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6)
미지의 적
* * *
“그래서. 이 세 명으로 갈 겁니까?”
에스델이 불퉁한 얼굴로 물었다. 하켄도 곱슬머리를 긁적였다.
“뭐. 실드맨에 사제, 거기에 기사면 최소한의 구색은 갖춘 셈이지.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으니, 여기에 활잡이 하나만 있으면 딱이겠지만……. 사제 양반, 아는 궁수 있어?”
“아뇨. 그리고 제 이름은 에스델입니다.”
하켄은 에스델의 말을 무시하며 데일에게도 물었다.
“데일 경은요.”
“아니.”
“저도 없습니다. 그러면 새로 구해야 하는 데, 구할 수 있겠습니까?”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용병들은 데일에게 흥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경계하는 기색도 강하다.
괜찮은 궁수를 구하려면 시간과 돈을 들여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시간은 여유롭지 않다.
“생존자들이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둘러야 해.”
“저도 데일 경의 말에 동의해요.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구해야죠.”
에스델이 데일의 말에 맞장구쳤다.
하지만 하켄은 시큰둥했다. ‘실종된 용병’이라는 건, 사망자와 크게 다른 바 없는 단어였다.
“그래요 뭐. 그렇다 치고. 그럼 그 밤의 신전에서 사람을 구할 수는 없나요? 내 알기로, 밤의 여신을 따르는 신자들은 굳이 용병 길드에 안 들고 제각각 활동한다는데.”
정확히는 길드에 안 들었다기보다는 못 들은 거에 가까울 것이다.
그들 역시 데일이 겪는 어려움을 마주했으니.
이교도를 한 명 더 데려가자는 말에 에스델은 탐탁잖은 표정을 지었다.
데일만으로도 이미 그녀의 신앙심은 충분히 자극받고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데일도 고개를 저었다.
“좋은 생각 같지는 않다. 누군지도 모를 녀석을 데리고 가고 싶지는 않아.”
“하긴 뭐. 다들 머리한 구석이 맛탱이가 간 놈들이니…….”
말하다 아차 한 하켄이 재빨리 덧붙였다.
“데일 경을 얘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조심해라.”
“옙.”
결국, 이 셋만으로 가기로 결정되었다.
숫자가 적은 건 확실히 전력 면에서 불리함이 있다.
하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이 적으면 그만큼 위기 시에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적어도 서로 발이 엉켜 넘어질 일은 없을 터.
게다가 사람이 적다는 건,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셋은 곧장 길드로 가 보고를 마쳤다. 가란드는 셋을 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켄, 데일 경, 그리고 에스델 사님이시군요. 마차와 여정에 필요한 물건은 제가 이미 준비해두었습니다. 부디 무운을 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데일이 성큼 걸음을 옮겼다.
하켄과 에스델도 그 뒤를 따랐다.
준비된 짐 마차에 오른 데일이 하켄에게 말했다.
“네가 마부해.”
“예? 꼭 제가 해야 합니까?”
“그러면 내가 할까? 저쪽은 말을 몰 줄 모를 거고.”
데일이 에스델을 가리켰다. 에스델이 미간을 좁혔다.
“잠깐. 왜 당연하다는 듯이 제가 말을 못 몰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할 줄 아나?”
“……모르긴 하지만, 단언하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
하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제가 할게요.”
하켄이 고삐를 쥐자 푸르르, 투레질한 말 두 마리가 힘차게 다리를 움직였다.
마차는 느릿느릿 성문을 빠져나가 가도에 들어섰다.
빈민촌의 사람들이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가오지는 않았다.
도시에서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구걸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날이 따뜻했다.
정오의 햇살이 마차 위로 흘러내렸다.
그 따가움에 조금 불쾌함을 느끼며 데일은 헝겊으로 롱소드를 닦았다.
지난번 마일즈와 싸울 때 쓰던 롱소드가 이가 나가서, 새로 장만한 녀석이었다.
‘꽤 비싸게 주고 샀으니, 이번에는 쉽게 부러지지 않겠지.’
에스델은 품에서 성경을 꺼내 읽었다.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는지, 종이가 죄다 너덜너덜했다.
에스델은 신경 쓰지 않고, 성경의 글자에만 집중했다.
햇살은 그런 에스델의 머리 위에도 떨어졌다.
안 그래도 화사하던 백금발 머리가 더욱 찬란히 빛났다.
성경을 읽는 아름다운 여사제.
제법 봐줄 만한 그림이었다.
신앙심 깊은 무지렁이가 봤다면, 성녀가 나타난 게 아니냐고 호들갑을 떨 정도로.
다행히 여기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데일은 하염없이 무기를 손질했고, 하켄은 졸린 눈으로 늘어지게 하품을 할 뿐이었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하켄이 물었다.
“우리 심심한데 얘기나 좀 합시다.”
“난 안 심심한데.”
“아잇. 그러지 말고. 이것저것 할 얘기 있지 않습니까. 가령, 데일 경이 얼마 전에 마일즈랑 그 졸개들을 처리해서 한 몫 챙긴 이야기라거나.”
데일은 검을 닦던 손을 멈췄다.
