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4)
취한 노새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카일라가 데일의 방문을 두드렸다.
무기를 닦고 있던 데일이 문을 열었다.
카일라가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소녀. 데일 경께 아침 인사 올립니다.”
“그 말투, 이상하다. 그리고 소녀라 하기에는 좀 그런 나이 아닌가?”
“……저 이제 스무살이거든요. 꽃다운 처자한테 못하는 말이 없으시네.”
카일라가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거렸다.
데일이 물었다.
“왜 찾아온 거냐.”
“웬 쪼그마한 노움 꼬맹이 하나가 데일 경을 찾아왔는데요. 되게 귀엽게 생겼던데.”
“그래 봬도 너보다 10살은 많을 거다.”
“엇. 그래요?”
노움은 종족 특성상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 그 사실을 몰랐던 카일라가 놀라워했다.
데일은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카일라가 밤새 청소를 했는지, 1층은 그럭저럭 깨끗했다.
다만. 부러진 가구들은 어찌하지 못해 한구석에 몰아놓았다.
레온은 얼마 안 남은 의자에 앉아 여관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데일이 레온을 불렀다.
“레온.”
“아. 데일 경.”
레온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여관을 구하셔서 다행이네요. 근데 혹시 어제 무슨 일 있었나요? 테이블이나 의자들이 죄다 부러져 있는데.”
“별일 아니었다.”
“그런가요?”
레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이곳에 온 목적을 깨닫고,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누리끼리한 색상의 싸구려 종이였다.
“우선 기본 글자부터 가르쳐드릴게요. 소리 내는 법을 배우고, 그 다음부터는 쉬운 책부터 읽어보도록 하죠.”
“알겠다.”
레온이 종이와 잉크 펜을 꺼내자 카일라도 관심을 보였다.
“글자를 배우는 거예요?”
“그래.”
“의외네요. 기사들은 가문에서 다 배우지 않나요?”
“내가 평범한 기사였으면 흑기사가 되었겠나?”
“아. 그런가?”
카일라는 납득했다. 그런 카일라에게 레온이 물었다.
“카일라 양은…….”
“그냥 카일라라고 불러요.”
“카일라는 글자를 읽을 줄 아나요?”
“숫자는 쓸 줄 아는데요. 장부 작성할 때 쓰거든요.”
“그럼 괜찮으시면 함께 배우시겠나요?”
“예? 그래도 돼요?”
레온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사람이 많을수록 배움은 즐거워지는 법이랍니다.”
레온의 꿈은 학교를 여는 것.
1대1 과외보다는 이렇게 여럿을 가르치는 학교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레온은 우선 기초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제국 문자는 자음과 모음으로 나뉘어 있는데…….”
데일은 집중해서 들었다. 레온이 설명해주는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암기했다.
조금 즐겁기도 했다.
‘이렇게 공부해보는 게 얼마 만이지.’
이 세계에 떨어지고는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이다.
데일과 카일라가 집중하자, 레온은 흥이 올라 더욱 열심히 가르쳤다.
게다가 데일은 뛰어난 학생이었다.
“왜 여기서는 에 발음이 되는 거지? 아까 말한대로면 으 발음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원래는 으가 맞지만, 몇 가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해서…….”
데일은 이해가 빨랐고, 잘 외웠으며, 모르는 게 있으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이해가 갈 때까지 질문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도 교사들이 가장 좋아할 종류의 학생.
레온 본인도 데일을 가르치면서 큰 기쁨을 느꼈다.
정말이지, 이런 학생들만 있다면 교사로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찰까.
잠시 쉬는 시간. 레온은 칭찬을 쏟아냈다.
“배우는 게 엄청 빠르네요 데일 경. 제가 처음 배울 때랑은 비교도 안 돼요! 이대로라면 며칠 안 걸리겠는데요?”
“네가 잘 가르쳐서 그런 거다.”
빈말은 아니었다. 레온은 생각보다 괜찮은 교사였다.
레온이 쑥스러운 듯, 목덜미를 긁적였다.
“헤헤. 그런가요?”
그러다 레온은 울상을 짓는 카일라를 발견했다.
