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8)
용병과 흑기사
* * *
일행은 저녁을 먹은 뒤, 불침번 순서를 정하고는 잠에 들었다.
데일도 적당한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사실 데일은 먹을 필요도, 잠을 잘 필요도 없다. 반 언데드의 몸은 그런 활동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데일은 억지로 음식을 먹고, 잠을 잤다.
자기가 인간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
데일은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리 원해도 잠은 오지 않았다. 데일은 그저 눈을 감은 채, 과거의 추억들을 반복해서 떠올렸다.
그러다 보면 추억이 갑자기 놀라울 정도로 선명해질 때가 있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생생하고 현실감 넘치는 기억들.
데일은 이걸 꿈이라고 불렀다.
꿈에 자주 나오는 단골손님은 그를 키워준 조부다.
오늘도 그랬다.
조부가 인간이었을 적의 데일을 보며 말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두 늑대가 있단다. 선한 늑대와 악한 늑대. 이 두 늑대는 언제나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지. 두 늑대 중 누가 이길 것 같으냐?”
“먹이를 주는…….”
“네가 모르는 것 같으니 정답을 알려주마. 그건 바로 먹이를 주는 쪽이란다. 알겠니?”
조부는 데일의 말을 끊고 얼른 설명해버렸다.
꿈속의 데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또 어디 신문 같은 데서 좋은 글귀를 보고 데일에게 알려주려고 한 모양이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데일은 조부의 말을 경청했다.
흔한 이야기라도 그의 입을 거치면 특별해지므로.
“늘 착한 선한 늑대에게 먹이를 주도록 노력해야 한단다. 알겠지?”
조부는 어린 데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여기서 뭐라고 더 하셨던 것 같은데…….’
그 타이밍에 데일은 꿈에서 깼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념이 끊겼다.
예민한 청각이 낯선 소리를 포착한 것이다.
‘종이 넘기는 소리.’
이런 데에서 들릴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데일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사내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본 데일은 조금 놀랐다.
‘노움?’
노움. 사람과 외모가 비슷하지만, 키는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종족.
원래 사막에서 살던 이들답게 그 귀가 아래로 처져 있고, 속눈썹이 무성하다.
전체적으로 귀엽고 어려보이는 생김새지만 힘은 인간 못지않다고 들었다.
‘일행 중에 노움이 있었던가? 아. 짐꾼.’
투구를 뒤집어쓰고 다니던 용병이 사실 노움이었다니.
신기한 기분을 느낀 데일이 모닥불로 다가갔다.
책에 잔뜩 집중하고 있던 노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고개를 들고는 화들짝 놀랐다.
“히익.”
노움은 곧장 땅에 머리를 박고 사과를 빌었다.
“제, 제가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나는 잠을 못 자니까.”
“예? 그럼 왜 누워 계셨습니까?”
“그냥 기분만 낸 거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노움은 고개를 갸웃했다.
데일은 노움이 들고 있는 두꺼운 책을 보며 말했다.
“글을 읽을 줄 아나?”
“예? 아, 네. 기회가 닿아 읽고 쓰는 법을 좀 배웠습니다.”
“대단하군.”
데일은 솔직하게 칭찬했다.
이 세계에는 글자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당장 데일도 그랬다.
‘언어 배우는 데만도 개고생이었지.’
처음 이 세계에 떨어지고.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는 참 난감한 일이 많았다.
몬스터로 취급받고 공격받은 적만 몇 번이던가.
그때를 떠올리면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건 대단한거다.”
“어…….”
노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다 갑자기 큼지막한 물방울이 눈가에 맺혔다.
당황한 데일이 물었다.
“……내가 뭔가 실수했나?”
“아, 아뇨. 죄송합니다. 그냥. 살면서 누군가가 이렇게 칭찬해준 게 처음이라서요. 다들 노움이 글 알아봤자 어디다 쓰냐고 구박만 했거든요.”
“글을 알면 일을 구하기 쉽지 않나?”
“아무래도 저희 노움들은 사람들이 잘 고용을 안 해주거든요.”
노움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게임에서도 종족마다 평가가 다 달랐지.’
노움이 썩 인기 있는 종족은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데일이 말했다.
“나는 데일이다.”
“아. 저는 아일라의 아들 레온입니다. 아시다시피 목패 용병이고, 아직 등급과 직업은 없습니다.”
“알겠다. 레온, 불침번은 내가 설 테니 너는 마저 책을 읽어라.”
“엇. 그, 그래도 됩니까? 너무 민폐가 아닌지…….”
“어차피 나는 잠을 안 자니 신경 쓰지 말아라.”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레온은 허겁지겁 책을 탐독했다.
그 모습에서 전생의 어린 동생들이 겹쳐 보였다.
