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
미지의 적
* * *
데일이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거요. 용병들을 구출? 아니면 거기 있는 적의 배제?”
“그건 전적으로 데일 경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맡긴다고?”
가란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길드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습니다. 이런 데 어떻게 제대로 된 지시가 가능하겠습니까. 현장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요.”
가란드가 이어 말했다.
“만약 용병들이 붙잡혀 있다면 구출에 중점을 두셔도 좋습니다. 여의치 않으면 적의 정체만 파악한 뒤 돌아오셔도 좋고, 가능하면 적을 사살하셔도 됩니다.”
데일은 탁상을 툭툭 두드렸다.
‘현장 판단에 따르겠다라.’
데일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가란드가 안심시켰다.
“물론, 데일 경이 현장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도 책임을 물을 일은 없을 겁니다.”
“이런 방식의 의뢰가 흔한 것 같지는 않소만.”
“예. 대부분의 용병들은 꺼려하는 편이죠. 다른 무엇보다, 의뢰의 위험도를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까요.”
적이 누군지. 얼마나 강한지조차 모른다.
이건 마치 눈을 감고 짐승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짐승이 나보다 약하면 사는 거고. 강하면 잡아먹히는 거고.
이런 의뢰를 반길 용병은 없다.
눈이 돌아갈 정도의 보수를 주는 게 아닌 한.
노련한 가란드는 데일이 의문을 표하기 전에 설명해주었다.
“참고로 보수는 의뢰 내용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그리 섭섭한 가격은 아닐 겁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죠. 게다가 모두가 꺼릴 의뢰이니만큼 실적도 넉넉히 책정될 거고요.”
넉넉한 실적.
즉, 용병 등급을 더 빨리 올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실적에 돈이라.’
일반 용병들에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섭섭하지 않은’ 금액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데일은 아니다.
애초에 의뢰를 가릴 처지도 아니며, 위험한 적은 바라던 바다.
‘설마 도망도 못 칠 정도로 강한 놈은 아닐 테고.’
악마가 아니고서야,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짧게 고민한 데일은 결정을 내렷다.
“하겠소. 바로 준비하면 되겠소?”
“데일 경이라면 그렇게 말씀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따로 섭외해둔 용병들은 없소?”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데일 경께서 사람을 모아야 할 것 같군요.”
데일은 멈칫했다.
그에게 사람을 모으라고? 차라리 지금 당장 악마 골통을 부수라고 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냥 혼자 하면 안…….”
“안됩니다.”
즉답.
가란드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전투에는 변수가 넘쳐납니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혼자서는 대처할 수 없는 상황도 분명 생깁니다. 그래서 상위 등급 모험가들은 기본적으로 팀으로 활동합니다. 용병왕 같은 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한다면 말이죠.”
데일도 가란드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잘 알았다.
그 역시 게임에서 용병 캐릭터를 키운 적이 있었다. 일부러 고독한 늑대 컨셉을 잡고 파티 플레이를 최소화했는데, 그때 혼자서 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았다.
‘근데 나는 일부러 혼자 하겠다는 게 아닌데.’
괜찮은 인재가 있다면 당연히 함께하는 게 편하다. 하지만 데일은 흑기사가 아닌가.
사람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데일은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혹시 나를 시험하는 거요?”
가란드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냥. 현장에서의 내 판단에 맡긴다거나. 일부러 팀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거나. 나를 평가하려는 느낌이 있어서.”
가란드는 차를 한 모금 훌쩍인 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데일 경은 계속 저를 놀라게 하는군요. 예. 맞습니다. 이번 의뢰는 데일 경을 시험하는 성격이 큽니다. 용병 길드는 주의할 인물이 들어오면 우선 그 사람을 가늠해야 하거든요.”
“의뢰를 맡길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맞습니다.”
적재적소에 알맞은 용병을 투입하는 것. 그게 용병 길드의 일이었다.
“팀을 꾸리도록 유도한 것도 그런 평가의 일환입니다. 저희는 동료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용병에 더 높은 점수를 주거든요.”
“그렇군.”
가란드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기분을 상하게 했나요? 변명을 좀 하자면, 제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입니다. 지부장이란 직책은 번드르르해도 결국에는 중간관리직이라 말이죠.”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소.”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가란드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라면, 위에서 데일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여기서 제대로 성공하면 귀찮은 일도 줄어들겠군.’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사람을 구해보겠소.”
“괜찮겠습니까?”
“뭐. 함께 하겠다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요. 없으면 나 혼자라도 가야겠지만.”
“그러면 갈 때 사용할 짐 마차는 길드에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집무실을 나섰다.
한시가 급한 의뢰다.
어쩌면 실종된 용병들이 살아있을 수도 있었다.
‘가능성은 적지만.’
길드에서는 용병들이 이미 죽었다고 여길 것이다.
실종된 용병이 살아 돌아오는 경우는 매우 드무니까.
그렇게 생각하기에 데일을 시험해볼 용도로 의뢰를 맡긴 거다.
용병들이 살아있다고 여겼으면, 좀 더 확실한 이들에게 부탁했을 것이다.
데일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많은 용병이 의뢰를 찾아 북적거리고 있었다.
데일은 실내를 쭉 둘러보며 쓸만한 용병을 찾았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시선이었다.
“왜, 왜 저래.”
“일단 도망가자.”
겁에 질린 용병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했다.
‘쓸만한 놈이 안 보이는데.’
그때였다. 누군가가 데일에게 친한 척을 해왔다.
“데일 경! 오랜만입니다! 저 기억나시죠? 하켄입니다, 하켄. 마일즈 그놈을 죽여서 대박을 친 얘기는 이미 들었습니다! 하하. 저도 데일 경이랑 함께했으면 한몫 잡았을 텐데.”
