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0)
용병과 흑기사
* * *
데일은 우선 습격자들의 시체에서 생기를 모두 흡수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입고 있던 장비를 챙겼다.
‘장비만 팔아도 짭짤하게 벌 수 있지.’
용병 중에 강도로 돌변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였다.
구태여 위험하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사람 죽여서 장비를 뺏는 게 더 돈이 되고, 안전하니까.
짐마차에 장비를 모두 실은 레온이 물었다.
“그. 다른 용병분들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
데일은 고민했다.
문득, 용병패를 회수해달라는 가란드의 부탁이 기억났다.
그때는 그저 지난 의뢰에서 죽은 용병들의 용병패를 회수해달라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어쩌면 마일즈의 용병패를 가져오라는 말이었을 수도 있겠군.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나?’
용병패를 회수하라는 건, 해석하기에 따라 죽이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가란드는 데일을 이용해 불순한 용병들을 제거하고 싶었던 걸까?
지금은 알 수 없다.
“아무래도 전부 싣지는 못하겠지. 용병 패와 장비를 챙기고, 시체는 화장해야겠다.”
“아, 예.”
이 세계에서는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면 화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무 땅에다 묻었다가는 언데드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일은 아군 용병의 용병 패뿐만 아니라, 마일즈와 그 동료들의 것까지 모두 챙겼다.
어느새 짐 마차가 가득 찼다.
데일은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주검을 얹고, 그 위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마차에 실어야 할 걸 다 싣자, 둘은 바닥에 장작과 시체들을 모아 불을 붙였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자 레온은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분들에게도 소중한 사람들은 있겠죠? 마리아 사제님처럼 시신을 도시로 옮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데일은 담담하게 말했다.
“죄책감 느끼지 마라. 이 정도만 해도 우리는 도리를 다한 거다. 사제는 약속한 게 있으니까 시신을 옮겨주는 거고.”
데일은 손바닥을 펴 은은한 빛을 내는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는 몰라도 절대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다.
이런 걸 받았으니 데일에게는 마리아의 시신을 옮겨줄 의무가 있다.
밤의 여신을 따르는 이들은 주고받는 것에 철저해야 하는 법이니.
한참을 타오르던 불길이 어느새 잦아들었다.
“가자.”
“예.”
레온은 마부석에 앉아 고삐를 쥐었다. 데일도 그 옆에 앉았다.
데일이 뿜어내는 기운에 말들이 불안해했지만, 레온이 엉덩이를 힘껏 때리자 앞을 향해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레온은 아직도 얼떨떨한지 자기 볼을 꼬집었다.
“살아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나네요.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
“이러면 일단 의뢰는 완수한 거로 쳐주려나요?”
“아마도.”
레온은 연신 재잘거렸다. 몇 시간이고 말을 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노움 종족은 호기심이 많고 수다스럽던가?’
짐꾼으로 올 때는 대체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였다.
얘기를 듣다 보니 장물의 처분에 대한 주제도 나왔다.
장물을 어떻게 할 거냐는 레온의 질문에 데일이 답했다.
“용병들 장비는 길드에 넘길 거다. 그러면 길드에서 유족을 찾아 전달하겠지. 우리한테도 일부 보상금이 나오고. 마일즈 쪽 장물은…….”
장물. 돈은 되지만 확실히 처분하기가 까다로웠다.
만약 흑기사인 데일이 장물을 팔려고 하면, 불길한 장비라 하여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헐값에 넘기는 수밖에 없는데…….
그때. 눈치를 보던 레온이 끼어들었다.
“데일 경. 괜찮으시면 제가 장물을 대신 처분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방법이 있나?”
“예! 제가 장물아비들이랑도 연이 있거든요. 합리적인 가격에 팔 수 있어요. 다만…….”
“공짜는 아니라 이거지?”
“헤헤.”
레온은 판매되는 장물 가격에서 수수료를 일부 달라고 요구했다.
납득이 되는 수준의 요구였기에 데일은 승낙했다.
데일에게도 나쁠 게 없는 거래였다.
거래가 성사되자 레온은 싱글벙글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매우 기쁜 모양이다.
데일이 물었다.
“그렇게 좋나?”
“네? 아, 하하. 그렇죠. 사실. 제가 꿈이 있거든요.”
“꿈?”
“예. 그거 아세요? 옛 제국에서는 평민 노예 할 거 없이 누구나 학문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있었대요. 놀랍죠?”
“학교라.”
데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전생에서 살았던 곳과 달리, 확실히 이 세계에서 학교는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어는 아니었다.
