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216)
#216. 조우
재인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꽁꽁 감싸고 있는 경호 팀에 고개를 저었다. 보호도 좋지만, 일단은 길 안내를 맡았으니 앞은 봐야 할 게 아닌가. 너무 열심인 경호 팀 덕분에 극성스러운 보호자인 재현이 같이 오지 않은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앞으로 쭉 가면 돼요.”
“네.”
하찬이 간 방향은 복잡하지 않았다. 아니, 복잡하고 뭐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사방이 전부 검붉은 기류가 가득한 공간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각 정보가 단순해서 그냥 지도에 새겨진 황금색 선만 따라가면 됐다.
“정지!”
지도와 황금색 선을 확인하면서 얼마나 전진했을까. 일행 뒤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온몸이 검붉은 적의 습격이었다.
-콰앙! 쾅!
-슈우웅!
검붉은 기운 속에 매복하고 있던 적들이 일행의 후방을 공격했다. 검, 창을 든 적들은 각성자의 공격에 몸이 절단되어도 갈가리 찢겨도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통각이 제거된 듯 막무가내였다.
“정리됐으면 다시 출발합시다.”
“네.”
예상보다 이른 적의 습격이었지만,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처치는 어렵지 않았다. 적 한 명당 각성자 십수 명의 공격이 쏟아지니 아무리 강해도 버티지 못했다. 재인이 있는 선두에서 적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선두는 습격을 안 받네? 왜지?’
이후로도 구조대가 공격당하는 일은 자주 일어났다. 적들은 선두를 제외한 위치에서 불시에 공격을 감행했다. 바닥에서 솟아나거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등 예측하기 힘든 위치에서 시간 간격도 대중없이.
다만 재인과 경호 팀이 있는 선두는 그런 공격에서 자유로웠다. 무언가 꺼려지는 것처럼 선두로 오지 않으려 했다. 정확히는 재인이 있는 근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재인 씨 혹시 무언가 스킬을 사용하는 중인가요?”
“아뇨. 다른 분들하고 같은 버프만 걸고 있어요.”
“그래요?”
“네, 주변으로 기운을 뿌려 두고 있긴 한데, 그건 다른 분들도 비슷하시잖아요.”
“네?”
재인의 보호를 명분으로 선두에 섰던 KH 길드는 슬슬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정도 것이지. 습격이 이십여 차례가 넘어가는 동안 선두만 무사한 건 누가 봐도 이상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다른 각성자들도 마찬가지인지 그들을 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던전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다고.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진작 세계를 구했겠지. 그래도 만약 가능하다면 그건…….’
적들이 무모한 습격도 시도하지 않는 기현상을 불러일으킬 사람은 선두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이런 우중충한 던전과는 단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삶의 의욕이 살아나게 만드는 재인뿐이었다.
“기운을 풀어놓은 범위가 어디까지예요?”
“제 몸을 중심으로 반경 25M 정도예요.”
“역시. 그럼 재인 씨. 혹시 더 넓게, 후방까지 닿게 기운을 풀어놓는 것도 가능할까요? 아무래도 적들은 재인 씨 기운이 꺼려지는 모양이라서요.”
“할 수는 있는데요. 반경 50M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그 이상 범위가 넓어지면 효과가 약해져요.”
“으음!”
신성력을 주변에 퍼뜨리는 일은 익숙한 일이었다. 유기 동물 보호 센터에 봉사 활동 하러 갔을 때도 자주 했고, 현서와 같이 살게 된 초기에도 거의 내내 그러고 생활했었다. 덕분에 운신을 자유롭게 하면서 유효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범위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범위는 재인을 중심으로 평소에는 반경 25M, 전용 무기 착용 시에는 그 몇 배였다. 그 이상 늘어나면 신성력 소모가 심했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풀어 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효과 역시 그다지 없었다.
‘사실 지금은 전용 무기 네 가지를 전부 착용한 상태라 몇 배는 더 넓어야 정상이지만.’
홀 하나만 사용하는 평소와 다른 지금 더 큰 효과를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성역을 벗어나자 느껴지기 시작한 어떤 존재의 강력한 존재감 때문이었다. 어찌나 강력하고 패도적인지 신성력 수발이 평소보다 원활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처럼 행동에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니어도 답답함이 느껴졌다.
