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03)
흑기사
* * *
이틀 뒤. 엘드리엄 근처 벌판에 토벌대 인원이 모였다.
우선 에른스트의 모집 공고에 응한 용병과 사병이 900명이다. 현상금에 혹해 타지역에서 찾아온 용병들 탓에 그 숫자가 예상을 웃돌았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더 많이 몰려왔을 테지.’
그다음으로는 교단의 지원이다.
엘드리엄의 교단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에른스트를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섰다.
중급에서 초급의 사제만 15명을 지원했고, 성수도 가진 물량을 전부 지원해주었다.
교단으로서는 보일 수 있는 성의를 전부 보인 것이다.
에스델이 아쉬운 듯이 말했다.
“하지만 성유물을 지원받지는 못했어요. 그건 정말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네요. 이게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뭔지…….”
밤의 신전처럼 교단도 신성한 유물을 보관하고 있을 터이고, 그런 성유물들은 언데드를 상대하는 데에 큰 힘이 되어줬을 터이다.
하지만 교단에서도 이것만큼은 내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어쩔 수 없지.’
행여나 이번 토벌이 실패하고, 성유물을 잃는다면 그건 감당할 수 없는 손해일 것이다.
애초에 어렵다는 걸 알았기에 아쉬움도 없다.
마지막으로 엘드리엄 영주가 사병 200을 이끌고 나왔다.
에른스트와 시종이 제대로 협상을 한 것 같았다.
데일은 사병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북부의 전사들답게 다들 눈빛이 형형하고 군기가 잡혀 있었다.
개중에는 귀가 뾰족한 자들도 있었는데, 미우나 고우나 엘프들의 실력은 무시할 게 못 되니, 분명 큰 전력이 되어줄 것이다.
그 외에도 이 많은 인원을 보급할 마차며 잡일을 거들어줄 일꾼까지 합치니, 1,000명이 훌쩍 넘어가는 토벌대가 완성되었다.
그런 대인원이 벌판에 쭉 늘어서 있었다.
어디선가 구해온 백마 위에 올라탄 에른스트가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음.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지?”
이번 토벌대의 지휘관은 에른스트와 엘드리엄 영주가 공동으로 맡기로 했다.
에른스트는 자기가 모은 용병들을 지휘하고, 엘드리엄은 도시의 사병을 지휘하며 서로 돕는 형식이다.
에른스트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여, 역시 난 못할 것 같아. 차라리 엘드리엄 영주한테 모든 걸 맡기는 게 좋지 않을까?”
에른스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위구역 밖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애송이다.
군대를 지휘해본 경험은커녕, 첫 실전도 얼마 전에 처음 치러보았다.
가문에서도 딱히 기대를 받는 처지도 아니었다. 능력이 특출나 주목을 사는 일도 없었다. 사교성이 좋아 다른 귀족들의 눈에 들 일도 없었다.
그런 애송이가 어느새 1,000이 넘는 군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엄청난 중압감에 에른스트는 자꾸만 말을 뒤로 물리려 했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데일이 따끔하게 말했다.
“정신 차려라. 이제 뒤로 무를 수도 없다.”
“하, 하지만.”
“도망칠 기회는 많았다. 그걸 저버린 건 너야.”
시종과 데일은 에른스트에게 몇 번이고 도시로 돌아가는 걸 추천했다.
기어코 고집을 부리며 이곳까지 온 건 에른스트다.
“그리고 영주에게 모든 걸 맡기면, 승리했을 때의 공도 모두 양보해야 한다. 그러면 이번에 내버린 지출을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알겠어.”
에른스트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애초에 선택지는 없다. 한번 시작한 이상, 끝까지 가는 수밖에.
데일은 에른스트의 등을 팡! 하고 치며 말했다.
“출진 연설을 시작해라.”
에른스트는 말을 몰아 조금 앞으로 나섰다.
토벌대원들이 그런 에른스트를 쳐다보았다. 썩 달가워하는 눈치들이 아니다.
관록이 있어 보이지도. 그렇다고 체격이 크지도 않은 애송이가 자기들을 지휘한다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에른스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힘을 주어 말했다.
“그대들…… 윽!”
혀를 씹어버렸다.
옆에서 듣던 하켄이 얼굴을 가렸다.
“아이고 내가 다 화끈거리네.”
에른스트가 울상을 지으며 시종을 쳐다봤다.
용병들 사이에 섞여 있던 시종이 힘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모습에서 용기를 얻은 에른스트가 다시 입을 열어 꿋꿋이 외쳤다.
