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먹구름 (5)
쿨리크가 시베리아에서 일으킨 반란 소식을 스탈린은 소련 인민들에게 철저한 비밀로 했다.
이유는 당연히 소련 각지에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본래 인간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동물이라, 불온한 소식을 들으면 불온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인민의 안전과 사회의 혼란 방지’를 위해 스탈린은 반란이 일어난 시베리아군관구로 통하는 철로를 봉쇄하고 전화를 차단했다.
심지어 병사들에게도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사실을 아는 건 오직 소령 이상 계급의 장교들뿐.
장병들은 시베리아에 도착한 후에서야 반란이 일어났고, 자신들이 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순 훈련을 위해, 혹은 주둔지 재배치 문제로만 여겼던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소비에트 연방에 반란이라니. 누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굴라그에 수용된 반동분자들이? 혹은 유대인들? 아시아의 이슬람교도들이?
반란을 일으킨 주범이 전쟁 당시 프라우다에서 찬양해 마지않던 쿨리크 원수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병사들의 충격은 깊이를 더했다.
미리 정해둔 각본에 따라 쿨리크에게 독일의 스파이들이 접근해 그에게 돈과 권력을 약속했고, 나치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쿨리크가 굴라그에 수용된 죄수들에게 무기를 쥐여주고 자신의 졸개들로 삼아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는 설명이 병사들에게 배포되었지만, 호응은 없었다.
우릴 바보로 아나?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정말로 쿨리크가 나치의 스파이였다면, NKVD는 어째서 그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쿨리크의 반란에 병사들의 적개심을 사기 위해 NKVD가 제조한 각본은 되려 병사들의 의구심만 증폭케 하는 역효과만 낳았다.
NKVD의 단속에도 반란에 대한 소식과 의구심은 소련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베리아에서 일어난 쿨리크의 반란 소식에 대해 알게 되는 인민들의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공산당은 차마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아니라고 거짓말할 수 없었다.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터라 반란 자체를 없는 일로 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압제자들은 그들이 순진한 개돼지로 여기는 인민들이 진실을 알게 됐을 때 보일 반응에 대해 우려했다.
그렇다고 차마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공산당은 대중을 홀리는 불온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자들은 즉결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타협이었지만, 이조차 인민들의 의심과 불안이 퍼져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반란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공산당에 맞서 투쟁을 벌이는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소수민족들이었다.
자신의 힘만으론 역부족임을 알고 있던 쿨리크는 최대한 많은 아군을 확보하고 진압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삐라를 제작해 소련 각지에 살포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선전방송에 나와 인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들이여! 스탈린과 스탈린의 졸개들은 그대들을 억압하고 그대들을 개처럼 노예로 부리는 인간말종들입니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종으로 살지 않으려고, 그대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습니다. 스탈린의 공포정치 아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까.
여러분도 이제 들고 일어설 때입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쿠이비셰프의 노예주들에게 보여줍시다! 소비에트 연방 인민의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자유 만세! 혁명 만세!”
***
1943년 11월 4일
소련 쿠이비셰프
쿨리크의 반란 소식이 전해진 뒤로 스탈린의 기분은 매일같이 저기압이었다.
특히 쿨리크가 인민들을 적극적으로 선동하고 다닌다는 것과 NKVD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반란 소식이 소련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는 보고는 스탈린의 불쾌한 기분을 더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다.
“얼빠진 놈!”
스탈린은 개인적인 감정을 힘껏 담아 크루글로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크루글로프는 입에서 당장이라도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나마 이렇게 몇 대 맞고 끝내는 게 나았다.
스탈린은 당장이라도 자신의 이 무능한 부하를 전임자처럼 숙청해버리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지금 크루글로프를 숙청해봤자 나아지는 일은 없다. 오히려 더 큰 혼란만 올 뿐.
크루글로프를 숙청하는 것은 반란을 진압한 뒤로 미루고 우선은 쿨리크 놈을 목매다는 일부터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이번이,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이 이상 나를 실망하게 했다간 네놈이 쿨리크보다 먼저 목이 매달릴 줄 알아. 알아들었어?”
“예, 옙! 서기장 동지!”
“당장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크루글로프는 황급히 고개를 숙인 뒤 발바닥에 불이 붙도록 뛰어서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크루글로프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스탈린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병신같은 새끼!”
크루글로프가 쫓겨나고 집무실에 남은 사람들은 벌벌 떨었다. 스탈린이 이토록 분노한 모습은 오랜만이었는지라 그들은 더더욱 공포에 질렸다.
“독일군의 동향은?”
스탈린의 신경질적인 물음에 안토노프가 대답했다.
“저, 정찰기의 출현 횟수가 늘어난 것 외에는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스탈린이 말한 독일군에는 자유 러시아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련은 공식적으로 자유 러시아를 정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고 스탈린은 자유 러시아를 입에 담기조차 꺼렸다.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어째서지?”
“예?”
“어째서 저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냐고.”
스탈린은 독일이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이 수상했다.
