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04)
흑기사
* * *
북부에서도 서쪽 외곽.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북해가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마을이 하나 있었다.
가난한 마을이었다.
자연은 언제나 혹독했고, 사람들의 형편은 좋지 않았다.
농사가 힘든 척박한 땅인지라 대부분의 마을 구성원이 어업과 사냥으로 먹고살았는데, 둘 모두 안정적인 일은 아니었다.
주민들이 거친 바다에 빠져 죽거나 맹수에게 물려 죽는 경우도 흔했다. 사냥에 실패하는 날도 많았다.
허탕을 치는 날이면 온 마을이 굶어야 했다.
다행히 주민들 사이의 관계는 끈끈해 아사자가 나오는 경우는 적었지만, 그래도 주민들의 삶은 몹시 고되었다.
그러던 중.
한 소년이 태어났다.
소년은 북부의 사내답게 강건한 신체를 타고났고, 사냥을 비롯해 싸움에도 소질을 보였다.
어른들은 항상 소년을 보며 말했다.
소년이 좋은 곳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기사로서 출세했을 것이라고.
소년의 부모는 그런 소년에게 항상 미안해했다.
좋은 부모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소년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소년은 이 마을이 좋았다.
비록 환경은 척박하고, 배부른 날보다 굶는 날이 많지만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침에 일어나 이웃들끼리 인사하는 반가움이 좋았고, 자그마한 기쁨이라도 생기면 함께 축하해주는 그 따스함이 좋았으며, 적은 식량이라도 생기면 다 함께 나눠먹던 그 소박함이 좋았다.
소년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사랑했다. 고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어느 겨울.
유독 칼바람이 혹독하게 몰아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추위를 뚫고 바다에 나가거나 사냥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사냥을 못 하면 굶을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다 함께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칼바람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색이 없었다.
그대로 온 마을을 집어삼켜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집요하게 몰아쳤다.
더는 버틸 수 없다.
이대로라면 전부 굶어 죽을 판이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목숨을 걸고 밖으로 나가 사냥하거나, 이대로 천천히 죽어가거나.
어느 쪽이든 절망적이었다.
그때 마을에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바로 징병관이다.
“1군단에 복무할 병사를 모집하고 있소! 제국을 수호하는 명예로운 일이오!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징병관이 독하기로는 세금 징수원에 밀리지 않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런 칼바람을 뚫고 올 줄이야?
징병관이 당황하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병사로서 참여하면 당연히 보상을 줄 것이오! 전장에서 복무한 만큼 주급이 나올 것이며, 활약을 선보인다면 이 마을에도 큰 상훈이 내려질 것이오!”
전선에 선 평민이 활약해 출세하고, 그 고향에까지 상훈이 내려진 일화는 징병관들이 흔히 지껄이는 이야기다.
물론. 그런 사례가 극도로 희소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소년은 그곳에서 기회를 보았다.
“가겠습니다.”
“음?”
“하지만 그냥은 가지 않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올겨울을 날 식량을 주십시오.”
징병관은 인상을 찌푸렸다.
당돌한 소년이다. 그리고 당돌함은 군대에서 반기지 않는 개성이다.
징병관은 몽둥이를 꺼냈다.
그대로 소년을 두들겨 패, 현실의 혹독함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징병관의 몽둥이를 막아낸 뒤, 그대로 징병관을 제압해버렸다.
자기 실력을 선보인 것이다.
그제야 징병관도 소년에게 재능이 있음을 알아보았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나?”
절대 두 번 묻는 법이 없는 징병관이 그리 물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다. 너만큼 쓸만한 녀석을 데려가면 나도 나쁘지 않지. 이런 편의를 봐주는 건 처음이지만…… 네 주급을 가불하는 식으로 식량을 주겠다. 즉 빚이다. 오래 살아남아서 빚을 갚도록.”
쓸모 있는 인재를 데려가면 징병관에게도 실적이 된다.
그렇게 거래가 성사되었다.
가족과 주민들은 그런 소년을 말리려 했다.
일반 병사가 전선에 가서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년의 결심은 확고했다.
곧바로 짐을 쌌고, 재촉하는 징병관의 뒤를 따랐다.
자기를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소년은 말했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모두 건강하세요.”
그렇게 고향을 사랑한 소년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소년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눈보라에 휩싸인 마을의 정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 * *
눈이 내린다.
꼭 북부가 아니라도 겨울 행군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용병들은 두꺼운 털 옷을 부여잡으며 차가운 숨을 뱉어냈다.
그나마 북부 출신 사람들은 그럭저럭 버텨냈다.
이 정도면 북부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너스레를 떠는 이들도 있었다.
고생하는 건 따뜻한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다.
“에취!”
요란하게 재채기한 에스델이 로브를 추슬렀다.
데일이 등에 멘 배낭에서 모포를 꺼내 건넸다.
