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306)
306
재차 말하는 거지만 인도 문제로 미국과 3차 세계대전을 벌일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불행 중 다행으로, 현재 이란과 아프간 국경과 맞닿아 있는 발루치스탄 서부는 자유인도군단과 그들이 육성한 게릴라들이 꽉 붙들고 있다.
“이란과 아프간을 통해서 무기를 공급하도록 하게. 군사고문단도 추가로 파견하고.”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립의 입장이지만 영국에게 무기와 탄약, 연료, 차량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도 참전은 하지 않겠다만 같은 방식으로 인도를 지원한다.
미국이 항의하면 우린 영국을 걸고, 넘어지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미국이 참전이니 뭐니 운운한다? 그럼, 우리도 똑같이 해주면 된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대규모 전쟁이 터지는 것을 미국인들은 절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상대가 그 독일이라면 더더욱.
“소화기로는 전차, 야포, 전투기로 무장한 신식 군대를 압도하기 힘든 법이지. 따라서 우리도 인도인들에게 중화기를 지원해주도록 하지. 마침 국방군에 노획한 미제와 영국제 전차들이 많으니, 그것들부터 지원해주도록 하지. 전투기도 말이네.”
영국과 싸우면서 국방군은 상당한 숫자의 무기들을 노획했다. M3 스튜어트, M3 리, M4 셔먼, 크롬웰, 마틸다 등등.
그리고 영국에 아직 멀쩡히 남아있는 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 생산 공장도 있고, 완성 직전 단계에서 노동자들이 도망치는 바람에 방치되었다가 국방군에게 그대로 노획된 기체들도 수두룩하다.
이것들부터 인도로 보내고, 동시에 인도인들을 독일로 데려와 국방군과 무장친위대 교관들 밑에서 훈련을 시키는 거다.
게릴라전 전술뿐 아니라 전차, 전투기 등의 사용방법을 가르친 다음, 독일제 병기에 태워서 다시 인도로 보내 영국과 싸우게 한다.
어차피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관건일 뿐.
영연방 구성원들의 도움과 지원으로 연명하는 것도 모자라 전쟁도 사실상 그들의 손으로 대신 치르고 있는 영국은 절대로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가뜩이나 5년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이 인도에서 계속 싸우자고 하면 좋아할까?
그것도 자기네 나랏일도 아니고 종주국의 일에 자국 청년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안 그래도 SD의 보고에 의하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았다. 어째서 우리 청년들을 인도로 보내서 죽게 해야 하느냐며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는 언론들이 많아졌고, 시드니, 오타와, 캔버라, 토론토, 웰링턴 등지에서도 시위가 열리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조용한 곳은 남아공뿐.
나는 인도인들에게 무기를 지원하면서 이들에게 메시지를 줄 생각이었다. 첫째, 우리 독일은 인도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것. 둘째, 우리와 다시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빨리 손 털고 나가는 게 좋을 거라고.
***
1945년 1월 8일
캐나다 토론토
영국 망명정부의 총리 애틀리는 고민이 부쩍 늘었다.
처음 그는 인도의 독립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이었다. 인도가 자발적으로 대영제국의 일부로 남겠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할 턱이 없다.
인도인들은 독립을 원했고, 영국인인 그도 그 사실 정도는 알았다.
브리튼 섬은 나치 파시스트들에게 점령당했다. 전 유럽은 독일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상태이며 이집트, 팔레스타인, 이라크처럼 영국의 입김이 강했던 중동도 독일로 넘어갔다.
여기에 인도까지 넘어간다면? 인도가 독립하는 즉시 영국의 품을 떠나 독일과 친하게 지낼 것이라는 예측은 어린아이조차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영국은 인도를 좀처럼 놔줄 수 없었다. 독립하면 추축국이 될 게 뻔한데.
인도의 자원과 인력, 그리고 지정학적 위치가 추축국에 합쳐진다면 안 그래도 강한 독일은 더더욱 강해진다.
인도는 독일의 인도양-아시아 진출을 위한 훌륭한 전진기지가 될 것이고 미국과 독일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중국은 확실하게 독일 편으로 넘어갈지 모른다.
