갈비 집에서 먹은 거 말하나 보네.”
허공에서 죔죔 하는 아이의 손동작에 두 사람은 무슨 메뉴를 말하는 지 바로 알아들었다.
현서는 며칠 전 닭갈비 집에서 직접 주먹밥을 만들어서 먹은 게 재밌었는지 다시 가고 싶어 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넓은 팬에 가득 채워진 닭고기와 채소가 아닌 김 가루가 뿌려진 그릇을 보고 기뻐하는 아이에 재인이 속으로 키득거렸다.
소시지와 콘 샐러드, 메추리알 조림까지 현서가 좋아하는 밑반찬이 상 위에 놓였다. 괜히 이곳에 다시 오고 싶어 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거는 삼촌 거예요. 이제 작은 삼촌 거 만들어 줄게요.”
“고마워. 잘 먹을게.”
“네. 이히히.”
“삼촌 거는 크게 만들어 줘. 주먹만 하게.”
“알았어요.”
아이가 느린 속도로 쭈물쭈물 주먹밥을 만드는 걸 구경하면서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재현의 폰에 알림이 떴다. KH 길드원 중 재인의 팬들이 모여서 만든 단톡방 알림으로 메시지 숫자가 무섭게 늘어나고 있었다.
‘뭐지?’
재현은 평소에 단톡방에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자주 들어갔는데, 언젠가부터 재인에 관한 주접이 너무 많아서 자연스럽게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기사 캡처?’
단톡방에서 화제가 된 것은 재인에 관한 기사였다. 업로드됐다가 빛의 속도로 삭제된 기사였는데, 몇 분 되지도 않는 짧은 시간 기사를 캡처한 사람이 있었는지 캡처 이미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단독 배우 이재인 신약 임상 실험 환자 완치시켜-네티즌 사이에서 배우 이재인이 신약 임상 실험에 자원해 부작용을 앓던 오빠를 치료해 줬다는 팬의 글이 화제가 되었다.
……중략……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치유사로도 이름이 높은 이재인이 치료한 환자가 최근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신약 초능력 각성 보조제 JX 부스터의 부작용 환자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기사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삭제된 오빠를 구해 줘서 고맙다고 파랑새에 올린 글 캡처까지 모두 확인한 재현의 인상이 무섭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