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9)
용병과 흑기사
* * *
데일은 롱소드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마일즈도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녀석이 든 워해머는 새빨간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
침묵.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습격자 중 하나가 조용히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 손이 조금 떨린다.
눈앞의 흑기사를 마주하니 공포가 자꾸만 샘솟았다.
“어?”
그때. 궁수와 데일의 시선이 마주쳤다.
설마 두려워하는 감정을 읽어낸 건가? 궁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집중력이 조금 흐트러졌다.
다음 순간. 데일의 왼팔이 흐릿해졌다.
우적!
어느새 날아온 손도끼가 궁수의 얼굴 한가운데에 틀어박혔다.
“커, 커억…….”
피가 강처럼 흘러내리더니 이내 그 몸이 허물어졌다.
마일즈가 욕지거리를 뱉으며 외쳤다.
“정신 차리고 공격해!”
마일즈가 앞장섰다. 그는 워해머를 힘껏 들어 올려, 그대로 데일을 향해 내리쳤다.
데일은 롱소드를 수평으로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깡!
쇠와 쇠가 부딪히자 불티가 튀었다. 데일은 손에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을 가늠했다.
‘워해머를 무기로 쓰는 3등급 워리어. 빠르지는 않지만 일격 하나하나가 강력하다.’
사람보다는 튼튼한 몬스터 사냥에 특화된 전투 스타일이다.
데일의 단단한 갑옷에도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맞아줄 필요는 없겠지.’
무기를 맞댄 채 힘겨루기를 하던 데일은 돌연. 손에 힘을 빼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롱소드가 아래로 떨어졌다. 잔뜩 힘을 주던 마일즈의 중심도 앞으로 넘어갔다.
마일즈는 당황했다. 기사가 무기를 버리다니?
하지만 마일즈는 모를 것이다.
데일이 검술보다 오히려 맨몸으로 치고받고 싸우는 데에 익숙하다는 걸.
곧게 뻗은 주먹이 균형을 잃은 마일즈의 얼굴에 쇄도했다.
우득!
건틀릿이 마일즈의 못생긴 매부리코를 완전히 뭉개놓았다.
원래라면 그대로 얼굴 뼈를 뭉개놓았어야 할 일격이다.
하지만 워리어의 신체는 튼튼했다.
불시의 일격을 당했지만 마일즈는 곧장 균형을 잡고 다시 무기를 들었다.
마일즈가 입에서 피를 뱉어내며 중얼거렸다.
“가란드 이 시발 새끼. 우리한테 괴물을 붙여놓았잖아.”
갑자기 가란드 욕이라고?
데일이 말의 의미를 되물으려던 그때, 마일즈가 외쳤다.
“던져!”
그 순간. 뒤에서 기회를 엿보던 마일즈의 동료들이 유리병의 마개를 열어 이쪽에 뿌렸다.
은은한 빛이 서린 투명한 액체. 성수였다.
성수가 마일즈의 피부에 닿자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제법 비싼 성수인지, 그 속도가 빠르다.
반대로 성수를 뒤집어쓴 데일의 몸에서는 부글부글 거품이 끓었다.
빛과 어둠의 전쟁은 긴 시간 이어졌고, 자연스레 둘은 서로를 죽이기 위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성수 역시 그렇다.
빛의 신성이 담긴 이 액체는 데일같은 존재에게는 치명적이다.
데일은 오랜만에 통증이라는 감각을 느꼈다. 신체가 아닌 정신에 전해지는 통증이다.
그는 조금 짜증 나는 눈으로 마일즈를 노려보았다.
“과하게 성수를 많이 샀다 했더니, 나 때문이었군.”
“빨리도 알아차리시는구만.”
데일은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성수에 닿은 갑옷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피해가 컸다.
마일즈와 동료들도 데일의 꼴을 보고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
얼마든지 데일을 이길 수 있을 거라 믿는 모양이다.
“귀찮게 구는군.”
데일은 공격 자세를 취했다.
마일즈가 긴장하며 워해머를 쥐었다. 데일은 잠시 마일즈를 노려보다……. 뒤를 돌아 힘껏 뛰었다.
“도, 도망친다고?”
마일즈가 황당하게 중얼거렸다.
어쨌든 쫓아야 한다. 여기서 데일을 놓치면 안 된다. 길드 본부에 오늘 일을 보고라도 했다가는 추격대가 올 것이다.
마일즈는 빠르게 데일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데일은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신속하게 달려나가던 데일은 돌연, 방향을 크게 꺾었다.
그가 향한 곳에 있는 건 앞서 죽은 궁수의 시체였다.
데일이 궁수의 가슴에 건틀릿을 박아넣었다.
