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39)
불타는 이레네
* * *
아직 성벽이 무너지기 전. 에스델은 교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소 드나들던 뒷문으로 들어간 에스델은 황급히 교단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한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이따금 들려오는 비명. 칼 휘두르는 소리. 선명한 피 냄새.
에스델은 당황했다.
‘저, 적습인가?’
성문을 타고 악마의 하수인들이 넘어오는 상황이다.
그중 하나가 교단에 들어선 걸까?
에스델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형제님들. 자매님들. 그리고 오르단 님. 제발 무사하셨으면……!’
격한 소리가 나는 건 본당 쪽이었다.
예배, 세례, 기타 모든 의식이 치러지는 장소이자 가장 신성한 공간이었다.
빠르게 걷던 에스델은 이내 복도에서 다른 사람을 마주쳤다.
아는 얼굴이었다.
“노리스 형제님. 무사하셨군요!”
멀쑥한 사내가 에스델을 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 에스델 자매님! 여기 계셨군요.”
“대체 무슨 일인가요? 이 싸우는 소리는 뭐고. 다른 형제 자매님들은 대체 어디 계신 건가요?”
에스델은 다급한 마음에 말을 와다다 쏟아냈다.
노리스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찬찬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예…….”
에스델이 노리스에게 걸음을 옮기던 그때. 불현듯. 에스델은 노리스의 법복 끝자락이 붉게 물들어있는 걸 깨달았다.
‘사람 피?’
이상함을 깨닫고 뒤로 물러서려던 순간. 검을 뽑아든 노리스가 벼락처럼 파고들었다.
“죽어라!”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노리스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광경이 선명히 보였다.
그 검 끝은 분명 에스델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어째서?’
에스델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도 이제는 풋내기 견습 사제가 아니다.
데일을 따라 여러 전장을 돌았고, 수많은 강적을 상대해봤다.
에스델은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카가각!
벼락처럼 내질러진 검끝이 에스델의 옆구리를 훑으며 지나갔다.
찢어진 법복 아래로 사슬 갑옷이 드러났다. 검과 부딪힌 사슬은 깨어져 살갗으로 파고들었다.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치명상에 이르렀어야 할 일격은 피해낼 수 있었다.
항상 갑옷을 입고 다니라고. 지겹도록 말한 데일의 잔소리가 효과를 본 것이다.
“뭣!”
설마 공격이 실패할 줄 몰랐던 노리스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다음 일격을 날리려 했다.
에스델은 빠르게 기도문을 읊어, 눈앞에 방벽을 만들어냈다.
단단한 방벽에 튕겨 나간 노리스가 바닥을 굴렀다.
에스델은 방벽으로 노리스를 지그시 짓눌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허억. 허억. 말해보세요. 왜. 왜 저를 죽이려고 한 거죠?”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그저 죽여야 하니, 죽일 뿐.”
“……예?”
“유감이지만 에스델. 대의를 위해 죽어라!!”
바닥에 짓눌려 있던 노리스가 돌연. 반대쪽 손을 휘둘렀다. 손에는 뾰족한 송곳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새하얀 섬광이 내리치는 게 더 빨랐다.
섬광에 직격당한 노리스는 환한 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노리스가 있던 자리에는 재 한 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허억. 허억. 허억.”
에스델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신앙의 형제를 직접 자신의 손으로 죽이다니.
손이 파르르 떨렸다.
“대체. 대체 무슨 일이.”
멍하니 있던 에스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격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에스델은 본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윽. 깨진 사슬이 살 속에 파고들었어.’
따끔한 통증에 에스델은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상처 자체는 옅다.
문제는 살 속에 파고든 쇳조각이다.
이대로 치유해버린다면, 쇳조각이 살 속에서 곪아 버릴 것이다.
‘어쩔 수 없어.’
에스델은 상처를 내버려 두었다.
법복이 점점 붉게 물들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도착한 본당.
에스델은 한차례 심호흡한 후, 문을 열었다.
끼이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모두 에스델이 아는 얼굴이다. 외부인은 없다. 악마의 하수인도 없다.
모두 항상 보아왔던 형제 자매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신성한 장소에서 모두 검을 차고 있었다. 검에는 하나같이 피가 묻어 있었다.
“다들…… 대체. 이게.”