레온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돈을 모은다면 저도 그런 학교를 한번 세워보고 싶어요. 제가 교사가 되고, 빈민가 애들을 모아서 글이랑 이것저것 가르치는 거예요.”
“그거 멋지군.”
데일의 거짓 없이 순수한 의견에 레온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이런 꿈을 말해도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는데, 데일만은 인정해주었다.
레온은 더는 이 반 언데드가 두렵지 않다. 오히려 좋아지려 했다.
그런 레온에게 데일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글자를 배우려 했는데, 누구한테 부탁해야 할지 곤란하던 참이다. 레온 네가 가르쳐줄 수 있겠나?”
“어엇? 저로도 괜찮을까요?”
“당연히 돈은 지불할거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레온은 척! 경례하는 시늉을 했다. 데일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이런 세계에 떨어져, 이런 몸이 되었지만 가끔은 즐거운 순간도 있는 법이다.
* * *
데일과 레온은 최소한의 휴식만 취한 채 이레네로 향했다.
마리아의 시신이 비교적 온전할 때 서둘러야 했다.
빠르게 이동한 덕분에 시간이 크게 단축되었다.
출발한 지 이틀째의 아침, 둘은 평원에 우뚝 솟은 이레네를 볼 수 있었다.
허름한 빈민가가 길을 따라 펼쳐졌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같이 구걸하러 나서려다, 데일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는 주춤했다.
하지만 개중에는 데일을 알아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저번에 데일이 동전을 적선해준 걸 기억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레온은 당황한 얼굴로 데일의 눈치를 살폈다. 얼른 아이들을 물러나게 하려 했다.
“요, 욘석들! 어서 물러서.”
“괜찮다.”
“예?”
데일은 배낭에서 육포나 치즈 따위의 식량을 꺼냈다.
이번 일이 끝나고 도시를 떠나려던 마일즈는 식량을 과할 정도로 넉넉히 준비했다.
그 식량들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식량으로 주면 빼앗기지도 않겠지.’
하켄이 지난번에 해준 조언을 참고했다.
돈이 아닌 식량이라면 적어도 아이들은 굶지 않아도 되리라.
데일이 식량을 나눠주자 주춤하던 다른 아이들도 몰려들었다.
데일은 혹여나 못 받는 아이가 없게, 아이들의 숫자를 꼼꼼히 센 뒤 식량을 적절히 분배해 나눠주었다.
레온이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 데일 경. 되게 잘하시네요.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동생이 아주 많았거든.”
“예?”
어리둥절해 하는 레온을 무시하며, 데일은 배낭을 살폈다.
배낭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이들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 몇몇 아이들은 이쪽을 보며 쭈뼛거리다,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후다닥 사라졌다.
레온은 미간을 좁혔다.
“저 녀석들이. 받았으면 직접 와서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지…….”
“부끄러움이 많은 나이지.”
“아, 예. 그렇죠.”
마차는 성문을 통과했다.
경비병들이 막아섰지만, 마차에 무얼 싣고 있는지 확인하고는 얼른 들여보내 주었다.
둘은 도시 외곽지역에서 남쪽에 있는 6구역으로 향했다.
6구역에는 빛의 여신을 숭배하는 교단이 있었다.
교단은 밤의 신전과는 딴판이었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 수십 개가 하늘 높이 뻗어 있었고, 뾰족한 삼각형 지붕이 그 위를 덮었다.
볕이 잘 드는 곳이다.
건물이 오후의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웅장함과 따스한 느낌을 동시에 주는 광경이었다.
‘성당이랑 비슷한 느낌이네. 밤의 신전도 좀 이렇게 지을 것이지.’
신전을 올려다보던 데일이 레온에게 말했다.
“갔다 오겠다.”
“아, 예! 다녀오세요!”
데일은 마리아의 몸을 부드럽게 안았다.
남은 성수를 모두 뿌린 덕분일까? 마리아의 모습은 여전히 죽기 전 그대로였다.
누가 보면 곤히 잠이라도 자고 있나 착각할 정도였다.
데일은 신전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교단의 병사들도 그런 데일을 발견했다.
“어어. 뭐야. 저 자식 왜 여기로 오는 거야.”
“감히 그 더러운 발로 성스러운 장소를 밟으려 하다니!”
반응은 격렬했다.
데일이 이곳에 찾아왔다는 것 자체로도 그들은 모욕감을 느꼈다.
창을 꼬나쥔 병사들은 데일에게 모여들었다.
“당장 멈춰! 이 이상 다가가는 건 허락하지 않겠다!”
