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34)
#34. 연기하는 재미
재인이 치유에 나서기 전, 재현은 사육사로부터 고삐를 넘겨받았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주변에서 만류해도 단호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쉬이. 진정해.”
그런 동생의 생각을 모르는 재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달래면서 다가갔다.
“괜찮아. 내가 낫게 해 줄게.”
제압당한 말은 거칠게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힘을 다 썼는지 아까처럼 큰 소리로 울지도 못했다.
재인은 정화 스킬을 걸기 전에 먼저 말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의 손이 위험하지 않다고 알려 줄 의도였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겁주지 않으면서 천천히 다가갈 요량이었다.
-푸릉푸릉!
기운이 많이 빠졌지만, 적게나마 성을 낼 힘이 남았는지 말이 입술을 튕겼다. 명백히 재인의 손이 닿는 걸 불쾌해하는 모습이었다.
재인은 말이 그러거나 말거나 다가갔다. 말이 한 번 더 푸르릉 소리를 내며 경고지만, 무시했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단단히 제압당한 상태였다.
“잠깐만 만질게.”
갈색 갈기의 말은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박연화의 디버프와 재현의 힘을 당해 내지 못했다. 미약하게 머리를 흔드는 게 말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재인은 그런 말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정화 스킬을 걸었다. 찐득찐득 불쾌한 감각이 손바닥 안에 달라붙어도 꾹 참고 꿋꿋이 신성력을 밀어 넣었다.
키에에에엑!”
정화 스킬을 사용한 직후였다. 효과가 있는지 말 울음소리와 다른 소리가 조용한 주차장 허공에 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갈색 말의 눈과 몸에서 검은 연기가 줄기줄기 새어 나왔다.
“숀. 성수 준비해. 보호막 밖으로 튕길 수도 있으니까, 주의하고.”
“OK.”
숀은 박연화의 말에 단검에 성수를 뿌렸다. 말의 몸에서 빠져나온 몬스터가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전에 제거할 계획이었다.
“지금!”
재인의 바로 옆 말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주시하던 박연화가 숀에게 신호를 보냈다. 직후 숀의 단검이 검은 연기를 갈랐다.
“끼에엑!”
말의 몸을 차지했던 검은 안개 같은 몬스터는 단칼에 베여 단말마만 남기고 사라졌다.
“감독님.”
“예?”
재인이 몬스터가 빠져나간 뒤 힘이 빠져서 다리를 후들거리는 말을 회복시켜 줄 때, 박연화는 낮은 목소리로 현장 책임장인 감독을 불렀다.
“보안 유지의 중요성을 다시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죠?”
“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재인 씨는 KH 길드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길드원 가족이라 각별히 생각하고 있고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압니다.”
감독 역시 오늘 있었던 일이 언론을 타는 걸 바라지 않았다. 담당 기관에 보고가 들어가면 미디어에 단신으로 짤막하게 기사가 나긴 할 테지만, 그걸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닐 마음은 없었다.
“우리 스태프들은 전부 믿을 만한 사람들입니다. 도움을 준 배우의 개인사를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닐 만큼 경우 없지도 않지요.”
재인의 능력도 마찬가지. 재인은 배우로서 출연 계약을 했을 뿐이었다. 보호막 아이템을 써서 사람들을 보호해 준 일만으로도 감사하고도 남았다. 괜한 소문을 퍼트려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맹세코 없었다.
가끔 이런 일을 홍보에 쓰는 일도 있긴 했지만, 감독은 그런 저급한 행동을 경멸했다. 무엇보다 그는 배우와 스태프가 위기를 겪은 걸 영화 홍보에 쓸 정도로 본인 작품에 자신 없진 않았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끝으로 박연화의 말이 끝났다. 그녀가 꺼낸 말의 시작은 부탁이었으나 끝은 경고에 가까웠다. ‘함부로 재인의 정보를 팔아먹지 마라.’ 실제 경고의 대상은 감독보다는 삼삼오오 모여서 재인을 훔쳐보는 각성자들이었다.
‘하, 하하. 박연화 팀장님도 참.’
재인은 가진 힘을 숨기거나 아낄 마음이 없었다. 사람을 치료해 주거나 정화해 주는 일에 무슨 사명감을 느끼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전부 소모해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차오르는 신성력을 고이 모셔 둘 마음도 없었다.