‘후광에 강화 효과가 있긴 한데. ……켜는 게 낫겠지? 어휴! 시스템!’
좌우 구분도 안 되는 검붉은 풍경을 계속 보느니 빛나는 무언가를 보면서 이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비록 후광 스킬을 미의 신이라는 직업 이름과 같이 평생 밝히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이 깨지는 일이라도 말이다.
“어! 빛이? 재인 씨?”
“이렇게 하면 괜찮을까요?”
“네, 네. 허허, 허.”
일행의 후방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로 빛나는 재인을 본 KH 길드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신기한 사람이야.’
겨우 에너지를 풀어놓는 정도로 적의 습격이 막혔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재인이라 그러려니 했다. 그래서 언제 후방과 인원을 교대해야 하나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데, 알아서 문제를 해결했다.
“출발합시다.”
* * *
경호 팀과 하찬이 도착한 곳은 예상대로 신전이었다. 외벽 절반이 무너져 내려 내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저기!”
“어디? 아! 보인다.”
“어려 보이네. 쟤들이 재인 님이 찾는 애들 같지?”
“그런 거 같아.”
“컹! 컹컹!”
“하찬이가 짖는 걸 보니 맞네. 그런데 피부색이 왜 저래?”
무너진 건물 안에는 박원영과 친구들 그리고 키퍼 유니폼을 입은 사람 몇 명이 쓰러져 있었다. 드러난 몸 곳곳에 검붉은 반점이 커다랗게 난 상태로 정신을 잃은 모습이었다.
‘애들은 그래도 괜찮은데 어른 쪽은 난리군. 온전한 피부를 찾는 게 더 힘들어.’
예전 공략할 때처럼 자기를 믿으라고 시끄럽게 떠드는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저번처럼 상징물을 부숴야 할 거 같은데?”
“저거?”
“어. 그 조각상.”
“재인 님이랑 합류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이제 버프도 끝났잖아. 전투 길어지면 진짜로 걱정하실 거야.”
“컹!”
과거와 같은 패턴대로라면 상징물을 부수는 순간 수호자가 나타날 것이다. 강력한 무예와 이능을 지닌 수호자와의 전투는 길어질 게 뻔했다. 몇 박 며칠이 될 수도 있었고, 던전 안 사방에 퍼져 있던 모든 몬스터가 다 쫓아와 한 달이 다 되도록 싸우게 될 수도 있었다.
“컹컹! 컹!”
“하찬아! 어디 가?”
경호 팀원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상징물을 부숴서 적 전투 스타일을 알아보자는 쪽과 처음 목표대로 건물을 발견했으니 돌아가자는 쪽이었다. 두 팀의 의견 모두 타당한 부분이 있어서 대화가 조금 길어지던 때였다. 별안간 주변을 탐색하던 하찬이 한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쫓아가자.”
“재인 님이 그냥 두랬잖아.”
“그러다 다치면 어떡해.”
“괜찮을 거야. 그보다 빨리 결정해. 재인 님 계신 곳으로 돌아갈지, 저거 하나 깨워서 확인할지.”
“돌아가자. 시간 많이 지났어. 더 늦으면 진짜 걱정하실 거야.”
하찬이 뛰쳐나가면서 논쟁의 열기가 식어 버렸다. 재인한테 보여 줄 성과도 있으니 그만 돌아가는 것으로 의견이 합쳐졌다.
“길 찾기 힘들지?”
“어, 조금. 너무 멀리 나와서 방향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천천히 해. 이동하는 건 금방이니까.”
“어.”
각성 능력 중에 길 찾기 능력이 있는 팀원이 있어서 미로 던전이든 어디든 쉽게 쉽게 공략했는데, 이번에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던전 안에 가득한 기운 때문에 초능력을 쓸 때 제약이 생겼다.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라서 시간은 걸려도 재인의 곁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 * *
“컹컹!”
“하찬아!”
재인은 앞에서 걷던 경호 팀원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하찬에 반색했다. 시스템 지도로 자신을 향해서 오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반가움이 줄지는 않았다.
“재밌게 놀았어?”
“컹!”
“잘했어. 안 다쳤지?”
“컹.”
