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42)
#42. 마지막 촬영
사진집을 증쇄한다는 게 현실이 맞나? 잡지도 아니고 어떻게 겨우 하루 만에 사진집 오천 권이 다 팔릴 수 있는지. 뻔히 눈앞에서 들었는데도 믿기 힘들었다.
“작품 구매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중에 최현 작가님한테 말씀드릴게요.”
“네.”
재인은 최현의 사진을 사는 건 포기했다. 통화하는 사이에도 모니터에는 여전히 작품 구매 신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에겐 구매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같이 작업할 때는 가지고 싶은 사진을 미리 얘기해 둬야지.’
작품 구매에 관한 부분은 나중에 알았다. 굳이 직원을 찾을 필요 없이, 갤러리 입구 쪽에 놓인 안내서 안의 카드에 작품 번호를 써서 건네면 됐다.
챙겨 온 꽃다발을 선물하고 최현 작가한테 직접 갤러리 안내를 받느라, 안내서를 보지 못한 재인만 방법을 몰랐었다.
“기다렸어?”
“컹!”
“착하다. 갤러리에 사람 많아서 그랬어.”
“크헝.”
사람이 많지 않았어도 전시회에 하찬을 데리고 가진 않았을 테지만, 모른 척 따라오지 못해 서운해하는 걸 달랬다. 징징거리는 걸 금방 그만두는 게 기다리며 잘 얻어먹은 모양이었다. 지난 오디션과 다르게 간식을 미리 준비해서 재현에게 맡긴 효과가 있었다.
“오래 기다렸지? 이제 가자.”
“별로. 금방 나왔잖아.”
“생각보다 사람이 많더라고. 나중에 한가할 때 한 번 더 들를까 봐.”
“그래.”
사진전을 구경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사진에서 재인으로 옮아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환상처럼 보이는 사진 속 주인공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신기했는지, 관람객들이 사진이 아닌 그만 쳐다봤다. 계속 있다가는 사진전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재현아. 혹시 사진집 필요해?”
“아니.”
“역시 필요 없지?”
“이미 주문했어. 사진집은 어젯밤에 사이트에 올라왔거든.”
사진집이 온라인 서점에 등록된 것은 사진전 전날이었다. 이미 구매한 후였다. 재현과 팀원들은 재인보다 더 사진집 입수에 적극적이었다.
“최현 작가님이 열권 보내 주신다고 했는데, 남겠다.”
“……남으면 나 줘.”
“응?”
“나 줘.”
“그래.”
사진집은 김나은이 주문할 때 따라서 열 권을 주문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한 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 한다는 얘기에 많이 주문했다.
‘뭐랬더라? 감상용 한 권, 소장용 한 권, 전파용 한 권까지 최소 세 권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김나은을 비롯해 팀원들은 신년 선물 목록에 재인의 사진집을 넣어야 한다느니 어쩌니, 했었다. 나아가 길드 휴게실과 의무실, 자료실에도 비치하고 자매결연 길드인 산마루에도 선물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연말에 사진전도 열다니, 대단하네. 난 사진집만 나올 줄 알았거든. 보통 연말에는 전시회나 공연장 자리가 없다고 들어서 말이지.”
“최현 작가님 옆에 실력 좋은 에이전시가 있더라고.”
실력 좋고 기세 좋은 에이전시가 갤러리 안에 있었다. 그녀는 최현의 의뢰로 전시회 및 사진집 출간까지 전부 도맡아서 진행하고 있었다. 무척 능력이 좋아 보였다.
“그만 가자.”
“어.”
최현 작가의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은 몇 달 전 아직 이쪽 세상에 적응은커녕 거듭된 큰일에 어리둥절한 상태였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 사진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감동을 주는 기분은 참 묘했다.
* * *
>조선 탐정 한설록>의 로케이션 촬영 현장은 다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니 평소라면 일찍 업무를 마치고 가족이나 지인과 시간을 보냈을 테지만, 촬영장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늘이 시커먼 게 눈이 내릴 것 같긴 한데.”
“오면 좋겠지만, 안 오면 어쩔 수 없죠. 더 기다리기도 뭐하니, 눈 효과 팀한테 전부 맡겨야죠.”
“…….”
“솔직히 눈 효과 팀이 꾸며 주는 숲이나 건물 마음에 드시잖아요.”
“그런 부분은 당연히 마음에 들지. 그래도 강설 장면은 실제 눈이 내리는 장면만 못해.”
