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3)
취한 노새
* * *
데일은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는 여자에게 말했다.
“입이 험하군.”
“뭐요. 내 입 험한 거에 그쪽이 뭐 보태준 거 있어요?”
얼씨구?
쭈그려 앉은 빨간 머리 여자는 삐딱하게 쏘아붙였다.
데일을 상대로 이렇게 나오기는 쉽지 않다.
여자는 배짱이 두둑한 성격인 듯했다. 아니면 이미 체념했거나.
여자는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는 데일을 향해 툭 물었다.
“왜 왔어요.”
불량한 태도에 맞게 데일도 퉁명스럽게 답했다.
“여관에 방 얻으러 오지 왜 오겠나.”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근데 안 되겠네요.”
“흑기사라?”
“그것도 그렇고. 당장 이 지랄인데 어떻게 방을 내줘요.”
여자는 손가락을 들어 주위를 가리켰다.
소란은 점점 더 격해지고 있었다.
식탁과 의자가 날아다니고,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와장창 깨졌다.
취객들은 마치 여관을 파괴하는 게 목적인 것처럼 행동했다.
‘이제 보니 한 패군.’
그냥 취객들이 아니라, 도적 떼나 용병 패거리에 가까운 무리들이었다.
보통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불만이 생기면 이런 식으로 표출하곤 하니.
여자는 지긋지긋한지, 고개를 다시 무릎에 파묻었다.
“걍 죽든가 해야지.”
데일이 물었다.
“매일 이러나?”
“부서진 잔해를 치우는 게 아침 일과가 된 지 좀 오래됐죠.”
“경비병을 불러.”
“설마 내가 안 불러봤겠어요? 내가 그렇게 병신으로 보여요?”
“…….”
뾰족하게 내뱉었던 여자는 한숨을 푹 내쉬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애먼 사람한테 화풀이 했네요.”
“상관없다.”
“경비병들한테 말해봤자 소용없어요. 슬렁슬렁 왔다가 이 새끼들이 찔러주는 돈 받고 시시덕거리며 사라지는 데요. 그럼 저는 보복이나 받고, 돈도 뜯기고. 아니. 근데 나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래.”
자조적으로 중얼거린 여자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니까 딴 데 알아봐요.”
“곤란한데. 돈만 주면 누구든 받아준다 해서 찾아왔단 말이다.”
“아버지 신조였죠. 그 지랄하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가게가 이 꼴이 났지만.”
여급인 줄 알았는데, 주인이었던 건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데일이 무심하게 물었다.
“결국, 이놈들 때문에 못 받아준다 이건가?”
“예, 뭐. 치워주기라도 하시게요?”
“그러지.”
“역시 그건 싫……. 예?”
여자가 파묻었던 고개를 휙 들었다. 데일이 여자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전부 정리해주겠다. 대신. 보름 동안 숙박비는 면제. 받아들이겠나?”
“보, 보름은 너무 많고. 열흘로 합시다. 대신 따뜻한 물을 매일 제공해드릴게요.”
데일은 피식 웃었다. 이 와중에도 가격 흥정을 하다니. 어디 가서 굶을 걱정은 없는 여자였다.
하지만 봐주지는 않았다.
“보름. 따뜻한 물도 제공하고.”
“아니 뭔. 조건이 더 안 좋아졌잖아요. 이런 식의 거래가 어딨어요.”
“욕한 값이다. 억울하면 강해지던가.”
“하.”
여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혀를 찼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데일이다.”
“……카일라. 시거의 딸 카일라에요. 근데 역시 농담하시는 거죠? 사람 숫자 차이가 있는데…….”
카일라는 싸움에 대해서는 무지한 여자였다.
아무리 숫자가 차이가 나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데일은 검지를 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물러나 있어라.”
“어. 음. 그렇다면야……. 아. 죽이면 안 돼요! 사람 죽이면 경비병들도 가만 안 있는 다고요. 아예 시체까지 숨기면 모를까.”
“그건 좀 곤란한데.”
워해머에 손을 가져가려던 데일은 멈칫했다.
새로 얻은 무기니 미리 길도 좀 들일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 없지.’
언제나 죽이는 싸움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흑기사의 본능은 깊이 아쉬워했지만, 내면의 인간성은 오히려 잘됐다고 판단했다.
데일이 앞으로 나섰다.
취객들은 여전히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데일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때. 취객 하나가 뒷걸음질 치다 데일의 흉갑에 부딪혔다.