인도의 상실은 연합국의 아시아 대륙에서의 퇴출을 의미했다. 이런 논리로 영국은 인도 지배를 합리화했고 미국의 묵인을 받아내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예상했던 대로 인도인들은 거칠게 저항했다. 뉴델리, 캘커타 같은 대도시들은 매일같이 폭탄 테러와 총기 난사가 일어났고 인도 서부 발루치스탄은 이미 통제 불능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펀자브와 카슈미르도 위태위태하다고 한다.
인도인들의 저항으로 유혈사태가 이어지고 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이제껏 침묵하던 미국도 슬슬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총리, 언제까지 저들, 인도인들을 총칼로 억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제 슬슬 다른 방책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미국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예의주시 중인 독일을.
인도 게릴라들이 독일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 독일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영국인을 죽이고 그들의 힘을 빼놓기 위해 인도 반군을 지원했다.
미국을 의식한 건지 직접적으로 참전은 하지 않았지만,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 독일이 지금처럼 가만히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미국인들도 인도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게릴라전에 진저리를 쳤다. 그들은 자신들도 영국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인도 사태에 끌려 들어가진 않을까 걱정했다.
유럽과 태평양에서 그 지옥을 겪었는데 같은 일을 또 겪으라고?
당장 미국만 해도 이럴진대 영국 망명정부 내부에서도 격론이 오가고 있었다.
“인도는 이미 글렀소!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합니다!”
“인도는 엎질러진 물이니 포기하고, 그 병력과 물자로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지키는 데 써야 하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인도는 대영제국의 자존심이오. 인도까지 잃으면 뭐가 남겠소?”
“인도가 독립하는 것을 보고 아프리카 깜둥이들도 자기들도 독립시켜 달라고 들고 일어서면 어떻게 할 거요?”
“우리 청년들을 인도의 정글에서 죽게 하는 건 제정신이고?”
“그럴 거면 버마는 왜 독립시켰소? 그리고 무슨 자존심? 이미 본토까지 제리들에게 넘어간 마당에 아직도 자존심 운운하시오?”
“지금 말 다 했소!”
“이 매국노가!”
“매국노는 네놈들이지!”
고맙게도 외무장관 겸 부총리(애틀리가 총리가 되면서 계승했다) 이든은 적극적으로 애틀리의 편을 들어줬지만, 그조차 최근 들어 미국은 물론이고 영연방 구성국들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인도 총독 아치볼드 웨이벌과 인도군 총사령관 클로드 오킨렉도 인도는 가망이 없다는 의사를 타진해오고 있었다.
게릴라들은 기본적으로 군복을 입지 않고 있다. 그래서 놈들이 품에서 기관단총이나 수류탄을 꺼내 들기 전까지는 민간인들과 구분이 불가능하다.
어떤 부대는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한 후 게릴라들을 소탕했다고 보고해왔고 어떤 부대는 평범한 마을로 위장한 게릴라 소굴에 들어갔다가 몰살당해서 병사 2명만 겨우 살아남았다.
애틀리의 책상에 올라오는 보고서는 대개 이런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애틀리는 말없이 시가만 피웠다.
시름을 잊기 위해 독한 위스키를 들이켰지만, 이상하게도 취하지는 않았다. 위스키의 독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고 위에서 격통만 느껴질 뿐.
빌어먹을. 애틀리는 위스키를 가득 따른 잔을 들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윈스턴…… 어쩌자고 이렇게 많은 짐만 남겨두고 떠났단 말입니까…….”
자신은 브리튼 섬에 남아 최후까지 항전하겠다며 끝까지 피난을 거부한 처칠은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나치들은 그를 목매달아 처형한 뒤, 유해조차 찾을 수 없도록 시신을 불에 태워 재로 만든 뒤 어딘가의 바다에 뿌렸다.
괴벨스의 설명에 따르면,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가 정신병자들에게 숭배받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처칠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괴벨스의 입을 통해 세계에 전해졌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에 애틀리는 충격을 받았다.
