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7)
미지의 적
* * *
데일은 어스름한 숲속을 응시했다. 그곳에서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삐죽 돋아난 괴물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고슴도치 괴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다리 세 개로 껑충 뛰어다니는 놈도 있었고, 진물을 뿌리며 다가오는 달팽이 같은 놈도.
십 수개의 눈을 깜빡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박쥐같이 생긴 녀석도 있었다.
그 외에도 통일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외형을 가진 괴물이 수십 마리나 있었다.
대륙에서 이런 불규칙한 군세를 지닌 이들은 하나다.
“악마. 악마에게 변형된 괴물들이다.”
“예?!”
에스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악마의 괴물들이 이레네의 근방에서 발견되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켄이 방패를 들어 올리며 표정을 굳혔다.
“악마 새끼들이라……. 원아이랑 아울베어가 왜 도망쳤는지 알 것 같네. 어떡합니까 데일 경. 우리 좆 된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긴.”
데일은 하켄을 노리고 날아들었던 가시를 주웠다.
가시는 겉보기보다 단단하고, 무거웠다. 데일은 그 가시를 들고는 있는 힘껏 팔을 휘둘렀다.
쐐액…… 퍽!
고슴도치 괴물의 대가리에 정확히 가시가 명중했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피가 줄줄 흘렀다.
데일은 담담하게 말했다.
“싸워야지.”
그게 신호였다.
온갖 괴물들이 이쪽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데일은 롱소드를 들며 지시를 내렸다.
“에스델. 하켄에게 축복을 걸어.”
“데, 데일 경은요?”
“나한테는 축복이 듣질 않아.”
고개를 끄덕인 에스델이 빠르게 기도를 읊었다.
은은한 빛이 하켄의 몸을 감쌌다. 몸이 가벼워졌다.
“하켄은 에스델을 지켜라.”
“알겠습니다. 데일 경은요?”
데일은 대답 대신 땅을 힘껏 박찼다.
커다란 덩치의 흑기사가 하늘로 치솟자, 모든 괴물의 이목이 데일에게 쏠렸다.
데일은 꼿꼿이 선 자세 그대로 깔끔하게 착지했다.
철퍽!
떨어지는 힘 그대로 괴물 하나를 짓밟은 데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괴물들의 한 가운데.
날뛰기에 참 좋은 위치였다.
“실컷 싸우겠군.”
“캬아아아악!”
표범의 머리에 지네의 몸통이 달린 괴물이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데일은 롱소드를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내리쳤다.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두개골이 부서졌다. 더러운 액체가 사방에 튀었다.
데일은 곧바로 롱소드를 뽑아 옆을 향해 찔렀다. 뱀처럼 생긴 괴물의 아가리와 뇌가 그대로 꿰뚫렸다.
괴물의 상처에서 흐른 초록색 피가 땅과 닿자, 그르륵 거품이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둔탁한 충격이 등을 덮쳤다.
쿵!
데일은 뒤를 돌았다.
육중한 몸을 지닌 녀석이 꼴에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망치에 얻어맞은 등 쪽 갑옷이 조금 찌그러졌다. 녀석은 케르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웃지마.”
데일은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놈의 턱이 완전히 부서졌다. 더는 웃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턱이 다 부서져도 괴물의 육체는 곧바로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서 데일은 놈의 몸통을 들어, 다른 괴물들을 향해 던져버렸다.
“캬아악!”
옆쪽에서 악어 대가리를 가진 괴물이 아가리를 쩍 벌려 데일에게 들이댔다.
데일은 허리를 꺾어 공격을 피한 뒤, 녀석의 주둥이를 힘껏 잡아 돌려버렸다.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머리가 반 바퀴를 빙글 돌았다.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데일은 팔에 강한 힘을 줬다.
우득!
괴물의 머리가 척추째로 뽑혀 나왔다.
사방에 피가 후두둑 튀었다.
데일의 몸에 묻은 피가 알아서 흡수되었다. 찌그러졌던 갑옷이 곧바로 수복되었다.