“아까도 의아했던 건데, 그걸 대체 네가 어떻게 아는 거지?”
하켄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이 바닥에는 비밀이 없어요. 누가 한몫 잡았다는 얘기 나오면 다음날 도시 전체에 소문이 퍼진다니까요? 그러다 재수 없으면 강도들이 찾아가기도 하고 뭐 그러는 거죠.”
확실히, 마일즈와 그 패거리가 가진 장비를 가져다 파니 짭짤한 수익이 되었다.
그게 이렇게 소문이 퍼질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데일 경은 그런 걱정 없겠네요. 간이 존나 큰 강도가 아니면 누가 굳이 데일 경을 노리겠어요.”
데일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델은 읽던 성경을 덮고는 고개를 휙 들었다.
“잠깐. 지금 데일 경이 사람을 죽여 이익을 취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말이 이상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누가 들으면 오해할만하지 않겠는가.
그 오해에 하켄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용병일 하다 보면 거 사람 좀 죽일 수 있는 거지. 왜 유난이야.”
“야.”
그렇게 말하면 더 오해하지 않겠는가.
에스델은 충격받은 얼굴로 데일을 쳐다보았다. 그 손이 덜덜 떨렸다.
“데일 경. 사고 치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데일은 에스델이 시끄럽게 굴 것 같아, 한숨을 푹 내쉬고 설명했다.
가란드의 의뢰를 받을 일부터 마일즈가 마을에서 벌인 학살까지.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에스델이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뭐. 왕왕 벌어지는 일이지.”
하켄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에스델이 시선을 돌렸다.
“왕왕 벌어진다니. 이런 일이 흔합니까?”
“으잉? 뭐, 몇백 년 된 왕국도 박살 나는 시대인데, 마을 하나 없어지는 건 드문 일도 아니지. 꼭 용병이 아니라도 도적 떼나 몬스터, 악마 등등. 위험한 새끼들은 많으니까.”
에스델이 수심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도시에서 가까운 마을에 그런 참사가 벌어졌을 줄은 조금도 몰랐습니다. 제가 태평하게 지낸 동안…….”
그 목소리에는 희미한 죄책감이 느껴진다. 주변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자책.
하켄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일에까지 책임감을 느끼다니. 참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데일은 그런 에스델이 조금이지만 부러웠다.
자기와 관련 없는 일에조차 공감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끼는 저 유난스러움.
그건 지금의 데일이 가질 수 없는 감정이니까.
일행은 다시 입을 닫았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말발굽이 땅을 밟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질 뿐이었다.
하켄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더럽게 지루하네.”
* * *
일행의 목적지는 이레네에서 북서쪽으로 사흘 정도 거리에 있는 돌산이었다.
‘뾰족 바위산’이라는 곳이었는데, 그 이름대로 날카로운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아울베어와 이터 무리의 영역이었고, 이전 조사대가 소식이 끊긴 장소.
하켄은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크구만. 내가 알기로 뾰족 바위산은 저 북쪽에 용뼈 산맥에까지 이어지는 거로 알고 있는데, 수색하는 것만 한참 걸리겠어요.”
“글쎄.”
데일의 생각은 달랐다.
“아울베어와 이터 무리가 겁을 먹었고 도망칠 정도의 놈이니,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막상 그렇게 들으니 덜컥 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흉악한 녀석을 지금 상대하러 가는 것 아닌가.
‘지금이라도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하켄은 불안하게 주위를 쳐다보다 데일에게 시선이 닿았다.
그러자 불안이 조금 가라앉았다.
‘뭐, 데일 경이 어떻게든 하겠지.’
딱히 근거는 없었지만, 데일이라면 알아서 잘 할 것 같았다.
하켄은 적당한 장소를 찾아 마차를 멈췄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으나, 여기서 더 가면 적의 영역이었다.
“자. 식사부터 합시다. 싸우려면 든든히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셋은 따로 역할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각자 알아서 할 일을 찾았다.
데일은 손도끼로 적당히 작은 나무를 베어왔고, 하켄은 근처 개울에서 물을 길어왔으며, 에스델이 솥에다 요리를 준비했다.
준비가 모두 끝나자 에스델은 데일과 하켄에게 말했다.
“자. 우리 모두 식전 기도를 합시다. 데일 경이랑 하켄도 손을 모으세요.”
“?”
“뭐?”
데일과 하켄 모두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에스델은 둘의 반응을 무시하고, 양손을 마주 잡으며 기도를 올렸다.
“자비롭고 따스한 빛이시여, 오늘도 저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셔서 감사…….”
“음식은 가란드 그 양반이 준비해줬는데?”
“감사드리며, 빛이 온 세상을 밝히길 바라나이다.”
하켄이 끼어들어도 에스델은 꿋꿋이 기도를 읊었다.
하켄은 이게 뭔가 싶어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교단에는 기도를 통해 영혼이 밝아진다는 믿음이 있고, 그 대상은 기도를 듣는 모든 이에게 해당된다.
즉, 에스델은 하켄과 데일을 위해서 기도를 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근데 데일 경은 종교가 다른 거 아닌가?’