데일은 차가운 심장이 살짝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럴 때마다 데일은 조금. 아주 조금은 인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종이는 넘기는 소리. 그리고 모닥불 타닥이는 소리와 함께 밤이 깊어갔다.
* * *
다음날도 여정은 평화로웠다.
마차는 순조롭게 나아갔고, 별다른 위협도 없었다.
이렇게 순조로워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늦은 오후 무렵.
숲길의 한 가운데에서 마차가 멈췄다.
마일즈가 외쳤다.
“자. 이제 아울베어의 서식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소. 여기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단단히 준비해서 갑시다.”
여사제가 물었다.
“꼭 이런 숲길에서 멈췄어야 하나요? 이러다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요.”
“하하! 사제님이 잘 모르시네. 변종 아울베어의 영역 안에 어슬렁거릴 만한 놈이 어딨소. 그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라면 분명 흔적을 남겼을 것이오.”
“그렇군요.”
여사제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동패 용병인 마일즈가 이런 쪽으로는 가장 해박할 테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마일즈가 솥을 꺼내며 말했다.
“자! 오늘은 특별히 내가 솜씨를 부려보겠소!”
활을 든 용병이 의문을 표했다.
“마일즈씨가 직접 요리를 한다구요?”
“하하. 용병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절로 요리 솜씨도 늘어나는 법이오. 기대해도 좋소. 내 동료들도 내 요리를 아주 좋아한다오.”
마일즈의 동료가 저번 의뢰에서 모두 죽었음을 아는 용병이 말을 정정해주었다.
“……좋아했었다는 말이죠?”
“아, 아. 그렇소. 말을 실수했군. 워낙 친했던 사이인지라, 지금도 놈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군.”
마일즈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용병들은 숙연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마일즈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고자 쾌활하게 외쳤다.
“자! 나는 요리 시작할 테니, 각자들 준비하시오!”
고개를 끄덕인 용병들은 각자 본인의 무기를 점검했다.
그 사이, 마일즈는 수프를 끓였다.
육포와 말린 채소 따위를 넣어 끓인 특별할 것 없는 수프였다.
요리가 완성되자 사람들은 솥 주위에 둘러앉아 잔뜩 기대한 표정을 지었다.
마일즈가 호들갑 잔뜩 떠니 그 맛이 궁금한 것이다.
마일즈는 용병들의 그릇에 수프를 퍼주었다.
“짐꾼. 그리고 데일 경도 좀 먹으시오.”
“가, 감사합니다.”
“고맙다.”
레온은 혹여나 또 발길질이 날아올까, 황급히 수프를 받았다.
데일은 심드렁하게 그릇을 내밀었다.
마일즈는 데일의 그릇 가득히 수프를 따라주었다. 남들보다 배는 많은 양이었다.
“덩치가 크시니 남들보다 많이 먹어야 하지 않겠소?”
“……고맙다.”
용병들이 하나둘 수프를 입에 떠먹기 시작했다.
“응?”
여사제가 머리를 갸웃했다. 분명 나쁜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들갑 떨 정도인가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딱 평범한 정도.
‘살짝 향이 독특한 것 같기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인 모양.
하지만 직접 요리해준 성의가 있다. 투정을 부릴 수는 없다.
사람들은 조용히 수프를 떠먹었다.
데일도 수프를 입에 가져다 대려 했다. 하지만 그때. 뒤통수가 찌르르한 느낌이 들었다.
‘살기.’
수풀 너머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미약한 살기였다. 상대는 어느 정도 살기와 적의를 감출 줄 알았다.
단지, 흑기사의 감각이 너무 예민했을 뿐이다.
‘몬스터인가?’
이변을 알리기 위해 데일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수프를 먹는 척하며 용병들을 힐끗거리는 마일즈를.
데일은 수프로 시선을 내렸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손가락을 찍어 수프를 입에 가져다 댔다.
데일은 고민 없이 솥을 발로 차 버렸다. 뜨거운 수프가 마일즈의 몸에 쏟아졌다.
“끄아악!”
“모두 수프 뱉어라!”
“예?”
갑작스러운 데일의 행동에 다른 용병들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데일은 검을 뽑아 그대로 마일즈를 베려 했다.
하지만 빠르게 뒤로 물러난 마일즈가 검을 피했다. 그리고 분노한 얼굴로 외쳤다.
“이 자식이……. 모두 공격해!!”
숲을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에 용병들은 순간 자기들한테 하는 말인가 싶어 당황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쐐액!
“컥!”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여사제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마일즈가 안타까운 듯이 중얼거렸다.
“시발. 사제는 가격이 더 나가는데.”
그제야 용병들은 무언가 벌어졌음을 알아차리고 무기를 뽑았다.
수풀에서는 습격자 다섯이 튀어나와 달려들었다.
“이 자식들! 죽여버리겠어!”
용병 하나가 검을 뽑아 그대로 습격자에게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몸이 잘 움직여주지 않는다. 마치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는 느낌.