잔인하고 끔찍한 광경.
평범한 적이었으면 겁에 질려 주춤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악마가 만든 괴물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허락되지 않았다.
곧바로 다른 괴물들이 달려들려 했다. 그 광경을 보며 데일은 생각했다.
‘끝이 없군. 광역기를 빨리 배우든가 해야지.’
두려움이 없는 건 데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피를 흡수한 몸이 이 살육에 크게 기뻐하고 있다.
상대의 숫자가 많은 건 중요치 않다.
생기를 통해 무한한 체력을 얻을 수 있는 흑기사에게 이런 싸움은 그저 즐거운 식사 시간일 뿐이다.
괜히 흑기사가 전장의 악몽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데일은 학살을 계속했다.
새로 얻은 워해머를 크게 휘두르며 괴물들 사이를 헤집어 놓았다.
쇳덩어리에 맞은 괴물들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데일은 워해머를 휘두르며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반 언데드의 차가운 포효는 살아있는 것들의 신경을 자극한다.
다른 곳으로 빠지려던 괴물들이 더더욱 맹목적으로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하켄과 에스델은 둘 다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 절반은 사람이라 들었는데, 믿기지가 않는데.”
“……하켄은 전선에도 몇 번 가봤다면서요. 원래 흑기사들은 다 저럽니까?”
“흑기사 형씨들이 대부분 잘 싸우는 건 맞지만, 데일 경은 좀 더 흉측한……. 에크!”
하켄은 서둘러 방패를 휘둘렀다. 괴물의 이빨이 방패에 가로막혔다.
데일에게 대부분의 적이 쏠려 있다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하켄이 방패로 괴물을 막는 사이. 에스델이 메이스를 휘둘러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에스델 역시 축복으로 강화된 상태이기에, 능히 괴물의 머리를 부술 수 있었다.
피가 사방에 튀며 에스델의 입에도 들어갔다.
“으엑. 퉤. 퉤.”
“하하하! 뭐야, 제법 하잖아! 사제가 아니라 전사가 돼야 했던 거 아닌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싸움이 계속되었고, 수십 마리가 넘어가던 괴물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팍!
데일이 마지막 남은 괴물의 가슴에 롱소드를 박아넣었다. 꺼르륵거리며 피거품을 쏟아낸 괴물의 몸이 허물어졌다.
마침내 전투가 끝났다.
어스름하던 하늘에는 어느새 환한 보름달이 떠 있었다.
하켄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후, 후아. 죽는 줄 알았군.”
엉덩이에 철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의 시체가 깔려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온 사방이 피와 살점이 가득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에스델은 지친 얼굴이지만, 차마 시체 위에는 앉지 못했다.
어정쩡하게 쭈그려 앉은 에스델이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 악마의 괴물들이 있다는 건, 악마도 있다는 거잖습니까. 빨리 도시에 알려 병력을 불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죽은 괴물의 시체에서 생기를 흡수하던 데일이 고개를 저었다.
“악마는 아니다. 악마가 이곳에 왔으면, 이놈들이 이렇게 약할 리가 없어.”
“예?”
데일은 시체에 건틀릿을 박아넣고 조용히 정신을 집중했다.
기억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원래 이런 괴물의 기억은 흐릿하고 중구난방이라 엿볼 수 없었지만, 이번에 능력이 강화되어 그럭저럭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격렬하게 싸우는 용병들이다.
‘가란드가 보냈던 조사대군.’
용병들은 제법 실력이 있었다.
몰려오는 괴물들에 맞서 똘똘 뭉쳐 싸웠다.
그런데 괴물들 사이에 마법사가 있었다.
갑자기 날아온 보라색 불꽃이 용병들을 덮쳤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당해버린 조사대의 진형이 무너졌다.
그대로 괴물들이 달려들었다.
괴물들은 그대로 용병을 씹어먹으려 했다.
하지만 마법사는 괴물들을 말린 뒤, 용병들을 사로잡아 어딘가로 끌고 갔다.