데일은 어느덧 자기를 둘러싼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짜르르한 적의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하지만 데일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허락이라니? 빛의 신전은 황제부터 노예까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건 오직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언데드인 너랑은 상관없어!”
“빛과 어둠은 협약을 맺었다. 더는 적이 아니지. 너희들은 나를 막아설 명분이 없다. 그리고…….”
데일의 투구 속에서 흉흉한 안광이 피어올랐다.
“나는 언데드가 아니다. 한 번 더 그렇게 부르면 죽여버리겠다.”
“뭣…….”
잠시 찔끔한 병사가 더더욱 분노하며 외쳤다.
“들었소 형제들! 여기 이 언데……. 여기 이 자식이 나를 죽이겠다고 했소!”
차마 언데드라고 다시 부르지는 못했다. 그랬다가는 분명 데일이 자기가 뱉은 말을 지키려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데일이 강하게 나오자 병사들의 적의도 더욱 커졌다.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소란을 듣고 교단 내부에서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
그중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아니! 이, 이 봐요! 사고 치지 말라고 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고 있습니까!”
백금발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견습 사제. 에스델이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그 옆에 있던 나이 지긋한 사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에스델! 네가 보증했다는 이교도가 저 자인가!”
“예, 예. 그렇습니다.”
“……적당한 변명을 준비해야 할 거다.”
에스델의 얼굴이 거멓게 죽었다.
흑기사를 보증한 것도 눈치를 살 일인데, 그 흑기사가 사고까지 쳐버렸으니 에스델도 책임을 져야 한다.
데일은 주위를 둘러보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툭 내뱉었다.
“전부 나에게 시선이 팔려 내가 누구를 안고 있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군.”
흑기사가 교단에 찾아왔다는 충격에 사람들의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데일이 그 점을 지적하자, 그제야 사람들은 품에 안긴 마리아를 발견했다.
“마리아 자매님?”
“어, 어디 다치신 건가?”
“어서 치료를……. 아.”
사람들은 모두 깨달았다. 마리아가 죽었다는 것을.
사위가 삽시간에 침묵에 잠겼다.
침묵을 깬 건 데일이었다.
“여기서 마리아의 마지막 말을 전하겠다.”
데일은 한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모두 데일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데일이 말했다.
“모두 고맙다. 마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
“그게 전부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몇몇은 교단의 상징인 은빛 고리를 들고 기도를 올렸다. 몇몇은 하늘을 향해 탄식을 내뱉었으며, 또 몇몇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던 중, 에스델의 옆에 있던 나이 지긋한 사제가 말했다.
“교단의 가족을 데리고 와준 은인이시다. 길을 내어드려라. 그리고 에스델. 네가 안내를 해드려라.”
이견은 없었다.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우르르 물러나 길을 터주었다.
데일은 신전을 향해 당당히 걸었다.
에스델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중에 설명하겠다.”
“……일단 본당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페일 이란 사내를 불러라.”
“페일 사제님, 말입니까?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전할 말이 있다.”
“으음. 알겠습니다.”
본당은 교단의 모든 종교적 의식이 진행되는 장소였다.
기도, 치유 의식, 세례, 그리고 장례까지.
중요한 장소인 만큼 내부도 매우 넓었다.
둥그런 천장에는 스테인드글라스 차창이 있었고, 형형색색의 유리를 투과한 빛이 공간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신앙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누구나 감동을 할 장소였다.
에스델은 괜스레 뿌듯한 얼굴을 하며 데일의 반응을 기다렸다.
표정은 ‘어때? 굉장하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데일은 한 번 실내를 둘러보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하고 있나. 어서 가서 페일을 데려오지 않고.”
“……알겠습니다. 가면 되잖습니까.”
이런 거로 감동을 받기에 데일의 심성은 너무 뒤틀렸다. 애초에 그는 빛의 신자가 아니기도 했고.
에스델이 씩씩거리며 사라졌다.
데일은 품에 안은 마리아를 조심스럽게 본당이 정중앙에 내려놓았다.
바로 앞에는 교단의 상징물인 커다란 은빛 고리가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어떻게 한 건지. 실로 매달아 놓은 건가?’
은빛 고리는 화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데일은 그 빛에서 신성을 느꼈다. 반 언데드인 그에게는 영 껄끄러운 기운이었다.
더 보고 있기 버거웠던 데일은 등을 돌려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무언가 부드럽고 따뜻한 게 데일의 투구를 어루만졌다.
[고맙구나.]오후의 햇살처럼 포근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