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1)
용병과 흑기사
* * *
데일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은색 고리만이 허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데일은 투구를 긁적였다.
‘잘못 들었나? 방금 그건 빛의 여신이…….’
데일은 이내 그 생각을 부정했다.
아무리 협약을 맺었다 하나 데일은 밤의 여신의 힘을 받은 몸이다.
빛의 여신이 직접 데일에게 목소리를 속삭여줄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기다리자 에스델이 돌아왔다. 옆에는 강직한 인상의 사제가 함께였다.
“말씀하신 대로, 페일 사제님을 데려…….”
“마리아!”
페일이 다급히 달려나갔다. 그는 마리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데일과 에스델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잠시 후.
진정이 된 페일이 찾아왔다.
그는 데일을 향해 악수를 건넸다.
“페일입니다. 현재는 클레릭의 지위에 있습니다.”
‘클레릭. 사제 계열에서 최소 3등급은 되어야 하는 직업인데.’
마리아와 연인 관계로 보여, 실력도 비슷할 줄 알았다.
하지만 페일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은 듯하다. 그 눈의 깊이만 봐도 알 수 있다.
데일은 페일의 손을 마주 잡았다.
“데일이다.”
페일은 고개를 끄덕인 뒤,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거 아십니까 데일 경. 협약 이래 교단에 흑기사가 찾아온 건 데일 경이 처음일 겁니다.”
“그렇군.”
“한동안 시끌시끌하겠군요.”
교단에서 흑기사의 출입을 허가했다.
그간 말뿐인 협력 관계였던 두 종교 사이에 변화가 있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멋대로 추측할 것이다.
다만. 데일은 그런 정치적인 부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페일. 마리아의 마지막 말을 전하겠다.”
“유언은 이미 말한 것 아니었나요?”
“물러나라 에스델. 네가 들어서는 안 될 내용이다.”
“……알겠습니다.”
데일이 손을 휘휘 젓자, 에스델이 부루퉁한 얼굴로 물러났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데일이 말했다.
“페일. 마리아는 마지막에 네게 특히 더 고맙다고 했다.”
“…….”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말아달라 부탁했고.”
“그것참. 마리아답네요.”
페일의 얼굴에 씁쓸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슬픔이 깊지는 않다.
신앙심 깊은 이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었으니.
페일이 정중히 예를 표했다.
“마리아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미련 없이 안도한 미소를 짓고 있더군요. 분명 데일 경 덕분이겠죠.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주어서 감사합니다, 데일 경. 이 은혜는 제가 어떤 식으로든 갚도록 하겠습니다.”
데일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미 마리아에게는 받은 게 있다.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그래도 갚겠습니다. 데일 경은 마리아를 도운 것뿐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모두를 도운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갚겠다는데, 더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아. 이것도 물어봐야지.’
말이 나온 김에 데일은 마리아가 건네준 반지를 페일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무슨 반지인지 아나? 평범한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건…….”
페일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신념의 반지군요. 고결한 마음과 영혼을 지닌 사람이 강하게 바라면, 한 번이지만 그 사람의 잠재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유물입니다.”
“고결한 영혼?”
‘흑기사인 나랑은 영 관계없는 단언데.’
결국, 데일이 써먹지 못하는 물건을 받았다는 말이다.
데일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혹시 시장에 팔면 얼마 정도 나오지?”
“네?”
페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옆에 있던 에스델은 데일을 쓰레기 쳐다보듯 했다.
당황한 페일이 애처로운 얼굴로 말했다.
“그, 그러지 말아 주십시오. 마리아가 데일 경에게 이걸 맡겼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나도 그냥 물어본 거다. 진짜 팔겠다는 건 아니고. 근데 얼마인지만 알려줄…….”
“자! 남은 대화는 나중에 기회 되면 하죠!”
에스델이 끼어들어 데일의 말을 끊었다.
“밖에 일행분도 기다리시는 것 같던데, 슬슬 가보셔야 하잖아요?”
“아. 그렇지.”
레온이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데일은 페일과 인사한 뒤, 에스델의 안내를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시선이 데일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데일은 신경 쓰지 않고 당당히 걸었다. 부끄러울 것 없이 떳떳하니,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데일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신자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연신 속닥거렸고, 흑기사의 신전 출입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데일의 이름이 도시에 퍼지기 시작했다.
