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comedic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117
제120화
작전을 실행하기 전.
선행돼야 할 건 상대에 대한 전력을 가늠하는 거다.
에 대해 모든 교수가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티아가 당당하게 정보 수집을 요청한 를 위해 만든 그들을 위한 건물.
엘레노아의 말을 듣기로 고급 연금술 교수인 엔 드로드가 거길 지키고 있다 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엔 교수만이 있는 걸까? 아니면 로테이션으로 교수들이 순찰을 도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교수들 전부가 그 내부에 잠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뭐 그 정도 정보는 [관조]를 사용해 살펴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관조]로도 확인할 수 없는 전력. 그래, 디스크레 퍼니셔에 대한 정보다. 다른 이들은 괜찮다 해도 녀석이 문제다.
녀석만큼은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사전에 발견할 수조차도 없다.
녀석의 위치 정보만 확실하게 특정 지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녀석에 대한 위치 정보를 얻으려면 누구에게 손을 뻗어야 하지?
세력 중추에 있으면서도 허술한, 동시에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자.
“안녕하세요. 오즈 왕자. 간밤에는 편안히 잠드셨을까요?”
……가 눈앞에 나타났다.
안 그래도 찾아갈 생각이긴 했는데 설마 먼저 나타날 줄이야…….
“갑작스럽지만 역시 저희에게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고 생각해요.”
스테시아 반 헬리오스.
이참에 대놓고 머리를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물론 괜찮습니다. 사실 저도 그날 밤 이후 조금이라도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다면 좋았을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빈말이라도 듣기 좋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식사라도 함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스테시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살핀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멈춘 장소는 내 팔뚝.
저번에 마리에게 당한 흉터가 아직 남아있는 장소다.
“식사 말이죠…….”
지금 어딜 보면서 말하는 거야?
뱀 앞의 개구리가 된 기분이다. 섬뜩하고 기분 나쁘다.
“좋죠, 식사……. 츄릅…….”
역시 대상을 바꿀까?
지금이라도 아이라 교수를 찾아가는 게 정답일 거 같은데.
그 사람은 어벙한 구석이 있지만 일단 임시로나마 고급 마법학을 가르치고 있는 원로급의 마법사다.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엔 교수처럼 이번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흠, 흠……. 스테시아 전하? 생각해보니 제가 안내할 수 있는 식당이라는 게 결국 스키엔티아 내부 식당 정도인데 역시 다음 기회로 하는 게…….”
“헛……! 조, 좋아요. 오즈 왕자. 마침 스키엔티아의 식당에도 흥미가 있었어요.”
도망칠까 싶었더니 곧바로 승낙해버렸다. 이젠 뒤도 없다.
황족답게 서민의 음식 따위는 먹지 않는다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흥미가 있나 보다.
“에스코트해주시겠죠?”
“……물론이죠. 전하.”
스테시아의 손을 붙잡는다.
물론 팔뚝의 흉터를 흉흉하게 쳐다보는 저 시선은 아무리 그래도 부담스러우니까 자연스럽게 건강한 쪽 팔을 내민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선이 멀어지지 않는다.
역시 그건가? 피인가? 내 피를 노리고 있는 건가?
“그, 그러고 보니 스테시아 전하. 저번에는 제 피를 삼키시고 쓰러지신 걸로 아는데 괜찮으십니까?”
“네……. 무척이나 농밀하고 달콤한 맛이었어요.”
맛을 물어본 게 아니다.
그보다 알고 싶지도 않다.
분명 게임에서는 뱀파이어가 아닌 혼혈이라 피의 맛은 잘 모른다는 설정이었던 거 같은데 그냥 마음에 드는 피가 없었던 건가?
하긴 사형수의 피만 삼켜왔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 혹시 제가 흡수한 기억에 대해 물어보신 건가요?”
“아, 예…….”
마치 그날 마셨던 피에 대해 떠올리듯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스테시아가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이 화제를 옮겼다.
다행이다. 피에 대한 맛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
“혹시 어떤 기억을 보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후후, 부끄럼쟁이시네요.”
내가 부끄럼쟁이인 게 아니고 네가 사생활 침해를 한 거다.
아니면 황족이라 그런 건 모르는 건가?
“기억 말이죠…….”
그녀는 피를 마심으로써 기억을 읽을 수 있다.
그 특성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피를 주지 않으려 했던 건데……. 만약 그녀가 내 피를 마시게 되면 읽게 될 기억은 뭘까?
