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40)
불타는 이레네
* * *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산산이 조각나며 허공에 비산했다.
본당을 가득 채운 빛을 색유리가 반사하며 아름다운 색으로 공간을 수놓았다.
그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온 불청객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데일은 마검을 들고 에스델의 앞에 섰다.
“데일 경!”
“조금 늦었다.”
“아뇨. 딱 맞춰 오셨어요.”
갑작스러운 흑기사의 등장에 사제들은 주춤했다.
오르단도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입꼬리를 누그러트렸다.
“아. 데일 경. 오랜만이군요. 근데 4구역 쪽 성벽이 무너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밤의 신전을 내버려두고, 이곳으로 와도 되는 건가요?”
“…….”
너무나 옳은 지적에 데일은 가슴이 쿡 찔린 기분이었다.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 가장 아픈 법.
“에리얼이…… 알아서 잘할 거다.”
“사제장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시군요. 그럴만해요. 에리얼 사제장은 이쪽에서도 요주의 인물이니.”
사실 딱히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데일은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오르단이 말을 이어갔다.
“저 개인적으로는 경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감사?”
“경이 교단의 시선을 끌어준 덕에 일을 수월히 꾸밀 수 있었고, 경을 이용해서 귀찮은 작자들을 제거할 수도 있었죠.”
데일은 오르단이 무얼 말하는지 곧바로 알아챘다.
“보물고에서 우리를 습격한 성기사. 역시 네 짓이었군.”
“눈치가 빠르시군요. 맞습니다. 제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분명 궁금하시겠죠.”
“아니.”
“궁금하시다면 그 이유를…… 예?”
“전혀 궁금하지 않다.”
데일은 단호히 말했다.
시간도 촉박한데, 늙은 배신자의 설교를 들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안 들어도 알 것 같다.”
“……무슨 의미시죠?”
“남에게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려는 건, 본인 스스로도 자기 행동이 켕긴다는 증거니까. 자기 자신조차 믿지 않는 설교 같은 건 들을 필요가 없다.”
이번엔 오르단이 입을 다물었다.
역시나 진실이 가장 아픈 법. 늘 침착하던 오르단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여신의 종 주제에…….”
“시작하자.”
데일이 마검을 쥐고 앞으로 걸어나가자, 사제들이 황급히 그 앞에 마주 섰다.
오르단도 눈을 형형히 빛내며 양손을 앞으로 향했다.
손이 새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데일이 봐 왔던 어떤 사제의 신성보다 더 짙은 힘이었다.
오르단이 비웃듯이 말했다.
“빛은 어둠의 상극. 수천 년간 교단은 어둠을 사냥하기 위해 발전해왔어요. 당신이 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건. 뭐. 한번 붙어봐야…… 알겠지!”
데일은 말하는 와중에 아주 자연스럽게 도끼를 던졌다.
웬만큼 경험 많은 전사가 아니고서야 알아채기 힘들 정도의 기습.
도끼가 팽그르르 돌아가며 날아오자, 오르단이 급히 기적을 외웠다.
“방벽이여 나와라.”
신에 대한 감사도, 경탄도 없다.
그건 이미 기도문이 아닌 마법사의 주문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기적은 발동되었다.
빛의 방벽이 도끼와 부딪혔다.
꽝!
방벽이 깨지고, 도끼가 힘없이 떨어졌다. 이런 일을 성사해낸 인물답게 오르단의 기량은 대단히 뛰어났다.
오르단이 분노하며 외쳤다.
“명예로운 기사라 들었는데 이런 비겁한 기습을!”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 법이지.”
데일은 짐승처럼 내달렸다.
사제들이 검을 뽑으며 급히 제지하려 했다. 데일은 그 움직임을 보며 비웃었다.
‘형편없군.’
익숙함을 무기로 형제를 찌른 자들이다. 그 실력은 대단할 게 못 되었다.
마검이 한번 번뜩였다.
가장 앞에 있던 사제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이, 이런. 빛이여!”
당황한 다른 사제들이 곧바로 섬광을 터트렸다.
신벌 기적이 데일을 향해 쇄도했다. 데일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마력을 끌어올리고. 곧장 어둠을 흩뿌렸다.
사아아악!
새벽 안개가 데일을 감쌌다.
여러 방향에서 쏟아져온 섬광이 안개를 두드리고, 금방이라도 어둠을 찢어발길 것 같았지만…….
놀랍게도 새벽 안개가 도리어 빛을 밀어내었다.
빛을 먹어치우는 어둠.
경악하는 사제들에게 데일이 달려들었다.
검을 휘두를 필요조차 없었다.