* * *
“오래 기다렸나?”
데일은 불안한 얼굴로 마차 주위를 서성이던 레온에게 말했다.
레온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아! 데일 경! 다행이네요!”
“뭐가.”
“아까 교단의 병사들이 데일 경을 둘러쌌잖아요. 혹시나 큰일이 생길까 걱정했는데, 별일 없었나 보네요.”
“뭐. 그렇지. 출발하자.”
“넵!”
레온은 다시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몰았다.
목적지는 용병 길드다.
머지않아 길드 사무소에 도착한 둘은 우선 죽은 용병의 장비를 바닥에 내렸다.
밖으로 나온 가란드가 의아해했다.
“이건…….”
“이번 의뢰 때 죽은 용병들의 유품이오. 유족들에게 전달해주시오.”
“아. 물론이죠.”
가란드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용병 길드 규칙상, 의뢰에 함께한 용병의 유품을 챙기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다.
유품이라도 제대로 전달해줘야지, 안 그러면 죽은 용병이 먹여 살리던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는 규칙이기도 했다.
장비를 훔친 뒤, ‘이건 원래 내 장비요’ 주장하면 뭐 어쩌겠는가.
입증해줄 주인이 이미 죽어버렸는데.
한데, 데일은 죽은 용병의 유품을 모두 챙겨와 줬다.
가란드는 흥미로운 눈으로 데일을 쳐다보았다.
‘내 생각보다 제법…….’
가란드는 직원들을 불러 장비를 옮기라 지시했다.
데일은 레온에게 말했다.
“보고는 내가 할 테니 너는 어서 장비를 팔아라.”
“옙!”
“아. 그 전에.”
데일은 마차에서 워해머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마일즈가 사용하던 물건으로,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데일은 이 워해머가 마음에 들었다.
‘검은 휘두르기 좋지만 너무 쉽게 부러져. 둔기 하나쯤은 들고 다니는 게 좋겠지.’
워해머를 챙겨 든 데일은 레온을 보냈다.
레온은 고개를 꾸벅 숙인뒤, 짐마차를 이끌고 도시 밖으로 향했다.
장물아비들은 도시 밖 빈민촌에 있다는 모양이다.
레온을 보낸 데일은 가란드와 함께 길드 사무소의 2층으로 올라갔다.
둘밖에 없는 집무실에서 데일은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
데일의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모두 기록한 가란드가 말했다.
“자. 그럼 사건 보고를 다시 되짚어보겠습니다. 애초에 변종 아울베어에게 용병들이 죽었다는 건 마일즈의 자작극. 사실은 마을 주민들과 싸움이 일어나 그들을 죽였고, 용병 일을 더 하기 힘들다고 판단. 마지막으로 한탕 해 먹으려고 이번 일을 꾸몄다 이거네요?”
데일이 되물었다.
“애초에 당신도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소?”
“예?”
“마일즈가 개수작을 부릴 거라는 걸 알고 있지 않았냐는 말이오. 나를 의뢰에 넣은 것도 그런 마일즈를 죽이기 위해서 아니오? 용병패를 회수하라는 말에는 그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가란드도 놀랐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곰곰이 되짚어보면 당연히 알법한 일 아닌가 싶소만.”
“그 당연한 거를 해내는 사람이 용병 중에도 많았으면 싶군요.”
가란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자리에 있다 보면 가끔 보게 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치는 용병들 말이죠.”
용병들의 민간인 살해.
길드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건 중 하나였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황실에서 길드를 강력하게 추궁하기 때문이다.
“길드에서는 그런 짓을 벌인 용병을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도망치면 반드시 추적대를 보내죠. 죽음이 확정될 때까지.”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들은 다른 무엇보다 길드에 쫓기는 걸 두려워한다.
그만큼 길드의 추적은 집요하고, 지독하기 때문이다.
가란드가 자기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하지만 가끔 머리를 쓰는 놈들이 있죠. 바로 마일즈 같은 놈들이요.”
“머리를 쓴다라.”