“이걸 몸에 둘러라.”
“데일 경은…….”
“어차피 나는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감사합니다.”
에스델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모포를 몸에 둘렀다.
옆에서 서운한 목소리로 ‘나도 추운데……’라고 중얼거리던 하켄이 말했다.
“여긴 뭔 놈의 바람이 이렇게 강하게 분대요? 바다 근처라 그런가?”
거센 바람과 함께 휘날리는 눈발에 하켄은 연신 눈을 찌푸렸다.
데일이 덤덤하게 말했다.
“조금만 참아라.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다.”
우중충한 날씨와 흩날리는 눈발 때문에 시야가 좁지만,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는 건 지금의 날씨만 봐도 느낄 수 있었다.
북해 근방답게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다.
‘상대가 언데드라서 한편으로는 다행이군.’
이기든 지든 한 번의 충돌로 끝이 날 테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추위에서 시간이 질질 끌리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데일의 예상대로.
두어 시간 정도를 더 이동하자 마을이 보였다.
정확히는 마을이었던 흔적이었지만.
하켄이 감탄을 흘렸다.
“이야.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았군요.”
주민들이 떠난 지 어림잡아 10년은 넘었을까?
다행히 통나무로 지어진 목책이나 집들은 아직 제 구실을 할 수 있어보였다.
심지어 조잡하지만 망루도 하나 있었다.
“맹수가 많은 곳이라 없는 살림에 망루도 지어놨네요.”
뒤이어 도착한 영주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크게 외쳤다.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언데드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데일이 하티를 보내 정찰을 시켰으므로, 이는 확실한 정보였다.
지금은 잠깐 휴식을 취할 여유가 있었다.
이 이후에는 진지 공사를 해야겠지만.
용병들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휴식을 취하는 동안. 데일은 마을을 둘러보았다.
옆에 따라온 에스델이 중얼거렸다.
“을씨년스럽네요. 주민들은 왜 마을을 떠났을까요?”
“글쎄. 더는 이런 곳에서 생활하기 힘들었겠지.”
데일은 그나마 멀쩡한 집 문을 열었다. 다른 집과는 달리 집기나 생활용품이 남아 있는 집이었다.
‘마지막까지 사람이 산 건가?’
함께 안으로 들어온 에스델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이, 이건.”
“왜 그러나.”
에스델은 침대를 가리켰다.
모포가 덮여 있었는데, 그 아래 비쩍 마른 발이 빠져 나와 있었다.
데일은 모포를 살짝 들어 확인했다.
“……동사했군.”
데일은 다시 모포를 덮었다.
상황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마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그중 누군가는 이곳에 남기를 원했을 것이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남은 것일까.
단지 평생의 터전을 떠날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남아야 했을 이유가 있을까.
데일과 에스델은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죽은 자의 수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머지않아 전장이 되고, 조용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테지만 말이다.
“자! 이제 그만 일어나도록!”
휴식을 마친 용병들은 작업을 시작했다.
얼어붙은 바닥에 말뚝을 박아 넣었고, 망루와 목책을 수리했다.
시간이 넉넉지 않은 만큼 최소한의 조치다.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급조한 방벽 덕에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얼추 모든 작업이 끝난 다음에는 식사 시간이었다.
곳곳에 피운 모닥불에서 연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솥에는 고기와 재료를 아낌없이 들이부었고, 영주는 맥주를 한 잔씩 돌렸다.
고기와 술을 배불리 먹인다.
마지막 식사일 수도 있는 만큼 베푸는 최소한의 호의였다.
용병과 병사들은 이 이후에 있을 전투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듯. 다들 쾌활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니면 애써 쾌활한 척하거나.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발은 더욱 심해지고, 사위는 점점 어둠에 물들어갔다.
그나마 우중충한 구름을 뚫고 지상을 비추던 조금의 햇빛마저 사라졌다.
분위기가 변했다.
다들 그렇게 느꼈다.
눈발을 뚫고 커다란 늑대가 다가왔다. 영리한 하티가 되돌아온 것이다.
데일은 녀석에게 물었다.
“놈들이 근처인가?”
하티가 앞발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맞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놈들이 예상보다 빨리 온 모양이군. 수고했다.”
데일은 하티의 갈기를 한차례 쓸어준 뒤, 에른스트에게 턱짓했다.
어벙하게 있다가 퍼뜩 정신 차린 에른스트가 외쳤다.
“전군! 각자 대형으로 향하라!”
화기애애하게 떠들던 병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사불란하게 자기 위치를 찾았다.
얼마 전에 급조한 토벌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신속함이었다.
망루 위로는 사제들이 올라갔다.
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만큼, 더 효율적인 지원과 공격이 가능할 것이다.
준비를 마친 병사들은 적들이 오는 동쪽 방향을 향해 섰다.
휘오오.
모두가 입을 다문 정적 속에서 바람 소리만이 스산하게 울렸다.