카일라는 데일에 비해 배우는 속도가 느렸다. 사실, 카일라는 평범한데 데일이 너무 빨랐을 뿐이지만.
“카일라도 괜찮아요. 데일 경이 빠른 거지, 카일라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위로 안 해줘도 돼요.”
한숨을 푹 내쉰 카일라가 데일 쪽을 쳐다보았다.
“데일 경은 왜 그렇게 열심히 배우는데요. 그냥 글 읽을 줄 아는 종자나 하인을 데리고 다니면 되는 거 아닌가요?”
실제로, 잘 나가는 용병 중에서는 그렇게 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느 세월에 흥미도 없는 글자를 읽고 있겠는가.
잠시 고민하던 데일이 답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면 손해 볼 일이 많다. 굳이 손해 보며 살 필요는 없지.”
레온과 카일라가 시선을 맞췄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배워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그 뒤로도 셋은 글자 공부에 열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관에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아 집중이 깨지지 않았다.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 레온이 돌아갔다. 데일은 침대에 누워서도 복습을 멈추지 않았다.
잠이 없는 반 언데드에게 밤은 너무나 길다.
이렇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게 생긴 건 참으로 기꺼웠다.
그러다 데일은 어느 순간 복습을 멈췄다.
꿈을 꾸었다. 다른 말로 하면, 옛 기억을 선명히 떠올렸다.
조부가 나왔다.
조부가 아직 어린 데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람은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단다. 글과 책에 가까워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조부가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조부에게 데일은 말하고 싶었다.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얼마 전에 사람을 또 죽였어요. 그것도 여섯 명이나. 근데 아무런 감흥이 없더라고요.’
데일이 마일즈와 그 일행을 죽인 건 정당했다. 놈들은 죽어 마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인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건 사람으로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건 두려움이었다.
본인이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두려움.
허나 털어놓을 수 없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꿈이 아니라, 과거를 회상하는 것뿐이니.
조부는 그저, 언제나처럼 자상하게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 * *
데일은 용병 길드로 향했다.
지금보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적을 사냥해야 한다.
쉬고 있을 틈은 없었다.
아침의 용병 길드는 북적거렸다. 실내는 의뢰를 맡기기 위해 온 의뢰자들과 일거리를 찾아온 용병으로 가득했다.
길드는 둘 사이의 중개를 담당했다.
데일이 들어서자 한순간 시선이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데일을 보며 수군거렸다.
“저 사람이 교단에 간 그…….”
“전선에 있지 않고 왜 용병 일을 하는 거지?”
“이번에 마일즈 팀을 혼자서 죽여버렸다는데. 장비를 팔아서 짭짤하게 벌었나 봐.”
“돈만 잘 번다면 상관없지. 가서 파티 제의라도 해보지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교도는 좀.”
두려움과 경계. 그리고 호기심.
사람들의 시선 속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데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용병들은 대놓고 적의를 내비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별별 사람들이 다 흘러들어오는 업계인지라, 실력만 확실하면 인성이나 신분 같은 건 그러려니 하는 기조 때문이었다.
반대로 용병들은 실력이 떨어져 제 역할을 못 하는 이들을 혐오했다.
사람들이 길을 터주자 데일은 쉽게 접수대로 다가갈 수 있었다.
저번에 만났던 접수원이 데일을 맞았다.
여전히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어서 오세요 데일 경.”
“내가 할만한 의뢰가 있나?”
데일의 물음에 접수원은 사무적으로 답했다.
“특별히 희망하시는 분야가 있나요? 용병들도 전문 분야가 다 다르거든요.”
호위, 토벌, 채집, 호송, 전쟁. 그 밖에 다양한 분야들이 있고, 보통 용병들은 그 중 한 두 가지에 집중해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편이 신뢰를 쌓기도 좋고 돈 벌기도 좋았다.
하지만 데일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거나 상관없다.”
“그, 그럼 찾아보겠습니다.”
접수원은 분주히 서류 더미를 뒤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손이 멈췄다.
데일은 말없이 접수원을 쳐다봤다.
