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37)
136화
킬리언의 말에 외려 숨이 멎은 내가 엘리제를 쳐다봤다.
엘리제의 곁에 서 있던 캐번디시 부인의 얼굴에도 만감이 어려 있었다.
잠시 올린 입가를 어쩌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뜬 엘리제가 이윽고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어 왔다.
“레네트?”
그녀가 나를 부르자, 나를 찾는 건가 싶어 서둘러 손을 내밀었다.
“약속을 지켜 줘서 고맙구나.”
엘리제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손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킬리언을 여기에 데리고 왔다는 건, 이곳에 데려올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거겠지?”
그녀는 내 손을 두드리다 킬리언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내가 레네트에게 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하지 말아 달라 부탁했거든, 킬리언.”
“…….”
“그러니 레네트가 내 눈에 대한 일을 일부러 숨겼다는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나 엘리제의 방향은 킬리언을 향한다기보다는, 그의 옆 허공을 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안 합니다, 그딴 거.”
억지로 대답하는 킬리언의 음성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침실에 울려 퍼졌다.
엘리제가 더듬더듬 손을 뻗자 캐번디시 부인이 그녀의 손을 잡아 킬리언을 붙잡게 했다.
“…….”
엘리제의 손이 닿는 순간 동상처럼 굳은 사람처럼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는 킬리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사이 키가 더 큰 것 같아.”
“……눈이 보이지 않는 겁니까?”
킬리언이 한 번 더 묻자 엘리제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주 그렇게 되기 전에 널 볼 수 있어 정말 기쁘구나.”
엘리제와 킬리언이 대화할 수 있도록 옆의 티룸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사용인들이 따뜻한 차와 삼단 트레이에 담긴 색색의 디저트를 엔틱한 테이블에 내려놓자 나는 그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감사해요.”
그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켜며 소파에 기대앉았다.
원작에서도 이 세계가 멸망하고 죽음에 잠긴 제국에 영혼조차 떠돌지 못했다고 묘사했었다.
멸망과 함께 맥클런은 마물이 됐다고 했으니, 어둠에 흡수되었다는 뜻이었다.
“하아…….”
신탁은 사실이었다.
‘여덟 개의 어둠을 지나 아홉 번의 밤을 맞이할지니.’
아홉 밤의 아이인 내가 이 세계에 나타났고.
‘광명은 사라지고 살이 솟구칠지어다.’
어둠에 잠긴 리트번에 사람을 잡아먹는 마물들이 솟구쳤다.
‘뉘우침이 없는 자 멸망을 멸치 못하고, 영광을 뒤로한…….’
그러나 파비앙 넬라스의 기도문이 없었다면 이 신탁에 대한 해석은 위페르 제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아홉 번의 생을 지녔다 여겨지는 고양이들을 멸종하라는 메시지로 볼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 두신 걸까?”
이 뒤는 과연 무엇이기에 파비앙 넬라스는 원문을 찢어 이토록 오랫동안 찾지 못하게 한 것일까?
‘저 계집과 신탁만 손에 넣으면 난 저주에서 벗어나 뭐든 할 수 있어! 이깟 마물들이 없더라도!’
그때 그의 모습은 흡사 광신도처럼 절박하면서도 폭력적인,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모습이었다.
마물들의 힘을 빌리면서도 격하게 그들을 경멸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말한 저주란, 마물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말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가 완전히 사라져 악의 힘이 장악한 세계, 이른바 멸망에 이르게 되면 악마와 계약한 자신이 살아남을 줄 알았겠지만 결국에 마물에 흡수되어 자신도 이 땅에 사라지게 됐으니, 과거로 돌아온 순간부터 고양이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됐을 것이다.
나의 힘이 그를 강하게 하여 마물이 없어도 되는, 썩지 않는 육체와 마력을 선사할 것이며, 신탁은 멸망을 막는 방법 혹은 또 다른 길이 나와 있는 거겠지?
“파비앙 넬라스의 피르미타가 모든 것을 추적할 수 있는 열쇠가 되리라 믿어 왔을 테고.”
흐음, 생각에 잠겨 있는 찰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를 마치셨습니다. 폐하께서 오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캐번디시 부인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 엘리제의 침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엘리제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킬리언이 보였다.
나는 두 사람의 뜨거운 조우를 예상했지만, 모자는 내 생각보다 훨씬 담담한 태도로 서로를 대한 듯했다.