말을 이어가려던 에스델은 입을 다물었다.
저 허공에 떠 있는 커다란 은 고리는 언제나처럼 은은한 빛을 뿌리며 본당을 환히 비추었다.
그리고 그런 성물의 바로 아래.
본디 주교나 고위 사제가 서서, 예배를 이끄는 자리에 나이 지긋한 사제가 한 명 있었다.
인자한 얼굴. 곧은 허리.
교단 내에서도 큰 어른으로 통하는 인물이자, 에스델에게는 어머니와도 같은 사제.
오르단이었다.
“어서 오렴. 에스델.”
“이게. 이게 대체. 다른 사제님들은…….”
“진정하렴 에스델. 늘 침착함을 잊지 않고 차분하게 행동할 것. 내가 늘 얘기하지 않았었느냐.”
아마도 이 상황을 만들었을 장본인이 그리 말하다니? 뻔뻔함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오르단의 태도가 오히려 에스델의 피를 차갑게 만들어주었다.
“대체 왜. 대체 어떻게 이런 짓을 벌이신 겁니까. 대체…….”
“우선 방법에 대해 설명하자면, 아주 오래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단다. 동지를 포섭하고, 계획에 방해가 될 성기사나 전투 사제들은 하나씩 배제하거나, 먼 곳으로 발령 보냈지. 그리고 오늘. 악마들이 몰려왔을 때 이렇게 말했단다.”
오르단이 목을 가다듬고, 엄숙하게 말했다.
“성 밖 빈민가에도 우리 신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형제님들. 위험한 일인 건 압니다. 그들을 구해주시겠습니까?”
오르단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단 한 명도. 단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더구나. 모두 바깥의 사람들이 성안으로 피신할 시간을 벌기 위해, 용감하게 달려나갔단다. 같은 인간으로서 존경스러울 정도지.”
“당신…….”
“하지만 그들은 생각했어야 해. 자신들이 빠져나가면, 이제 교단은 누가 지킬까. 그때부터는 일이 쉬웠단다. 동지들과 칼을 뽑았고, 형제와 자매를 베었지.”
에스델은 노리스를 떠올렸다.
친근하게 다가와 칼을 휘두르던 형제를.
이들은 익숙함과 친분이라는 칼날을 휘둘러 형제자매를 죽였다.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던 이가 얼마나 있었을까.
에스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오르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네가 진정으로 알고 싶었던 건 방법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을 벌였는가겠지.”
“대체…… 악마. 악마에게 홀린 것이군요?”
“그래 보이느냐?”
오르단이 양손을 마주 대자, 경건한 빛이 흘러나왔다.
빛의 신성.
악마의 추종자가 아니라는 증거.
에스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어째서…….”
“신께서는 믿음에 대한 대가로 힘을 내려주신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지. 하지만 저 신이라는 작자는 그저 대가를 바치면 힘을 내려줄 뿐이란다. 그 힘을 어떻게 쓸지는 개개인의 선택일 뿐. 어떻게 보면 악마랑도 다를 게 없어. 대가를 지불하고, 힘을 받는 계약 관계라는 점에서 말이지.”
“신성 모독입니다! 신께서 이런 일을 용서하실 것 같습니까? 신벌이……!”
오르단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사제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 그 끝에 맺힌 피가 똑, 하고 바닥에 부딪혔다.
오르단은 비웃는 듯.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신벌을 내리실 거면, 우리가 칼을 뽑아 형제자매들을 모두 참살하기 전에 내리셨겠지? 내가 일을 벌이기 전에는 알아채지도 못한 자다. 혹은. 알았어도 말할 방법과 의지가 없었거나. 어디 시험해볼까?”
오르단은 공중에 떠 있는 성물을 향해 활짝 팔을 벌리며 외쳤다.
“자! 듣고 있으시면 제게 신벌을 내려주십쇼!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양이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벼락을 내려 저와 제 동지들을 벌해, 당신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하지만 벼락은 없었다. 당연히 천벌도 없었다.
성물은 그저 은은히 빛날 뿐이었다.
오르단은 팔을 내리고, 표정을 굳혔다.
그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차갑고, 무감정했다.
“그래. 늘 이런 식이었지. 나의 가장 소중한 아이가 끔찍한 일을 당했을 때도. 항상 방관할 뿐이었어.”
