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바다사자 작전 (3)
점심이 될 무렵, 독일군의 영국 본토 상륙 소식은 전 세계로 전파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호외요! 호외!”
“어이! 신문 한 부만!”
“예예, 여기 있습니다!”
“신문 더 없어?”
신문팔이 소년들이 5분 이내에 매진이라는 대호황을 맞이하는 가운데 라디오에선 당황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긴급속보를 보도했다.
길을 걷던 사람들, 샐러리맨부터 노숙자, 청소부, 경찰들까지 모두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방금 들어온 새 소식입니다. 독일군이 상륙한 곳은 도버, 포크스톤, 캠버, 헤이스팅스, 이스트본이라고 합니다. 영국군의 반격 시도가 있었지만, 격퇴되었다고 하며 현재 제공권은 독일군에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런던에서는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대탈출극이 벌어지고 있으며…….
-속보입니다. 영국 국왕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대비는 런던에 남아 군과 시민들을 격려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독소전쟁의 종결 소식 이후로 간만에 유럽에서의 전쟁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화제로 떠올랐다.
정치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없는 이들조차도 가족, 친구 혹은 회사 동료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독일군의 영국 상륙 소식을 두고 각자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나눴다.
“결국, 독일이 영국까지 집어삼키는 건가?”
“설마! 그래도 영국은 다르지 않겠어?”
“우리 내기 하나 할까? 영국이 항복하기까지 며칠이 걸리는지.”
“4주에 5달러 걸겠네.”
“그러게 진작에 독일의 강화제안을 받아들였다면은…….”
일반 시민들에게 독일의 영국 침공 소식은 무료한 일상에 작은 자극 정도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백악관은 아니었다.
지인들과의 식사자리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일회용으로 소모될 대화 소재치고는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독일 놈들이 기어코 영국을 침공했소.”
마셜이 알기로, 대통령이 이토록 심각한 표정을 지었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했을 때, 진주만이 기습받았을 때, 필리핀이 일본군의 수중에 완전히 떨어졌을 때가 그랬다.
그리고 또…… 언제였더라? 그래, 스탈린이 백기를 들었을 때도 이런 표정을 지었었지. 기억이 새록새록하군.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려는 찰나, 루즈벨트의 비서가 뛰어와 그리 크지 않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루즈벨트에게 말했다.
“각하. 처칠 총리의 전화입니다.”
“……잠시 실례.”
대통령이 영국 총리의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 탁자에 남겨진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가장 먼저 최고령자인 헐이 입을 열었다.
“대통령께선 이미 결정을 내리신 것 같소.”
“그렇겠지요. 훨씬 이전부터 참전을 준비하셨던 분이니.”
“특히 이번에는 피할 수 없겠지…….”
마셜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히는 말없이 담배를 태웠고 킹과 아놀드는 서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마주 보았다.
사이가 좋지 않은 저 둘이 서로 공감하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이번 일이 보통이 아니긴 하지. 마셜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런 날에도 커피 맛은 좋았다.
***
-지금 영국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수화기를 들기 무섭게 처칠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루즈벨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처칠의 다음 발언이 이어졌다.
-개전 이래로, 아니 영국 역사상 최악의 위기입니다. 제공권은 완전히 독일 놈들에게 있고 육군은 패주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처칠이 말하길 독일군을 막을 유일한 수단 홈플릿(Home Fleet, 본토함대)은 독일군의 기만전술에 속아 스캐퍼플로에서 머무르다가 급히 출항에 나섰지만, 독일-노르웨이 함대의 견제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그뿐인가? 잉글랜드 남부의 비행장들은 독일군 공수부대에 의해 탈취되었고 제공권을 장악한 독일군은 수송기 편으로 병력과 물자를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급히 병력을 모아 비행장을 탈환하기 위해 반격을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
-대영제국을 구원할 유일한 수단은 미국의 도움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총리.”
-육해공군을 총동원해 독일군을 막아보겠지만, 오래 버티긴 힘들 겁니다. 현재 정부 기능을 런던에서 글래스고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총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는 끝까지 런던에 남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건투를 빌지요.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
-부탁드립니다, 대통령. 영국과 세계의 운명이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처칠은 통화 마지막까지 신신당부했다. 제발 영국을 구해달라고.
루즈벨트는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그는 리히에게 물었다.
“처칠 총리가 말하길 이미 정부 기능을 런던에서 글래스고로 옮기는 중이라는군. 이미 저쪽에선 런던 함락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야. 독일군이 런던에 도달하기까지 며칠이 걸릴 것 같소?”
“아마 3주 이상은 무리일 겁니다. 어쩌면 2주도 걸리지 않을지 모르죠.”
리히가 말했다. 제공권이 독일군에게 넘어갔으니 영국군이 오래 버티긴 힘들 것이다.
