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8)
하수인
* * *
악마의 하수인 하시나는 세심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녀는 제단에 꽂힌 검 하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손과 검이 닿을 때마다 손끝이 튕겨나갔다.
따끔한 고통이 올라왔다.
하지만 하시나는 웃었다.
“이제 조금이다. 조금만 더 하면 내 것이 될 것이다.”
그 눈동자가 짙은 어둠 속에서 별빛으로 빛났다.
검에 서린 힘을 타락시키기 위해 상당히 오래 고생했지만, 이제 슬슬 끝이 보인다.
하시나는 빨리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어서 검을 오염시켜서 그걸 자신의 주인에게 바치고 싶었다.
그리하면 강대하고 자비로운 주인은 더 큰 힘을 그녀에게 내려주리라.
그 순간만 생각하면 지금의 수고는 아무렇지 않다.
하시나는 조금도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 그때, 그녀의 권속 중 하나가 다가왔다.
권속은 고개를 조아리며 어눌하게 말했다.
“침, 침입자. 침입자가, 왔습니다.”
하시나는 눈을 찡그리며 권속을 쳐다보았다.
“내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침입자든 뭐든, 네가 알아서 처리해. 또 이런 하찮은 일로 일을 방해하면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하, 하지만. 생, 생, 생각보다 강해서…….”
“썩 꺼져.”
사납게 명령하자 권속은 허겁지겁 물러났다.
다시 어두운 공간에 혼자 남은 하시나는 작업을 재개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쇠를 긁는 듯한 중얼거림이 어두운 공간에 울려 퍼졌다.
* * *
데일과 하켄, 에스델은 뾰족 바위 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켄은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데일이 그런 하켄에게 말했다.
“아마 습격은 없을 거다.”
“예?”
“아무리 악마의 하수인이라도 끝없이 괴물을 부릴 수는 없어. 방금 우리가 아무리 못해도 절반은 죽였을 거다.”
“그건……. 그렇겠죠.”
“게다가 우리는 놈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다. 구태여 나와서 싸우는 것보다는, 자기 집에서 싸우려 드는 게 합리적이지.”
하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성적으로는 데일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가슴은 당최 진정되지 않았다.
하켄은 후하후하― 호흡하며 요란을 떨어댔다.
반대로 에스델은 침착하다.
그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지금 이 일을 빛의 신자가 행해야 할 거룩한 성전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그녀는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우리가 지금 맞게 가고 있나요?”
“괴물의 기억을 살펴봤다. 가장 날카롭고 높은 봉우리의 중간 지점에 굴이 있었어.”
“음? 가장 높고 날카로운 봉우리는 저거 아닌가요? 우리 지금 정반대로 가고 있는데요?”
하켄이 뒤쪽의 봉우리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주위에서 가장 높고 날카로운 봉우리였다.
에스델이 미간을 좁히며 핀잔을 줬다.
“하켄. 데일 경이 설마 그런 것도 헷갈렸겠습니까? 그렇죠 데일……. 경?”
어느새 데일이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하켄과 에스델이 급하게 따라붙었다.
“데일 경?”
“잠시 헷갈렸다.”
“아. 예.”
셋은 잠시 말없이 걸었다. 곧 있을 전투에 대비해 최대한 체력을 아껴둬야 했다.
산은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했다.
그 흔한 풀벌레 소리, 올빼미 우는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 근방 전체가 잠들어버린 느낌이었다.
하켄은 횃불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시발. 조용하니까 더 쫄리네.”
에스델도 동의했다.
“이렇게 기분 나쁜 곳은 처음입니다.”
데일은 묵묵히 걸었다.
그 덤덤한 모습에 하켄과 에스델의 마음도 진정되었다.
그렇게 이동하다 보니 일행은 우뚝 솟은 봉우리의 하단부에 도착했다.
데일은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다.”
“어디……. 아.”
큰 바위 두 개가 짓눌려 있었는데, 그사이에 틈이 있었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자그마한 틈.
셋은 그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그러니까.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들어갔다가는 딱 좆될 것 같이 생겼는데.”
“내가 먼저 가겠다.”
“예?”
데일은 흙을 파 틈을 좀 더 넓힌 뒤, 그 안에 몸을 밀어 넣었다.
멀뚱히 쳐다보던 에스델과 하켄도 서로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이내 데일의 뒤를 따라 토굴에 몸을 밀어 넣었다.
