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90)
#190. 기자 회견
“성화!”
화려한 왕관을 쓰고 한 손에 홀을 든 재인의 입에서 스킬 이름이 나온 직후였다. 이 층 집채만 한 몬스터의 전신에 주홍색 불꽃이 붙었다.
“와, 씨! 깜짝이야!”
“우와! 뭐야?”
“열기는 없어. 자리 지켜!”
“누구 스킬이야?”
보스 몬스터의 거대한 몸에 느닷없이 발생한 불꽃에 전방에서 직접 상대하던 탱커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놀라지 마시고 위치 지키십시오. 이재인 씨 공격 스킬입니다.”
강렬한 불꽃이 보스의 전신에 붙었어도 전투 위치를 이탈한 탱커는 없었다. 오더 담당의 설명이 빠르기도 했지만, 전투 경험이 많은 탱커들이라 화염 속성 대미지를 각오하고 자리를 지켰다.
순식간에 정리된 소란이지만, 그 사이 보스에 대한 공격이 멈췄었다. 초보 같은 실수였다.
다만 다행인 점은 그런 실수를 상회할 정도로 재인의 공격은 효용이 좋았다.
-크갸아아아악!
-쿠웨에엑!
잠시라도 편하게 두면 지면을 내려찍어 충격파를 발생시키거나 괴성과 함께 독성 브레스를 뿜어내는 보스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기 바빠서 스킬을 쓰지 못했다.
“보스가 정신을 못 차리는데. 이거 괜찮네.”
“재인 씨 공격 스킬 없다고 하지 않았어?”
“무기에 붙은 스킬이야.”
“그래? 스킬 되게 좋다. 무기 잘 뽑았네.”
재현은 형을 슬쩍 돌아보고 동료의 말에 대꾸했다. 전용 무기를 전부 착용할 때마다 되게 부끄러워하는데 효과는 말도 못 하게 좋았다. 없길 바라지만, 오늘 같은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면 꼭 필요한 스킬이었다.
오더에 따라 정신없이 방어할 때는 옆에 선 동료와 한 마디 나눌 틈도 없었는데, 불꽃이 붙은 후에는 그렇지 않았다. 괴력은 여전했지만, 준비 동작 없는 돌진도 하지 않았고, 점프해서 이동하려 들지도 않았다.
“이야! 저건 그냥 덩치 큰 샌드백이네.”
재인은 자신과 오더 담당을 보호하느라 앞에 선 길드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쓰기 전에는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성화에는 보스 몬스터의 체력을 눈에 띄게 줄이거나 하는 효과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효과가 있었다. 지속적인 대미지를 주면서 보스 몬스터의 정상적인 스킬 사용을 방해했다.
“좋군요.”
“커맨더!”
“이재인 씨 스킬이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맞아요.”
“전투 끝날 때까지 보스한테 쓴 스킬 끊기지 않게 유지하실 수 있습니까?”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재인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 당황하기도 잠시 상대가 누구인지 깨닫자 호기심이 들었다.
재현이 자주 얘기했던 커맨더였다. 대규모 전투 시 길드원 전원을 지휘하거나 전술 팀이 투입되는 특수전을 지휘하는 KH 길드에서 길드장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
“KH 길드원 여러분 커맨덥니다. 지금부터 현장 지휘를 맡겠습니다. 여러분 뒤에 이재인 씨가 계십니다. 설마 이재인 씨가 보고 계시는데 실수하시는 분이 계시진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
커맨더가 도착하자마자 현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름 체계적이라고 보였던 전투의 양상이 커맨더 한 명의 가세로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길드원의 투지를 불러일으킨 건 좀 민망했지만, 덕분에 전장 분위기가 한결 나아져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 시스템?’
사실 민망함을 오래 느낄 틈이 없었다. 상상도 못 해 본. 시스템이라고 착각할 만한 상황이 벌어져서였다.
커맨더가 스킬을 사용하자 눈앞에 3D 내비게이션이 켜진 것처럼 색색의 표식과 유도선 등이 생겨났다. 재인을 비롯한 길드원 전원의 몸에 각기 다른 색의 숫자가 생겨나고 같은 색의 타이머도 생겨났다.
“핑크 1, 2, 3 목표 지점까지 이동. 그린 1, 2, 3. 30초 후 타격. 카운트 시작합니다.”