그런 얘기를 미리 해 두지 않아서 공연히 박연화가 나서게 되었다. 사실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재인도 재현과 팀원들도 그간 너무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었다.
“오늘 와 주셔서 고마웠어요, 팀장님. 제시간에 와 주신 덕분에 다친 사람도 없이 무사히 정리됐어요.”
“호호호. 아니에요, 재인 씨. 당연히 와야죠.”
몬스터의 침입은 재인의 빠른 대처와 KH 길드 지원팀의 활약 덕분에 순탄하게 막아 낼 수 있었다. 마지막엔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긴 했으나 그것도 재인이 나서자 부드럽게 풀렸다.
* * *
유령형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 낸 다음 날, 촬영장은 지난 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전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굵직한 전선을 끌어다 조명에 연결하고, 전날 촬영을 마친 장면과 똑같은 위치에 소품을 배치했다.
재인 역시 그런 사람들과 같았다. 전날 있었던 몬스터 침략은 잊은 듯 촬영 준비에 한창이었다.
“푸르릉.”
“아이고, 이걸 어째. 죄송합니다. 이 배우님.”
“하, 하하. 괜찮아요.”
재인은 축축해진 목덜미를 옷소매로 닦으며 멋쩍게 웃었다. 그나마 연습용 의상이라서 괜찮았지, 만약 촬영용 의상이었으면 조금 곤란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게 이 녀석들이 친근함을 표현하는 거라서요.”
“……네. 괜찮아요.”
목덜미에 연신 축축한 주둥이를 비비면서 간지럽히는 해님을 말리면서 하는 사육사의 말에 재인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컹컹!”
“어라? 하찬이?”
해님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에 곤란해하는 걸 알았을까. 매니저와 공터 바깥에서 기다리던 하찬이 달려왔다.
이제까지 한 번도 하지 않은 낯선 행동에 재인이 멈칫거린 사이 하찬은 매니저를 뿌리치고 온 목적을 달성했다. 좋아하는 재인과 재인에게 치대는 말 사이에 끼어든 게 그것이었다.
“크르릉!”
“그만. 하찬아, 그만해.”
재인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하찬을 제지했다. 하찬이 짖는 소리에 말이 놀랐는지 앞발로 땅을 긁어 대는 것도, 그런 말 쪽으로 다른 말들이 다가오는 것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히이잉!”
“푸르르릉.”
“히이이잉!”
“크르릉!”
진짜로 심상치 않았다. 하찬이 한 마리를 상대하려고 마장 안의 다섯 마리 말이 전부 모여든 게, 꼭 먹잇감을 보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 같았다. 하찬이 쫓아내려 그르렁거렸지만, 수적으로 심하게 열세였다.
“하, 하, 하. 말들이 참 기운차네요.”
“죄송합니다. 이 녀석들이 오늘따라 기운이 넘쳐서…….”
재인은 말들의 행태에 눈이 등잔만 해졌다. 대체 이게 무슨 배짱인가. 옆에 있는 사육사를 믿는 건지. 아니면, 하찬이 짖기만 할 뿐 자기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건지. 말들은 겁 없이 몸으로 밀면서 다가왔다.
“크르릉.”
“……안 될 거 같은데.”
“끼잉.”
“미안. 그건 안돼.”
하찬이 저를 도와 달라는 듯이 올려다봤지만, 재인은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같이 촬영할 말들이었다. 다치게 둘 수 없었다.
“먀아앙!”
“헉!”
저를 도와 말을 상대해 주지 않아서 화가 난 걸까. 집 밖에선 한 번도 작은 고양이로 바뀐 적 없던 하찬이 변신했다.
순간 재인은 앞뒤 재지 않고 바로 하찬을 안아 들었다. 작은 몸이 앞발에 차일까 겁나서 안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먀앙. 먕, 먕. 먀앙.”
“……하찬아.”
그러나 재인은 곧 겁을 먹었던 걸 후회했다. 그의 품에 안긴 하찬이 놀리듯이 말들을 보면서 냥냥 펀치를 날려 댔기 때문이었다.
기세등등한 꼴이 딱 덩치 큰 형을 불러와서 놀이터를 제압한 꼬마 같았다.
재인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그의 품을 차지하고 뻐기듯이 말들을 놀리는 하찬이 삐지지 않도록.