하늘은 응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두 다리로 홀로 서야 할 때가 온 거란다. 의지하지 않고, 누군가의 추종자로서가 아닌, 오롯이 인간으로서.”
“지금 악마가 저 바깥에 있어요. 전부 죽게 생겼다고요! 근데 두 다리로 서겠다고요?”
“적어도 인간으로서 죽을 수 있겠지. 그리고 걱정할 것 없단다. 그분은 악마 같은 건 진작 굴종시켰으니.”
“대체 그분이라는 게…….”
오르단이 에스델의 말을 끊었다.
“그만. 대화는 이걸로 끝이다. 이제 선택할 시간이란다. 나는 에스델 너를 높게 평가한다. 그 품성과 의지. 타고난 재능은 때로는 눈부실 정도지. 정말로 신이 선택한 아이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그런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단다.”
에스델은 오르단을 지그시 노려보며 말했다.
“……저를 회유하려는 게, 단순히 그런 이유는 아닐 것 같은데요.”
“물론. 실리적인 이유도 있다. 너는 성녀의 대체자라 불릴 정도로 교단에서 많은 기대를 사고 있지. 그런 네가 우리 쪽으로 돌아선다면…… 앞으로 할 설득들이 더 쉬워지지 않겠느냐.”
오르단의 말이 끝나자, 그 옆에 선 사제들이 하나둘 천천히 다가왔다.
눈동자에는 진한 살기가 번뜩였다.
만약 여기서 에스델이 전향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에스델을 죽일 생각이다.
에스델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이내 벽에 등이 가로막혔다.
더 뒷걸음칠 공간은 없다.
‘에스델. 받아들이렴. 설령 거짓말이라 해도. 알겠다고 해.’
오르단은 에스델의 올곧은 성품을 안다. 여기서 만약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면.
설령 그게 거짓말이라 해도, 더는 이전의 에스델은 없을 것이다.
‘그거면 돼. 그거면.’
사제들이 점점 다가간다. 그들이 든 검끝도 점점 가까워진다.
에스델은 고개를 수그렸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됐다.’
오르단은 성공을 직감했다. 그녀가 알던 에스델이라면,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없다.
에스델이 고개를 들었다. 결정을 끝마친 얼굴.
에스델이 청명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오르단 사제님. 아니. 오르단.”
“그래. 드디어 결정을 내렸구나.”
하지만 이어서 나온 말은 오르단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당신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뭐?”
“저는 여신을 믿습니다. 설령 저희 생각만큼 완벽하지 않으신 분이라도…… 그분이 지금껏 저희를 위해 해오신 일들이 헛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너.”
그렇게 말하던 에스델은.
정말이지. 그녀답지 않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는 오르단. 당신처럼 신께서 도와주길 기다리고 있다가, 멋대로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직접 그분의 뜻을 지상에 펼칠 겁니다.”
에스델이 자세를 잡으며 양손을 펼쳤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외쳤다.
“결투재판입니다! 무력으로 저를 꺾어보십시오! 신께서 더 옳은 쪽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에스델…… 너. 변했구나.”
거절할 가능성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호전적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흑기사랑 다니더니. 변했어. 기껏해야 설전이나 벌일 줄 알았는데.”
“데일 경과 함께하라고 한 건 오르단. 당신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후회되십니까?”
“그래. 진심으로 후회되는구나. 그자는 그저 네 신앙을 흔들기 위한 도구였건만. 오히려 네 의지를 굳건히 하다니.”
탄식을 내뱉은 오르단이 싸늘하게 말했다.
“죽여라.”
검을 든 사제들이 달려나갔다.
에스델은 재빨리 기적을 준비했다.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두렵다.
왜 아니 두렵겠나?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애초에 호기롭게 덤비라고 외친 것도,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허세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무리 두렵더라도, 목숨의 위협 앞에 꺾이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데일 경이라면 절대 굴복하지 않았을 거야.’
그녀가 믿고 따르는 기사는 분명, 오르단이랑 지루한 설전을 벌이며 설득하려는 대신.
마검을 붕붕 휘둘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것이다.
에스델도 그리했다.
그녀의 버팀목인 오르단이 사라진 지금. 그녀가 믿고 존경하는 이는 데일뿐이었으니까.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꺾이지는 않는다.