물론 전 세계 각지로 퍼진 영국 해군이 영국으로 몰려와 독일 해군을 박살 내 영국에 상륙한 병력을 고립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현재 홈플릿을 제외한 영국 해군은 지중해와 인도양 일대에 퍼져 있다.
이들이 영국에 도착할 즈음에는 버킹엄 궁전에선 이미 하켄크로이츠기가 휘날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제공권은 독일군에게 있다.
로열 네이비 함대가 하느님의 가호를 받아 지금 당장 영국에 도착한다고 해도 공군의 지원받는 독일 해군을 상대로 결전을 벌여 승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루즈벨트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영국이 넘어가면 이제 미국과 독일 사이에는 대서양밖에 남지 않게 되오. 히틀러가 과연 영국에서 만족하려 들까? 그럴 리가! 히틀러는 분명 영국에서 만족하지 않고 아메리카 대륙에도 마수를 뻗쳐올 것이오. 영국에서 독일을 막지 못하면 그다음에 우리는 보스턴이나 뉴욕에서 독일군과 싸워야 할지 모르오.”
회의 참석자들은 루즈벨트가 하는 말을 경청했다.
지금까지 현실적인 여러 이유로 유럽전선 개입에 반대해온 그들이었지만, 독일군이 영국에 상륙한 이상, 더는 개입을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루즈벨트의 말대로 영국의 함락은 곧 독일의 대서양 진출을 의미했고, 독일이 대서양에 진출한다는 것은 미국 역시 폴란드나 프랑스처럼 독일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일본이 워싱턴을 공격하려면 먼저 하와이를 점령하고 파나마 운하를 지나 카리브해의 섬들을 공략해가며 북상해야 하지만, 독일이 워싱턴을 공격하려면 대서양으로 항모전단을 보내거나 항속거리가 긴 폭격기를 개발해 영국이나 아조레스 제도에서 발진시키면 된다.
그리고 일본은 중국조차 꺾지 못했지만, 독일은 중국보다 땅덩어리도 넓고 훨씬 강력한 소련까지 굴복시켰다.
유럽의 인구와 공업력, 자원을 흡수한 독일이 미국까지 정복하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미국은 남북전쟁 때보다 더 큰 피해를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이미 마셜은 루즈벨트의 명령으로 유럽전쟁 개입에 대비한 군 병력 이동 및 물자 보급 계획을 모두 준비해둔 상태였다.
계획을 세우면서도 마셜은 해당 계획을 실제로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야속하게도 신은 그의 간절한 부탁을 매몰차게 무시했다.
***
웨스트필드에 강하한 독일 제7공수사단 병사들은 비교적 가벼운 피해만 본 채 RAF 기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영국군은 금방 기지를 되찾기 위해 반격을 가해왔다.
프랑스에 자리한 사단본부로 승전보를 보내기 무섭게 병사들은 기지를 탈환하려는 영국군과의 전투에 돌입했다.
다행히 두 번째 전투도 큰 피해 없이 독일군의 승리로 끝났다.
영국군은 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지도 않고 섣불리 공격을 가해왔고,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자 쉽게 포기하고 철수했다.
두 번째 전투가 끝난 직후, 프랑스에서 출격한 첫 번째 수송기가 비행장에 착륙했다.
고래만 한 덩치의 Me 323 기간트(Gigant, 거인)의 출입구가 열리고 중무장한 병사들이 쏟아졌다.
거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크고 아름다운 몸체를 가진 기간트는 최대 12톤의 물자 혹은 완전무장한 보병 1개 중대를 수송하는 게 가능했다.
비행장에 착륙한 기간트는 2대.
130명의 육군 병사들과 푸마 장갑차가 웨스트필드에 발을 디뎠다.
새로 도착한 지원군과 장갑차를 본 하랄트 크반트 소위는 사기가 치솟는 기분이었다.
이 정도 숫자면 영국군이 전차를 끌고 공격해오더라도 아군이 도착할 때까지 비행장을 지킬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소대장님! 토미들이 오고 있습니다!”
“젠장, 또야?”
아무래도 자신감이 너무 과했던 것 같다. 영국군은 그새 병력을 다시 모아 재차 반격을 가해왔다. 그것도 이번에는 전차까지 끌고서.
“판처파우스트를 준비해!”
“사격 준비!”
“토미들이 제대로 뿔이 난 모양입니다.”
크반트의 옆에 자리 잡은 원사가 말했다.
“전차를 자그마치 5대나 끌고 왔군요. 장갑차도 있고요. 이거 곤란하게 됐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M3 스튜어트 5대와 M3 하프트랙 6대의 지원을 받는 영국군은 이번에는 기필코 비행장을 탈환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했다.
“발사!”
