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종말의 끝 (6)
1944년 2월 9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독일로 가서 히틀러를 설득하라는 지시를 군말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도고는 자신의 임무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이미 황국은 전쟁에서 졌다.
황국이 자랑했던 해군은 반송장이 되었으며 육군도 이제껏 한 수 아래로 봤던 지나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본영은 만주에 주둔한 정예 관동군이 남아있다며 큰소리쳤지만, 정예 관동군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본래의 정예부대들은 모두 지나와 동남아의 격전지로 보내져 소멸하였고 현재 관동군의 수를 채우고 있는 건 무장도 형편없고 훈련도 제대로 안 된 어중이떠중이들뿐.
늦어도 여름이 시작될 무렵엔 연합군은 본토에 상륙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대본영이 내놓은 것은 학생과 노인, 여자들에게 죽창을 들려주고 최전선으로 내모는 것뿐.
폭격기와 대포, 전차 등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미군에게 겨우 죽창을 든 민간인들을 내보내자니!
미군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이들을 전멸시킬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도고는 지금이라도 황국이 살아남으려면 패배를 인정하고 백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식민지는 모두 잃고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처벌을 받겠지만, 적어도 황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수많은 목숨이 덧없이 사라지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윗대가리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독일을 설득해 연합국과 교섭을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망상을 내놓았다.
미국과 견줄 유일한 강국인 독일이 중재한다면 미국도 어쩔 수 없이 교섭에 응할 것이라면서.
해가 이미 중천인데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는 상황이라니. 도고는 이 모든 게 같잖았다.
1억 총옥쇄 같이 의미 없는 헛소리나 내뱉는 대본영도, 독일을 욕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독일만이 일본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정신승리나 하는 각료들도 전부 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총통 각하.”
그래도 히틀러 총통은 안면이 있는 도고가 인사를 건네자 반가워하며 그를 맞이했다. 최소한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는.
밀실에서 비밀회담이 시작되기 무섭게 히틀러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사…… 아니, 장관이 이 먼 독일에 다시 온 이유가 무엇이오? 관광 때문은 아닐 테고.”
“독일이 일본과 연합군 사이의 교섭을 주선해주셨으면 합니다.”
도고는 솔직하게 자신이 독일에 온 목적에 관해 이야기했다.
히틀러는 아무 말 없이 도고의 말을 들었다. 그는 아무런 내색이 없는 듯했지만, 도고의 말을 듣고 조금은 놀란 게 분명했다.
히틀러의 눈동자가 커지는 것을 도고는 놓치지 않았다.
역시나 그도 일본이 이런 제안을 해올 것이라곤 전혀 몰랐던 것이 분명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농담이나 하려고 이 먼 곳까지 왔을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기야 그렇군.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독일은 미국과 전쟁을 치렀던 사이요. 지금은 다시 교역을 재개했으나, 그렇다고 그렇게 친밀한 사이가 아닌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하건, 저들이 귀담아듣겠소?”
히틀러의 지적은 대단히 합리적인 것이어서 도고도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곳에 온 이상, 도고는 개인적인 감상은 잠시 접어두고 외무대신이라는 자신의 임무에 집중했다.
“독일의 국력이라면 미국도 감히 무시하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야 한데…… 당신들은 아직도 미국을 잘 모르는군. 미국인들은 당신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을 때부터 눈이 돌아버린 상태요. 다른 건 몰라도 대일전에 관해서 만큼은 설사 하느님이 말한다고 해도 듣지 않을 것이오.”
히틀러는 도고에게 미국인들이 진주만 기습으로 얼마나 분노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도고의 부탁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돌려서 말했다.
도고 역시 히틀러가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진작에 눈치챘다. 실제로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독일의 실질적인 적국입니다. 일본이 무너지면 미국은 아시아와 태평양 일대를 완전히 장악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독일도 미국을 상대하기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허나 일본이 있다면 독일의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히틀러는 전에 없던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도고를 응시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는 표정.
그 싸늘한 시선에 도고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뭐지? 히틀러 총통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말은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았는데?
“그것은 장관의 생각이오, 아니면 일본 정부의 뜻이오?”
히틀러의 물음에 도고는 재빨리 생각을 정리했다. 저 표정과 저 말투로 보건대 본인의 생각이라고 하면, 왠지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본 정부의 뜻입니다.”
“역시 그렇군. 하기야 장관이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지.”
히틀러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을 본 도고는 한가지 교훈을 얻었다.
방금과 같은 말은 절대로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선 안 된다는 것을. 최소한 총통 앞에서는 하지 말아야 했다.