까마귀 깃털처럼 검푸른 머리칼을 지닌 두 사람이 나를 쳐다보자, 나는 엘리제를 보다가 이윽고 킬리언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선선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레네트, 네게 했던 이야기와 동일한 이야기를 킬리언에게 해 주었단다.”
엘리제가 산뜻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킬리언을 데리고 수도로 돌아가 주겠니? 나와 소피아는 이곳을 정리하고 곧 뒤따라갈 테니.”
***
돌이켜 보면 이틀간 많은 일이 있었다.
아카데미 개관식에서 리트번, 그리고 엘리제의 샤르멩성, 다시 수도로 향하는 여정을 돌아보며 나는 마차 창 너머 낙조에 물든 하늘을 바라봤다.
어제 개관식이 저녁쯤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피곤하지 않아? 좀 잤으면 좋았을 텐데.”
킬리언이 창밖을 보고 있는 내 머리칼을 매만지며 물었다.
황금빛 석양이 드리워진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노을이 번진 그의 눈동자가 꼭 태양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아무것도 묻지 않으세요?”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엘리제의 설명을 통해 그도 알게 되었다.
선뜻 미소를 짓는 킬리언이 나를 잡아당겨 그에게 기대게 했다.
나를 에워싼 굵직한 그의 팔과 머리를 기댄 탄탄한 가슴이 마치 튼튼한 울타리 같았다.
“너무 많아서 순서를 정하는 중이야.”
느긋한 그의 음성에 어쩐지 마음이 놓이고 푸스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고개를 비틀어 그를 올려다봤다.
만감이 교차한 시간을 지나 상념에 가까운 어둠이 드리워진 그의 눈빛은 퍽 날카로우면서도 나른해 퇴폐적으로 느껴졌다.
“아……. 잘생겼다.”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소리야?”
한쪽 눈썹을 휘어 올린 채 비딱한 표정을 지은 그가 물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말.”
내가 비시시 웃으며 대답하자 킬리언의 눈빛이 일시 가라앉더니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그가 입술을 맞댄 채 나를 번쩍 들어 올려 마주 보게 앉히고는 더욱 뜨거운 숨결을 쏟고 허리를 바짝 끌어당겼다.
아찔한 기분이 지체 없이 나를 할퀴며 스며들고, 온몸의 세포가 짜릿하게 전율하는 것 같았다.
“하, 성에 도착하면 이리나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잠시 입술을 떼어 낸 그가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대의 정원도 보여 주고, 잠시 차도 마시고 있어.”
“전하는요?”
“금방 갈 거야. 일만 마치면. 알겠지?”
그가 내 눈꺼풀에 길게 입을 맞춘 후 다시 코끝에, 이내 입술 새로 스며들었다.
그의 손길로 혼미해지는 탓에 그가 대답을 종용할 때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 성에 다다라서야 그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어둑해진 성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황실 감옥 건물 부근 주변을 군대가 에워싼 것 같았다.
마차가 멈추자 저만치에서 대기 중이던 알키오가 서둘러 이곳에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마차에서 내리며 그곳을 보는 순간 킬리언의 커다란 체격이 내 시야를 가로막았다.
“볼 필요 없어.”
“…….”
“이리나와 함께 쉬고 있어, 레네트.”
저기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거구나.
“전하. 저는 괜…….”
“그래 줄 수 있겠어?”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여상한 얼굴에는 어쩐지 절박해 보이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
“커튼도 열어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
“……응?”
그가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부탁하듯 눈썹을 찡그렸다.
내게 뭔가를 보여 주고 싶지 않아 하는 그에게 차마 같이 가게 해 달라는 말은 건넬 수가 없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자위에 번진 게 무엇인지 서서히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그것은 울분이었다.
킬리언은 본성의 창문들을 올려다봤다.
레네트가 이리나를 만나는 동안 본성의 창문은 굳게 닫혀 있을 것이며 커튼 또한 마찬가지인 채로 유지될 것이다.
소리가 들어가지 않도록 모든 유리창과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그의 형형한 눈동자가 스르륵 어딘가를 향했다.