물론 독일군이 대놓고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것보다야 낫지만 반대로 적들에게 특이한 동향이 없는 것도 의심병 가득한 스탈린에겐 불안하게 느껴졌다.
“가능성은 작습니다만 저들이 아직 반란 소식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저들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흐음.”
스탈린은 뒷짐을 지고서 생각에 잠겼다. 안토노프의 말대로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상대는 히틀러. 절대 안심할 수 없는 상대다.
물론 독일은 얼마 전 막 미국과의 전쟁을 끝낸지라 동부에서 다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지만, 스탈린이 아는 히틀러라면 얼마간의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독일의 가장 큰 적수인 소련을 무너뜨리고자 할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반란의 진압이 늦어질수록 독일은 소련을 공격하고자 하는 욕망이 커질 것이다.
어쩌면 이미 전쟁을 준비 중일지도 모르고.
결론은 결국 최대한 빨리 쿨리크의 반란을 진압하고 독일군의 재침공에 대비하는 것뿐이었다.
“보로실로프와 부됸늬에게 전하게. 하루라도 빨리 쿨리크 놈을 붙잡아서 내 앞으로 데려오는 게 좋을 거라고.”
***
1943년 11월 6일
소련 시베리아 칼라친스크 인근
하루라도 더 빨리 반란을 진압하고 쿨리크를 생포해서 쿠이비셰프로 오라.
스탈린은 두 절친에게, 그들이 자신의 몇 안 되는 친구라는 사실을 이미 새까맣게 잊기라도 한 듯 차갑기 그지없는 명령을 내렸다.
반란 진압이 지체된다고 판단할 경우, 바로 그들의 직위를 박탈하고 다른 이들로 교체할 수 있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보로실로프와 부됸늬는 겁에 질렸다. 쿨리크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면 스탈린은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최소 강등에 좌천, 어쩌면 모든 직위를 박탈당하고 평생 야인으로 유배 생활을 보내게 될지 모른다. 절친들이니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안심하기엔 이르네.”
“무슨 말인가, 세묜?”
“코바는…… 최근에 화가 많아.”
“그건 그렇지.”
“필요하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희생양이 될 수 있네. 부하린을 보면 모르겠나?”
부됸늬의 푸념에는 공포가 섞여 있었다.
스탈린과 가장 친한 사이였던 보로실로프는 스탈린에게 삿대질하고, 심지어 스탈린의 뺨을 때리고도 무사했지만, 그보다는 스탈린과 덜 친했던 부됸늬는 대숙청 기간에 NKVD 요원들의 방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NKVD의 수장은 베리야의 전임자 피의 난쟁이 예조프였다.
당시 부됸늬는 56세의 중늙은이였지만 그는 젊은 NKVD 요원들과 완력으로 맞섰다.
부됸늬의 강력한 저항에 당황한 NKVD 요원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부됸늬는 급히 스탈린에게 전화를 걸었고 스탈린이 그의 혐의를 없던 것으로 해준 덕에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됸늬에겐 그날의 기억이 잊을 수 없는 악몽으로 남아있었다.
부됸늬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 일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스탈린이 필요하다면 그 누구라도 웃으며 죽일 수 있는 살인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부하린도 스탈린과 대단히 가까운 사이였지만 결국엔 절친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보로실로프는 행여 누가 자신들의 대화를 들었을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입조심하게. 우리가 이런 대화를 했다는 사실을 코바가 알게 되면 그땐 진짜 끝장이니까.”
보로실로프가 경고했다. 이윽고 그는 시선을 돌려 포화가 이는 전장을 주시했다.
기세 좋게 반란을 일으킨 것까지는 좋았지만 반란군의 무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최신 무기는 죄다 전방에 몰아준 덕에 후방 중의 후방인 그들은 1차대전과 전간기에나 사용하던 구식 무기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T-34의 76mm 주포가 불을 토하고, 불덩이가 된 T-26에서 기름이 줄줄 흘러나왔다. 하늘에선 I-16이 Yak-7에 쫓기던 끝에 연기를 내뿜으며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돌격! 앞으로!”
“반동분자들에게 죽음을!”
권총을 든 정치장교들의 독려 아래 병사들이 돌격을 감행했다.
쿨리크가 필요없다고 비웃던 PPSh-41과 PPS-42은 보병들 간의 전투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모신나강을 든 반란군이 노리쇠를 일일이 당겨야 하는 것에 비해 진압군은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반란군은 예상외로 강력하게 저항했다.
이번 반란은 그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오직 쿨리크가 독단적으로 일으킨 것이었기에 사기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병사들은 그들을 억압해온 지금의 체제에 호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타의든 자의든 간에 한 번 반란에 가담한 이상, 항복해봤자 굴라그행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싸웠다.
쿨리크는 동시에 굴라그에 수감된 죄수들을 석방하고 그들에게 무기를 쥐여줘 자신을 위해 싸우게 했다.
“동무들! 여기서 밀리면 우린 전부 다 죽은 목숨이오! 저 망할 체키스트들이 우릴 살려둘 것 같소이까?”
