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
취한 노새
* * *
데일은 밤의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의 풍경은 지난번과 똑같았다.
캄캄한 어둠. 한구석에서 검을 휘두르는 스켈레톤.
그리고 사제장 에리얼.
에리얼은 데일이 오자 고개를 휙 돌렸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지만, 그만큼 다른 감각이 발달한 듯했다.
“어서 오세요 형제님!”
왜인지 잔뜩 들뜬 목소리.
에리얼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교단을 쑥대밭을 내놓고 왔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밤의 여신을 섬기는 몸으로써 깊은 감명을 받았답니다.”
“?”
뭘 쑥대밭을 냈다고?
데일이 곧바로 부정했다.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냥 일이 있어 교단에 들어갔다 나온 것뿐이다.”
에리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겸손하시군요. 데일 경의 당당한 모습에 빛의 신자들이 벌벌 떨며 오줌을 지렸다는 건 도시의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여신님의 위엄도 가일층 올라가겠지요. 다른 형제자매들도 매우 고양되어 있습니다.”
“…….”
다시 부정하려던 데일은 그만두었다. 말한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소문이 다 퍼진 모양이군.’
으레 소문은 와전되기 마련이고,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법이다.
몇몇 이들은 데일의 행위를 종교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다고 여길 것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실상은 그냥 시체 배달이었을 뿐인데.’
상념을 털어낸 데일이 물었다.
“기도실을 쓰고 싶은데.”
“끝쪽에서 왼쪽 방입니다.”
“고맙다.”
데일은 복도 끝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
“?”
기도실에는 마녀가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어온 데일을 보고 굳어버렸다.
데일은 머쓱하게 투구를 긁적였다.
“아. 잘못 열었다.”
데일은 얼른 기도실 문을 닫아버렸다. 안쪽에서는 성난 고함이 들려왔지만 그냥 무시해버렸다.
데일은 비어 있는 기도실로 들어갔다. 투구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양쪽 손을 마주 잡으며 기도를 올렸다.
“왔습니다.”
그러자 반응이 나타났다.
은촛대 위에 놓인 양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형상을 이루었다.
데일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아름다운 하얀 발과 바닥까지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밤의 여신은 서늘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그리 말했다.
[빛의 냄새가 나. 데일 내 아들. 내 아들에게서 왜 그년의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이냐.]빛의 냄새?
데일의 머릿속에 짐작 가는 게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교단에서…….’
데일은 교단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마리아를 운반해준 일과 본당에서 들렸던 목소리까지.
밤의 여신이 납득했다.
[그랬구나. 빛, 그년이 내 아들에게 침을 바르려 하다니……. 여신은 아들을 믿는다. 아들이 여신을 배신할 리가 없지. 아암. 그렇지?]“……물론입니다.”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으면, 왠지 큰일이 날 것 같아 데일은 빠르게 수긍했다.
여신은 그제야 만족한 기색을 띠었다.
데일이 얼른 주제를 바꿨다.
“제물을 바치고 싶습니다.”
데일은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손이 데일의 손을 잡아주었다.
데일이 모은 영혼이 썰물처럼 밀려나갔다.
여신이 감탄했다.
[짧은 사이에 제법 많이 모았구나. 다만 등급을 올리기에는 많이 부족해.]“더 분발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기 좋으나, 너무 무리하지는 말거라.]여신이 부드럽게 말했다.
[제물에 상응하는 축복을 내리겠다.]데일의 눈앞에 선택지가 나타났다.
《근력 상승》
《갑옷 강화》
《영혼 강화》
언제나 고민되는 시간이다. 데일은 깊은 고심에 빠졌다.
‘무난하게 보면 근력을 올리는 게 맞으나…….’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근력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균형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몸이 조금 약한 느낌이 들어.’
데일은 전투 스타일상 앞으로 나가 싸우는 일이 많다.
그렇게 싸우다 보면 자연히 적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때도 생긴다.
만약 적들이 이번처럼 성수를 활용한다면? 혹은 실력 있는 사제가 있어 신성 마법을 사용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위험하겠는데.’
아무리 근력이 높아도, 몸이 튼튼하지 않으면 눈치 보며 싸울 수밖에 없다.
눈치를 본다는 건 제 실력을 온전히 못 낸다는 뜻이다.