바른의 지시에 마법사들이 일시에 불을 밝히자 칠흑 같은 어둠이 가시고 아돌프와 감옥에 갇혀 있던 기젤라 부인을 비롯한 죄인들, 그리고 아돌프를 도와 성을 장악하려 한 전(前) 근위대장의 부하들이 재갈을 문 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알키오가 아돌프에게 정중하게 다가가 인사를 한 후 물린 재갈을 풀자 아돌프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감히 저를 낳아 준 아비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너는 아이그니스 신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저 야비한 황태자에게 모두가 속고 있는 것이다! 제 아비를 위협하고, 위페르에서 금기한 오러를 사용한 반역자를 반드시 처단해야 한다!”
아돌프의 외침에 서두르는 기색 없이 무심히 다가가던 킬리언이 검을 쥐었다.
“이거 말입니까?”
순식간에 화염에 둘러싸인 검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나자, 아돌프는 물론이고 기젤라 부인과 레노 맥밀런, 노먼 비에른 등 모두가 기함하며 눈을 부릅떴다.
“모두들 보아라! 저놈은 반역자다! 감히 오러를 황실에서 사용하고, 아버지를 죽이려 한 무뢰배이니라. 너희는 모두 속고 있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돌프 앞에 멈춰선 킬리언은 그를 지그시 응시했다.
오러가 넘실대는 킬리언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드리워져 잔혹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 왔다.
“이것이 반역이라면 흑마법약을 사용한 자는…….”
“흑마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제국민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혈세를 빼돌린 자들은…….”
“그런 일은 내 세상에서 일어난 적 없던 일이야!”
“당신 곁에서 감히 황실을 능멸하고 권력을 차지한 자들은.”
“그런 일 또한……!”
“그것들을 모두 눈감아 주며, 황위에 앉아 있던 당신은?”
킬리언이 싸늘하게 물음을 던지며 이곳을 에워싼 군대를 돌아봤다.
“나는 이 위페르의 누구도 자신의 능력을 억누르며 살게 하지 않을 것이다.”
“!”
“이 땅 위의 그 누구도, 잘못된 법 앞에 심판받지 않게 할 것이며.”
“…….”
“성안에 있는 누구도, 제 책임을 기만할 수 없게 할 것이다.”
“…….”
“이제 너희 중에 돌아설 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황제에게 가도 좋다.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내 아비의 군대 또한 마찬가지로 결정할 시간을 주겠다.”
그는 위협적으로 솟구치는 오러가 감도는 칼을 유유히 검집에 넣으며 섬뜩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니…… 움직여라.”
킬리언의 고요한 눈길에 주춤한 아돌프의 군대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 차츰차츰 꿇은 무릎을 옮겨 알키오의 주변으로 기어갔다.
거세게 요동치는 아돌프의 눈빛이 자신을 떠나는 군대를 바라보다 슬금슬금 몸을 옮기려는 레노 맥밀런을 발견하고 격노하기 시작했다.
“레노 맥밀런! 네놈이! 네가 감히!”
격분한 아돌프가 몸을 부르르 떨며 레노 맥밀런에게 달려가려 하자 킬리언이 아버지를 부드럽게 만류하며 그의 손에 단검을 쥐게 했다.
“!”
차가운 감촉에 소스라치게 놀란 아돌프가 아들을 쳐다봤다.
킬리언은 아돌프의 손으로 검을 움켜쥐게 만들며 잔인하게 속삭였다.
“죽이세요, 아버지.”
“……!”
“여기 있는 죄인 모두.”
“!”
킬리언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무지막지한 악력이 검을 쥔 아돌프의 손을 그대로 잡아당겨 레노 맥밀런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게 했다.
킬리언이 아돌프의 손을 움켜쥔 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검을 뽑아내자 붉은 피가 사방에 튀어 올랐다.
레노 맥밀런의 몸이 바닥에 툭 고꾸라졌다.
기젤라 부인이 엘리제 황후를 내쫓을 때 가장 먼저 앞장서 엘리제 황후에 대한 경멸을 퍼붓던 자이자, 아버지의 서재에서 학대당하는 킬리언을 즐겁게 지켜보던 자였다.
얼굴에 피가 낭자해진 아돌프가 무릎이 탁 꺾인 채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아들을 올려다봤다.
“자, 시작하세요, 아버지.”
붉게 충혈된 킬리언의 눈동자에 반들반들한 눈물이 어리고 이를 악문 그의 잇새로 들끓는 울분이 나직이 흘러나왔다.
“저 죄인들을 모두 죽이실 때까지.”
검을 쥔 아돌프의 손을 놓아주며 그가 들끓어 오르는 붉은 눈으로 아버지를 내려다봤다.
“이 치욕스러운 자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