“뭐,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나도 좀 물어봅시다. 만약에, 그러니까 만약에 독일이 일본 정부의 요청대로 미국 사이에 중재를 맡는다면 일본은 독일에 어디까지를 양보할 수 있소?”
나왔다.
가장 피하고 싶은 질문과 마주한 도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대본영의 기본 방침은 만주, 조선, 대만은 절대 할양 불가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이게 정녕 가능하겠습니까?’
‘어허! 만주와 조선은 황국의 생명줄이오! 그런 곳을 간단히 포기해서야 되겠소?’
‘직접적인 영토 할양은 불가하지만, 그 대신 각종 이권을 넘기겠다고 하면 분명 독일도 혹할 것이오. 잘 설득해보시오.’
‘아니, 아니…….’
그는 경찰에게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범인의 심정으로 대답했다.
“일본이 만주에서 가지고 있는 각종 이권을 독일에 양도하며 조선, 대만과 일본 본토의 항구를 독일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그만.”
히틀러는 손을 내저었다. 더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얼굴.
“일단은 알겠소. 생각을 좀 해보도록 하지.”
***
퍽이나.
패망이 코앞에 닥쳤는데 아직도 저런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역시 일본은 일본이다.
어떻게 하나도 변한 게 없냐.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다. 만약 저놈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융통성이 있거나 대국을 보는 눈이 있었다면 태평양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우리나라의 운명도 더더욱 미궁 속으로 빠졌을 테니.
어찌 보면 저 대책 없는 광기와 무지 덕에 광복이 몇십 년은 더 앞당겨진 셈이다.
“총통 각하께선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식전주를 마시며 괴링이 물었다.
“당연히 기각이지.”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래, 자네가 생각하기에도 일본의 제안이 터무니없지 않나?”
“저, 저는 총통께서 유독 일본에 적대적이셔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밥이나 먹지.”
다르게 표현하자면 일본의 제안이 독일의 윗대가리들에겐 그럭저럭 매력적으로 들린다는 말일 터.
하기야 교섭을 주선하는 것만으로도 공짜로 만주의 막대한 이권을 당겨올 수 있는 데다 극동의 항구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구미가 안 당길 수가 없긴 하다.
오히려 다이리가 꺼낸 대일 선전포고보다도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수지맞은 선택이 아니냐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물론 내가 있는 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지만.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미국은 우리가 참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일본 사이에 끼어들어 강화를 중재하는 것도 마땅찮아 할 것이라고. 그리고 아직 미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어떤 분노를 느끼는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만약 일본이 아니라 우리 독일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면 미국은 틀림없이 전력을 쏟아부어서라도 우리를 멸망시키려 했을 것이네.”
“그래도 우리에게 양키들에게는 없는 핵폭탄이 있지 않습니까?”
괴링의 반론.
그래, 냉정하게 말해서 저 말은 틀린 말이 아니긴 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일만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괴링의 말마따나 핵으로 워싱턴이나 뉴욕을 날려버리면 미국의 항전 의지도 한풀 꺾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다음은?”
“예?”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네.”
“어, 그야…….”
“핵은 당장의 급한 불은 끌 수 있어도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해. 핵의 힘을 빌려서 어떻게 전쟁을 끝냈다고 치지. 하지만 우리가 대서양 너머에 있는 미국을 지배할 수 있겠나? 선전포고 없는 기습에, 핵으로 자국의 도시를 날려버린 독일에 대한 증오로 불타오르는 미국인들이 얌전히 우리의 지배에 순응할 것 같고?
내 장담하건대 미국을 통치하는 내내 우리는 국방군의 절반을 미국에만 주둔시켜야 할 걸세. 미국인 전원이 게릴라가 되어 우리의 통치에 저항할 테니까.”
원 역사보다 늦기는 해도 지금쯤 미국도 한창 핵 개발에 돌입했을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었을 과학자 중 적지 않은 수가 독일과 유럽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니 개발 자체는 늦어지겠지만, 언젠가 미국도 핵을 가질 게 분명하다.
실제로 독일로부터 핵 공격을 받았다면 더욱 빡세게 핵 개발에 열중할 테고 핵이 완성되는 즉시 자국의 국력을 총동원해 핵을 대량으로 양산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수십, 수백 개의 핵을 독일과 유럽에 쏟아붓는다면…….
독일은 멸망이다. 물론 그때가 되면 우리도 핵을 여러 개 가지고 있을 테니 미국에 사용할 테고, 그렇게 인류는 끝장나고 말 것이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목이 말랐다. 냉수를 들이키자, 쩍쩍 갈라진 목이 조금은 회복되었다.