그러던 중. 유독 후각이 민감한 엘프 전사 하나가 코를 킁킁댔다.
옆에 있던 용병이 물었다.
“왜 그래.”
“시체 냄새가 난다.”
“그렇다는 건…….”
눈발이 휘날리는 저 너머에서 희미한 빛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텅 비어 버린 두개골 속에서 빛나는 수백 쌍의 푸르스름한 불빛.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용병이 찢어지는 듯한 고함을 내질렀다.
“놈들이 온다아아아!”
그게 신호였다.
천천히 가까워져 오던 언데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선봉으로 달려오는 건 주로 스켈레톤과 같이 가벼운 놈들이었다.
“방패만 제대로 들어!”
“뼈다귀한테 쫄지 마라!”
스켈레톤은 가장 약한 언데드다. 용병들은 능숙하게 놈들의 뼈를 부쉈다.
사제들도 힘을 아꼈다.
수백이 넘는 스켈레톤이 순식간에 땅에 누웠고, 또 다른 수백이 달려들었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많군.’
토벌대가 스켈레톤과 아웅다웅하는 사이.
상대적으로 걸음이 느린 언데드가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좀비. 구울. 시체 골렘.
악취를 풍기며 달려드는 이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해골을 짓밟고 토벌대에게 짓쳐 들었다.
스켈레톤보다 고등한 언데드다.
스켈레톤처럼 간단히 넘길 수는 없다.
“캬아악!”
“목을 베었다고 끝이 아니야! 아예 시체를 토막 내야 해!”
“아악! 사, 살려줘!”
놈들은 그 무식하게 많은 숫자를 이용해 그대로 사람들을 짓뭉개려 했다.
목책과 저지선이 뚫릴 뻔한 적이 수차례.
그럴 때마다 망루에 선 사제들이 적절하게 기적을 읊어 언데드를 재로 되돌렸다.
찬란한 광휘가 번뜩일 때마다 언데드는 괴로워하며 허물어졌다.
유일한 마법사인 한스도 부지런히 벼락을 내리꽂았다.
주로 목표는 시체 골렘이나 구울 같이 까다로운 적들 대상이었다.
파도처럼 물밀듯 밀려오던 언데드는 사람들의 분전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세를 잃고 주춤거리고 있다.
순조롭다.
편한 싸움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훨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기뻐할 수가 없었다.
‘놈은 어딨지?’
흑기사.
흑기사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분명 소문에 의하면 흑기사는 언데드 군세보다 훨씬 앞선 자리에서 걸어간다 했다.
마치 언데드와 자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라도 하듯.
근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흑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미리 대열에서 벗어나 있던 데일은 조용히 상황을 관망했다.
그러다 문득. 몰려오는 언데드 사이에 유독 움직임이 없는 한 곳을 발견했다.
데일은 그쪽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발견했다.
주위 어둠에 녹아 있는 흑색 갑주의 기사를.
‘저건…….’
흑기사의 투구에는 악마의 뿔과 같은 장식이 양쪽으로 돋아나 있었다.
온몸의 관절 부위에 칼날이 하나씩 달려 있었고, 하얗게 센 머리가 허리 근처에서 이리저리 흩날렸다.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몰골이었다. 지옥에서 온 전사.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로 보였다.
사신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저 모습이야말로 이미 저 흑기사에게서 인간성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제정신인 놈이었다면 갑옷을 저따위로 변형시키지 않았을 테니.
대체 언제부터 저곳에 서 있던 걸까.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흑기사에게서는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바위나 흙 같은 무정물과도 다를 바 없었다.
‘뭘 보는 거지?’
토벌대의 면면을 눈에 담고 있는 걸까?
아니. 그것보다는…….
‘마을을 보고 있다?’
어쨌거나 놈의 위치를 확인했으니 당장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떼려던 그 순간.
텅 비어 있던 흑기사의 투구 속에 안광이 번뜩였다.
무정물 같던 녀석에게서 강한 기세가 흩뿌려졌다. 위험한 기세다.
이곳에서 싸우던 모두가 순간 움찔할 정도로.
흑기사가 등에 멘 대검을 들었다. 그 대검에 그림자가 스멀스멀 서렸다.
‘이런!’
데일이 급히 땅을 박찼다.
하지만 늦었다.
그림자에 둘러싸인 대검이 땅에 떨어지는 게 먼저였다.
콰앙!
대검이 땅을 강타했다.
검날에 서려 있던 그림자가 뻗어나가, 초승달과 같은 형상을 이루며 날아갔다.
그림자가 선두에 선 용병에 이어, 목책을 덮쳤다.
콰작!
핏물이 튀었다. 그리고 목책이 무너져 내렸다.
“…….”
“세상에.”
모두가 굳어버렸다.
필사적으로 지켜오던 아군의 선두가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단 한 방의 칼질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