토굴에서는 끔찍한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이 냄새야말로 이들이 맞게 찾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셋은 좁고 구불구불한 토굴을 기어서 이동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토굴이 뚝 끊겼다. 흙에 가로막힌 게 아니라, 뻥 뚫린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데일은 하켄에게서 횃불을 건네받아 아래를 향해 던졌다.
툭.
횃불은 머지않아 바닥과 부딪혔다. 다행히 바닥은 깊지 않았다.
데일은 토굴을 벗어나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주위를 살폈다.
‘토굴……. 은 아니군.’
잘 짜 맞춘 돌이 바닥과 벽, 천장을 덮고 있었다.
가로세로 길이가 같은 정사각형 복도가 끝없이 이어졌다.
하켄이 감탄했다.
“우와. 이런 시설은 언제 또 만들었데. 확실히 악마들이 능력이 좋긴 해.”
“하켄. 불순한 발언입니다.”
“아니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입을 삐죽이는 하켄에게 데일이 말했다.
“악마가 지은 게 아니다.”
“예?”
“지어진 지 꽤 오래됐어.”
끔찍한 냄새 사이사이로 아주 오래된 지하 특유의 쿰쿰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악마의 하수인이 이런 정교한 지하 시설을 단기간에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악마라면 몰라도, 그 하수인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데일은 게임을 할 적의 지식을 더듬어 이 장소의 정체를 도출해냈다.
“유적이군. 건축 양식이나 분위기를 보면 드워프들이 만든 것 같고.”
“어어. 드워프들 유적이라면…….”
하켄의 눈이 놀라움으로 부릅떠졌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함정이 아주아주 많을 거다.”
“아니. 저는 보물이 많을 거라고 얘기하려 했는데요.”
머리를 긁적인 하켄이 복도 저편으로 시선을 주었다.
“뭐, 함정이 있더라도 악마 하수인 놈이 다 해체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럼 어서 가보죠. 왠지 이 여정이 끝나면, 부자가 되어 있을 것 같아요.”
갑자기 의욕이 난 하켄이 방패를 쥐고 성큼성큼 앞서나갔다.
일행은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걸었다.
하켄의 예상은 맞았다.
함정은 악마의 하수인이 이미 다 해제해놓았다.
그것도 아주 무식한 방법으로.
“……그냥 자기 쫄따구들을 밀어 넣으셨구만.”
복도의 곳곳에는 함정에 당한 괴물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계속해서 풍기던 끔찍한 냄새의 원인은 바로 이런 시체들이었다.
셋은 혹여나 함정이 다시 작동할라. 시체들을 피해 조심스레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데일은 걸음을 우뚝 멈췄다.
“왜 그러세요.”
“온다.”
하켄은 재빨리 방패를 들어 올렸다. 어둠 건너편에서 무언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켄의 방패 뒤에 숨어 메이스를 들고 있던 에스델은 다가온 적을 보며 경악했다.
“저건……!”
두 다리로 걷는 그건 분명 인간이었다.
관절들이 다소 기이한 방향으로 비틀렸고, 피부가 돌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그래도 괴물보다는 인간에 가까웠다.
데일은 그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아는 얼굴들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앞서서 왔던 조사대 용병들이군.’
그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다가왔다.
군인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중년이었다.
그 입에서 쇠를 긁는듯한 기분 나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 돌아가라. 목숨을 부, 부, 부지하고 싶다면.”
“뭐? 그냥 가라고?”
“가! 가라! 써, 썩 꺼져! 산채로 씹어먹기 전에!”
“꺼져!”
조사대 용병들이 일제히 외쳐댔다. 당황한 에스델이 물었다.
“용병들 맞죠? 대체 저 꼴은 뭐죠?”
“악마의 하수인 놈에게 사로잡힌 뒤, 회유당한 거다. 저놈들은 이제 인간이 아니야.”
붙잡혀서 고문당하는 와중에 힘을 주겠다고 유혹하면, 그 누가 거절할까.
에스델이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치유할 수는 없나요?”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용병들의 눈이 마치 딱딱한 돌덩이처럼 경화되어 있었다.
이미 너무 늦었다는 뜻이다.
하켄이 앞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악마 하수인 놈한테 붙어먹은 그렇다 치고. 왜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보고 꺼지라는 겁니까.”
“왜겠나.”
데일은 등에 멘 워해머를 꼬나쥐며 말했다.
“무서우니까지.”
“예?”
데일이 순간적으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설마 이렇게 갑작스럽게 덤벼들 거라 예상 못 했는지, 가장 앞에 있던 용병이 급하게 방패를 휘둘렀다.