나에 대한 기억일까? 아니면 오즈에 대한 기억일까?
“안타깝게도 잘 모르겠네요.”
“예?”
“마치 물감이 섞여버린 것처럼 뒤죽박죽으로 엉켜버려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오즈 왕자께서 마법사라 그러신 걸까요?”
“그건 잘 모르겠군요…….”
스테시아는 나에 대한 기억을 읽어내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아쉬운 느낌도 든다.
오즈에 대한 기억을 흡수한 거라면 그를 통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혹시 한 입만 더 마셔보면 알지도 모르죠.”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눈빛을 보니까 저건 100% 한입으로는 안 끝난다.
죽을 때까지 뽑혀 나갈 거 같다.
“오즈 왕자? 배가 고프네요.”
빨리 식당을 찾아야겠다.
원래는 그녀의 식사에 맞출 생각이었지만 아까 쓸데없이 말을 늘린 탓에 내의 식당을 찾아야 할 판이다.
어떤 걸 먹여줘야 할까? 역시 무난하게 스테이크 같은 양식 종류가 좋을까? 아니면 패스트푸드?
한중일식이 섞여 있는 연방식 식당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색다른 경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메뉴를 고민하던 차였다.
“아, 오즈랑…… 누구?”
“윽…….”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스테시아의 표정이 미약한 공포로 일그러진다.
순식간에 호위들이 스테시아의 앞으로 나와 경계태세를 취한다.
“……나 뭐 잘못했어?”
그녀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가르쳐준 장본인인 마리가 그 업적에 어울리지 않게 울상짓기 시작했다.
“속은 좀 괜찮아?”
“응? 뭐가? 그보다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예쁜 사람이네.”
“만취하면 다음 날 기억 못 하는 타입이구나.”
술과 관련된 악조건이란 악조건은 다 달고 있다. 진짜 이 녀석에게는 술 먹이면 안 된다.
“소개할게. 이쪽은 스테시아 반 헬리오스 전하. 제국의 황녀시지.”
“황녀!”
“알아?”
“아버지가 나중에 죽고 나면 좋은 패가 될 거라고 했어.”
“당사자 앞에서 그런 얘기는 하지 말자.”
스테시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간다. 놀랍게도 내 만인지하의 위치에 있는 마리가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 스테시아의 담당일진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도 반가운데 같이 점심이나 하러 갈래?”
“괜찮아? 괜히 나 같은 걸 껴서 분위기 나빠지면 어떻게 해?”
“전하께서는 자애로우시니 허락해주실 거야.”
“……그럼요. 괜찮아요.”
사실 괜찮을 리가 없다. 지금만 해도 새하얗게 질리지 않았나.
하지만 내가 먼저 그녀의 인품을 들먹였으니 거절하기도 그러리라.
심지어 마리도 일단 왕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상 나보다도 없는 지위나 마찬가지지만 스테시아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으리라.
운이 좋았다. 스테시아가 마리를 저렇게 무서워한다는 건 그만큼 빈틈이 많아질 수도 있다는 거다.
아무리 군인보다는 덜하다고 해도 그녀도 황족. 정보를 캐내기까지는 제법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일이 쉽게 풀릴 거다.
“와! 친구가 늘었다! 그런데 오즈, 우리 뭐 먹으러 가는 거야?”
“음……. 그러게.”
안색이 창백한 스테시아와 태생이 창백한 마리를 번갈아 본다.
마리야 아무거나 줘도 잘 주워 먹겠지만 스테시아에게는 어떤 걸 먹여줘야 할까?
마리의 존재가 채찍이라면 지금의 나는 당근이 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오즈. 나 속이 조금 이상해. 이거 왜 그럴까?”
“……너는 진짜 술 먹지 마라.”
* * *
다른 의미로 표정이 창백한 두 사람을 이끌고 식당을 향한다.
목적지로 삼은 건 연방식 식당.
굳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식에 가까운 음식을 파는 곳이다.
오랜만에 익숙한 음식을 먹고 싶기도 했지만, 둘에게 가장 어울리는 음식이 있기도 했다.
가게가 좁은 탓에 스테시아의 호위들이 자리 잡기 힘든 감이 있지만 그건 오히려 잘 됐다. 지금부터 그녀를 구슬리는데 타인의 참견이 들어오면 귀찮아질 테니까.
“오즈! 나이프가 없어. 어쩌지?”
