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01)
흑기사
* * *
다음 날. 용병 길드를 통해 에른스트가 사람을 모은다는 소식이 퍼졌다.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건 이번 시험에 참여했다가 의뢰주와 주인을 잃은 용병과 사병들이다.
이번 시험은 특히 귀족들 간의 전투가 빈번했는데, 이는 단순히 시험의 경쟁자여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귀족들은 수십 년간 좁디좁은 상위 구역에서 부대껴 살았다.
모여 살다 보면 얼굴 붉힐 일도 생기고, 원한 관계도 만들어진다.
문제는 그런 원한이 있어도 상위 구역이라는 좁은 사회에서 계속 마주쳐야 하는 것이다.
원한이 깊어지기에는 최적의 조건.
귀족들은 이번 기회를 그 원한을 푸는 데 사용했다.
경쟁자를 제거하며, 그간 마음에 안 들던 타가문의 자제들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다.
꽤나 많은 귀족이 죽어 나갔고, 그런 식으로 주인을 잃은 용병과 사병이 붕 뜨게 되었다.
용병들은 새 고용주를 찾아 북부에서 서성였고 사병들은 어찌할지 몰라 어슬렁거렸다.
이레네로 돌아가봤자 처벌만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에른스트가 사람을 고용한다는 말이 귀에 들려왔다.
“티센 남작가의 에른스트? 들어봤어?”
“아니. 처음 듣는데.”
“그래도 가문의 이름을 걸고 전부 받아준다는 거 보면 진심인가 본데?”
“그러면 한번 지원해볼까?”
그런 식으로 사람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건이 하나 더 일어났다.
“영주께서 검은 사신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금화 300개! 300개를 거셨다!”
엘드리엄의 영주는 계산적이면서도 눈치 빠른 인물이었다.
처음 몬스터의 범람과 언데드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혼란이 커졌을 때.
그녀는 이게 홀로 막아낼 만한 사건이 아니라 여겼다.
막으려면 어떻게든 막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는 그녀가 짊어져야 할 출혈이 너무 컸다.
그래서 영주는 본인이 대대로 황실과 친한 가문이라는 내세워, 황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즉. 황실 기사단을 보내달라는 뜻이었다.
황실 기사단의 기사 다섯만 와도 어지간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다.
황제는 기사단 대신 상위 구역의 귀족들을 보냈다.
친위대의 단장 자리를 미끼로 내걸었고, 실제로 귀족들은 가문의 병사와 용병을 대동해 이곳 엘드리엄으로 모여들었다.
엘드리엄의 영주는 기뻐했다.
귀족들이 군세가 적지도 않았거니와, 그들이 뿌린 돈으로 도시가 기쁨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 돈 중 많은 부분이 세금으로서 영주의 주머니로 들어오게 될 터였다.
황제가 참 일을 잘해주었다고. 크게 만족했다.
그러면서 영주는 욕심을 냈다.
어차피 귀족들이 언데드를 물리쳐 줄 테니 자신의 병사를 지원해준다거나 하는 도움을 일체 삼간 것이다.
귀족들이 알아서 해결할 텐데 굳이 자기 병사를 왜 사용하겠는가?
손 안 대고 코를 푼다는 격언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하지만 그녀가 예상치 못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귀족들 사이가 생각보다 더 나빴다는 것.
귀족들은 언데드나 몬스터를 사냥하기보다, 서로를 죽이는 데에 열중했다.
설령 같이 언데드를 상대로 싸운다고 해도 협력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는 와중에 검은 사신이라는 흑기사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영주 역시 그 흑기사가 이번 일과 깊은 관계가 있다 여겼다. 귀족들에게 흑기사의 토벌을 부탁했다.
그녀의 말에 혹한 몇몇 귀족들이 흑기사를 사냥하기 잡기 나섰다.
일곱 가문 동맹처럼 함께 손을 잡는 이들도 있었고, 일정 규모 이상의 가문은 혼자서 사냥하려 했다.
공을 남들과 나누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흑기사가 생각보다 더 강했다는 것이다.
황실 기사단에 들어갈 실력은 안 되지만, 그래도 나름 저력을 지닌 기사들이 몰살당했다.
흑기사와 맞선 자는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심지어 그렇게 죽은 이들은 언데드가 되어 흑기사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언데드에게 박살나는 전형적인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영주다.
지금도 이미 충분히 피해가 크다.
당장 저 괴물을 막아내야 했다.
그녀는 일단 도시에 남아있는 귀족들에게 사람을 보냈다. 협력을 구하려 했다.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뭐라고?! 전부 도망쳤다고!”
“그, 그렇습니다. 티센 가문의 에른스트라는 분 외에는 전부 도망쳤습니다.”
“무슨! 위험할 것 같다고 전부 꽁무니를 내빼다니. 세간의 비웃음이 두렵지 않단 말인가!”