“그대들이 각자 원하는 바가 다르다는 건 안다. 누군가는 명예를 위해! 누군가는 돈을! 누군가는 의무로! 또 누군가는 강자와 싸워볼 기회를 얻기 위해 이번 토벌에 참여했겠지!”
한 차례 호흡을 들이마쉰 에른스트가 외쳤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이 다를지언정, 목표는 같다! 북부를 어지럽히는 검은 사신을 토벌하는 것! 우리가 하나 되어 싸운다면, 반드시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친 에른스트는 슬쩍 주위 눈치를 살폈다.
토벌대원들이 멀뚱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에른스트가 머쓱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미리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던 시종과 사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에른스트 님 만세! 검은 사신을 무찌르자!”
분위기에는 전염성이 있다. 바람잡이들의 활약에 멀뚱히 있던 전사들도 하나둘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고, 이내 온 토벌대가 무기를 치켜들며 함성을 질렀다.
그 모습을 에른스트가 벅찬 얼굴로 바라보았다.
데일이 에른스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했다.”
“후. 후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어땠어?”
“처음치고는 훌륭했다.”
출진하기 전에 하는 연설은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사기를 드높이고, 함께 함성을 지르며 하나 되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전투란 사기가 절반인 법.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면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무너지기 마련이고, 반대로 두려움 없는 병사는 몇 배의 군대를 상대로도 이겨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언데드는 껄끄러운 적이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없다. 타고난 병사인 것이다.
에른스트에 이어서 엘드리엄 영주가 연설을 했다.
엘드리엄은 회색빛이 도는 긴 머리칼을 가진 여인이었는데, 귀가 사람치고는 뾰족했고, 엘프치고는 뭉툭했다.
그녀는 병사들의 분위기를 능숙하게 틀어잡으며, 멋들어지게 연설을 해냈다.
경험 많은 귀족다운 훌륭한 솜씨였다.
그 모습을 에른스트가 멍하니 쳐다보았다.
“대단하다…… 그리고 소문보다 더 아름다워.”
헤― 벌린 에른스트의 입에서 침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자, 돌아온 시종이 옆에서 다그쳤다.
“정신 차리세요 도련님. 저렇게 보여도 도련님보다 나이 많은 자식을 셋이나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애 딸린 유부녀를 넘볼 생각은 아니겠죠?”
“험험. 오해할 소리 하지 마. 나에게는 에스델 양이 있는데…… 그냥 엘프는 잘 안 늙는다는 게 신기해서 쳐다봤을 뿐이야.”
“정확히는 절반만 엘프지만요. 모친 쪽이 엘프였답니다.”
엘드리엄 영주는 엘프의 피가 절반 흐르는 하프 엘프였다.
데일은 영주를 보며, 그 부친에 대해 생각했다.
‘엘프랑 결혼하다니. 비위도 좋군.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까?’
자기 부친에 대해 데일이 속으로 엄청난 모욕을 퍼붓고 있다는 걸 모르는 엘드리엄이 이쪽을 향해 말을 몰아 다가왔다.
그녀는 말에서 내려 데일에게 악수를 건넸다.
“반갑네. 이제야 인사를 하게 되었군. 엘드리엄 가문의 카트린일세.”
“데일이오.”
데일은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영주가 사내처럼 씨익 웃었다.
“소문은 많이 들었네. 듣던 대로 강한 기세가 느껴지는군.”
데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영주가 이어 말했다.
“그대가 토벌대의 대장을 맡아준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음. 솔직히 저쪽은…… 못 미더우니까?”
옆에서 듣던 에른스트가 움찔했다.
영주가 일부러 들으라는 식으로 얘기한 것도 맞았다.
이 어리고 경험 없는 귀족을 초장에 잡아두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반쯤 진심이기도 할 것이다.
에른스트보다는 전투 경험이 풍부한 데일이 이끄는 게 더 믿음직스러울 테고, 병사들도 더 잘 따를 것이다.
하지만 데일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귀찮기만 하지.’
병사를 지휘해 공을 세워봤자, 데일이 얻을 만한 건 별로 없다. 괜히 신경 쓸 일만 많은 것이다.
게다가 데일은 전투가 벌어지면 적진으로 파고들어 흑기사와 싸울 생각이다.
그러면 더는 제대로 된 지휘가 불가능하다.
지휘권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괜히 귀찮게 안 하게 강하게 나가야겠군.’
데일은 엄숙하게 말했다.
