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307)
307
이빨은 빠졌지만, 아직 발톱은 남아있다고 자부하는 사자가 인도에서 흘리는 피가 많아질수록 이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들도 힘을 얻었다.
“당장 인도에서 발을 빼라!”
“언제까지 우리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건가!”
“전쟁은 지겹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평화를!”
사람들은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공포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이러다 우리 차례가 오는 게 아닐까?
자신들의 아들이나 남편에게 입대 영장이 날아오고 하나뿐인 가족을 전장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을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비폭력주의자 간디를 총독부가 체포해 감옥에 박아 넣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 폭거라고 분개했다.
총과 폭탄 대신 대화와 공존을 강조하던 간디조차 무작정 잡아들이다니. 이건 너무하는 처사가 아닌가? 그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더욱 큰일은 독일까지 대놓고 이 사건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인도에 직접적인 군사력을 투사하지 않는 한 독일도 중립을 지키겠지만 인도에서의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것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유혈사태가 계속되는 상황에 대비해 이미 별도의 대비책을 마련 중이다.
“그리고 독재와 압제는 결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자유를 원하는 인도인들을 당장은 총칼로 억누를 수는 있어도 그들의 의지까지는 꺾지 못할 것입니다.”
리벤트로프의 발표문에 세계는 긴장했다. 독일이 인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대놓고 인증까지 한 것을 넘어 미국이 인도 사태에 참전하는 즉시 독일도 참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국도, 소련도, 미국도 독일과의 대결에서 패전을 면치 못했다. 만약 미국과 유럽 사이에 대서양이 없었으면, 지금쯤 워싱턴과 뉴욕에도 하켄크로이츠가 휘날리고 있으리라.
독일이 인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사람들의 반전, 혐전 여론은 더욱 강하게 불타올랐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인도 문제 때문에 독일과 다시 전쟁을 벌여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격분하며 시위를 벌였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인들은 자신의 가족들을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넌더리를 치며 인도의 해방을 요구했다.
연방의 믿었던 구성국들까지 인도 통치에 대놓고 반기를 들자, 영국 망명정부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졌다.
이젠 인도의 독립이 독일의 아시아 진출이라는 그럴듯한 논리도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독일의 인도양 진출을 저지하다가 독일과 전쟁을 벌일지도 모르게 됐는데! 주객전도도 정도껏 해야지!
인도에서 올라오는 보고들도 하나같이 절망적인 전망만 적혀 있었다. 누가 누가 더 절망적인지 대결이라도 하는 것처럼.
“인도 놈들이 전차를 끌고 왔다고?”
“아군 전차를 노획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게릴라들이 전차를 끌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는 처음엔 노획한 전차를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수량이 생각보다 많았다. 멀쩡한 전차를 노획해서 그대로 사용한다고 해도, 이 정도로 숫자가 많으면 뭔가 이상했다.
마지막으로 전투기까지 목격되자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이 X같은 제리 새끼들이!”
독일이 게릴라들에게 무기를 보급해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기관단총이나 수류탄에서 그치지 않고 이젠 전차와 야포, 전투기까지 지원하다니!
단순히 무기와 탄약만 쥐여준 게 아니다. 무기가 있어도 그것을 사용할 방법을 모르면 무용지물.
게릴라들이 자체적으로 전차의 운용방법과 전투기 모는 법을 깨우쳤을 리 없고 분명 독일이 이와 관련한 도움을 줬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 미개인들이 현대무기를 사용하겠나!
곧 OSS와 MI6는 독일이 이란과 아프간을 경유해 인도 게릴라들에게 무기와 탄약, 연료, 식량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과 독일 각지의 훈련소에서 인도인들이 훈련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문제는 알아내는 것까지만 성공했다는 것.
그 뒤에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이란과 아프간을 폭격하는 것은-”
“제정신인가? 아예 중동 전체까지 전쟁터로 만들려고?”
“그랬다간 바로 독일이 참전을 선언할 겁니다.”
인도 게릴라들만으로 골치가 아픈데 이란과 아프간까지 건드리는 것은 완벽한 자살행위였다. 그렇다고 이 두 국가를 가만히 놔두자니 게릴라들이 안정적으로 무기를 공급받는다.
“국경지대의 주요 골목만 폭격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다가 실수로 이란과 아프간 영토를 폭격하게 되면?”