“가, 갑자기 나이프는 왜 찾으시는지?”
“응?”
“여긴 나이프가 필요 없는 가게니까 없어. 마리.”
고작 나이프 하나에 저 정도 과민반응이라니……. 내가 알고 있는 스테시아와 괴리감이 장난 아니다.
그렇게 한 사람만의 불편한 침묵 속에서 식사를 기다리던 사이.
마침내 음식이 나왔다.
“아, 연방식 스튜네요.”
연방식 스튜.
즉 국밥이라는 소리다. 이것도 결국 뻔하디뻔한 클리셰다.
생각해보니 나도 이 세상에 빙의한 이후로 먹는 건 오랜만이다.
솔직히 그립지는 않았다.
입맛도 은연중에 오즈와 비슷해져 버렸는지 아니면 사치스러운 생활이 즐거웠던 건지 그냥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 좋았다.
“연방식 음식이 전하의 입에 맞으실지는 모르겠군요.”
“아뇨, 맛있어 보이는걸요? 잘 먹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결코 먼저 수저를 들어 올리지는 않는다.
부담스러운 건가? 아니면 독 같은 걸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잘 먹을게 오즈.”
스테시아가 뜸을 들이는 사이 마리는 거침없이 수저를 들고 국물을 홀짝거리며 마셨다.
솔직히 이게 마리의 입에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숙취가 남아있다면 해장국을 먹는 게 좋겠지.
마리도 가리는 거 없이 잘 먹으니 상관없을 거다.
“응, 마음에 들어.”
그렇게 국물을 홀짝이던 마리는 이내 마음에 든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그럼 저도…….”
그 모습에 스테시아도 마침내 수저를 들어 올렸다. 그녀도 마리처럼 국물을 홀짝이다가 이내 건더기를 조금 베어 물었다.
“아……!”
줄곧 불편해하던 스테시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황홀경에 빠진다.
갑작스러운 감탄사에 그녀의 호위들도 움찔거리던 찰나.
“마치 넓은 들판을 거니는 소의 모습이 떠오르는 맛이에요! 이런 맛이 있을 줄이야……!”
저 구체적인 감탄사를 봐라.
저게 맛에 감탄한 게 맞나? 아무리 생각해도 착각한 거 같은데?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군요.”
아무래도 선지를 통해 소의 기억을 흡수한 것 같다.
선지해장국은 역시 정답이었다.
* * *
“음, 이 차는 맛이 진해서 독특한 느낌이네요.”
스테시아는 식사가 만족스러웠는지 후식으로 나온 대추차를 홀짝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좋아해 줄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이걸로 호감도는 꽤 높였을 거다.
정작 채찍 역할을 기대했던 마리는 잠들어 버렸지만…….
아무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그럼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시려나요? 오즈 왕자.”
“예, 본론으로 넘어가죠.”
역시 그렇게까지 단순하지는 않다. 스테시아도 내 본론이 따로 있다는 것쯤은 간단히 알아챘다.
“으음……. 어떤 게 있을까요? 테네브리스? 아니면 루시아 양?”
“다 알고 계신 듯하니 얘기가 빠르겠군요.”
의 요원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쉬울 줄 알았는데 역시 그렇게 쉽게 가지는 않는다.
스테시아도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치고는 상황을 제법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다.
“상황을 알고 싶으신 건가요?”
“전력.”
“이건 또 당돌한 질문이네요.”
스테시아는 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배시시 웃었다.
한순간이지만 그녀가 평범한 소녀로 보였다.
애초에 생각해본 적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역시 그녀가 빌런이 되기 전에 막아내는 것도 해봄 직한 일이 아닐까 싶다.
“오즈 왕자. 그게 과연 제국에 도움이 될까요?”
내가 스테시아를 선택한 이유,
그건 그녀의 행동원리가 ‘제국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 행동원리는 결과론을 따르고 있다
과정이 참혹할지언정 그게 제국을 위한 일이라면 그녀는 거리낌 없이 그렇게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너머를 보고 있다.
애초에 그런 사고방식이었기에 사형수들의 피를 흡수한 거겠지.
누군가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게 최종적으로 제국의 도움이 된다면야 그걸로 괜찮다.
“이번에 제 일을 도와주신다면 얼마 전에 제 정보를 팔아넘겼던 일은 눈감아드리겠습니다.”