수풀로 위장한 푸마가 선제공격을 가했다.
50mm KwK 39 전차포는 T-34나 M4 셔먼 같은 중형전차를 상대론 성능이 시원찮았지만, 스튜어트나 발렌타인 등의 경전차들엔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다.
전면을 관통당한 스튜어트가 불타오르고 유일한 생존자인 전차장이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오는 사이 푸마가 두 번째 탄을 발사했다.
그러나 위치가 발각당하는 바람에 스튜어트들의 집중공격이 가해졌다.
이 중 한 발이 포탑에 맞았고 약실을 망가뜨림과 동시에 전차장과 포수에게 부상을 입혔다.
전투불능 상태가 된 푸마는 황급히 도주했다. 그래도 전차 2대를 격파했으니 제 할 몫은 충분히 한 셈이었다.
“사격 개시!”
크반트의 지시가 떨어지자 소대원들이 일제히 발포했다. 크반트는 MP38로 권총을 들고 달려오던 같은 계급의 영국군을 고꾸라뜨렸다.
-펑!
“크하악!!”
MG34 사수와 부사수가 37mm 유탄을 맞고 나자빠졌다. 하프트랙에 부착된 M2 중기관총도 독일군에겐 큼직큼직한 피해를 안겼다.
12.7mm 총탄에 맞은 병사들은 팔다리가 분리되어 순식간에 다진고기로 변했다.
영국군은 판처파우스트의 사정거리 밖에서 기관총과 전차포를 쏘아대며 독일군을 괴롭혔다.
독일군도 50mm 경박격포를 발사해 영국군의 머리 위로 폭탄을 날려댔지만, 전차와 장갑차의 지원을 받는 영국군의 맹공을 견뎌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지정사수가 Kar98k로 기관총 사수를 저격해 쓰러뜨렸지만, 전차만큼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전차의 관측창을 노리고 쏘아도 방탄유리에 막힐 뿐이었다.
크반트가 새 탄창을 갈아 끼우는 순간 옆에서 충격파가 전해지면서 그의 몸이 잠시나마 허공으로 떠올랐다.
팔에 엄지손톱만 한 파편이 박혀 불에 데인 듯한 통증이 들었다.
가까스로 파편을 빼내자 이번에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피의 양은 많지 않아서 지혈을 따로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원사?”
크반트는 살아남았지만, 그의 옆에 있던 원사는 그렇지 못했다.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죽은 원사의 오른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시뻘건 속살 사이로 허연 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사용하던 MP38은 조금 전의 충격으로 고장이 나버렸기에 크반트는 원사의 MP38을 들었다.
그런데 이놈도 고장이 난 모양인지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제기랄!”
MP38을 내던진 크반트가 권총을 뽑으려는 그때 스튜어트 한 대가 속도를 올리며 돌진해왔다.
어느 병사가 판처파우스트를 발사했지만, 탄두는 스튜어트를 지나치고 말았다.
스튜어트의 포탑이 빙글 회전하더니 공축기관총을 발사해 판처파우스트를 발사한 병사를 쓰러뜨렸다.
크반트는 자세를 낮추고 쓰러진 병사에게로 다가갔다. 판처파우스트의 발사관에 예비 탄두를 끼운 뒤 일어서서 발사했다.
“이거나 처먹어라!”
그가 발사한 탄두는 스튜어트의 엔진룸에 내리꽂혔다.
불붙은 전차에서 뛰어내린 전차병들이 총알 세례를 받고 쓰러지는 광경을 보자 잔인한 희열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 왼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크반트는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총탄에 맞은 것이다.
리-엔필드를 든 홈가드 대원이 뒤를 돌아보며 영어로 뭐라고 외쳐댔다.
크반트는 반사적으로 발터 P38을 뽑아 홈가드 대원을 겨냥했다.
홈가드 대원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크반트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어깨에 총알을 박아넣었던 홈가드 대원은 이번엔 자신이 목에 총알이 박혀 쓰러졌다.
전황은 절망적이었다. 크반트의 소대에서만 10명이 넘는 전사자들이 나왔고 방어선도 곧 뚫리기 직전이었다.
돌아버리겠네. 작전 첫날에 토미들의 포로 신세라니. 이 무슨 망신인가.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크반트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친자식처럼 잘 대해주었다.
그런데 자신이 적의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상심하실까.
“……어어!?”
그런데 신은 아직 그를 버릴 생각이 없었나 보다.
가장 위기의 순간에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지원군이 도착했으니까.
“우리 전차부대다!”
“만세!”
헤이스팅스에 상륙한 LSSAH 사단의 선봉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방금 전까지 비명을 지르던 병사들의 입에서 이제는 만세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에 반해 승리를 확신하던 영국군은 새하얗게 질렸다.