“오히려 이를 빌미로 무슨 트집을 잡으려 할지…….”
“젠장! 그럼 어쩌자는 거요!”
“비단 그뿐만이 아닙니다. 갈수록 시위도 늘어나고 호주와 뉴질랜드도 더 이상의 징병은 어렵다고 통보해왔소.”
“미치겠군, 정말.”
시간이 흐를수록 영국이 더 이상 인도를 지배하기 어렵다는 결론만 확실해졌다.
결국, 영국은 하나를 택해야 했다.
인도를 문자 그대로 제국의 무덤으로 만들 것인가.
인도에서 발을 뺄 것인가.
계속 인도를 손에 쥐려고 한다면 영국은 완전히 고립되고 말 것이다.
그동안 영국 망명정부의 정책을 충실히 따랐던 영연방국들도 이제는 불편한 심기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인도를 포기한다면 영연방 내부의 갈등을 빠르게 봉합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인도는 확실하게 추축국이 될 것이고 나치 독일엔 인도양과 아시아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영국인들이 고심하고 있을 때, 미국에선 백악관의 주인이 교체되었다.
***
1945년 3월 9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미합중국 제34대 대통령 토마스 에드먼드 듀이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는 명확했다.
인도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것.
이제까지 월리스가 인도가 독립하면 추축국이 될 게 뻔하니 자신들이 계속 인도를 통치해야 한다는 영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방관자의 입장을 취했던 것에 반해, 혈기 넘치는 신임 대통령 듀이는 월리스처럼 방관자의 입장으로 계속 서 있을 생각이 없었다.
누가 봐도 영국이 인도를 예전처럼 식민지로 다스리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오히려 영국의 탄압이 계속될수록 인도인들의 반영 감정은 꾸준하게 축적되었다.
영국에 무기를 대는 미국에 대한 원한과 증오도 함께.
듀이가 보기에 미국이 계속해서 방관자의 입장으로 있는 것은 완벽한 자충수였다.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내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즉시, 인도에서 손을 떼도록 하시오.”
자신보다 나이가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애틀리에게 젊은 듀이는 단호하고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일말의 양보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투와 태도에 애틀리는 심히 당황했다.
“인도에서 손을 떼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도에서 철수하는 즉시 인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인들은 독립을 쟁취하겠지요.”
“빌어먹을. 지금 그걸 말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애틀리는 분개했다. 대영제국에 인도가 가지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 않을 사람이, 몰라서는 안 되는 사람이 어쩜 저렇게 쉽게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애틀리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듀이가 무턱대고 인도에서의 철수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당신들이 인도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나도 인도가 대영제국에 가지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고, 독립한 인도가 추축국에 붙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소.”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쉽게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대로 가면 인도가 독일의 동맹이 되리란 사실이 너무나 명확해서 말이죠.”
듀이 역시 인도가 독립하면 독일의 동맹이 되어 독일이 인도양과 아시아로 영향력을 넓히게 되는 것을 걱정했다.
그렇기에 그는 영국이 인도에서 벌이는 만행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인도인들이 독일과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자발적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인도인들의 증오가 지금보다 더 축적되기 전에 인도에서 손을 떼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 협상의 여지라도 남을 테니. 솔직하게 얘기합시다. 총리도 인도를 이전처럼 계속 지배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않소?”
“……부정은 안 하겠소.”
“당장은 인도인들의 반발을 억누를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 그것이 영원한 해답은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인도를 독립시키고 독일에 달라붙지 못하도록 이런저런 유화책을 쓰는 게 나은 선택지요.”
듀이는 인도의 독립이 피할 수 없다고 내다보았다. 나이를 먹는 게 싫다고 해서 시간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소?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있는데…… 지금 인도인들은 독일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제 와서 저들에게 당근을 내민다고 해서 인도인들이 독일산 소시지를 끊겠나 이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요.”
듀이도 그 점은 부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영국이 태도를 바꿔 인도의 독립을 지지하고 미국이 인도에 구애한다고 해서 인도가 대독전선에 합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듀이는 그러한 가능성까지 모두 계산해 둔 지 오래였다.
“하지만.”
“?”
“인도가 스스로 분열된다면?”
“혹시……?”
듀이의 의중을 눈치챈 애틀리가 묻자, 듀이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시크교…….
다른 건 종교뿐만이 아니다.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도 다르고, 영국인들이 ‘인도 제국’을 세우기 전까지는 인도인이라는 정체성도 없었다.
