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45)
#45. 납치
해성은 재인의 동선을 확인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케줄 없으면 집에서 쉬어야지, 휴가 첫날부터 밖에 나가기 바빴다. 자신이라면 마트, 음식점, 인터넷 쇼핑 등으로 필요한 걸 두루두루 시켜 놓고 절대 방에서 나가지 않을 텐데, 징그러울 정도로 부지런했다.
‘하긴 그 바쁜 와중에도 하찬이 산책까지 시킨 사람이니.’
촬영이 늦게 끝나거나 지방에서 귀가해도 가까운 공원을 반려동물과 돌았다. 종일 밖에 있었으니 산책 정도는 넘길 수 있을 텐데, 졸려서 하품을 쩍쩍하면서도 시간을 채우고 자러 갔다.
‘그때 JW 대표랑 만났다더니, 회사 몰래 따로 만나? 뭐지?’
연예인과 재벌의 그렇고 그런 관계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재인이 탄 차가 JW 그룹 연구 단지 안으로 사라지자 그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실 집 앞으로 가드 딸린 고급 승용차로 모시러 오는 등 노골적으로 귀빈 대접하는 꼴에 그런 의심은 애초부터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날도 추운데 자신에게 또 재인을 직접 살피라고 한 보스가 짜증 나서 그런 것뿐이었다.
“추워 죽겠네, 진짜. 나도 내일까지 끝내야 할 일이 있다니까.”
재인이 방문한 연구 단지 인근은 휑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근처에 어떤 시설도 없어서 함부로 접근해서 동정을 살피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해성은 연구 단지 가드들에게 걸리지 않을 정도로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 보고 있었다. 감시 대상과 너무 멀리 떨어진 감이 있긴 했지만, 이 이상 다가가는 것은 무리였다.
‘어떻게 들어가서 기다릴 카페 한 곳도 없냐고.’
자동차 뒷좌석에 간이 테이블을 펼쳐서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해성이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변호사 사무실은 위장에 가까웠고 실제로 그가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그 업무를 재인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하나도 하지 못했다.
집이 아닌 장소에서 누군가를 감시하는 게 영 체질에 맞지 않긴 해도 일하기 전에 재인이 어디로, 누구를 만나러 갔는지는 보스에게 보고해야 했다.
-찰칵! 찰칵!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지만,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풍경은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그래선지 재인을 따라오다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차를 세우고 업무를 보는 해성의 근처에는 주변의 풍경을 찍는 사람이 있었다.
* * *
“크르릉!”
전날 아침에는 작고 귀여운 모습으로 성질을 부리더니, 오늘은 커다란 늑대 모습으로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연 삼 일을 다른 동물들을 만나러 가자고 했더니, 불만이 폭발했다.
“오빠 오늘만 가고 내일부터는 하찬이랑 놀 생각인데.”
“크헝.”
“수영장 있는 펜션 빌려서 고기도 먹고 공놀이도 하려고 했는데, 하찬이 나가기 싫어하니까 안 되겠다.”
“컹! 컹!”
“쉿, 쉿. 짖지 말고. 같이 갈 거지?”
같이 가긴 할 테지만, 완전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스스로 걷기는 싫어선지, 아니면 재인한테 안겨서 옮겨지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하찬이 두 발로 서서 안아 달라고 보챘다.
‘아이고, 무겁다. 그래도 따끈한 건 괜찮네.’
재인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삼십 킬로가 훌쩍 넘는 하찬을 안아 들었다. 어깨에 앞발과 검은 머리의 무게가 얹어졌다. 투구게가 닦아 주는 바닥을 밟고 현관을 나서자, 그제야 북슬북슬한 어리광쟁이의 투정이 멈춘 게 느껴졌다.
‘설마 오늘도 와 계신 건 아니겠지?’
로드 매니저 오지수가 오늘도 보호소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걸 괜찮다고 말렸었다. 그녀 역시 강아지를 키우는 중이라서 보호소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며 봉사활동을 같이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는 곳은 재인의 집과 멀었다. 태우러 오려면 꽤 돌아와야 했다.
“재인 님!”
“아! 안녕하세요.”