“그건 그렇죠.”
눈 효과 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실제로 눈이 내리는 모습을 촬영한 것과 강설기로 눈을 뿌리는 모습을 촬영한 것은 천양지차였다. 아름다운 건 같아도 화면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달랐다.
“너무 많이 와도 CG 팀이 고생해요. 눈송이 하나하나 지운다고 생각해 봐요. 그런 요청 했다가는 아마 감독님 목을 조르려고 할걸요.”
“아, 아. 그거 뭐였지? 주인공 남녀가 얼어붙은 언덕에서 눈덩이 굴리고, 썰매 타고 하던 거.”
“……제목이 뭐였더라? 눈사람 팔 잡고 키스하던 장면 말씀하시는 거죠?”
“어. 딱 그 장면처럼만 눈이 내려 주면 좋은데.”
“그게 눈송이 굵다고 CG 팀한테 지워 달라고 했던 작품이에요. 시간 많이 걸렸다고 인터뷰에서 봤는데.”
“…….”
감독과 조감독 역시 다른 스태프처럼 촬영 준비를 확인하고 다니면서 눈이 내렸으면 하고 얘기하고 있었다.
사실 촬영 준비는 이미 마친 상태였다. 배우들도 연기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문제의 눈 효과 팀이 기초 작업도 해 둔 상태였다.
초조한 심정으로 하늘만 올려 보고 있길 한참, 하나, 둘, 하늘에서 반가운 손님이 내려왔다.
“촬영 준비! 배우들 스탠바이해 주세요!”
추위와 기다림에 지쳐 가던 사람들이 활기를 되찾았다. 스태프들은 각자의 자리로 달려갔고, 배우들은 덮고 있던 담요와 패딩을 내려놓고 지정된 위치로 향했다. 기다리던 설경 추격 신의 촬영 시작이었다.
-레디, 액션!
조이선으로 분한 재인을 비롯해 한설록 역의 김현민, 와송 역의 이주환이 눈 쌓인 언덕에 엎드려서 무언가를 관찰했다.
“금이 그들의 손에 넘어가게 두어선 안 되네.”
“나으리.”
“설록 마음은 이해하나 무리일세. 우린 겨우 셋이야. 셋 중에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이라고는 와송뿐이지 않나.”
“자네도, 자네도 알지 않나. 저들이 금을 어떻게 쓸지.”
“그건 알고 있네만…….”
설록 무리가 감시하는 것은 불법 광산에서 캐낸 금을 옮기는 사람들이었다. 구리나 다른 금속으로는 위조 화폐를 제조하고, 금과 은으로는 외국에서 병장기와 밀수품을 들여오려는 이들이었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아야 했다.
“에잇! 내 다시 자네를 찾는 것이 아니었어.”
설록한테 발칵 짜증을 냈지만, 조이선이라고 부정적인 말만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무책임한 그라도 납치당한 백성들이 엄동설한에 매질을 당하며 캐낸 광물이 저런 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이는 게 속 편할 리 없었다. 그저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분통이 터지는 것뿐이었다.
“와송. 혹시 자네 이거 쓸 줄 아는가?”
“……지금은 약주를 자실 때가 아니옵니다.”
“술이 아니네. 자네 대체 나를 뭐로 보는가. 병 안을 보게, 병 안을.”
“예.”
와송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조이선이 소매에서 꺼낸 도자기 병을 받아들었다. 한양에서 유명한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조이선이라서 믿음이 가지 않았다.
-뽁!
도자기 술병의 병뚜껑을 뽑고 내용물의 냄새를 맡은 와송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술이 아니라고 했는데, 뚜껑을 열자마자 머리가 띵할 정도로 짙은 술 냄새가 났다.
“술 맞잖습니까! 이걸 지금 왜…….”
“아니라니까. 그거 마시면 죽네. 아니, 죽진 않아도 황천 코앞까지는 다녀와야 할걸세.”
“이게 대체 무업니까?”
“뚜껑 먼저 닫게. 주정이라는 것일세. 불을 붙이는 정도라면 쓸 만할 걸세.”
“양이 너무 적습니다.”
양이 적어서 불화살에 달아서 수레를 맞춘다고 해도 큰 피해를 주진 못할 것 같았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에는 일반 화살도 날리기 어려운데, 불붙은 화살 같은 건 쏘아 보나 마나였다.
“받게. 이것도 받고.”