인도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독립을 안겨준 다음, 서로를 이간질해 서로서로 싸우게끔 만든다면?
독일의 인도양 진출에도 제동이 걸릴뿐더러 되려 큼지막한 골칫덩이를 안겨줄 수 있다.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지키는 것에 관해선 트집을 잡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전보다 더 지원을 늘려주겠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소?”
“……좋소이다. 그렇게 하지요.”
***
1945년 3월 14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미영 정상회담 이후, 영국 망명정부는 충격적인 발표문을 내놓았다.
인도에서의 전면적인 철수.
마침내 사자는 인도를 포기했다.
듀이와 애틀리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영국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소리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도는 포기 못 해’를 외치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저 제국주의자들이 인도를 포기할 리가 없다.
감옥에 처넣었던 간디와 네루도 석방되었다. 인도인 게릴라들은 영국군에 대한 공격을 중단했고, 영국 점령당국도 체포한 인도인들을 단계적으로 석방하고 철군할 준비를 시작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총통 각하! 총통 각하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더라면 인도인들은 영원히 영국인들의 노예로 남아야 했을 겁니다.”
애틀리가 인도 포기를 선언한 날, 보스는 나를 찾아와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사를 표했다.
“인도인들은 절대로 총통 각하와 독일 국민이 보여준 우정과 신뢰를 잊지 않을 겁니다! 죽어도, 죽어도, 죽어도 이 은혜를 반드시 갚겠습니다. 세상 모두가 독일을 등지더라도 인도만큼은 반드시 독일의 편으로 남을 겁니다.”
“나는 별로 한 게 없소. 인도인들에게 자유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우리의 지원도 무의미했겠지. 인도의 독립은 인도인들 스스로 쟁취해낸 것이오. 자부심을 가지시구려.”
보스와 그를 따르는 자유 인도 임시정부의 수뇌부들은 당장이라도 엎드려 내 발에 키스를 퍼부을 기세였다. 그냥 립서비스용으로 한 말인데.
“그나저나 이제 할 일이 많아지겠소? 나라를 세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니.”
“가장 어려운 관문을 넘었으니 그 어떤 고난도 인도인들은 거뜬히 넘길 수 있을 겁니다!”
보스는 인도의 미래에 강한 확신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에게 해줄 말은 많았지만, 굳이 벌써부터 기운 빠지게 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만뒀다.
독립은 쟁취했지만, 인도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당장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대립이라는 시한폭탄이 있는 데다 힌두교는 힌두교대로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카스트 제도라는 골병까지 있다.
실제 역사에서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을 여기서는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역사가 바뀐 만큼 인도의 운명도 달라질 가능성이 커졌으니 일단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보스와의 짧은 만남 뒤에는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회의실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트, 슈페어, 그리고…….
“만나서 반갑소이다, 아데나워 선생.”
“……나도 반갑습니다.”
콘라드 아데나워.
현 포젠 시장.
독일의 모든 시장 중에서 몇 안 되는 비(非)나치당원 중 하나.
아데나워가 소속된 중앙당은 현재 나치당 2중대나 다름없고 아데나워 자신도 현실과 타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따금 나치당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곤 했다.
하지만 능력이 워낙 출중한 덕에 나는 아데나워를 해임하라는 힘러, 괴벨스의 꾸준한 건의에도 그를 포젠 시장직에 유임시켰다.
오늘 내가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이유는 독일 수도 종합건설계획(Gesamtbauplan für die Reichshauptstadt) 때문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히틀러와 나치는 2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세계 제일가는 대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이름하여 세계수도 게르마니아(Welthauptstadt Germania).
여기에는 히틀러의 취향이 120% 반영된 초대형 건축물들이 지어질 예정이었다.
높이 290m에 18만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국민대회당(Volkshalle),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서 만든 높이 117m, 너비 170m에 달하는 게르마니아 개선문 등등.
이 모든 것들을 1940년대 안에 완공하고 1950년에 게르마니아로 개명한 베를린에서 세계 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이 히틀러의 소원이었다.
하지만 2차대전이 패배하고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르다. 독일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전 유럽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 이제 히틀러의 이루지 못한 야망을 이룰 시간이 됐다…… 라고는 할 수 없다.
내가 미쳤다고 그런 뻘짓을 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