유능한 귀족은 이미 상위 구역에서 자리를 잡았고, 애매한 자들만 참가한 시험이다.
어찌 보면 예정된 결과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내막까지는 모르는 영주는 치를 떨었다.
하지만 이미 떠나간 자들을 다시 붙잡아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주는 결단을 내렸다.
“검은 사신에게 현상금을 걸어라.”
“얼마를 걸면 되겠습니까.”
“금화 300개.”
“!”
금화 300개. 일반 시민은 꿈도 꾸기 힘들 정도의 거금이다. 영주는 이 현상금을 미끼로 다른 지역에 있는 용병들까지 불러 모을 생각이었다.
돈 되는 소문은 빨리 퍼지기 마련이니, 머지않아 용병들이 몰려들 것이다.
물론. 아무리 영주라고 해도 이 정도의 돈은 큰 부담이다. 하지만 영주는 그만큼 절박했다.
금화 300개짜리 현상금에 대한 소문은 도시의 모든 용병들은 물론 주민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금화 300개면 평생 놀고먹고도 남는 돈이야.”
“근데 우리끼리는 힘들지 않아? 아무리 돈이 탐나도 개죽음밖에 안 될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웬 처음 들어보는 귀족이 흑기사 토벌대를 모집하고 있다는데. 거기 껴서 기회만 잘 보면, 금화 몇 개는 받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
“오.”
언제나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욕망이다.
권력. 돈. 성공.
귀족이나 평민이나 그 점에 차이는 없다.
사람들이 에른스트의 아래로 모이기 시작했다.
* * *
데일은 이른 아침부터 한스와 함께 도시를 돌아다녔다.
흑기사와의 싸움이 확실시된 만큼, 그에 따른 준비를 할 생각이다.
‘성수. 그리고 사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빛의 신성이 담긴 성수는 언데드에게 치명적이며, 밤의 힘을 다루는 흑기사에게는 더더욱 치명적이다.
데일도 몇 번 맞아봐서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둘은 에스델이 구해오겠다고 했고.’
에스델이 교단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으니, 그에 대한 결과를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기름이 있으면 더욱 좋고.’
불.
언데드에게는 언제나 효과적인 공격 무기다.
특히. 상대는 냉기 계열을 택한 흑기사다. 못해도 5등급에 달한 실력자.
한스의 말이 맞다면 냉기에는 상성이라 할 수 있는 불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주는 게 좋을 것이다.
그냥 기름을 사용해도 되지만, 그러면 불이 금방 꺼질 수도 있다.
데일은 좀 더 제대로 준비할 생각이다.
“아. 저기 보이네요.”
앞서나가던 한스가 앞을 가리켰다. 굴뚝이 높이 솟은 가게였는데, 굴뚝에서 위험한 색깔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엘드리엄의 유일한 연금술 공방입니다. 주로 포션을 만든다는데, 다른 것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데일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공방 안은 매우 세련된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고,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젊은 점원이 활기차게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수상쩍은 시약병들과 약품에 절여진 몬스터가 전시되어 있지 않을까 예상하던 데일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점원은 데일을 보며 잠깐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사무적인 미소를 지어내며 데일을 응대했다.
교육을 잘 받은 점원이었다.
“무엇을 찾으시나요?”
“검은 불을 사고 싶다.”
“검은 불 말인가요?”
검은 불.
끈적한 검은색 시약으로 한번 불이 붙으면 연료가 다 할 때까지 꺼지는 법이 없다.
흑기사가 다루는 냉기를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을 터.
점원이 물었다.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얼마나 있지?”
“어. 창고를 찾아보면 30병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잘 안 팔리는 제품이니까요.”
데일이 말했다.
“전부 다 줘라.”
“……예?”
“30병 다 달라고.”
“저, 전부요?”
점원과 한스 모두 당황했다.
“전쟁이라도 나가시나요?”
“데일 경. 돈 많아요? 이거 엄청 비싼데요?”
데일은 대답 대신 묵직한 주머니를 내밀었다.
점원은 슬쩍 주머니를 열었고, 그 안에 반짝이는 은화들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
개중에는 금화도 몇 개 섞여 있었다.
“바로 창고에서 꺼내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어차피 돈 쓸 일도 없는 데일이다. 그간 해온 일 때문에 돈이 부족할 일은 없다.
만만치 않은 상대이니만큼, 확실히 준비할 생각이다.
데일이 조금의 흥정도 없이 선뜻 거금을 내놓자 한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데일 경. 사실 제가 요즘 새로 마법 연구를 하는 데 돈이 좀 필요하거든요?”
“근데.”
“무려 번개를 독수리의 형상으로 날려보내는 마법인데, 데일 경께서 자금을 조금 지원해주신다면, 절대 후회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싫어.”