품에서 한 병, 소매에서 다시 한 병. 조이선이 옷 안에 숨겨 두었던 주정이 담긴 병을 건넸다.
“허, 허허. 재주도 좋으십니다.”
“이제 조금 쓸 만한가?”
“예. 이 정도면 최소한 저들의 발목은 붙들 수 있겠습니다.”
“다행이구먼.”
와송이 등 뒤로 맨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냈다.
-컷!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사람은 눈바닥에서 일어났다. 벌떡 일어난 세 사람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머리와 몸에 쌓인 눈을 털었다. 아무리 누울 자리에 보이지 않게 시트를 깔아 두었더라도 온몸이 얼 정도로 차가웠다.
“아이고, 추워라. 재인아, 괜찮아?”
“아니요. 입까지 다 언 것 같아요.”
“킥! 그래도 대사 제대로 쳤어. 그나저나 오늘 고생 좀 하겠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게.”
“그러게요. 그런데 이거요. 이 정도 에탄올로 수레에 불을 붙일 수 있을까요?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에요?”
“사실 나도 그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급조한 불화살로 금 이송 행렬을 멈추게 한다는 계획은 아무리 봐도 허무맹랑했다. 코믹 요소가 많은 영화라 영화적 과장이라고 넘어가려고 해도 무리한 설정으로 보였다.
“휘발유나 기름이면 모를까.”
“그런 걸 품에 넣고 다니는 게 더 말이 안 되긴 하죠.”
“그건 그렇지.”
술자리에서 내기로 딴 주정을 품에 품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긴 했지만, 휘발유를 품에 넣고 다니는 것보다는 정상으로 보였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언덕과 숲에서의 촬영은 한 해의 마지막 날에도 새해 첫날에도 이어졌다. 기다리던 눈을 맞이한 감독과 스태프들은 추위에 손발이 꽁꽁 얼어도, 장비에 고드름이 맺히고 장갑이 쩍쩍 달라붙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을 이어 갔다.
* * *
백화점과 마트 등의 가판대에 설 선물 세트가 진열되기 시작한 시기, 한동안 서울 근교의 사극 세트와 지방 로케이션 장소를 오가며 촬영하던 재인이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이재인 배우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촬영장에서 몇 번 뵈었는데요. 혹시 기억하세요?”
“당연히 기억하죠. 메이킹 필름 촬영 중이라서 못 본 척했지만, 다 보고 있었어요.”
“하하하. 그러시군요.”
가벼운 안부 인사와 소개가 오간 뒤에 짧은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마지막 촬영까지 마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세요?”
“아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요. 더 잘할 걸 후회되다가도 내가 이걸 해냈구나, 하는 감상이 들기도 해서요.”
“>조선 탐정 한설록>이 데뷔작이신데요.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셨나요?”
“우선 대본을 정말 많이 봤어요. 조이선이 등장하는 장면 외에 다른 장면까지 통째로 외울 정도로요. 그다음에는…….”
재인은 시스템으로 대본을 언제든 불러낼 수 있었지만, 굳이 불러낼 필요가 없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대본을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대본을 통으로 외운 후에는 조이선이 나오는 장면을 쉬지 않고 연기했다. 조이선을 연기하기도 하고, 조이선의 상대역을 연기하기도 했었다.
대본 속 대사 한 줄을 가지고 수많은 상황을 만들어 내서 연기하기도 하고, 감정 표현 표를 만들어 한 장면을 여러 감정으로 연기한 걸 기록하기도 했었다.
‘데뷔작이라서 그런가, 정말 무식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연습했는데, 이렇게 끝이네.’
겨우 기초 발성과 화법을 배운 상태에서 덜컥 받아 든 역할이었다. 맨땅에 헤딩이라는 관용구 뜻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연기 초짜인 재인은 무식한 방법을 동원했다. 대본을 통으로 외우고, 수없이 연기해 보면서 조이선이라는 캐릭터를 몸에 익혔다. 그런 캐릭터를 보내야 하는 게 시원섭섭했다.
“그럼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우선 휴식을 가질 생각이에요. 설 연휴는 가족이랑 보내고요.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 봉사활동도 하려고요.”
“휴식과 봉사활동. 부럽습니다.”
“아! PD님은 크랭크 업할 때까지 일하셔야 하죠?”
“하하하, 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메이킹 필름용 인터뷰는 십분 남짓이었다. 그 십 분이 재인의 >조선 탐정 한설록> 공식 촬영 스케줄의 마지막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