“와아!”
“재인 씨는 블루 4입니다. 길드원 머리 위에 그때그때 표식이 생길 겁니다. 재인 씨가 집중해야 할 건 십자가 표식입니다. 치유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네.”
블루 4. 재인은 가슴에 새겨진 파란색 숫자를 확인하고 커맨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버프가 필요한 사람은 십자가 위에 역삼각형을 띄울 겁니다. 표식이 보이면 버프를 걸어 주십시오.”
“네.”
커맨더는 처음 지휘를 받는 재인을 배려해서인지 그가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전장의 지휘는 잊지 않았다.
길드원이 이동할 방향에 유도선을 그려 주고 사용해야 하는 스킬과 강도를 알려 줬다. 유기적으로 스킬이 들어가게끔 팀별로 카운트다운까지 했다. 쉽게 흉내 내기 힘든 재간이었다.
‘버프! 치유! 치유! 버프!’
재인은 마치 리듬 게임을 하는 것처럼 커맨더가 만들어 내는 표식에 맞춰 버프와 치유를 번갈아 걸었다.
정신없이 스킬을 걸어 댄 탓에 가득 차올랐던 신성력 게이지가 다시 뭉텅뭉텅 줄어들었다. 신성력이 줄어드는 것 이상으로 전황이 유리하게 돌아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 *
“KH 길드 커맨더라. 명불허전이군.”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현장뿐 아니라 주변까지 전부 통제하면서 전투를 지휘하는 모습은 감탄스러웠다. 괜히 민관 연합 작전의 지휘를 자주 맡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재인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전투 경험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커맨더의 지휘를 침착하게 따르면서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버프만으로도 충분한데, 저 스킬은…….’
해성이 알아 온 정보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버프를 쓸 수 있게 된 걸 알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알려진 것보다 더했다. 각성자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버프는 유명한 버퍼의 버프 효과를 가볍게 상회했다.
특히 보스 몬스터에게 건 지속형 스킬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고 효율적이었다.
“도우러 올 필요까지는 없었군. 재인 씨를 믿고 맡겨 두면 될 일이었어.”
처음 지휘를 받으면서 하는 전투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KH 길드원과 손발이 잘 맞았다. 그의 도움도 현장으로 급하게 다가오는 중인 키퍼들의 도움도 필요 없어 보였다.
재인이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김태오는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겠다는 마음도 있긴 했으나 그보다는 어느 장소에서나 빛나는 재인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김태오가 감탄하면서 지켜보는 사이 재인은 갑자기 눈앞에 뜬 메시지에 당황하고 있었다. 커맨더가 띄워 주는 표식 사이로 보이는 메시지 박스는 타이밍도 타이밍이었지만, 내용이 참 느닷없었다.
‘내가 뭘 했다고 변호사님이 갑자기…….’
재인은 주변의 KH 길드원한테 버프를 걸어 주면서 주변을 휙휙 돌아보았다. 혹시 김태오가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물론 김태오의 머리카락 한 올 찾지는 못했다.
‘하급 신관도 아니고 신성 기사는 또 뭐냐고.’
이름만 들으면 게임 직업인 성기사가 떠오르는 그런 직업이었다. 다만 그걸 김태오한테 시킬 용기는 없었다.
머리 좋고 눈치도 빠른 김태오라면 재인이 임명하는 순간 그가 다른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아차릴지도 몰랐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전투에 집중하자.’
당장 시스템을 열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재인은 얌전히 커맨더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신성 기사가 뭔지. 김태오는 어떻게 신앙을 증명했는지. 궁금한 건 많았으나 지금은 눈앞의 전투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 * *
[Z 스튜디오 테러, KH 길드 구역 던전 브레이크 사건 브리핑수도 초능력 특수여단 측은 2x일 일어난 Z 스튜디오 테러, KH 길드 구역 던전 브레이크 사건의 배후에 모 사이비 종교 단체가 있다고 전했다.
두 사건 현장에서 목격된 인물의 소속이 동일하다는 점과 현장에서 발견한 폭발물에 사용된 재료의 유사점 등을 증거로 들었다.
사이비 종교 단체 테러의 의도는 확실치 않으나…….]
재인은 수도 초능력 특수여단 대변인의 발표 이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고 있었다.