흑기사는 밤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요, 어둠의 구도자였다.
교단의 성기사와는 대척점에 있는 존재.
만약 입장을 바꿔 교단의 성기사 앞에서 어둠의 기도문을 읊었다면, 싸우자는 뜻으로 알아듣고 머리를 부수려 들지 않았을까?
하켄은 미묘한 얼굴을 곱슬머리를 긁적였다.
전에도 느꼈지만, 이 애송이 사제는 신앙인 특유의 막무가내 태도가 좀 있는 듯하다.
자기가 옳다고 믿으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태도 말이다.
하켄은 조심스레 데일의 눈치를 살폈다. 데일이 불쾌하게 여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데일이 투구를 벗었다.
하켄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드러난 데일의 입꼬리는 살짝이지만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 정도면 미소라고 부를 만했다.
놀란 하켄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엇. 웃을 줄도 아십니까?”
“무슨 의미지?”
“저는 흑기사는 웃지도 못하는 줄 알았는데……. 그보다 왜 웃으시는 겁니까?”
왜 웃었을까.
잠시 고민하던 데일이 답했다.
“그냥. 갑자기 조부가 떠올랐다.”
“조부……. 말씀이십니까? 그러고보니 데일 경에 대한 얘기는 들은 적이 없군요.”
사실, 궁금했던 적은 많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어차피 데일이 답해주지 않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으레 어둠을 받아들인 기사들은 흉흉한 과거 하나씩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그 과거를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은 법이니.
하지만 데일이 딱히 꺼리는 기색이 없자, 하켄이 옳다구나 하고 질문을 던졌다.
“어느 왕국 출신인지부터 알려주시죠. 레판토? 바이만? 아니면 이미 멸망한 다른 왕국들?”
“왕국이라. 정확히는 말할 수 없다.”
“그럼 간단하게라도 설명해주세요. 뭐, 바다가 유명한 곳이었다는지, 역사가 길다든지.”
데일은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했다.
현대의 한국을 묘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주의니 과학 기술이니를 설명해도, 터무니없게 들릴 것 같았다.
고민하던 데일은 이 세계의 사람들이 종교에 큰 관심이 있음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에 맞춰 설명했다.
“국민의 과반이 신을 믿지 않는 나라였다. 내 조부는 그런 곳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신실하게 살아가시던 분이셨지.”
그 외에는 딱히 한국을 설명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켄은 툭 내뱉었다.
“그것참 저주받을 곳이네요. 완전 지옥 아닙니까?”
아무리 신앙심이 약한 용병이라도 아예 종교가 없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이곳 세계에는 신이 실재하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작든 크든 신의 존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게 엿듣던 에스델이 끼어들었다.
“들은 적 있어요. 옛 드워프 왕국들 중에 신을 섬기지 않아 저주받은 곳이 있었다고. 그와 비슷한 곳 이려나요?”
“거 참. 대륙이 넓다 보니 별별 왕국들이 다 있군.”
이 세계에도 무신론자 국가가 있을 수 있는 건가?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데일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조부께서는 식사 전에 기도 비슷한 걸 외우셨다. 게송이라 부르는 건데……. 그 모습이 에스델과 겹쳐 보여 웃었을 뿐이다.”
에스델의 표정이 밝아졌다.
“할아버지가 참 신앙심 깊은 분이셨나보군요!”
“그래.”
빛의 신앙이 아니었지만, 그건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에스델이 더 캐물으려 하자 데일이 말했다.
“조부는 신심이 깊었지만 절대 당신의 믿음을 강요하지 않던 분이었다. 덕분에 손자는 그 종교를 물려받지 않았지. 나는 그런 조부를 존경한다.”
거기까지 말한 데일이 에스델을 지긋이 쳐다보며 말했다.
“이해했나 에스델?”
“…….”
에스델이 일부러 데일에게 기도를 동참하라 한 이유는 짐작할 만했다.
어둠을 받아들인 이 기사가 빛으로 다시 돌아서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분명 에스델은 선의에서 행동했을 것이다. 데일도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밤의 여신과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는 계약 관계라 생각할 뿐, 진심으로 어둠을 섬기는 건 아니므로.
하지만 지금 데일은 남이 보기에 밤의 여신을 따르는 신자이고, 에스델도 그 사실을 안다.
에스델이 보여준 태도는 무례한 것이다.
데일이 아닌 다른 흑기사였으면 에스델은 지금쯤 심장에 검이 틀어박혔으리라.
데일의 무기질적인 눈과 마주친 에스델은 슬그머니 고개를 내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어요.”
“신경 쓰지 않는다. 다음부터는 하켄과 둘이서 기도를 하도록.”
“으익? 저는 왜 끼워 넣습니까?”
하켄이 뒤로 물러나자, 데일이 그 어깨를 붙잡았다. 하켄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아픈데요. 알았어요. 기도할 테니 이건 놔주시면……. 으악!”
데일은 하켄을 힘껏 잡아당겼다. 하켄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넘어졌다. 수프가 든 그릇도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다음 순간. 뾰족한 가시 하나가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정확히 하켄의 머리가 있던 곳이었다.
데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뽑았다.
“손님이 온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