미국과 영연방 구성국, 그리고 캐나다로 피난 온 망명정부들은 일제히 애도 성명을 발표하며 나치의 만행을 규탄했지만, 사람들은 묵묵히 일상을 영위해갈 뿐이었다.
오히려 대영제국을 패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작자가 죽었다고 속 시원해하는 반응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처칠은 패전을 초래한 무능한 정치인에 불과했다.
애틀리와 처칠은 서로 당적도 다르고, 많은 현안에서 자주 충돌하곤 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함께 협력했다.
무엇보다 독일의 정복 야욕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공통된 의견으로 둘의 사이는 다른 영국의 정치인들보다도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애틀리는 세상을 떠난 처칠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생전의 처칠이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대영제국은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중이었고 애틀리는 제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그가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영국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
“X발! X같은 게릴라 새끼들!”
친애하는 종주국의 결정으로 인도에 파병된 호주군 장병들은 악에 받친 욕설을 내뱉었다.
조금 전 수풀 속에서 날아든 로켓에 의해 선두 전차가 파괴되는 것을 시작으로 교전이 벌어졌다.
소총과 일본도 따위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효과만점이었던 셔먼도 독일제 판처파우스트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게릴라들은 주요 골목의 수풀 사이에 땅을 파고 매복해 있다가 전차가 다가오면 판처파우스트를 쏘는 전술을 선호했다.
인도의 토인들은 기껏해야 소화기뿐이니 전차가 있으면 놈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릴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던 중대장은 교전이 시작되고 얼마 뒤, 머리에 총알이 박혀 축 늘어졌다.
지휘관을 잃은 병사들은 어찌어찌 겨우 적들을 물리쳤지만, 피해는 막심했다. 게릴라들의 매복으로 전차 3대가 격파당하고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입대가 늦어 훈련소에서 종전을 맞이했던 신병들은 교관들, 그리고 장교들이 했던 호언장담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얼이 나갔다.
동남아의 정글에서 일본군과 사투를 벌였던 고참병들은 이를 갈았다.
인도의 반군은 일본군처럼 조직화한 해군이나 항공대가 없지만, 그 위험성은 일본군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면에서는 일본군보다 훨씬 위험했다.
일본군은 툭하면 반자이 돌격 같은 무식하고 무모한 구식 전술을 사용해 어렵지 않게 퇴치할 수 있었지만, 인도인들은 일본군이 즐겨 사용했던 반자이 돌격 따윈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히 몸을 숨긴 채 상대방이 방심한 상태에서만 공격을 가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일본군에게는 없던 독일제 판처파우스트가 있었다.
최대 사거리 250m에 현존하는 모든 전차를 일격에 관통할 수 있는 판처파우스트는 영연방군, 특히 기갑부대에게 아주 무서운 적수였다.
각도가 잘못되어 빗나가는 경우는 있어도 탄두가 전차의 장갑을 뚫지 못해 튕겨 나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거기다 히틀러의 전기톱이라 불리는 MG40에서 발사되는 총알 세례는 판처파우스트와 더불어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MG40에 맞은 병사는 몸에 구멍이 뚫리는 게 아니라 신체가 전기톱에 잘린 것마냥 절단이 나서 죽었다.
“어째서, 어째서 저 X같은 원숭이 놈들이 나치들 무기를 쓰고 있는 겁니까!?”
“바보냐? 히틀러가 줬겠지! X발, X같은 새끼!”
“망할 제리 새끼들. 하다하다 여기서도 지랄이야…….”
교전 중 사살한 게릴라들에게서 독일제 무기를 발견한 병사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X같은 나치들이 여기서도 지랄이라니. 이놈들은 대체 안 빠지는 곳이 없나?
가뜩이나 전쟁도 끝났으니, 집에 갈 일만 남은 줄 알고 있다가, 난데없이 인도로 보내져 게릴라들과 싸우고 있는 현실에 불만이 가득했던 장병들은 인도의 게릴라들을 지원하는 뒷배가 무엇인지 알고 허탈해졌다. 그리고 겁에 질렸다.