생기가 흡수되었다. 데일의 몸도 빠르게 원상태를 되찾아갔다.
그제야 실책을 깨달은 마일즈가 외쳤다.
“성수 더 던져! 놈이 생기를 못 흡수하게 막아야 해!”
“예, 예!”
동료들은 허겁지겁 유리병의 뚜껑을 따서 던지려 했다.
데일은 궁수의 안면에 박혀 있던 손도끼를 쥐고는 주저 없이 던졌다.
휘익!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간 도끼가 습격자의 손에 들린 유리병에 정확히 명중했다.
카창!
“아악! 내 손!”
유리병을 깨부순 손도끼가 그대로 습격자의 손에 틀어박혔다.
옆에 있던 다른 동료는 그 모습에 움츠러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어느새 코앞에 데일이 다가와 있었다.
데일은 양팔을 힘껏 벌렸고, 그대로 박수를 치듯. 습격자의 양쪽 귀를 동시에 후려갈겼다.
짝!
습격자의 눈이 흰자위를 드러냈다.
코에서는 피인지 뇌수인지 모를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더 볼 것도 없다. 죽었다.
데일은 마지막으로 주먹을 한 번 더 휘둘러 손을 부여잡고 끅끅거리던 습격자의 명치를 후려쳤다.
녀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제 남은 적은 마일즈 단 하나.
마일즈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곧바로 동료들을 도우려 했는데, 그 전에 데일이 모두 끝장을 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마일즈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군. 4년을 함께 호흡을 맞췄는데. 이렇게 쉽게 죽어버리다니.”
데일은 대답 없이 바닥에 떨어트린 롱소드를 다시 주워들었다.
그런 데일을 보며 마일즈가 말했다.
“괴물 새끼. 타고 났군.”
데일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뭐가.”
“사람 죽이는 걸 타고 났다고. 움직임을 보면 딱히 전문적인 기술이 엿보이지는 않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어떻게 하면 사람을 잘 죽일 수 있을지 다 알고 있는 느낌이야. 타고난 살인마라고 할까.”
당최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데일이 짜증을 담아 말했다.
“뭐 어쩌라고.”
마일즈는 피식 웃었다.
“아니 그냥. 부러워서. 천직을 찾은 거잖아. 누구는 좆 빠지게 살아도 밑바닥에서 버르적거리는 인생인데.”
마일즈는 주위에 널브러진 시체를 둘러보았다.
동료와 용병들의 시체.
마일즈는 자조 어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래. 약하면 죽는 거지.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고.”
마일즈는 남은 성수를 자기 몸에 들이부었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살 확률을 올라갈 것 같았다.
데일은 걸음을 내디뎠다. 롱소드를 들고 마일즈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다 속도를 높여 도움닫기를 하더니, 힘껏 뛰어올랐다.
거대한 덩치가 하늘을 날았다.
데일의 몸과 태양이 일치돼 빛이 산란했다.
마일즈는 눈이 부셔 눈을 깜박이고 말았다.
“이런 시발…….”
데일은 롱소드를 앞으로 뻗었다. 어떤 기술이나 기교도 없이, 그저 떨어지는 힘과 무게를 이용한 공격이다.
하지만 막을 수 없다.
카작!
롱소드가 마일즈가 입은 사슬 갑옷을 깨트렸다.
검 끝이 마일즈의 가슴에 틀어박히려 했다.
마일즈가 양손으로 롱소드의 날을 붙잡았다. 롱소드가 더 파고들지 못하게 온 힘을 다했다.
“끄으으윽!”
롱소드를 잡은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매우 고통스럽겠지만, 마일즈는 힘을 빼지 않았다.
삶에 대한 대단한 집념이었다.
데일은 롱소드에 계속 힘을 실었다.
가슴에 검이 점점 파고들수록, 주위에 피가 튀었다. 더운 피였다.
이렇게 인간 같지 않은 개자식의 피도 이리 따뜻하다니.
자신의 피는 차가운데.
데일은 질투심이 들었다. 언데드 특유의 산자에 대한 질투심이었다.
푹!
마침내 검 끝이 마일즈의 심장을 건드렸다.
마일즈의 눈이 크게 뜨였다. 검날을 붙잡은 양손에도 급격히 힘이 빠졌다.
롱소드가 마일즈의 몸에 완전히 파고들었다.
마일즈의 눈에서 초점이 흐려졌다.
‘끝났군.’
사람을 죽였지만, 아무런 감정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데일의 본능은 기꺼워하고 있었다.
이 속도도 영혼을 모은다면 3등급도 금방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데일은 생기를 흡수하기에 앞서, 우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시체가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고, 바닥에는 피 웅덩이가 고여 있다.
‘살아있는 사람은 없나?’