데일은 워해머를 수직으로 내리쳤다.
우득!
나무로 만들어진 방패가 부러지며, 용병의 손까지 부러트렸다.
“그어어억!”
데일은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의 입에 건틀릿을 먹여주었다.
악마의 힘을 받아들인 것치고는 턱뼈가 쉽게도 부러졌다.
그럴 수밖에.
저들은 이제 갓 악마의 힘을 받아들인 참이다.
자기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르는 풋내기.
어눌한 말투만 봐도 쉬이 알 수 있다.
게다가 악마에게 직접 힘을 하사받은 것도 아니다. 이들은 하수인의 권속 혹은 노예.
악마의 하수인이 노예들에게 힘을 줘봤자 얼마나 주었겠나.
데일은 계속해서 워해머를 휘둘렀다. 괴물이 된 용병들은 저항다운 저항조차 제대로 못 하고 얻어맞기만 했다.
그쯤 되니 하켄도 상대가 호구임을 알아보았다.
방패를 힘껏 내질러 용병의 머리를 찍어눌렀다.
“그아악!”
속절없이 얻어맞은 용병들은 바닥에 웅크려 비명을 질러댔다.
이럴 때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살려달라고 빌거나, 아니면 협박하거나.
이들은 후자였다.
“그, 그만! 그만해라! 우리를 죽이면, 주인님께서 가, 가만 두지 않을 거다!”
하켄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이 새끼 이거, 그 짧은 사이에 악마 편 다 됐네.”
“그분은 강하다. 그분은 무려 19위의 악마, 절멸의 아르구르!”
“악마가 왔다고? 이곳에?”
“……아르구르님께 직접 힘을 받은 강력한 마법사이시다.”
아르구르.
데일은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그 악마를 섬기는 하수인의 능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데일이 물었다.
“그래서. 그 잘난 마법사는 지금 뭘 하고 있는데.”
“그, 건…….”
“됐어. 직접 찾아가면 되니.”
데일은 워해머를 그대로 내리치려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멈췄다.
눈앞에 멈춰선 워해머를 보며 부들대는 용병을 보며 물었다.
“한 명은 어디 갔지? 원래 다섯 명이었던 거로 알고 있는데.”
정신이 나간 건지 용병은 히죽대면서 답했다.
“아, 크큭. 그, 그놈. 그 멍청한 놈은 아직, 별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온갖 고문과 회유에도 아직 악마에게 넘어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무슨 성직자라도 되는 건가?’
철퍽!
원하는 답을 들은 데일은 그대로 용병의 머리를 후려쳤다.
악마의 힘을 받아 몸이 단단해졌으나, 그게 부서지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데일은 한 놈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숨통을 끊어놓았다.
이들에게 동정의 여지가 없지는 않았다. 그저 불우하게 악마의 하수인을 맞닥뜨려, 회유되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한번 악마의 힘을 맛보면 다시는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는 없다.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해 온갖 끔찍한 짓을 벌이다, 종국에는 모든 인간성을 상실한 악귀가 되어버리는 것.
이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미래다.
지금 필요한 건 어쭙잖은 동정심이 아닌, 확실한 사살이었다.
에스델은 용병들의 시체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일이 끝나고, 제대로 장례를 치러드리겠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어서 가자.”
데일은 걸음을 서둘렀다.
아직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이 머리에 맴돌았다.
‘지금까지 고문을 당했으면, 사실상 죽어있겠군.’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해봐야 한다.
빠르게 걷다 보니 복도 양옆으로 크고 작은 방 여러 개가 나타났다.
하나 같이 피 냄새가 자욱했다.
데일은 가장 피 냄새가 짙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온 에스델이 입을 막았다.
“읍! 끄, 끔찍해요.”
끔찍하다.
이보다 더 정확할 수 없는 표현이었다.
방에는 온갖 고문 기구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피와 살점이 사방에 튀어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웬 드워프가 꽁꽁 묶여 있었다.
아니, 드워프가 맞긴 한 건가?
상처가 너무 많은 데다 얼굴이 심하게 훼손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저 체구가 작고 다부지니 드워프려니 하는 것뿐.
그 몸 위에 손을 갖다 댄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멈췄군. 죽었다.”
“아아.”
하켄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근데, 악마가 그냥 내버려 둔 게 수상하지 않나요? 혹시 모르니 태우죠.”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에스델이 수긍하고, 하켄이 주저 없이 횃불을 가져다 대려던 그때.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시, 부레. 나 안 죽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