어둡고 깊은 지하 속으로.
데일이 중얼거렸다.
“악마를 따르는 마법사가 있군.”
“악마의 하수인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악마가 압도적인 힘으로 대륙의 절반을 정복하자, 신의 권위는 크게 훼손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빛의 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악마들이 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악마를 섬기는 새로운 종교가 나타났다.
그리고 악마는 자기를 따르는 인간들에게 기꺼이 힘을 내어주었다.
“악마의 하수인이라면 이단 심문관들을 불러야 합니다.”
“제 생각에도 일단 도시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우리까지 여기서 죽으면 걷잡을 수 없어요.”
하켄과 에스델의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생각해볼 만한 점이 두 가지 있다.”
“두 가지요?”
“첫째는 생존자가 있는 것 같다. 앞서서 왔던 용병들을 산채로 끌고 갔으니, 한두 명은 살아있을 수도 있어.”
“…….”
둘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악마가 부리는 괴물들에게 뜯어먹혔을 줄 알았는데, 설마 살아있을 줄은 몰랐다.
에스델은 놀라서 눈만 또르르 굴렸고, 하켄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나머지 하나는 뭡니까.”
“악마 하수인 놈이 뭔 짓을 벌이는 것 같다.”
“뭔 짓을 벌인다 하면……?”
“몰라. 무슨 의식 같은데. 근데 이 의식이 완성되어서 좋을 건 없겠지.”
악마와 마법사에게는 시간을 주어선 안 된다.
그리고 지금 상대하려는 건 악마를 섬기는 마법사였다.
의식이 완성되면 어떤 개수작을 부릴지 알 수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에스델이 말했다.
“우리가 막죠.”
“뭐?”
“악마의 하수인을 그냥 놔뒀다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칠지 모릅니다. 피해가 커지기 전에 우리가 막아야 해요. 게다가 잡힌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사로잡힌 걸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도 외면할 수 없어요.”
하켄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세상 모르는 풋내기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건가?
“악마의 하수인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개 같은 일인지 알아? 그 새끼들은 가진 능력은 다 달라도, 하나 같이 좆 같은 새끼들이라고!”
“위험하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빛을 섬기는 몸으로써, 이 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게다가 우리한테는 데일 경도 있잖습니까.”
둘은 동시에 데일을 쳐다보았다. 데일은 무심하게 검을 닦고 있었다.
롱소드는 피와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 이전만큼 날카롭지 못해 보였다.
하켄이 데일에게 물었다.
“데, 데일 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설마 우리끼리 가자고 할 생각은 아니죠?”
데일은 하켄을 흘끔 쳐다본 뒤, 다시 검을 닦았다. 마치 뭔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이.
“당연히 가야지.”
“예?”
진짜 악마라면 몰라도 상대는 악마의 하수인이다.
충분히 싸워봄 직하다.
게다가 데일의 기억으로, 게임 속에서 이름에 ‘악마’ 달린 놈들은 사냥했을 때의 보상도 후했다.
악마 하수인의 생기와 영혼.
분명 더 큰 성장을 선사해줄 것이다.
“위험이 없으면 성장도 없어.”
“아니. 그래도.”
“겁나면 혼자서 돌아가던가.”
하켄은 곱슬머리를 긁적였다.
의뢰 중에 혼자서만 도망치라니. 정말로 그렇게 했다가는 앞으로 이 업계에서 일하긴 글렀다.
하켄은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저 흑기사 형씨라면.’
악마의 하수인이고 뭐고, 저 흑기사보다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수인을 처치하면 그만큼 주워 먹을 것도 많을 터.
분명, 한 몫 든든히 챙길 수 있을 거다.
“겁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저, 하켄. 절대 동료를 버리고 혼자 도망치는 그런 인간 아닙니다.”
“……맞는 것 같은데.”
에스델이 중얼거리자 하켄이 찌릿 노려보았다.
반면, 무덤덤하게 검을 닦던 데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결정을 내렸으면, 주저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