접수원도 입을 꾹 다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데일이 말했다.
“없나 보군.”
“……아직, 데일 경께 의뢰를 맡기는 분이 없으신 것 같아요.”
이교도에게 의뢰할 의뢰자는 아직 없었다.
데일은 확인차 다시 물었다.
“위험하고 더러운 일이라도 상관없는데. 보수도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 죄송합니다.”
“흠.”
데일은 곤란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놈의 흑기사 페널티.
‘이래서 게임에서도 흑기사는 안 했던 건데.’
역시 다른 흑기사들처럼 전선을 누비는 게 좋았을까?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일이 없어 곤란하지는 않았을 거다. 적이 넘쳐나는 곳이니.
하지만 전선은 위험한 곳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에도 언제 변덕 심한 악마가 찾아올지 모른다.
지금 데일의 힘으로는 악마를 상대할 수 없다. 아니. 상대는커녕 도망치기도 힘들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살 수는 없다.
“…….”
데일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자, 그 반응을 오해한 접수원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눈에는 희미하게 물기마저 고였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 접수원을 구원할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데일 경! 마침 잘 오셨습니다!”
지부장, 가란드가 계단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가란드에게 집중되었다. 용병들은 누가 먼저랄 새 없이 가란드에게 다가가 인사하려 했다.
“어. 가란드씨다.”
“가란드씨. 좋은 아침입니다!”
가란드는 미소로 화답한 뒤, 도망치듯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면서 데일을 향해 입을 뻐끔거렸다.
‘위로 올라오세요.’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가란드의 뒤를 따랐다.
접수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 * *
가란드는 김이 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내밀었다. 가란드가 직접 탄 홍차였다.
“차는 좋아하십니까?”
“먹을 수는 있소.”
데일은 찻잔을 받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뜨거운 차를 한입에 삼키는 모습에 잠시 당황했던 가란드가 운을 띄웠다.
“왜 데일 경을 불렀는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면 나야 고맙지.”
탁상 서랍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낸 가란드가 설명했다.
“최근. 이 근방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상 징후?”
“예. 우선 얼마 전 데일 경께서 의뢰를 처리한 이후, 마일즈에게 피해를 입은 마을에 조사대를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예상대로 마을 주민의 시체를 찾았습니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란드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주위에서 아울베어의 사체 역시 찾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크기가 일반 아울 베어보다 1.5배는 크더군요. 이 정도라면 변종 아울 베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어요.”
마일즈의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니었던 건가.
데일이 가란드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서 더 말해보라는 뜻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아울베어는 영역 동물입니다. 다른 개체에게 패하기 전에는 자기 영역을 떠나지 않아요. 근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른 아울베어보다 1.5배는 큰 녀석이 패배해 이동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하군.”
“그뿐이 아닙니다. 이레네로 연결되는 가도 근처에 원아이 무리가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아시죠?”
알다마다.
그 무리를 마주쳐서 박살 낸 게 데일이었는데.
“원아이 무리 역시 아울베어와 마찬가지로 영역 동물입니다.”
“하지만 영역을 벗어났군.”
“예. 게다가 조사 결과, 아울 베어와 원아이 무리 둘이 서로 가까운 지역에서 생활했다고 보입니다.”
그러니까 가란드의 말은, 그 두 괴물이 자기 영역을 벗어나 도망쳤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다.
“그 근처에 더 강한 놈이 나타난 것 아니오? 그래서 살기 위해 도망친 거고.”
“예. 저희가 추측하기로는 그렇습니다.”
“조사대는?”
“보냈습니다. 동패 용병이 둘이나 포함된 파티였죠.”
파티였죠. 그 과거형 표현에서 데일은 파티의 운명을 알아챘다.
가란드가 담담히 말했다.
“파티가 떠난 지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죠. 저희는 지금 그들이 어떤 상황인지조차 모릅니다. 죽었는지, 아니면 사로잡혔는지. 심지어 어떤 괴물한테 당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입니다.”
가란드는 고개를 들고, 데일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이미 가란드의 다음 말을 예상하고 있는 데일에게 물었다.
“데일 경께서 도와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