유달리 곱슬거리는 머리를 가진 용병, 하켄이 친한 척 떠벌대었다.
부자연스러울 만치 과장스러운 행동이었는데, 마치 주위에 ‘봐라. 난 이런 사람이랑도 친분이 있다’라고 과시하는 느낌이었다.
데일은 대답 대신 하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데일이 아무 말 없이 노려보자, 당황한 하켄이 한걸음 물러났다.
“호, 혹시 제가 뭐 잘못한 거 있나요?”
“지금 수행하는 의뢰가 있나?”
“예? 아뇨. 어제까지 놀다가 오늘 일감 찾아 나온 건데요.”
“따라와.”
“예?”
데일은 출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데일의 등만 쳐다보았다.
앞서가던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안 따라오고 뭐 해.”
“예? 그, 데일 경? 이유만이라 알려주실 수 없을까요?”
데일은 하켄의 말을 무시하며 사무소 밖으로 나갔다.
잠시 갈등하던 하켄은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왠지 말을 듣지 않았다가는 좋지 못한 꼴을 당할 것 같았다.
‘일단 한 놈 구했고.’
2등급 실드맨. 어떤 조합에 넣어도 1인분은 할만한 인력이었다.
하켄이 입이 좀 가벼워서 그렇지, 노련한 용병이기도 했고.
이미 데일의 머릿속에 자기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걸 모르는 하켄은 불안한 얼굴로 데일을 뒤따랐다.
“데일 경. 이제 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뭐 어디 좋은 가게를 가는 건 아닐 거 아닙니까?”
데일이 고개만 살짝 돌린 뒤, 무심하게 의뢰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적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과 의뢰 내용도 현장 판단에 맡긴다는 것.
모두 들은 하켄의 얼굴이 하얘졌다.
“아니. 대체 어떤 개 같은 새끼가 튀어나올 줄 알고 그런 의뢰를 받는 겁니까. 예?”
“문제가 생기면 물러나면 된다. 내가 책임지고 도망은 칠 수 있게 해 줄 테니 걱정마라.”
“어. 그, 엄청 듬직하긴 한데…….”
하켄이 우물쭈물하자 데일이 말했다.
“쉬운 적만 상대하면 성장도 없다. 너도 이제 2등급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음. 그것도 또 맞는 말이라 반박은 못 하겠긴 한데, 그래도 좀…….”
앞서가던 데일이 우뚝 멈췄다. 그러고는 하켄을 쳐다보며 말했다.
“싫나?”
“……어. 그게.”
데일은 지그시 하켄을 바라보았다. 더 입을 열지는 않았다. 데일은 침묵의 힘을 알았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하켄이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하. 당연히 해야죠! 이 하켄! 의리 빼면 시체 아니겠습니까?”
“저번에는 고독한 늑대라며.”
“아, 아이고. 농담한 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계십니까.”
체념한 하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이 양반이 있으면 괜찮겠지.’
하켄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데일이 보여준 무위가 선명히 남아있었다.
어떤 괴물을 맞닥뜨리더라도 데일이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켄은 데일의 옆에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그런데, 설마 우리 두 명은 아니죠? 아무리 그래도 파티에 사제 한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사제는 이미 구해놓았다.”
“아 그래요? 그거 다행이네요.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요?”
“너도 아는 사람이다.”
하켄이 고개를 갸웃했다.
* * *
“…….”
“…….”
“…….”
빛의 신전 앞에서 에스델과 하켄, 그리고 데일이 기묘한 대치를 하고 있었다.
침묵을 먼저 깬 건 에스델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약속도 없이 아침 일찍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의뢰를 같이 가자고 권유하는 겁니까?”
“권유 아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빌려준다고 했던 건 너였다.”
“아니. 으. 분명 그런 말을 하긴 했는데, 그래도 경우라는 게 있잖습니까.”
“저도 반대입니다 데일 경.”
하켄이 난색을 보였다.
“견습 사제잖아요. 대체 세상 어디서 견습 사제를 사제로 치나요. 전투에서 사람 구실도 못 한다니까요? 저번에 봤잖아요. 원아이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하던 거.”
“이제 견습 사제 아닙니다!”
에스델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녀는 사제복의 소매에 새겨져 있는 표식을 보여줬다.
은의 고리가 한 개.
즉. 정식 사제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그사이에 사제를 달았다고?”
“흥. 말했잖습니까. 나름 주목받는 유망주라고.”
에스델이 턱을 살짝 들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데일도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 전투에 도움이 되겠어.”
에스델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예? 저는 아직 한다고 말 안 했습니다. 애초에 지금 어떻게 갑니까. 당장 오늘 준비된 일정이랑, 드려야 하는 오후 기도랑, 또…….”
말이 길어졌다.
에스델이 계속 거부할 기색을 보이자, 데일은 쐐기를 박았다.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았나.”
“윽.”
에스델이 굳어버렸다.
신앙인에게 신의 이름을 건 맹세는 무거운 의미를 가진다.
맹세를 깼다가는 신성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에스델이 조금 애처로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아직 막내라서 이렇게 일 빠지면 위에서 눈치 보입니다. 언니들도 안 좋게 보고. 지도 사제님도 혼내시고…….”
“알겠다.”
에스델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이해해 주시는 겁니까?”
“빛의 신의 이름은 내 생각보다 가벼웠던 모양이군.”
에스델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데일이 고개를 돌리자, 에스델이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겠습니다. 하면 되잖습니까.”
“빨리 준비하고 나와라.”
에스델은 입으로 ‘나 어떡해 진짜’라고 중얼거리며, 교단으로 총총 사라졌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쳐다본 데일이 말했다.
“동료 모으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군.”
옆에서 지켜보던 하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