품에 뛰어든 묵직한 하찬을 받아 안자마자 치유를 걸었으면서 버릇처럼 직접 물어봤다. 걱정하는 마음을 아는지 하찬은 물을 때마다 꼬박꼬박 대답을 돌려줬다.
“같이 간 사람들은? 다치지 않았지?”
“컹!”
“그래. 다행이다.”
재인은 그렇다며 꼬리까지 흔드는 하찬에 낮은 웃음을 흘렸다. 신나게 싸우느라 저를 잊고 있던 녀석이 몇 시간 떨어져 있었다고 어리광을 부리는 게 귀여웠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목적지에 금방 도착할 것 같아요. 어서 가요.”
“예. 가시죠.”
하찬이 일행에 합류하고 나서 얼마 이동하지 않았을 때였다. 무너진 건물 앞에서 한 명의 팀원을 보호하듯이 감싸고 있던 경호 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호 팀은 황금빛 후광을 뿌리면서 나타난 일행에 무척 놀란 것 같았다. 다들 눈과 입이 동그래져서 보고 있었다.
“재인 님!”
“와! 재인 님이다.”
곧 정신을 차리고 다가왔지만,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던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간극이 재밌었다.
습격도 없이 이동하고 떨어졌던 일행과 만나서 잠시 분위기가 부드러워질 듯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무너진 건물 안에 쓰러져 있는 선발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검붉은 던전 안 기류와 같은 색으로 물든.
“이 건물에 도착하기 전에 여러 번 다수의 적을 상대했었거든요. 무언가를 지키느라 우리 일행을 막는 것 같았는데, 이 건물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저희는 저쪽 조각상이 의심스러워서 살펴보고 있었어요. 건물들은 다 부서졌는데 조각상만 멀쩡한 게 이상해서요.”
“아! 확실히 의심스럽네요.”
박원영 일행을 발견한 재인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 경호 팀이 나서서 막았다. 벽을 세우듯이 가로막는 한편 조사한 정보를 쏟아 냈다. 박원영 일행한테 쏠린 재인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건물 탐색이 끝나면 조각상을 부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그러는 게 낫겠어.”
그 정보는 재인에게보다 공략 방식을 결정할 길드장들에게 더 도움이 되었으나 일단 시선을 돌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오오오! 그오오오!
-쿠와아앙!
-게에에에!
길드와 키퍼 부대의 수뇌부가 모여 건물 공략 계획을 세우는 도중이었다. 사방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검붉은 기류 속에 숨어, 어느 방향에서 들리는지 분간할 수 없었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동하면서 봤던 숫자와는 비교되지 않는 많은 숫자의 적이 몰려온 것 같았다. 울음소리가 지금까지 듣던 것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크고 다양했다.
“전투 준비!”
목표로 했던 일행을 발견한 기쁨도 잠시였다. 일행은 재인을 비롯한 치유사와 버퍼들을 중심에 두고 바깥을 경계했다. 어떤 적이 튀어나오든 대처할 수 있도록 무기를 든 손에 힘을 주고.
-콰아앙! 쾅! 쾅!
-그웨에엑!
각성자들이 스킬을 시전하는 소리와 공격에 적중당한 몬스터의 고통스러운 비명. 각성자와 적의 병기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그나마 온전하던 건물 벽이 무너지는 소리까지. 전장은 다양한 소리로 가득했다.
-이계의 존재여!
요란한 전투 소음 사이로 낯선 목소리가 퍼졌다. 귀가 아닌 머릿속에 직접 말을 전달하는 것처럼 소란 가운데서도 정체 모를 상대의 뜻은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뭔 소리야!”
“닥쳐! 망령 주제에 무슨 헛소리야!”
“죽여!”
“입 다물어!”
처음 누군가를 부르는 문장 뒤로 한 문장이 더해진 후였다. 경호 팀을 시작으로 각성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목소리의 주인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 몸을 내게 바쳐라!
누구의 몸을 노리는지 전장의 모두가 알 수 있도록 거대한 검붉은 기운으로 재인을 옭아맨 상대에 전원이 분노했다. 내뱉은 말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닥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신성력으로 기운을 밀어내던 재인은 속으로 수다스러운 상대가 멍청하다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화가 잔뜩 난 각성자들이었다. 더 자극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