에스델이 기적을 준비하고, 오르단 역시 기도문을 읊으며, 사제들이 검을 휘두르려는 그때.
챙캉!
벽면을 채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산산이 조각나며 흑기사가 날아들었다.
* * *
온 도시에 적군이 쏟아지고 있었다. 비명과 고함이 끊이질 않는다.
늘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대던 에리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입꼬리를 굳게 내리고 있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말이죠.”
에리얼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언제나 한산하던 밤의 신전에는 지금. 밤의 신도들이 모두 모여 벌벌 떨고 있었다.
대부분은 암흑가의 주민들이다.
굶주리고. 힘없고. 삶에 남은 거라고는 신앙뿐인 이들.
이들이 위협을 피해 마지막으로 몸을 위탁한 곳은, 당연하게도 밤의 신전이다.
그리고 이들을 받아주는 건 에리얼의 의무다.
아직 이들은 밤의 여신의 서늘한 품에 안기기에는 너무 이르다.
더 이어가야 할 삶이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은 서로의 양면이니. 죽음을 상징하는 밤의 여신은 늘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삶이 아름다울수록, 죽음 역시 가치 있는 법.’
어쨌거나 이곳에 처박혀서 우아한 죽음을 맞이하는 건. 별로 교리에 맞는 행동은 아니다.
에리얼은 몇 안 되는 사제를 모아놓고 말했다.
“도시를 탈출해야겠어요. 우리의 폐하께서는 시민들을 전부 버리신 모양이니까요.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지.”
“하, 하지만 도시를 어떻게 탈출하죠?”
“일단 밖으로 나가죠. 성벽이 무너지고 적들이 안으로 밀려들면. 반대로 틈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과 합류할 수도 있고요. 뭐든 이곳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백만스물하나. 백만스물둘.”
“저기 마스터 루드비히도 잘 챙기시고요.”
사제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신도들은 전투 능력이 없다. 그런 이들을 데리고 도시를 빠져나가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누구도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에리얼도 내심 그 어려움을 알기에 일부러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지도자가 흔들리면 그 아래까지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럴 때 데일 경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미 원정을 나갔던 부대 중 일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데일 경은 어딨는 거지. 설마.’
에리얼이 고개를 휙 들었다.
‘여기 말고 딴 데부터 들른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아무리 데일이 자신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해도(에리얼은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른다).
데일은 밤의 여신의 기사이자, 교의 얼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다른 곳을 먼저 들렀을 리는 없다.
‘분명.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
에리얼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신전을 떠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때.
위쪽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피 냄새가 자욱한 무리가 신전 안으로 밀고 내려왔다.
악마의 하수인들. 그 숫자가 못해도 30은 넘는다.
머리가 세 개에, 여섯 개의 팔을 단 하수인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신도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에리얼은 여전히 침착했다. 그녀는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이 어떤 곳인 줄 알고 그 더러운 발을 들이는 걸까요.”
“밤을 따르는 갈보야. 내 직접 네 목을 베어, 그 피로 이 불길한 공간을 가득 메울 것이다.”
머리 세 개 달린 하수인이 쿵쿵 걸어왔다.
에리얼이 한숨을 내신 뒤, 뒤쪽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모두 눈을 감아주세요.”
“사, 사, 사제장님. 하지만.”
“어서요. 혹시라도 실눈을 뜨거나 그러시면 안 돼요?”
끔찍한 괴물들을 앞두고 눈을 감으라고?
모두 두려움에 덜덜 떨었지만, 그래도 사제장이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다시 고개를 돌린 에리얼은 눈을 가린 안대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이름은…… 뭐. 그런 건 알 필요 없겠죠.”
에리얼은 안대를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잠깐의 정적.
에리얼은 다시 뒤를 보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눈뜨셔도 좋아요.”
“예, 예?”
사람들이 하나둘 눈을 떴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때, 하수인들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연기가 바람 속에 흩어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신도 하나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어. 그. 방금 그 괴물은 어디 갔나요?”
“괴물이라니요? 다들 꿈이라도 꾸셨나요?”
“…….”
에리얼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모두가 말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에리얼은 평소대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요. 제가 이 자리를 카드놀이로 따냈다고 생각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