그래서 말렸는데도 지난번처럼 집 앞에 차를 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지수는 어제와 다르게 움직이기 편한 운동복에 운동화를 신고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옷 색도 검은색으로 더러워져도 티가 많이 나지 않을 만한 차림이었다.
‘휴일인데 이래도 되나? 더군다나 이건 순전히 내 개인 스케줄인데…….’
유기 동물들을 두고 보기 안타까워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휴일에까지 로드 매니저를 불러내서 봉사활동을 다니는 사람으로 비춰질 것 같았다. 그렇더라도 그녀의 동참이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만큼 보호소에는 일손이 부족했다. 거기에.
“헥헥.”
“그래, 그래. 그렇게 반가우면, 좀 내려서 꼬리를 흔들면 안 될까?”
“커흥.”
“오냐, 알았다. 오빠가 뒷좌석까지 안전하게 배달을 해 주마.”
그간 오지수가 간식을 많이 챙겨 주었기 때문일까, 하찬은 그녀를 보자마자 꼬리콥터를 가동했다. 덕분에 재인은 휘청거리면서 하찬을 옮겨야 했다.
“그럼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운전은 맡겨 두세요. 아! 차 챙겨 왔는데, 드릴까요?”
“……나중에 마실게요.”
“컹!”
“네 간식은 오빠가 챙겼어. 오빠가 줄게.”
회사로 들어온 시나리오에 관한 얘기도 나누고 하찬이에게 간식도 주고 하다 보니 보호소에 도착했다.
보호소에서 재인이 한 일은 전과 다름없었다. 소장을 따라다니며 아픈 동물을 치유하고, 놀이 시간에 운동장에 나온 아이들을 위해서 남은 신성력을 풀어놓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상처가 있거나 몸이 아픈 아이들이 주변으로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다가와 주변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은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면서 치료해 주는 게 재인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하찬아. 살살 놀아야 해.”
“컹!”
하찬은 오기 싫다고 짜증 부리던 게 언제였냐는 듯 운동장에서 다른 녀석들이랑 잘 놀았다. 물론 재인의 곁으로 다가가는 동물의 냄새를 검열하듯이 맡는 건 빼놓지 않았다.
‘몸이 아픈 애들은 더 없나 보네.’
피부병에 걸려서 격리된 강아지, 화상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 온 강아지 등 몸이 아픈 동물들은 거의 치료를 마쳤다. 남은 것은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로 외상처럼 한순간에 낫게 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치료해야 했다.
“아이들이 편해 보입니다.”
“제가 기대기 좋은가 봐요.”
보호소 소장은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의 모습이 딱 현재의 재인 모습 같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자연의 신이나 목동의 신이 아닐까 싶었다. 홀린 듯이 모여든 동물들이 저마다 편한 자세로 쉬는 모습이 그만큼 현실 같지 않았다.
‘영화가 언제 개봉한다고 했더라? 그날은 우리 직원들이랑 다 같이 보러 가야겠어.’
물질적인 도움도 고마웠지만, 이렇게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을 달래 주는 것도 무척 고마웠다.
* * *
봉사활동을 마친 재인은 오지수의 차에 다시 탔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 쉬라고, 바래다줄 필요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끼이잉.”
“또? 아까 먹었잖아.”
“많이 뛰어놀았잖아요. 다 소화됐을 거예요.”
“그럴 정도로 조금 먹진 않았는데 말이죠.”
차에 타자마자 간식이 들어 있는 가방을 박박 긁어 대는 하찬의 행동에 재인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보호소에 들어가기 전에 배불리 먹였고, 보호소에서도 다른 친구들 무리에 껴서 간식을 먹었었다. 그렇게 먹고도 부족한지 또 간식을 졸랐다.
“재인 님 여기요. 이거 받으세요.”
“뭐예요?”
“제가 만든 수제 간식이요. 모양이 예쁘진 않은데, 맛은 괜찮나 봐요. 애들이 잘 먹더라고요.”
“이 간식을 직접 만드셨어요? 대단하세요.”
“호호호. 뭘요.”
쇼핑백에는 베이킹 카페에서 팔던 쿠키 통이 들어 있었다. 내용물은 직접 만들었다고 하니, 쿠키 통만 재활용한 모양이었다.