이후 촬영 연습은 고양이로 변한 하찬을 패딩 안에 품고 진행했다. 그래선지 말들이 더는 재인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거나 목덜미에 주둥이를 비비면서 치대지 않았다. 그제야 방해 없이 연습할 환경이 조성되었다.
“자, 자. 정리합시다. 배우들은 착장하고 오시고요. 우리 스태프들은 바닥에 난 발자국 꼼꼼하게 지워 주세요.”
“네.”
수차례 똑같은 상황을 연기하고 액션 배우들과 합을 맞춰 본 뒤에야 연습이 끝났다. 재인과 배우들은 조연출의 지시대로 분장실로 향했다.
* * *
-연습한 대로만 합시다. 연습한 대로만요. 안전하게, 아셨죠?
-……좋아요. 촬영갑니다.
-액션!
위험한 장면이라서 그런지 촬영 개시 신호를 주기 전 감독의 말이 많았다. 안전에 관한 것이라 여러 번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이놈들! 감히 누구를 해하려는 것이냐!”
“히이이이힝!”
갈색 말에 탄 채 해님의 말고삐를 쥔 재인이 한설록과 잠채꾼들의 사이를 갈랐다. 직후 재인은 해님의 실력에 감탄했다.
해님은 괜히 베테랑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중요한 순간이 되자 하찬과 실랑이를 벌였던 건 장난인 양 능숙하게 연기를 해냈다. 앞발을 치들고 다른 배우들을 위협하기도 하고, 뒷발로 자갈을 튕기거나 차는 시늉을 했다.
“손 떼라, 도적놈들아!”
“우와악!”
“말을 잡아!”
“겁먹지 마라. 상대는 한 놈이다.”
-컷! 다시 한번 갈게요.
해님이 난동을 부리는 탈출 장면은 중간에 여러 번 끊어 가며 촬영했다. 블루 스크린을 한쪽에 두고 촬영하기도 하고, 작은 카메라를 여러 개 배치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컷! 좋았어요. 이번에는 조이선이 한설록 다리를 좀 더 과장되게 잡고 늘어져 봅시다. 설록도 다리랑 뒷덜미 같이 당겨질 때 좀 더 절규하는 표정 지어 주시고요.
몸싸움을 못 하는 허당 양반인 조이선과 한설록은 몇 명 되지 않는 잠채꾼과 처절하게 개싸움을 벌였다. 머리채를 잡아 뜯거나 허리춤을 잡고 매달리기도 했고, 어깨를 물어뜯다가 부채로 두드려 패기도 했다.
-오케이, 컷! 수고하셨어요. 잠깐 정비합시다.
코믹한 개싸움 장면을 촬영한 덕분인지, 배우들은 힘든 액션 장면을 촬영하는 중인데도 틈만 나면 웃기 바빴다.
재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래 성격과 백팔십도 다른 조이선을 연기하는 게 웃겨서 수시로 폭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하.”
“아이고. 머리는 산발해서 뭐가 그리 재밌다고 웃으세요?”
“아까 도정환 배우가 가랑이 차였을 때 표정이요.”
“아! 스크림.”
“풉!”
로드 매니저가 덮어 주는 담요를 여미면서 세트를 벗어나는 순간에도 재인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코믹한 장면이라서 배우 전체가 과장된 표정을 지었는데, 개중에 한 배우가 지은 절망하는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그래도 곧 다음 촬영 들어가야 하니까 진정하세요. 차 드릴까요?”
“생수 먼저요.”
처음 연기를 배울 때 이선재 선생님이 그랬다. 자신이 가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역할을 맡았을 때 배우라면 거부 먼저 말고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 아니야.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같은 생각을 가지고는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없다면서 해 준 충고였다.
재인은 그 충고를 오늘 촬영하는 장면에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악다구니를 쓰면서 개싸움을 벌이는 짓은 평소의 그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라면 경찰에 신고한 뒤 증거를 남기기 위해 촬영하든 녹음하든 했을 것이다.
‘이런 게 연기하는 재미인가?’
자신과 전혀 다른 성격, 행동을 연기하는 게 거북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입어 보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앞으로 또 어떤 배역을 맡게 될지 기대됐다.
‘그래도 지금은 조이선 역할을 잘 해내는 게 먼저지.’
다음 장면은 말을 타고 숲속을 달리면서 추격을 뿌리치는 장면이었다. 개싸움 장면 전에 찍은 직선 코스의 승마 신과는 난도가 달랐다. 실수하지 않도록 집중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