“말 조심하시오.”
“응?”
“이미 지휘권에 대한 문제는 모두 서로 합의를 마쳤는데, 이제 와 그 얘기를 다시 꺼내 분란을 일으키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아니. 나는 딱히 분란은…….”
“그리고 에른스트는 지휘관으로서 자기 책임을 훌륭히 다할 것이오. 비록 나이도 젊고, 경험은 적으나,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 같은 토벌대장으로서 그를 무시하는 듯한 언사는 삼가시오. 나는 어디까지나 에른스트에게 고용된 몸일 뿐이오.”
“으음.”
생각보다 강하게 나오는 데일의 반응에 영주는 움찔했다.
그녀는 황급히 말했다.
“아무래도 조금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절대 무시하려는 건 아니었네. 그렇게 느껴졌다면 내 사과하겠네.”
그렇게 말한 영주는 에른스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데일 쪽을 의외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보기와 달리 의리가 두터운 성격인가? 그렇다면 정말 신기한 일이군.’
영주는 서둘러 자리를 떠나갔다.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영주가 데일에게 지휘를 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을 것이다.
무사히 영주를 쫓아낸 데일을 에른스트가 감동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데일 경……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딱히 너를 위해서 한 게 아니다.”
“뛰어난 재주를 가진 젊은 귀족이라니. 헤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에른스트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거짓말인데.’
뭐. 어쨌든 본인이 기분 좋아한다면 그걸로 좋다. 그리고 이번 토벌전에서 에른스트의 역할이 그리 많지도 않을 거다.
상대는 언데드고, 언데드가 구사하는 전략은 육탄 돌격과 물량 공세밖에 없다.
아마 전투는 양측이 한차례 맞부딪히는 걸로 끝나버릴 것이다.
결과도 단순하다.
이쪽이 완전히 박살나거나, 아니면 저쪽을 박살내거나.
마침내 토벌대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에른스트는 말 위에 올라타 수십 번도 더 본 지도를 펼쳐들고 끙끙거렸다.
비록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검은 사신은 여기서 북쪽으로 나흘 거리에 있다는 거지? 그리고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그래.”
흑기사는 불규칙적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전진 속도에 비해 실제로 이동한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데일이 말했다.
“놈은 헤매고 있지만, 크게 보면 결국 서쪽으로 가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놈들을 맞이할 거다.”
데일은 지도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현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닷새 거리에 있는 곳으로, ㅇ 자로 표시되어 있었다.
“원래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집이나 방어 시설은 이용할 수 있을 거다.”
“으음. 그렇군.”
“왜 그러지?”
“아니. 그냥 예전부터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어서 말해보라는 듯.
데일이 턱짓했다.
에른스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냥. 당최 이놈의 흑기사의 목적이 뭔지 궁금해서. 사람들은 북부를 휩쓸기 위해 찾아온 악마의 하수인이니, 미쳐버린 이교도가 교단의 신도들을 응징하러 왔다느니 하는데. 이놈이 이동한 경로를 보면 그런 느낌은 아니잖아?”
지도에는 흑기사의 경로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흑기사는 기본적으로 서쪽을 향해 움직이지만, 때로는 북쪽으로. 때로는 남쪽으로.
또 때로는 같은 장소를 빙빙 돌거나 되돌아가기도 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마치 길 잃은 미아처럼 움직이는 것 같다 라고 해야 할까?”
“길을 잃었다? 확실히 그럴 수 있겠군.”
다른 누구도 아닌, 데일은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데일이 말했다.
“경로에 있다 송두리째 파괴당한 마을들은 단순히 재수가 없었던 걸 수도 있겠어.”
“으음. 그럴 수도. 어쨌거나 이 흑기사가 용뼈 산맥에서부터 내려와, 계속 서쪽으로 가고 있단 말이야. 근데 서쪽에 뭐가 있길래? 차디찬 북해밖에 없잖아. 설마 해수욕이나 즐기겠다고 그러는 건 아닐 거 아니야.”
확실히.
에른스트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다.
이 흑기사가 순전히 파괴와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북부를 배회하는 건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에른스트는 저 멀리 벌판 끝으로 시선을 향하며 중얼거렸다.
“무언가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데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그 이름조차 모를 흑기사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무리 고민해도 명확히 밝혀낼 수 없다.
결국. 직접 부딪혀서 실토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번 일의 마무리가 머지않았다.
말을 탄 엘드리엄 영주를 선두로, 토벌대가 줄지어 행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