“흔적을 조작해 교묘하게 추적을 빠져나가는 거죠. 가령, 마일즈는 변종 아울베어라는 거짓말을 이용해 정보를 교란할 생각이었겠죠. 변종 아울베어에게 마을 사람들과 용병이 모두 당했다. 그러면 추적당할 염려가 없지요.”
데일이 말을 받았다.
“마일즈가 구태여 도시로 돌아온 건 마지막으로 한탕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길드에서 조사대를 보내기 전에 시간을 벌기 위해서고?”
“정확하십니다. 데일 경.”
CCTV나 카메라도 없는 세상이다. 작정하고 증거를 조작하면, 얼마든지 진실을 감출 수 있다.
만약 데일이 없었더라면 마일즈는 자기 계획을 성공시켰을 거다.
가란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저도 확신은 없었습니다. 증거가 있었다면 좀 더 확실한 방법으로 놈을 막았을 겁니다. 단지 제 감일 뿐이었죠. 뭔가 이상하다고. 하지만 제가 감이 좋은 편인지라.”
“그래서 나를 넣은 것이오?”
“데일 경이 있다면 허튼짓을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이렇게 됐군요.”
가란드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번 일로 길드 소속 용병들이 여럿 죽었다. 교단의 사제도 한 명 죽었다.
뼈아픈 손실이었다.
가란드는 이내 표정을 풀고 말했다.
“어쨌건. 데일 경은 임무를 훌륭히 완수해주셨습니다.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어요. 다른 용병들도 이렇게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다면, 저희 용병 길드의 힘은 훨씬 더 강력했을 겁니다.”
“그럼 입단 시험은 통과요?”
“통과이고 말고요.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마일즈는 얇은 쇠판을 데일에게 건네주었다.
데일은 쇠판의 글자를 읽을 수는 없지만, 그게 자기 이름일 거라고 짐작했다.
“철패?”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데일 경. 그리고 길드에는 경처럼 실력 있는 용병이 절실하죠.”
“목패를 건너뛰어도 되겠소?”
“지부장 권한에 그 정도는 허용됩니다.”
데일은 용병 패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한 번의 의뢰 성공으로 얻어가는 게 많았다.
“앞으로 길드를 위해 여러모로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데일 경이 받을 수 있는 의뢰는 많지 않을 겁니다. 아직 의뢰주들의 신뢰가 쌓이지 않았으니까요. 남들이 하지 않는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오히려 좋소.”
위험은 기회를 내포한다.
더 강한 적을 쓰러트려 의뢰를 완수할수록 데일은 더 강해질 것이고, 더 빠르게 위로 향할 것이다.
가란드가 미소지었다.
“시원해서 좋군요.”
“얘기는 끝났소?”
“네. 이제 가보셔도 됩니다. 갈 곳이 있나 보군요?”
“신전에 가봐야 하오.”
툭 내뱉은 데일은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 * *
가란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서류를 마저 작성했다.
데일의 신상 등록부터 시작해서, 이번에 죽은 용병의 유족에게 유품을 전달하는 것까지.
뒤처리할 게 산더미처럼 많았다.
‘이럴 때마다 현역 시절이 그립군.’
접수원이 다가와 그런 가란드의 찻잔에 따뜻한 홍차를 따라주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가란드가 작성하는 보고서를 훔쳐봤다.
과연 그 흑기사가 어떻게 될지 몹시 궁금했던 것이다.
보고서를 훔쳐 읽은 접수원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나. 입단 시험 후에 바로 철패라니. 그래도 돼요?”
“안 될 거 없지. 위에 올릴 보고서를 엄청나게 써대야 하지만 말이야. 게다가 선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접수원이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하고 치면서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10년 전 용병왕도 곧바로 철패부터 시작했었죠……. 그럼 그때 이후로 처음이겠네요?”
“그래.”
“음. 그렇게 믿을만한 사람인가요? 그래도 이교도인데.”
“글쎄. 믿음은 모르겠어. 우리가 얼마나 봤다고. 하지만 이건 내 감이지만…….”
가란드는 기대 어린 눈으로 말했다.
“용병왕 만큼의 자질은 있는 것 같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뛰어날 수도.”
특별한 근거 없이 오직 감에 근거한 예측.
하지만 가란드는 감이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