“아이씨 어떤 새끼……. 엇?”
데일의 모습을 확인한 취객이 얼어버렸다.
지금 현실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아마 너무 취해서였을 것이다.
데일은 사내가 술에 깰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어어?”
데일은 한 손으로 취객의 멱살을 쥐어 들어 올렸다.
취객은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허우적거렸지만, 의미 없는 발버둥이었다.
데일은 취객을 든 손을 힘껏 앞으로 뻗었다.
“으아아아아악!!”
취객이 날았다.
허공에서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날갯짓한 취객은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벽에 쿵! 부딪혔다.
“…….”
“…….”
소란스럽던 여관 안에 거짓말 같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데일은 차분히 말했다.
“둘 중 골라라. 조용히 나가던가, 뼈 몇 대 부러지고 나가던가.”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실내에 있는 이들에게는 오싹할 정도로 선명히 들렸다.
취객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 중 하나가 카일라를 돌아보았다.
“세상에 카일라 이 썅년아. 이교도를 불렀어?”
“너희들 같은 인간 쓰레기보다는 이교도가 낫다 이 새끼야!”
카일라의 거친 화답에 취객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카일라를 향해 걸어갔다.
“근데 이 년이 이쁘다 이쁘다 해주니까…….”
데일이 손바닥을 뻗어 사내를 제지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조용히 나가던가, 부러지고 나가던가.”
사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취기. 젊음의 혈기. 사내 특유의 자존심. 많은 동료들.
바보 같은 판단을 내리게 도와주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잠깐 주춤했던 사내가 외쳤다.
“이 새끼 족쳐!!”
사내는 우악스럽게 달려들었다. 그 동료들도 한 박자 늦게 몸을 날렸다.
설령 판금 갑옷을 껴입었다 해도,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제압하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데일은 우선 주먹을 뻗었다.
가장 앞서 달려든 사내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컥.”
흔히 리버 샷이라고 부르는, 간을 타격하는 일격에 사내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데일은 사내가 쓰러지는 걸 확인하지도 않고 곧장 고개를 돌렸다.
“죽어어어!”
뱃살이 출렁한 취객이 테이블을 번쩍 들고 내리치려 하고 있었다.
빡!
데일은 번개처럼 주먹을 뻗었다. 가벼운 잽이었다.
하지만 취객에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이가 우수수 부러져 나갔다. 취객의 몸이 기우뚱 넘어갔다.
그대로 취객에게서 테이블을 뺏어 든 데일은 양손으로 테이블을 붙잡아, 앞으로 던졌다.
달려오던 사내 셋이 테이블에 얻어맞고 동시에 날아갔다.
사이좋게 같이 맞았으니, 갈비뼈 하나둘 부러지는 선에서 끝날 것이다.
“이런 시발!”
순식간에 다섯이나 당했다. 사내들은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개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외쳤다.
“한꺼번에 덮쳐 병신들아!”
그 외침에 사내들은 잠시 주저하다, 이내 데일에게 몸을 던졌다.
그 과정에서 두어 명이 데일의 건틀렛에 얻어맞아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나머지는 데일을 붙잡는 데에 성공했다.
데일은 습관적으로 손도끼를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아 맞다. 죽이면 안 되지.’
그 머뭇거리는 사이.
더 많은 사내가 달려들어 데일을 붙잡았다. 십수 명이 몰려들어 데일을 깔아뭉갰다.
제압에 성공한 것이다.
우두머리가 외쳤다.
“잘했어! 이대로 투구 벗겨! 어디 어떻게 생겼는지나 보자…….”
우두머리는 말을 멈췄다.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인간의 산이 순간 들썩였다.
산에 꼭대기를 차지한 뚱뚱한 사내의 얼굴에도 당황한 감정이 어렸다.
아래쪽에서 밀어 올려지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
그럴 리 없는데. 분명 그럴리 없는데. 산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산의 가장 아래에 깔려 있는 데일은 생각했다.
‘무겁군.’
데일은 꿇고 앉은 무릎에 힘을 주었다.
들썩임이 강해졌다.
당황한 사내들은 어떻게든 힘을 줘보려 했다.
하지만 데일은 점점 몸을 일으켰다. 그에 따라 매달려 있던 사내들도 점점 올라갔다.
이윽고. 산이 와르르 무너졌다.
“으아악!”