용병이 검을 들어 올리기도 전에, 이미 습격자의 칼날이 목을 훑고 지나갔다.
피 분수가 튀며 용병의 몸이 허물어졌다.
데일은 외쳤다.
“마비다! 수프에 독을 탄 거다! 방어에 집중해라!”
그런 데일에게 습격자 하나가 쇄도했다.
녀석은 워해머를 들어 그대로 데일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데일도 마비 상태라고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데일은 기민하게 스텝을 밟은 뒤, 그대로 손도끼를 뽑아 녀석의 목을 내리찍었다.
우적!
잘 벼려진 도끼날이 살을 가르고 뼈를 끊었다. 뜨거운 피가 얼굴에 튀었다.
데일은 그 상태로 다른 습격자를 노려보았다.
“어엇.”
피를 뒤집어쓴 흑기사가 뿜어내는 위압감이 심상치 않다.
전장에서 활개 친다는 악마들이 이러할까?
습격자들이 주춤거렸다.
하지만 데일은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땅을 박차 습격자들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한 습격자들은 무기를 휘둘렀다. 검이 꽤 날카로운 궤적으로 파고들어 왔다.
데일은 그 궤적을 눈으로 읽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그냥 맞아주기로.
캉!
검날이 갑옷을 때렸다. 제법 강한 일격이다. 하지만 갑옷을 꿰뚫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
멍청한 얼굴을 하는 습격자에게 데일이 주먹을 날렸다.
콰득!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아래턱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데일은 주먹을 한 번 더 내리쳐 녀석의 골통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다시 한번 피가 튀며 데일의 갑옷을 적셨다.
원래 같으면 불쾌했어야 하나, 흑기사의 몸은 지금의 살육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데일은 팔을 뻗어 건틀릿을 습격자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데일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기를 흡수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달리 말하면, 무고하지 않은 이들의 생기는 얼마든지 빼앗아도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습격자의 몸에서 생기와 잔혼이 빠져나와 데일의 몸에 흡수되었다.
데일은 싸늘한 심장을 채우는 충만감을 느꼈다.
사람의 생기를 흡수하는 건 몬스터의 것을 빼앗는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흑기사의 몸은 사람의 생기에 더 기뻐했으며, 들어 있는 잔혼 역시 그 농도가 훨씬 짙었다.
영혼이 짙다 보니 가끔 재밌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령, 그 사람의 기억을 보여주거나.
죽은 습격자의 기억이 데일의 눈 앞에 스쳐 지나갔다.
‘예상대로 마일즈의 동료였군.’
단편적인 기억들이 빠르게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성공적이었던 아울베어 토벌.
마을에서 용병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열었던 연회.
시골 처녀라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촌장의 딸.
눈이 돌아간 마일즈. 겁간. 발각. 분노한 마을 사람들. 싸움. 학살.
‘마일즈의 실수로 마을 사람들과 싸우다 죽여버렸고, 좆 되게 생겼던 거군.’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다시는 용병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은 여기서 끊겼지만 그 이후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마일즈 팀은 용병 일을 접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탕 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길드에 거짓말을 해 다른 용병과 사제를 모았고, 마비초를 준비했다.
문득, 마일즈이 말이 기억났다.
‘금덩이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이 시대에 노예는 언제나 수요가 넘쳤다.
몸만 성하다면 얼마든지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다.
한데. 그 계획을 어그러트리는 변수가 나타났다.
그게 바로 데일이었다.
‘그렇게 된 거였군.’
사건의 전말이 대강 파악되었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마일즈의 자작극이었던 셈이다.
데일은 검을 들고 주위를 살폈다.
어느덧 아군 중에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은 데일밖에 남지 않았다.
용병들은 열심히 저항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칼을 맞고 쓰러졌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제가 당한 점과 마비초를 먹은 게 너무 컸다.
데일은 차분히 상황을 정리했다.
‘상대할 건 넷. 철패 셋에 동패 하나. 동패는 3등급 워리어……. 인가.’
데일은 롱소드를 들고 고개를 마일즈 쪽으로 돌렸다.
뜨거운 수프를 뒤집어 써 피부가 새빨개진 마일즈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데일이 물었다.
“하나만 묻지.”
“뭐?”
“마을 사람들은 왜 전부 죽였나. 분명 다른 해결 방법도 있었을 텐데.”
마일즈는 얼굴을 있는 대로 구겼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아니. 그보다 뭔 개 같은 질문이야.”
“왜 죽였냐고 물었다.”
“사람 죽이는 데 이유가 왜 필요해. 나보다 약하고, 이득이 되니까 죽이는 거지.”
마일즈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조금이 죄책감도 없는 모습이다.
데일은 그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그 속에 어떤 괴물을 키우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 알았다.”
데일은 롱소드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마음속 늑대에게 먹이를 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