단 일격을 버텨내는 이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데일이 사제들을 전부 뭉개놓을 상황.
오르단이 재빨리 가세했다.
“빛이여 저 자를 녹여라!”
펼쳐진 양 손바닥에서 두 쌍의 섬광이 뿜어졌다.
에스델이 곧바로 방벽을 전개해 섬광을 막아냈다.
“신이시여! 당신의 종을 지킬 벽을!”
“건방지구나! 네가 날 상대할 성싶으냐!”
빛과 빛이 맞섰고, 꺾였고, 산란했다. 무지개색 프리즘이 온 사방을 메웠다.
하지만 아직 에스델은 오르단의 적수가 아니었다.
방벽이 으스러지며, 남은 섬광이 데일을 덮쳤다.
섬광은 그대로 데일의 오른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데일은 고통을 느꼈다. 영혼의 고통을.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팔 아래가 허전했다.
‘그래. 상극이 맞긴 하군.’
오르단도 눈썹을 찌푸렸다.
“평범한 흑기사였다면 방금 그걸로 팔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타들어 갔어야 하는데.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상할 정도로 빛에 내성이 있군. 아주 안 통하는 건 아니지만…….”
오르단이 지껄이든 말든. 데일은 죽은 사제의 몸에 건틀릿을 박아넣어 생기를 흡수했다.
사라진 팔은 금방 재생되었다.
‘그래도 교훈을 하나 얻었군.’
저 섬광에는 절대 닿으면 안 된다.
데일은 마검을 휘둘러 아직 살아있는 사제들도 모조리 베었다. 이제 남은 건 오르단 하나뿐.
그러나 오르단은 여전히 침착하다.
데일을 죽이기 위해 또 다른 기적을 완성한 상태.
‘보고 피하면 늦어. 마법 반사 망토는…… 아직 사용하기 못 하는 데.’
빛보다 빠를 수는 없다. 오르단이 기적을 쏘아 보내기 전. 미리 몸을 던져야 했다.
데일은 오르단의 눈을 읽었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 그리고 그 손끝이 향하는 방향.
데일이 몸을 던졌다. 다음 순간. 그가 서 있던 빈자리에 섬광이 직격했다.
콰과과과!
단단한 판석이 순식간에 소멸할 정도로 강력한 기적.
가까스로 피해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오르단이 손을 움직이자, 계속해 뿜어져 나온 섬광이 데일을 따라왔다.
“이런.”
섬광에 집어삼켜질 판.
데일은 마검을 빠르게 휘둘러 몸 앞에 검으로 된 장벽을 만들어냈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속도로 검이 휘둘러지고. 마검에 잘려나간 빛자락이 화려하게 흩어졌다.
빛을 잘라내는 검사.
“검술이 제법이군요. 하지만!”
콰아아!
빛무리가 더욱 진해졌다.
데일은 여전히 빛을 잘라냈지만, 미처 잘라내지 못한 빛무리가 데일을 덮쳤다.
그 단단하던 갑옷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이대로면 끝장이다 싶은 그때.
에스델이 오르단을 향해 천벌 기적을 날렸다.
아무리 오르단이라도 방어해내야 한다.
데일을 향하던 빛무리가 다시 에스델에게 향했다.
에스델이 벌어준 천금 같은 기회.
데일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생각보다 기량이 더 뛰어나. 일단은 접근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
오르단은 강하다.
마치 신성을 마르지 않는 샘처럼 펑펑 써댄다.
데일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기량이다.
게다가 둘 간의 상성 차이도 문제였다. 데일의 단단한 갑옷도 오르단 앞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대로 피해 다니기만 해서는 승산이 없어.’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잠깐이라도 실수했다가는 그대로 녹아내려 버릴 것이다.
접근해야 한다. 거리를 좁혀 공격해야만 한다.
하지만 저 무한한 신성력을 뚫고 어떻게 접근한다 말인가.
차라리 여기서는 전략적인 후퇴를…….
‘아니. 꼭 접근할 필요는 없지.’
본당을 둘러보던 데일의 눈에 무언가가 띄었다. 어쩌면 승리로 이를 수 있는 열쇠를.
그때.
에스델이 소리쳤다.
“데, 데일 경! 더는 못 버텨요!”
에스델이 완전히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에스델이 먼저 소멸될 판.
고민의 시간은 없다.
데일은 한걸음 크게 내딛고. 허리를 힘껏 돌렸다. 양손에서 뻗어나간 마검이 허공을 날았다.
휘릭!
“하찮은 수작을!”
오르단이 즉각 반응했다.
에스델을 압도하던 빛 무리로 곧바로 장벽을 만들어내려 했다.