마비초가 들어간 수프를 먹었던 게 치명적이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몇 명은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때. 어딘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시체 사이에서 자그마한 체구의 사내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레온?”
“끄, 끝났나요?”
레온이 겁먹은 얼굴로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데일은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마라. 다 죽였다.”
“아, 그, 그렇군요.”
“용케 살아남았군.”
“운이 좋았어요. 체구가 작아서 시체 사이에서 죽은 척하기 좋았거든요.”
싸움이 벌어지자마자 재빨리 죽은 척 한 모양이다.
‘제법 눈치가 빠른데.’
레온은 주위에 펼쳐진 참상을 질린 얼굴로 바라보더니, 이내 한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데일에게 외쳤다.
“데일 경! 사제님이 아직 살아있어요!”
“뭐?”
데일은 서둘러 레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가슴에 화살을 맞은 여사제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숨소리가 너무 미약해 데일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레온이 어쩔 줄 모르며 말했다.
“사, 살려야 해요. 남은 성수가…….”
데일은 레온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늦었다.”
“예?”
데일은 사제의 가슴을 꿰뚫은 화살촉을 살폈다. 거무스름한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화살에 독이 발라져 있다.”
“네에?”
몸이 마비된 상태에서 가슴에 화살이 꽂히고 독에까지 중독되었다.
성수나 치유 기적을 사용하려면 그 전에 화살을 뽑고, 해독도 해야 한다.
하지만 약해진 체력으로는 그때까지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애초에 해독할 방법도 없었고.
사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인간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질겼다.
말소리가 들리자 사제는 힘겹게 눈을 떴다. 이마에는 땀이 가득 맺혀 있었다. 자꾸만 땀방울이 눈으로 흘러 들어갔다.
데일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사제의 얼굴을 닦았다. 세심한 손길로.
레온이 놀란 얼굴로 데일을 쳐다보았다. 여사제도 자기 이마를 닦아주는 게 누구인지 깨닫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사제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억지로 거부를 표하려 했다.
“그만…….”
데일은 덤덤하게 말했다.
“너는 곧 죽는다.”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말.
지금껏 여사제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현실이기도 했다.
여사제의 눈에 체념이 어리다가, 갑자기 공포가 차올랐다.
그녀는 데일의 팔을 붙잡았다.
곧 죽을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억센 힘이었다.
여사제가 간절하게 말했다.
“부탁……합니다. 제, 혼을 흡수하지, 말아주세요. 그런 불경은…….”
강력한 흑기사는 시체에 남은 잔혼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이의 영혼까지 거둘 수 있다.
아직 데일이 그 정도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신앙심 깊은 여사제는 죽음보다 흑기사에게 영혼을 빼앗기는 게 더 두려울 것이다.
데일은 여사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안심해라.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원한다면 네 주검은 교단에 데려가 주겠다. 약속하마.”
그제야 여사제는 안도하며 표정을 풀었다. 흑기사는 신뢰할 수 없는 불경스러운 존재였지만, 눈앞의 사내는 왜인지 믿음이 갔다.
데일이 물었다.
“이름이 뭐지?”
“마, 리아. 에요.”
“마리아. 유언을 말해라.”
잠시 고민한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하, 늘에 계신 여신이시여, 저에게 삶을 내려주소서 깊은 감사를 표하나이…….”
“그만.”
데일이 마리아의 말을 끊었다.
“네가 믿는 신과의 대화는 죽은 이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마지막 남은 시간은 지상에서 연을 맺었던 이들을 위해 사용해라.”
마리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조금 부끄러워졌다. 이 흑기사의 말이 맞았다.
마리아는 차분히 말을 골랐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생명을 쥐어짜 말했다.
“모두에게, 고맙다고. 특히. 페일 형제님에게. 하지만. 마, 마지막, 말은.”
“알았다. 마지막 말은 페일에게만 전해주면 된다 이거지? 다른 사람들이 서운해할 테니.”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그녀는 한쪽 손을 데일에게 내밀었다. 손을 펴자 안에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반지가 있었다.
“나한테 준다는 건가?”
“대……가.”
마리아가 힘겹게 말했다.
보답이 아니라 대가라는 말하는 부분에서 이 여사제의 고집이 엿보였다.
데일은 담담하게 말했다.
“잘 쓰겠다.”
마리아가 눈을 감았다.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반 언데드인 데일은 영혼을 볼 수 있었다.
“갔군.”
레온은 옆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차마 입을 열수가 없었다. 이 자리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사제와 흑기사. 이런 광경을 다시는 보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일이 눈을 돌렸다.
“슬슬 준비하지.”
“예?”
레온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데일은 주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워야 할 게 많다.”
사방에 널브러진 습격자가 입고 있는 장비들.
전부 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