데일은 유리 대포가 될 생각은 없었다.
결정을 내렸다.
“갑옷을 더 단단하게 강화하겠습니다.”
[확실하느냐?]“예.”
곧바로 변화가 일었다.
데일이 입은 칠흑의 갑옷에 어둠이 서렸다. 그 색이 더욱 깊어졌다.
데일은 곧장 상태를 확인했다.
[데일]등급: 2
직업: 흑기사
근력: 40
내구: 25
마력: 10
체력: –
정신력: 10
[보유 기술 목록]생기 흡수
[특성]반인 반언데드
부정한 감각
밤의 여신의 축복
교단의 본당을 밟은 최초의 흑기사
내구 수치가 올랐다. 이는 데일이 더 튼튼해졌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성장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여신이 말했다.
[이번에 바친 제물로 ‘생기 흡수’의 효과도 더 강해졌구나.]“강해졌다면……?”
[더 확실하게 잔혼과 생기를 거둘 수 있겠어.]데일은 생기 흡수를 통해 시체에 남은 잔혼과 생기를 취한다.
하지만 아직 흑기사로서의 수준이 낮기에 그 일부밖에 거두지 못한다.
비유를 하자면, 고기를 먹는데 살점이 뼈에 덕지덕지 남아 있는 상태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생기 흡수 기술이 강화되었다. 데일은 이제 더 많은 생기와 잔혼을 얻을 수 있다.
게임식으로 말하면 경험치 획득량이 증가했다는 뜻이다.
‘나쁘지 않아.’
만족스러워하는 데일에게 여신이 추가 설명을 했다.
[흡수되는 잔혼이 늘어났으니, 데일 네가 보게 되는 상대의 기억도 더 선명해질 거란다. 이제 집중만 하면 얼마든지 기억을 읽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다. 능력을 조심해서 사용하거라.]“명심하겠습니다.”
데일은 여신의 조언을 가슴에 새겼다.
만족스러워한 여신이 데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데일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이내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투구를 눌러썼다.
그는 기도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여신의 형상은 온데간데없었다.
데일이 나오자 사제장 에리얼이 반갑게 맞았다.
“기도는 끝나셨나요?”
“그래.”
“그러면 혹시 데일 경, 지금 시간이 남으시나요? 밤의 여신님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 함께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은데요.”
에리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잔뜩 기대감이 서린 미소였다.
그녀는 한 발짝 데일에게 다가왔다. 데일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첫 번째 법칙. 귀쟁이는 경계해라.’
데일이 이 세계에 떨어지고 처음으로 터득한 교훈이다.
이 교훈이 있었기에,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노라고. 데일은 진심으로 믿었다.
참고로 두 번째 법칙은 ‘첫 번째 법칙을 어기지 말 것’ 이다.
데일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간 없다.”
“아. 그러면 언제쯤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제가 맞추겠습니다.”
“난 항상 바쁘다.”
“?”
그렇게 내뱉은 데일은 뒤도 안 돌아보고 신전을 나섰다. 광신도 엘프와는 별로 긴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에리얼은 벙찐 얼굴로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 *
용병 길드는 빠르게 용병들의 유품을 처분해, 유족들에게 돈을 지급했다.
그리고 그 돈의 1할은 데일에게 떨어졌다.
용병 길드의 규칙이었다.
장물 처리를 맡겨달라던 레온도 재빨리 일을 마쳤다.
“괜찮은 값을 받았어요!”
“벌써 다 처리했나?”
“예! 요즘 장비 수요가 많거든요. 빈민가에서도 용병이 돼서 신분 상승을 노리는 사람들도 많고요.”
레온은 데일에게 돈이 든 주머니를 내밀었다. 데일은 주머니를 받아들였다.
‘제법 묵직한데.’
안을 열어보니 금화도 몇 개 섞여 있었다.
생각보다 큰돈이었다.
데일은 그중에서 은화 몇 개를 집어서 레온에게 건네주었다.
레온이 화들짝 놀라 손사래 쳤다.
“어엇! 괘, 괜찮아요! 이미 중간에 수수료는 챙겼어요.”
“그거 말고. 나한테 글 가르쳐주기로 한 것. 잊었나?”
“아! 그래도 너무 많이 주시는 게…….”
“그렇다면야.”