하지만 마검이 그리는 궤적이…….
무언가 이상하다!
“뭐?”
빠르게 날아간 마검이 이내 목표물에 적중했다.
본당의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성물.
거대하고 신성하며, 따뜻한 빛을 발산하는 은 고리.
예배일에는 모든 신도들이 와서 저 성물을 향해 기도를 했고, 여신의 따스함을 피부로 느꼈다.
그런 성물에 참으로 불경스럽게도, 마검이 부딪혔다.
신심을 모두 버린. 아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오르단도 잠깐이지만 굳어버렸다.
쿵!
다음 순간.
마검에 적중당한 은 고리가 지상을 향해 낙하했다.
그리고 그 낙하지점에 있는 이는 바로 오르단.
오랜 숙원을 성공한 만족감을 더 키우기 위해, 예배를 주관하는 자리에 서 있던 게 문제였다.
당황한 오르단은 곧장 섬광을 쏟아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성물은 조금 늦춰질지언정, 계속해서 오르단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당연했다.
신성이 가득 깃든 성물을 같은 신성으로 밀어내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르단은 이날을 위해 오래도록 수련해온 사제다.
‘끝까지……!’
오르단은 모든 힘을 끌어내 신성을 끌어냈다. 지나친 혹사로 눈과 입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의미 없는 발버둥은 아니었다.
오르단이 펼쳐낸 기적은 성물이 떨어지는 걸 막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
바로 마검이다.
성물과 부딪혀 추진력을 잃은 마검이 뒤늦게 떨어져내렸다.
그 검날을 아래로 향한 채로.
그리고 검끝과 신성이 부딪힌 순간. 오르단이 펼쳐낸 장벽에 금이 갔다.
오르단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쿠웅!
가로막혀 있던 성물이 아래로 떨어져내려 오르단을 덮쳤다.
자욱한 먼지가 한 차례 피어오르고. 다시 걷혔을 때.
오르단은 은 고리 아래 깔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 가슴에는 마검이 수직으로 박혀 있었다.
“……음.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는데.”
데일은 투구를 긁적였다.
분명 해볼만 한 시도라 생각했고, 견제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성공할 줄이야.
도리어 데일이 당황할 정도였다.
‘운이 좋았나? 아니. 분명 마검이 허공에서 부자연스럽게 움직인 것 같았는데.’
마치 어떤 의지가 개입한 것처럼, 마검이 저 스스로 움직인 듯한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그냥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걸까?
어쨌거나 성물에 깔리고, 마검이 꿰뚫린 오르단은…… 마치 신의 천벌을 받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째서. 왜 이제서. 왜 이제…….”
오르단은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리다, 움직임을 멈췄다.
초점 없는 그 눈동자는 공허하다.
배교자는 마지막에 눈에 담은 풍경은 무엇일까.
데일은 오르단에게 다가가 마검을 뽑았다. 함께 걸어온 에스델은 착잡한 얼굴을 했다.
형제 자매들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처럼 따르던 자의 배신.
한 개인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주저앉고 싶다. 하지만 에스델에게 그런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도시가 무너지려는 지금. 형제자매들의 장례마저 치러줄 수 없었다.
“가자. 도시를 탈출해야 한다.”
“……예.”
데일은 일부러 에스델을 재촉했다. 이런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에 열중하는 게 제일이었다.
본당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데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전의 아름답고 경건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쑥대밭이 된 폐허만이 그곳에 있었다.
문득. 데일은 이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데일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여사제의 시신을 교단으로 운송해온 다음 날.
여러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중에는 이교도 기사가 교단을 쑥대밭을 내기 위해 침입했다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예언이 되었다.
소문은 실현되었다.
‘얄궂군.’
그때.
에스델과 데일이 완전히 건물을 나서려던 그 순간.
바닥에 떨어진 은 고리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데일은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빛에는 공격성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터져나온 빛 무리가 에스델을 한차례 휘돌더니 그녀의 손목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빛은 팔찌가 되었다.
“이건…… 성물?”
“선택받았나 보군.”
“…….”
성물의 선택을 받다니.
빛의 신자에게는 대단한 영광이다. 하지만 에스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쁘지 않나?”
“기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네요.”
씁쓸하게 미소 지은 에스델은 텅 빈 본당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몸짓인지 데일은 알 수 없었다.
성물을 내려준 신에 대한 감사인지.
죽어버린 형제자매들에 대한 사과인지.
아니면 한때 어머니였던 배신자에 대한 작별인지.
데일은 묻지 않았다.
성물이 생겼다. 그리고 에스델은 더 강해질 것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가자.”
도시를 빠져나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