“이러다 다시 제리들이랑 한판 붙는 거 아닙니까?”
“야 이 새꺄, 재수 없는 소리 할래? 넌 말이 씨가 되는 거 몰라?”
“어쩌면 이미 제리들이 여기 있을 수 있어. 망할 새끼들…….”
캐나다로 온 영국 피난민들은 언젠가 조국을 점령한 제리들을 무찌르고 브리튼 섬을 탈환하는 것을 꿈꿨지만, 막상 독일과 다시 싸울 엄두는 내지 못했다.
특히나 영국이 아닌 그 위성국에서 자란 청년들에게는 남의 나라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우리가 유니언 잭 아래서 함께 싸우는 이웃이자 형제라곤 하지만 어째서 자신들이 전쟁도 진작에 끝난 마당에 이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
몸이 아픈 환자가 수액을 맞듯이, 인도 게릴라들을 지원하기 위한 독일의 선물들이 이란과 아프간을 통해 꾸준히 인도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거 미국 전차가 아닙니까?”
자유 인도 군단 중위의 질문에 독일 육군 장교는 씨익 웃었다.
“예, 맞습니다. 용케 알아보셨군요?”
방수포로 덮인 전차를 인도인은 용케 정체를 알아챘다. 중위가 대답했다.
“한때 인도 제국군에 있었으니까요.”
히틀러의 결정에 따라 독일은 노획한 미제, 영국제 전차들을 인도 게릴라들에게 보냈다.
게릴라 중에는 영국군에서 복무한 이들이 적지 않으니 독일 전차보단 미제, 영국제 전차들이 더 익숙할 것이며 적들의 교란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5년 동안의 전쟁에서 노획한 각종 총기들, 영국제, 프랑스제, 소련제, 미제, 이탈리아제 등등 잡다한 노획 무기들은 독일제 탄약이 호환되지 않아 장기간의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랬기에 독일은 노획품들을 아낌없이 인도인들에게 전해주었다.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전시용으로 따로 빼둔 것들을 제외하고서.
물론 인도 게릴라들이 전차들을 타고 영연방군과 동부전선에서 독일군과 소련군이 그랬던 것처럼 대규모 전차전을 벌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소총과 기관총, 끽해야 대전차포 정도만 가지고 있을 줄 알았던 게릴라들이 전차를 끌고 나타나 공격을 퍼붓는 것으로도 영연방군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릴 수 있었다.
“X발! 전차다!”
“게릴라 놈들에게 전차라니!”
전차들은 주로 적군이 보병들로만 이루어진 경우에만 나타났다.
생각지도 못한 전차의 등장에 혼비백산 병사들은 맞서 싸우라는 장교들의 지시도 무시한 채 앞다퉈 도망치기에 바빴다.
“도망치지 마라! 도망치면 사-”
-콰아앙!
셔먼의 75mm 주포가 불을 뿜어 도망치는 병사들에게 소리를 지르던 장교의 몸뚱아리를 터뜨렸다.
그리고 전차에 장착된 두 정의 기관총이 움직이며 아직 도망치지 않고 남아있던 압제자들을 벌집으로 탈바꿈시켰다.
도망치는 꼬라지 좀 보라지. 인도인 게릴라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치는 적들을 보며 힘차게 웃었다.
지금까지 적들이 전차를 끌고 나타나면 후퇴해야 했던 건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입장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인도인들이 국방군과 무장친위대 교관들에게서 훈련받았다.
독일식 교육을 받은 그들은 인도로 돌아가면 최소 소대장이나 그 이상의 직책을 맡게 될 예정이었다.
압제자들에게 맞서 조국을 해방시키고, 해방된 조국에서는 장교가 되어 신생 인도군을 이끌어나갈 인재들은 눈을 반짝이며 교관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열심히 땅바닥을 굴렀다.
“아쎄이들! 오늘은 가볍게 연병장 50바퀴로 시작한다!”
“악!!”
“목소리가 작다!”
“새끼, 기열!”
정예로 소문난 군대답게 훈련 과정은 혹독했고, 교관들은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늘 흘린 피가 내일의 독립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