“…….”
그 사이 점원이 궤짝을 들고 왔다. 궤짝 안에는 검은 액체가 든 유리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데일은 점원에게서 궤짝을 받아들고는 공방을 나섰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점원은 통 큰 고객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공방을 나선 둘은 그 뒤로도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조금이라도 준비를 철저히 하기 위해 구할 수 있는 모두 구하려 했다.
한스는 그런 데일에게 혀를 내둘렀다.
‘단순무식하게 생겨서는 꼼꼼하기는 마탑 노인네들 못지않네.’
그때.
데일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속으로 툴툴거리던 한스는 데일의 갑옷과 얼굴을 부딪혔다.
“악. 갑자기 왜 멈추는 거예요.”
“저거.”
데일이 한쪽을 가리켰다.
두 개의 대로가 십자로 교차하는, 엘드리엄의 중심지였다. 그 중앙에 익숙한 석상이 하나 서 있었다.
투구를 깊이 눌러쓴 기사가 룬 문자가 새겨진 검을 들고 있는 조각상.
한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얼굴 없는 기사의 석상이네요. 저게 왜요?”
얼굴 없는 기사. 데일이 찾아다니는 영웅들 중 하나.
데일이 물었다.
“왜 혼자지?”
영웅들의 위명을 생각하면 이곳저곳에 석상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한데. 왜 네 명이 함께 있는 게 아니라, 기사 혼자 있단 말인가.
한스는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야 영웅들 중에서 북부에서 활동한 건 저 기사 혼자니까요?”
“북부에서 활동했다고? 뭣 때문에?”
“저야 모르죠. 용뼈 산맥에 몬스터가 많으니, 그거라도 사냥하고 다닌 거 아니겠어요?”
“흠.”
4명의 영웅 중, 얼굴 없는 기사는 다른 영웅들과 달리 그 활동이나 행적이 모호할 때가 많았다.
워낙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떠돌아다닌 것이다.
‘북부에 왔었다라.’
또 하나의 정보를 얻어냈다.
이렇게 대륙을 돌아다니며 영웅들의 흔적을 찾을 때마다 꽤나 묘한 기분을 느꼈다.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씩 찾아내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
데일은 조각상의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상위구역에서 봤던 것처럼 어떤 문장이 새겨져 있을까 싶어 꼼꼼히 확인했다. 하지만 조각상은 잘 관리된 듯, 몹시 깔끔했다.
문장은커녕 낙서 하나도 없었다.
한스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조각상에서 시선을 뗀 데일은 무심하게 걸음을 옮겼다.
한스도 얼른 발걸음을 맞췄다.
그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어느 샌가부터 거리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근데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도시에 사람이 많은 게 뭐 이상한가?”
“북부 사람들은 밖에 잘 안 돌아다닌다고요. 그리고 기분 탓인지 다들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 말대로였다.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은 모두 데일과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분 탓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을 걷고도 사람들은 흩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한스가 옆 사람에게 물었다.
“이보세요. 다들 왜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거랍니까? 뭐 축제라도 하나요?”
“응?”
질문을 받은 사내는 등에 양날 도끼를 맨 드워프였다.
“모르고 같이 가는 거였소? 다들 흑기사 토벌대에 참여하려는 게 아니오.”
“흑기사 토벌대…… 이 인원 전체가 말입니까?”
“그렇소.”
지금 거리에 보이는 것만 해도 수백 명이다.
이들이 전부 토벌대에 참여한다면, 대체 어느 정도의 규모란 말인가.
한스가 감탄하며 말했다.
“이 인원을 모두 고용하려는 거 보면 꽤 권세 높은 귀족인가 본데요. 이번에 참여한 가문 중에서 이만한 여력이 있는 가문은…… 톨 백작가? 아니면 바텐 백작가려나?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이쪽에 붙으면 안 될까요? 저희 끽해야 50명도 안 되는데, 홀로 싸우는 것보다는 이 토벌대에 합류하는 게 더 승산 있지 않겠어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확실히 이만한 숫자를 지휘하는 귀족이 있다면, 그들과 합류하는 게 더 승산이 높은 싸움이 될 터이다.
어차피 데일이나 에른스트나 단장 자리에는 관심 없지 않은가?
혼란을 흩뿌리는 흑기사를 저지할 수 있다면 그만일 터.
“누가 토벌대를 모으는지 일단 확인하고, 숙소로 돌아가자.”
“예. 좋네요. 마침 방향도 비슷한 것 같으니까요.”
둘은 그렇게 한참을 더 걸었고. 마침내 함께 걷던 이들이 모두 걸음을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오. 여기가 그 귀족이 있는 곳 같은데…….”
한스가 말을 잃었다.
그는 자기 눈을 비빈 뒤, 다시 말했다.
“왠지 여기 우리 숙소인 것 같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