“말이 길었군.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거일세. 미국은 우리가 뭐라고 하든 간에 절대로 일본과 강화조약을 맺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네. 우리가 전쟁에 끼어드는 것 역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만 몇 달 뒤,
나는 내 예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일본이 독일과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이 독일에 접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미국이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뭣 때문에 독일에 접촉한다는 건가?”
“어쩌면…….”
“독일에 우리의 뒤를 쳐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닐까요?”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럴 거였다면 전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독 선전포고를 했을 때 진작에 동맹을 맺고 싸웠을 것이오.”
일독동맹은 실현성이 없다. 정말로 동맹을 맺을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훨씬 이전에 동맹을 맺었을 터.
그렇다면 뭐 때문에?
“어쩌면 독일의 첨단 무기를 수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닌지?”
“독일은 중국과 친한데?”
“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은 아닙니다.”
“전쟁 전, 독일은 비스마르크 전함의 설계를 위해 일본의 건함 전문가들을 데려온 적이 있으니까요. 지금 일본군이 사용하는 3식 전차도 독일이 제공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물건입니다.”
“설득력이…….”
“있어!”
처음에는 독일의 우수한 전쟁병기들을 수입할 수 있도록 요청하기 위해서 접촉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알아냈습니다!”
“뭘 알아냈단 말이오?”
“쪽발이들이 크라우츠들에게 빌붙는 이유를 말입니다.”
미국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평화교섭을 중재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허, 나 참.”
“쪽발이들다운 발상이군. 겨우 중재라니.”
일본이 독일과 극비리에 나눈다는 얘기가 다른 것도 아니고 평화교섭을 중재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에 워싱턴의 수뇌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한마음 한목소리로 일본의 망상을 비웃었다.
히틀러의 예상대로 미국은 일본과의 강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설사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식민지를 미국에 넘긴다고 할지라도.
Remember Pearl Harbor! 진주만을 기억하라!
진주만의 원한을 잊지 못한 미국은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결코 일본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히틀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일본을 전면적으로 봉쇄할 경우,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 것 같소?”
“1945년 여름에는 항복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니, 그렇다면 이 전쟁이 최소 1년은 더 끌어야 한다는 소리 아니오?”
올해 안으로 전쟁이 끝나길 기대하는 미국인들에게 전쟁이 내년 여름에야 끝날 것이라는 소리는 너무나 가혹하게 들릴 터였다.
물론 몰락 작전을 시행할 경우 막대한 인명피해가 예상되기에 미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곤 하나 국민들은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고 질질 끄는 것에 염증을 느낄 터였다.
불안요소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황을 비롯한 일본 수뇌부가 일본을 떠나 만주나 한반도로 거처를 옮길 가능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일본 전역을 봉쇄하고 제초제와 독가스를 살포해 농사를 망친다고 한들, 식량이 본토보다 풍부한 내륙으로 적 수뇌부가 도망치면 말짱 꽝입니다.
국민들이 굶어 죽든 말든 자신들은 굶주릴 일이 없다면 놈들은 계속해서 항전을 주장할 것입니다.”
“중국군으로 하여금 만주를 공략하게 하면 되지 않겠소?”
“중국군이 과거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거둔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일본군과 동일 선상에 놓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만주에만 일본군 75만 명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75만이란 숫자는 관동군의 실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지 않은, 단순히 머릿수만 센 수치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무시하기엔 막대한 병력이었다.
특히, 사이판, 괌, 이오지마 등지에서 일본군의 강력한 저항과 마주해온 미군에게 만주에 주둔한 관동군 75만은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국민혁명군은 일본군의 발악과 틈을 노린 기습으로 큰 피해를 받고 잠시 진격을 중단한 상태.
그 사이에 일본군이 지금보다 방어가 수월한 지역으로 철수하고 방어선에 더 많은 병력과 물자를 배치한 것은 덤이다.
잘해도 1945년이고, 일본이 정말로 최후의 한 명까지 전장에 내보내며 저항한다면 1946년까지 전쟁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나오자, 월리스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오지마까지 밀어붙였으니, 이제 마무리 단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망할 쪽발이들. 대체 왜 항복을 안 하는 건가? 우리가 자기네들과 같은 줄 아는 건가? 항복해도 칼로 토막 내고 화염방사기로 지져버릴 줄 알고?”
“이건 어떻겠습니까?”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소?”
“히틀러를 꼬드겨 일본에 선전포고하게 만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