“뭐, 뭔 놈의 힘이!”
데일은 끝까지 매달려 있는 사내를 저 멀리 던져버린 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봤다. 멍한 얼굴의 우두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조용히 나갈 건가?”
“…….”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누가 먼저랄 새 없이 출입구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난동을 부리던 취객들이었지만, 도망칠 때만큼은 신속하고 질서정연했다.
여관 안 취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남은 건 데일과 놀란 얼굴의 카일라뿐이었다.
“어. 히, 힘이 좀 세시네요?”
카일라는 설마 데일이 혼자서 모조리 정리해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이렇게 순식간에. 그리고 압도적으로.
싸움에 문외한인 그녀가 보기에도 대단해 보였다.
“몇 달 내내 괴롭히던 놈들이 이렇게 한방에 정리될 줄은 몰랐는데…….”
데일은 몇 안 되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온 사방이 난장판이었다. 오늘 장사는 그른 것 같다.
데일이 물었다.
“혼자 장사하나?”
엉망이 된 실내를 막막한 눈으로 둘러보던 카일라가 대답했다.
“원래는 아버지랑 둘이서 운영했어요.”
“저런 놈들 상대로 장사해 먹기 쉽지 않겠군.”
그것도 싸움 기술을 배우지 않은 젊은 여자 혼자라면 더더욱.
카일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그럭저럭 잘 돌아갔어요. 은퇴 용병이셨거든요.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저 혼자서는 힘에 부치더라고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나 있을 법한 흔한 이야기였다.
“저놈들은? 보니까 한 패거리 같던데.”
“아. 지미 패거리에요.”
“지미?”
“네. 빈민가 쪽에 자리 잡고 있는 건달 놈들인데, 대가리가 커지더니 요즘은 성안으로 진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죠.”
“그걸 위한 교두보로 선택된 게 이곳이고?”
카일라가 눈을 크게 떴다.
“엇. 눈치가 되게 빠르시네요. 아니면 이런 쪽에 빠삭하신가?”
“별로.”
아버지가 죽고 혼자 남은 딸. 외진 곳에 자리한 여관.
누구나 군침을 흘릴만한 조건 아닌가.
“여관을 헐값에 넘기라고 했나?”
“그 정도면 다행이죠! 아니, 나보고 자기한테 시집오라고 했다니까요?! 기사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한 미모 하잖아요?”
“?”
카일라는 뻔뻔한. 아니, 자부심이 넘치는 여자였다.
“얼굴 이쁘고 엉덩이도 크니까 자기 신붓감으로 합격이라는데……. 어우 그 시선이 어찌나 소름 끼치던지.”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너와 결혼하면 합법적으로 여관을 소유할 수 있겠군. 나쁘지 않은 방식이다. 후에 뒤탈이 날 우려도 적고.”
“……지금은 같이 화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그 자식한테 감탄하고 있는 거죠?”
당연하게도 카일라는 지미의 청혼을 거절했다.
그 이후부터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우르르 몰려와 술 마시고 돈 안 내기. 난동부려서 가구들 박살 내놓기. 다른 손님 겁줘서 쫓아내기.
정신적인 고통도 문제였지만, 여관 운영이 제대로 안 되면서 지갑 사정도 어려워지던 참이었다.
“그나마 경비병들 눈치 때문에 저한테 직접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는데, 가게는 꼼짝없이 넘겨야 할 판이었거든요. 그…….”
머뭇거리던 카일라가 말했다.
“고마워요.”
그러고는 맑게 웃었다. 그간 입었을 마음의 상처는 표정에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
당찬 여자였다.
카일라는 어질러진 여관을 정리하며 물었다.
“식사 안 하셨죠? 뭐라도 가볍게 해드릴게요.”
고민하던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데일은 일부러라도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일라가 감자를 으깨 만든 수프를 내왔다.
쟁반을 내려놓은 카일라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먹어봐요. 절대 맛없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데일은 어차피 맛을 못 느끼지만,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데일은 투구의 끈을 풀어 벗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카일라는 오늘 봤던 모습 중에서 가장 크게 놀랐다.
“엇. 어.”
“왜 그러지?”
카일라는 잠시 주저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머리카락을 다듬고, 다소곳이 앉으며 품격 있는 말투로 말했다.
“소녀, 데일 경의 존안을 보니 가슴이 설레어 옵니다.”
“이상한 여자군.”
카일라는 그런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