화신교에서 그를 노린 것은 사실이었다. 공식적으로 언론에 언급된 적도 없었고, 대변인 발표에도 재인이 테러 목표였다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온갖 기사에 사이비의 납치 대상이 되었다며 기정사실처럼 적혀 있었다. 이 좋은 화젯거리를 놓치기 싫어선지 Z 스튜디오에 그가 있었다는 사실과 엮어서 기사를 쏟아 내고 있었다.
“피곤하네……. 역시 이대로 덮는 건 무리인가.”
원래 스케줄대로라면 대본 리딩에 참석하고 다른 배우들과 연기 연습을 같이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습격이나 던전 브레이크 사건을 벌인 건 그가 아니었지만, 증언을 위해서 이곳저곳에 얼굴을 비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화신교의 타깃이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했다.
‘변호사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건지.’
핸드폰 화면 속 기사 타이틀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 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태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키퍼와 KH 길드는 스튜디오 습격과 던전 브레이크를 별개의 사건으로 여기고 있었다. 재인의 납치 시도와 던전 브레이크가 연관이 있다고 판단할 만한 증거나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키퍼와 KH 길드에서 공동 수사 계획을 세우던 도중 도착한 자료로 인해서 사건의 수사 방향이 바뀌었다. 두 사건 모두 재인을 노리고 벌인 사건이라는 걸 전제로 수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만한 자료를 어떻게 모았을까?”
“뺙! 뺙뺙뺙!”
“…….”
“뺙! 뺙뺙!”
“……알았어. 줄게.”
재인은 밀웜 통에 발을 얹고 시끄럽게 구는 혁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민할 게 많았지만,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성을 내는 녀석이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밀웜을 몇 마리 꺼내 혁의 그릇에 덜어 준 뒤 다시 기사 화면을 봤다.
그가 납치 목표였다는 내용이 없던 것처럼 기사 어디에도 이클립스에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는 내용은 없었다. 키퍼가 빌런한테서 자료를 받아서 수사한다는 사실은 밝히기 힘든 내용이니 당연했다.
“뺙! 뺙뺙뺙!”
“후우! 혁이 오늘은 정원에서 안 놀아? 거실에서 계속 놀 거야?”
“뺙! 뺙뺙!”
“……나가서 놀면 좋겠는데.”
“뺙!”
“기다려. 줄게.”
그새 밀웜을 다 먹고 또 달라는 혁에 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고민하고 있는데 먹을 것만 찾는 병아리가 오늘따라 꽤 얄미웠다.
‘에효! 병아리가 뭘 알겠냐. 그나마 한 마리씩 먹여 달라고 안 하니 다행이지.’
좀 전보다 몇 마리 더 추가해서 덜어 준 재인이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시간 됐다.”
소파에 바로 앉아 무음으로 해 뒀던 TV 소리를 켰다.
낯익은 얼굴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언젠가 일반인 모델 입장으로 만났던 KH 길드 홍보 실장이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KH 길드 담당 구역에서 벌어진 던전 브레이크에 관한 피해 보상안입니다.
피해 보상금 총액이 화면에 뜬 순간 수없이 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좌중의 시선을 모을 생각으로 총액을 자료 화면 제일 첫 페이지에 담은 보람이 있었다. 기자 회견장에 모인 기자 전원이 사진을 찍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플래시가 터졌다.
“충격 요법이 통하긴 하네.”
통상적인 위로금이나 복구 비용의 몇 배나 되는 금액으로 시선을 돌린다는 방법이 통하긴 했다.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영상이 너무 많이 남았어.’
대비는커녕 그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짐작도 못 한 탓에 영상 자료가 너무 많이 남았다. 주차장에서뿐 아니라 던전 브레이크 당시 KH 길드원들과 같이 전투한 영상도 많이 남았다.
키퍼와 KH 길드 양쪽에서 회수할 수 있는 만큼 했지만, 여전히 개인 영상들이 사이트에 업로드되곤 했다.
-위로비와 피해 복구비의 30%는 LC 그룹 고경섭 회장님께서, 30%는 JW 그룹 산하 한마음 재단에서 지원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예상치 못한 재벌 이름의 등장에 다시 한번 홍보 실장이 카메라 플래시에 뒤덮였다.
화제성이 큰 만큼 재인에게 쏠린 시선을 전부 가져갔으면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