“하지만 데일 경의 성의를 무시할 순 없죠!”
데일이 손을 거두려 하자 레온이 신속하게 은화를 챙겼다.
노움답게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데일이 빤히 쳐다보자, 머쓱하게 웃은 레온이 말했다.
“그럼 데일 경이 시간 되실 때마다 제가 찾아뵐게요.”
“나는 언제든 괜찮다. 남아나는 게 시간이니까.”
“그런가요? 그럼 바로 내일부터 시작하죠. 지금 데일 경은 어디서 묵고 계시나요?”
잠시 고민하던 데일이 답했다.
“마구간.”
“……예?”
“어제는 성문 근처 여관에 있는 마구간에서 잤다.”
여관 주인들은 데일이 찾아올 때마다 부탁이니 제발 나가달라고.
다른 여관으로 가달라고 싹싹 빌곤 했다.
마구간에서 하루 정도는 머무르게 해줄 테니 해코지는 하지 말아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상황을 설명을 들은 레온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음. 이해 못 할 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너무하네요. 데일 경은 괜찮으세요?”
“큰 상관은 없다만.”
지금의 데일에게 편하고 불편하고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붕이 있고, 비만 피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가끔 술에 취한 취객이 마구간을 지나다 깜짝 놀라 소리 지르는 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으음. 그래도 공부를 하려면 제대로 장소가 있어야죠. 데일 경 소지품을 놓아둘 곳도 필요하고요. 제가 여관 하나 추천해드릴까요?”
“아는 곳이 있나?”
“돈만 주면 누구나 받아주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거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긴 한다는데……. 데일 경이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성안에 그런 곳이 있나?
고개를 갸웃한 데일은 레온에게 약도를 그려달라 부탁했다.
혹시라도 길을 잃지 않도록.
“최대한 자세하게 그려라.”
“예! 맡겨만 주세요! 5살짜리 아이가 봐도 길을 잃지 않게끔, 상세히 그려드릴게요!”
“부탁한다.”
레온은 열심히 깃털 펜을 휘적였다.
데일은 그런 레온을 믿음직스럽게 바라보았다.
* * *
수십 년 전.
갑작스러운 악마의 침공으로 제국의 수도가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황제는 수도를 대신할 도시를 찾다, 아예 새로 짓기로 결심한다.
그게 이레네다.
도시는 총 3겹의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다.
내성, 중성, 외성.
내성에 둘러싸인 곳은 황궁이 자리해 있으며 1구역이라고 부른다.
황제와 그 측근들은 좀처럼 이 1구역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
두 번째 성벽은 2구역 3구역을 감싼다. 2구역에는 귀족들. 3구역에는 마탑이나 기타 시설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외벽에 둘러싸인 구역은 외곽이라고 부르는데, 동서남북을 감각 4 5 6 7 구역이라 이름 지었다.
레온이 말한 여관은 5구역에서도 외진 곳에 자리해 있었다.
데일은 약도를 들고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이미 달이 높이 떠 있었다. 출발할 때는 아직 해도 지지 않았었는데.
‘살짝 늦었군.’
길을 잘못 들어서, 조금. 아주 조금 헤맸을 뿐이다.
데일은 여관의 간판을 살폈다.
맥주잔에 얼굴을 파묻은 당나귀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름이 취한 노새였던가?’
건물 자체가 허름한 거야 그러려니 했다.
근데 어째 여관이 소란스러웠다.
무언가 부러지고, 부서지고, 남자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왔다.
잠시 고민했던 데일은 이내 여관 문을 열어젖혔다.
안에서는 난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술! 술 가져와!”
“아악! 이 개새끼가 날 쳤어?”
“와하하하! 부숴!”
술병을 깨는 건 기본에, 탁자와 식기를 이리저리 집어 던지고, 주먹다짐하는 놈들도 있었다.
어찌나 분위기가 소란스러운지, 취객들은 데일이 안에 들어왔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데일은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문가에 쭈그리고 앉은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여급으로 보이는 여인은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하. 내가 못 살아. 진짜 콱 죽어버리든지 해야지.”
데일은 여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흑기사 특유의 서늘한 기운을 느낀 여자도 고개를 들어 데일을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데일을 보며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체념한 빛으로 중얼거렸을 뿐이다.
“시발 진짜 내 인생은 왜 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