“기왕 죽을 거면 체키스트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읍시다!”
NKVD의 고문을 겪고 가족과 생이별하여 굴라그에서 온갖 모진 고초를 겪은 적 있는 죄수들은 어느 누구보다 맹렬하게 싸웠다.
그들에게 주어진 무기는 낡디낡은 소총과 수류탄, 급조한 화염병이 전부였지만, 죽음을 각오한 그들의 격렬한 저항은 최신형 무기로 무장한 진압군 병사들을 역으로 당황하게 했다.
전차가 지나가는 틈을 노려 반란군 병사가 전차의 엔진룸에 화염병을 던졌다.
엔진에 불이 붙은 전차는 곧 정지했고, 전차병들이 해치를 열고 나오는 틈을 타 총알 세례가 가해졌다.
어느 반란군 병사는 생포될 것 같자, 수류탄을 터뜨려 자신을 포위한 병사들과 동귀어진했다.
보로실로프와 부됸늬는 식은땀을 흘렸다.
스탈린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반란을 진압하고 쿨리크를 생포해서 자기 앞으로 대령하라고 지시했었다.
그런데 이래서야…….
과연 제때 진압을 끝낼 수 있을까?
어찌 반란을 제시간 안에 진압해도 쿨리크를 놓친다면? 그때도 우리의 코바가 자신들을 살려둘까?
***
1943년 11월 9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소련에서의 반란은 반란군의 규모, 무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진압이 지체되고 있었다.
진압이 늦어지는 것에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저항이었다.
특히 소련 시절 공산당의 반종교정책으로 크나큰 피해를 본 중앙아시아에서의 저항이 두드러졌다.
나는 1922년부터 독일에 거주 중인 우즈벡인 국가사회주의자 벨리 카윰 칸을 신 총통관저로 초대했다.
타슈켄트 출신으로 독일에 유학을 온 후 공산화된 조국에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독일에 남은 카윰은 반소활동 및 투르키스탄 독립운동으로 1926년에 소련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우즈벡의 민족주의자이자 투르키스탄의 독립 및 통일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카윰은 국가사회주의의 강력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는 실제 역사에서도 나치 독일로부터 이런저런 편의를 제공받으며 독일 국방군 동방부대 휘하의 투르키스탄 군단의 창설에 관여하기도 했다.
고국인 우즈벡 외에도 독일 및 유럽에 거주 중인 투르키스탄인들로부터 적잖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그는 자신이 이끄는 투르키스탄 통일위원회(National Turkistanischen Einheitskomitee)에 대한 지원 및 공식적인 정부로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총통께서 투르키스탄의 독립을 지지하신다면 저와 투르키스탄인들은 죽을 때까지 총통 각하를 따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조국 우즈벡을 포함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소련 치하에서 얼마나 고통받았는지에 대해 토로했다.
만약 내가 투르키스탄의 독립을 인정 및 지지한다는 성명문을 발표한다면, 중앙아시아에 대한 소련의 장악력이 떨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나 역시 귀하처럼 투르키스탄이 빨갱이들의 손에서 벗어나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런데 아직은 때가 아니외다.”
“때가 아니라니요?”
“언제라고 콕 집어 얘기할 수 없지만, 독일은 당분간 중립을 지킬 것이오. 그래야 볼셰비키들이 안심할 터이니. 그런데 댁의 말대로 지금 우리가 대놓고 투르키스탄의 독립 운운을 하면은 소련이 틀림없이 우리가 공격해올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지 않겠소?”
“그, 그렇겠지요……?”
“그래서 당장은 귀하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말이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때가 된다면 우리는 저 빨갱이들을 몰살시키고 그대의 조국에 통일을 안겨줄 테니.”
카윰의 떨떠름했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국방군 휘하 동방부대에서 지원자들을 받아 브란덴부르크, 프리덴탈 특무대와 함께 중앙아시아 각지에 침투시켜 반소게릴라들을 지원하는 작전도 곧 실행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추축국이나 다름없는 이란의 협력도 약속받은 상태고.
오늘 카윰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중앙아시아의 독립과 그 이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중앙아시아는 러시아 못지않은 자원의 보고로 카윰의 출생지인 우즈베키스탄은 세계적인 천연가스 매장지이자 산유지로 기름 외에도 망간, 아연, 구리 같은 광물자원들도 엄청나게 많이 매장되어 있다.
과일, 채소 등 농작물과 목화도 많이 나오고.
소련을 공격할 경우, 소련으로부터 더 이상의 자원을 공급받지 못하게 될 테니 중앙아시아의 독립을 지원해 중앙아시아에 가득한 자원들을 넘겨받을 수 있게 된다면 독일 경제에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물론 독일에 ‘조금’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이 맺어지게 되겠지만.
그래도 중앙아시아인들에게도 손해는 아닌 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무기를 쥐여주고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들도 계약이 그리 불공정하다곤 생각하지 않을 거다.
독일은 중앙아시아의 독립을 지원하고, 중앙아시아는 독일이 자기네들 자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윈윈전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