4호 전차의 75mm 주포가 발포하여 스튜어트를 조각냈다. 스튜어트도 지지 않고 37mm 주포를 발사했지만 80mm 장갑판에 막혔다.
공격이 실패하자 스튜어트는 도주했지만 75mm 포탄을 직격으로 맞아 포탑이 날아갔다.
독일 공수부대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LSSAH의 전차와 장갑차들은 북쪽으로 치고 올라갔다.
한바탕 전투가 끝난 비행장에 서른 대의 기간트가 추가로 도착해 병력과 물자를 내려놓았다.
***
1943년 6월 7일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루즈벨트가 연단에 서서 독일의 전면적인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영국과 이를 도와야 할 필요성에 대해 연설하는 것을 의원들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했을 때 루즈벨트의 대일 선전포고 요청 연설에 열렬한 환호와 지지를 보냈던 그들이었지만,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영국은 미국의 중요한 파트너이자 1차대전 시기에 독일에 맞서 함께 싸웠고, 지금도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일본과 함께 싸우고 있는 동맹국이다.
반면 독일은 그런 영국과 전쟁 중인 국가로 1차대전 미국의 주적이었으며 영국으로 가는 수송선들을 격침시킨 전력이 있다.
하지만 독일은 일본과 달랐다.
일본처럼 미국에 선제공격을 가해오지도 않았으며 미국이 먼저 공격하지 않은 한 결코, 전쟁할 의사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었다.
국민의 표를 받아먹고 사는 의원들은 영국을 도와 유럽전쟁에 개입하자고 주장했다가 전체 유권자 중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계 미국인들의 원한을 사서 선거에서 떨어지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영국과 오랜 앙숙인 아일랜드계 국민도 유럽전쟁 개입을 적극 반대했다.
또 하나. 이미 전쟁 중인 일본의 존재가 유럽전쟁 개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아무리 지금 태평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전황이 합중국에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하나 도쿄까지 가려면 한참 남았는데 유럽에서도 전쟁을 벌이게 되면 태평양으로 가야 할 병력과 물자가 양분될 테고 자연스레 일본에 대한 응징의 시기도 늦춰지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루즈벨트의 민주당에 반대하는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렸다.
“이미 일본과 전쟁 중인데 뭐하러 독일과도 싸운단 말이오?”
“히틀러는 전에도 여러 번 영국에게 평화협상을 제안하지 않았소? 그런데 그걸 죄다 거절하고 오늘의 침략을 초래한 건 영국 아닌가?”
“어째서 영국을 구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이오? 그것도 미국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전쟁에!”
미국 공화당의 실세이자 강성 보수파의 대부인 로버트 태프트 상원의원의 반대가 가장 심했다.
그는 진주만 공습 이후 대일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영국에 대한 지원 자체도 반대하지 않았지만, 참전만큼은 강력하게 반대해왔다.
특히 백악관에 암약한 소련 간첩들의 존재가 밝혀지자 그 누구보다도 루즈벨트에게 격한 비판의 날을 세웠던 그는 루즈벨트의 연설 내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민주당이라고 해서 모두가 루즈벨트에게 찬동하는 것이 아닌 만큼 공화당이라고 해서 모두가 루즈벨트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영국이 무너지면 유럽 전체는 독일 손에 떨어지게 되오.”
“이미 독일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섬들을 요새화하고 군함과 항공기를 배치했소. 즉,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워싱턴이나 뉴욕에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뜻이지.”
“유럽 전체 탈환은 무리더라도 이쯤에서 독일의 성장세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소.”
독일계와 아일랜드계 못지않게 미국인들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폴란드계, 체코계 미국인들은 참전을 부르짖었다.
그들은 성조기의 물결이 하켄크로이츠의 마수로부터 고통받는 고향 땅을 구원해주길 바랐다.
이미 영국계 및 폴란드계, 체코계 미국인들 중 영국군이나 캐나다군에 입대해 독일과 싸우고 있는 이들의 숫자만 수만 명이나 되었다.
“-따라서 저는 의회가 미국과 독일 간의 전쟁 상태가 되었음을 선언하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연설이 끝나고 결정의 시간이 되었다.
참전 찬성파와 참전 반대파 모두에게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다.
독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일본 먼저 조지자.
작은 불씨라도 방치하면 산불이 되는 것처럼 지금 유럽에서 눈을 돌렸다간 뉴욕이나 보스턴이 바르샤바나 로테르담의 꼴이 될지도 모른다.
의원들은 각자가 믿는 신념에 표를 던졌다.
신념과 신념의 대결은 초박빙이었다.
상원에서는 찬성과 반대의 비율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찬반이 동률인 상황에서 결정권(casting vote)을 쥔 상원의장이 나섰다.
단 1표가 미국의 운명을 결정했다.
미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