“당근하고 고구마예요.”
“헥헥!”
“기다려 봐, 줄게.”
“컹!”
“간식이 그렇게 좋아?”
말해 무엇할까. 이미 입가에 침이 흥건했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시트에 침을 뚝뚝 흘릴 것 같아서 재인이 손을 바삐 놀렸다.
“씹어 먹어야지.”
“호호호. 여기 차도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차가 너무 쓴 것 같아서 꿀을 좀 넣었어요. 배즙을 넣을까 하다가 꿀이 나을 것 같아서요.”
“꿀이 낫죠.”
도라지, 오미자, 더덕, 곰보배추 등 기관지에 좋은 재료를 배합해서 만든 차는 최상호가 예전에 담당하던 연예인이 물처럼 마시던 차라고 한다. 직접 재료를 사다가 만드는 거라서 거절하지 않고 마시고 있었지만, 사실 그다지 필요는 없었다.
‘몸속에 신성력이 돌아다니는 덕에 어지간해선 피로도 잘 못 느끼는걸.’
다른 치유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재인의 경우에는 그랬다. 신성력이 초능력의 기반이라서 그런지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도 눈밭에서 구르면서 촬영한 한겨울에도 병이 나지 않았다. 밤샘 촬영을 하느라 무리한 날에도 잠시 쉬자 체력이 회복되었다.
‘이런 약차나 그냥 약이나 거의 효과 없는데.’
정말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는 게 아니면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재인은 아직도 뜨거운 김이 나는 차를 남김없이 마셨다. 꿀을 넣었다더니, 달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마시기 수월했다.
“다 드셨어요?”
“……네.”
“피곤하신가 보네요. 좀 주무세요. 도착하면 깨워 드릴게요.”
“아니……, 괜찮…….”
재인은 말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추운 운동장에 있다가 따뜻한 차에 타서 그런가 노곤하게 몸이 풀렸다. 거기에 맛은 없지만, 따끈한 차도 한잔 마시자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잠든 재인의 옆자리엔 하찬이 자고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느라 밖에선 웬만해선 잠들지 않는 하찬이었는데, 오늘은 예외였다.
“재인 님?”
“…….”
“재인 님.”
“…….”
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세운 오지수가 여러 번 이름을 불렀지만, 잠든 재인이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달칵!
백미러로 재인과 하찬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던 오지수가 보조석의 글러브 박스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약이 가득 찬 주사기를 꺼냈다.
“푹 자렴.”
그녀는 그 주사기를 하찬의 목덜미 뒤에 꽂았다. 간식에 코끼리 한 마리는 기절할 만큼의 약을 넣었지만, 하찬은 몬스터 믹스였다. 동물한테 쓰는 약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었다. 몬스터 포획용 마취 약을 쓰는 게 안전했다.
-Trrrr.
주삿바늘에 찔릴 때 하찬이 잠시 꿈틀거렸지만, 무시하고 끝까지 약을 투입했다. 방해꾼이 미동도 없이 기절한 걸 확인한 뒤에 오지수는 전화를 걸었다.
“잠드셨어요. 감시자는요?”
-삼십 초 후에 정리될 거야.
“알았어요. 바로 갈게요.”
-아아. 수고하라고.
“끊을게요. 거기서 봐요.”
간단하게 통화를 마친 오지수는 그대로 감시자가 처리되길 기다렸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재인 님. 재인 님께서 계셔야 할 곳으로 모셔 드릴게요.”
재인을 하루라도 빨리 모셔 가고 싶었지만, 일을 뜻대로 진행하기 힘들었다. 귀한 사람이라 그런지 주변에 그를 지키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KH 길드 소속의 동생과 그 팀원들이 수시로 지켰고, 그들 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도 지켜봤다.
‘28, 29, 30.’
오지수는 속으로 동료가 얘기한 시간을 카운트했다. 정확히 삼십 초가 지났을 때였다.
-콰아아앙!
그녀의 차 뒤쪽, 사거리 부근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출발하겠습니다.”
굉음의 주인이 동료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은 오지수가 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