“혹시 그 일이 혹시 제국과 척을 지게 할 정도로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일인가요? 몰랐네요…….”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제국과 척을 지겠다는 건 아무리 그래도 멍청한 생각이죠.”
내 사진을 팔아넘겼다.
고작 그것만으로 제국과의 관계가 틀어진다면 우스운 일이다.
스테시아 역시 그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거리낌 없이 저질렀을 터다. 내가 제국과 척을 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거다.
물론 그녀는 감정을 제외한 결과만을 보고 있기에 사람의 기분은 고려하지도 못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 끔찍한 사고방식이 오히려 도움이 될 거다.
“이번 일에도 협력하지 않겠다면 제국과 척을 지게 될지도 모르죠.”
“……혹시 테네브리스에게 보복하고 싶은 건가요? 그건 곤란해요.”
이렇게까지 세게 나온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들을 죽일 생각도 아니고요. 그저 제 사진을 멋대로 팔아넘긴 그 고양이와 만나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번 목적은 그런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고양이 한 마리 훈육하는 것뿐이다.
그래, 고작 그 정도다.
그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있어서 루시아의 기분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테니까.
“으음……. 그 정도는 상관없을 거 같지만. 그래도 힘들지 않을까요?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건 디스크레 경이에요. 제 명령이라고 해도 간단히 들어주지는 않겠죠.”
그런 사고 뒤에도 현실의 벽이라는 건 있다.
단순히 생각해도 조직의 정보를 팔아먹거나 체계를 흐트러트리는 짓을 할 리가 없는 거다.
그건 감정 이전의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 내 목적은 상대방의 전력을 가늠하는 것.
방금 전 대화를 통해 디스크레가 돌아와 있다는 건 확인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전력은 [관조]로 확인하면 그만이다.
“그럼 그 디스크레 경과 만나게 해주시는 건?”
“으음……. 그것도 멋대로 결정하는 건 역시 어려울 거 같은데요.”
조금씩 조율해나간다.
그녀가 허락할 수 있는 선과 그 틈 사이에서의 방법을 찾는다.
내게 필요한 최저한도의 정보는 디스크레의 위치 정보. 녀석의 은신은 [관조]로도 잡아낼 수 없다.
만약 녀석의 위치를 사전에 파악해두지 못한다면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실패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제가 만나고 싶다고 전해주실 수는 있겠습니까?”
“으음…….”
스테시아가 눈을 지그시 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늠하고 있다.
“그 정도라면…….”
그 결과 떨어진 건 승낙.
하긴 말을 전하는 것 정도는 그녀가 아니더라도 생각하기 쉬운 일일 터다. 이거면 됐다.
“하지만 그 부탁을 그냥 들어주기도 그렇네요.”
“그러시겠죠.”
뭐,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녀를 설득할 방도를 준비해뒀다.
“이건 어떻습니까?”
품 안에 미리 준비해뒀던 피가 담긴 유리병을 꺼낸다.
그녀에게 있어서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피 몇 방울. 그녀에게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거래일 거다.
스테시아의 눈동자가 병에 사로잡힌다. 알기 쉬운 반응이다.
“……어떤 말씀을 전해드리면 될까요?”
그리고 예상대로 그녀는 미끼를 물었다.
“오늘 저녁 8시, 그쪽 건물 정문 앞에서 기다릴 테니 잠시 만나자고 해주시겠습니까? 이번 일에 대해 정확히 들어야겠다고 말이죠.”
“좋아요. 그래도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선택은 어디까지나 디스크레 경의 몫이니까.”
“그거면 될 겁니다.”
나오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건 명분이니까.
내게 명분이 있는 한 선공을 가할 수는 없을 거다.
더군다나 나 정도 되는 인물이 기다린다고 하면 디스크레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을 거다.
내가 어떤 수를 쓸지 모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볼 터.
적어도 녀석을 붙잡아두는 것만큼은 할 수 있을 거다.
“그, 그럼 그건 이제…….”
“네, 드리겠습니다. 좋은 거래가 된 것 같군요.”
스테시아에게 유리병을 건넨다.
참고로 안에 든 게 내 피라고 한 적은 없다. 저건 엘레노아의 피다.
내 피를 주기 싫다고 하니 어째서인지 흔쾌히 제공해줬다.
어떤 의미로 저 피도 나름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 테니 속았다고는 할 수 없을 거다.
이번 일을 통해 그녀가 분하다는 감정을 깨달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이게 다 그녀 잘되라고 한 일이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