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38)
불타는 이레네
* * *
기사단장은 황제의 알현실을 거침없이 열고 들어갔다.
이렇게 허락을 받지 않고 진입하는 것도. 칼을 차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이 제국에서는 기사단장이 유일했다.
그만큼 기사단장은 황제의 신임을 사고 있었다.
“미하일. 어서 오게.”
황제는 기사단장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기사단장은 권좌에 앉은 황제를 향해 극진한 예를 취했다.
“레딘의 아들이자, 아르투스 가문의 미하일이 대륙의 가장 고귀한 분을 뵙습니다. 제가 부족하여, 이레네가 위험에 처해있는데도 이제야 복귀한 점. 심히 죄송스럽습니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저를 벌해주십시오.”
“벌하라니! 내가 내려준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주었다 들었네. 역시 내가 믿을 건 미하일 자네뿐이야.”
미하일은 고개를 더욱 조아렸다.
기사단장은 이번 원정에서 겪은 상황을 간추려 보고했고, 지금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서도 설명받았다.
‘악마가 셋이나 몰려왔다고? 그것도 하나는 최소 중위급.’
미하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마에 난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이만한 군세가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아니.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다른 군단의 동태는 어떻습니까? 지원 병력을 보내오고 있습니까?”
“모르겠네. 모든 전서구와 전령이 차단당했어. 게다가 내가 그 반란분자들을 어떻게 믿겠나. 필시 이번 일도 그놈들이 연루되었을 터!”
“폐하…….”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들인데. 좀 더 믿어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지금 황제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황제의 말대로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기도 하고.
‘그럼 이레네의 병력만으로 막아내야 한다는 건가. 가능은…… 할지도 모르겠지만.’
피해가 얼마나 커질까.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내쉰 기사단장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곧바로 복귀하겠습니다.”
“복귀하다니? 어디를?”
“그야 외곽구역이지요. 상황이 위태롭다 들었습니다. 제가 가서 목숨을 걸고 막아내겠습니다.”
“아. 그런 얘기였군. 그럴 필요 없네.”
“……예?”
황제는 한없이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외곽구역은 포기할 생각이네.”
“……진심이십니까?”
“이상한 질문을 하는군. 내가 이 자리에서 농담을 던졌던 적이 있나? 애초에 외곽구역과 빈민가는 이 이레네에서 덤에 불과하지 않나.”
기사단장이 외쳤다.
“폐하! 저 밖에는 100만이 넘는 폐하의 신민들이 있습니다! 저들을 전부 버리시겠다는 겁니까!”
“그들이 정말 나의 신민이라면, 기꺼이 나를 위해 죽어줄 수 있겠지. 그리고 그 많은 인구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된다는 건, 미하일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오늘따라 이상하군. 악마와의 싸움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기사단장의 눈이 흔들렸다.
평소였다면 그냥 고개를 수그리고 명에 따랐을 것이다. 그는 황제의 검이니까.
검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왜인지 참을 수가 없었다.
‘……봐선 안 될 건 너무 많이 봐버렸어.’
악마를 토벌했다.
게른하르트와 데일의 분투를. 병사들의 눈물과 환호를 보았다.
희망은 독이다. 평생을 격전 속에 살아온 늙은 기사에게, 희망은 다른 그 무엇보다 치명적인 독이었다.
그렇기에. 기사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았다.
긴 삶에서 처음으로 기사단장은 주군의 명을 거역하기로 마음먹었다.
“봄이 오니 저도 마음이 들떴나 봅니다. 이 나이를 먹고 말이죠.”
“너……!”
“폐하. 이 미하일을 절대 용서하지 마십시오. 이 불충은 악마의 목을 베고. 폐하의 신민들을 지켜내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미하일! 네놈마저 나를 배신하려는 것인가!!”
황제의 고함을 들으며, 기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침없이 이동했다.
험지로 나아가는 그 발걸음은 나는 듯이 가벼웠다.
* * *
“꺄아아악!”
“사, 살려줘!”
점점 더 성벽을 넘어오는 적군의 숫자가 많아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란은 가속화되었다.
외곽구역의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하지만 숫자에서 역부족이었다.
“조금만 더 버텨라! 상위구역에서 기사님들과 마법사님들이 금방 올 거다!”
“아까부터 그 얘기만 몇 번쨉니까! 정말 오는 건 맞긴 합니까?”
“나도 잘…….”
악화되어 가는 상황에 고참병들 마저 점점 사기를 잃어갔다.
그리고 그럴수록, 성안으로 침투해오는 적군은 더욱 늘어났다.
데일과 하켄. 그리고 하티는 그런 혼란한 거리를 거침없이 뚫고 나갔다.
“저기 여관이 보이네요! 불에 타거나 도둑이 들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행이군.”
“일단 잠시라도 앉아서 쉬고 싶네요. 지금은 카일라의 맛없는 맥주도 맛있게 느껴질 것 같아요.”
조금 안심하며, 하켄은 여관의 문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퉁! 소리와 함께 볼트가 날아들었다. 화들짝 놀란 하켄이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볼트가 아슬아슬하게 볼을 스쳐지나갔다.
“…….”
이 예리한 기습에 하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앞을 봤다.
카일라가 쇠뇌를 들고 이쪽을 겨냥하다가, 데일과 하켄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 뭐예요. 하켄이었어요? 다짜고짜 문을 열길래 강도인 줄 알았어요. 미안해요. 헤헤.”
카일라가 귀엽게 배시시 웃어보이자, 하켄이 양손을 번쩍 들었다.
“……아, 알았으니까 일단 쇠뇌부터 내려놓고 얘기하자고.”
“일단 멀쩡한 것 같으니 다행이군.”
언제나 그랬듯. 참으로 똑 부러진 여자였다.
데일이 들어서자, 엘레네와 프라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데일 경!”
“왔나? 기다리고 있었네!”
엘레나와 프라우가 주인이 돌아온 강아지마냥 쪼르르 달려와 달라붙었다.
데일은 슬쩍 프라우만 밀어냈다.
프라우가 서운한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데일이 물었다.
“별일 없었나.”
“별일은 있었는데, 어찌어찌 막아냈어요.”
카일라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강도들 시체 치우느라 고생 깨나 했어요. 그래도 프라우 씨가 오랜만에 도움이 되었어요.”
“하하하! 나한테는 너무 시시한 놈들이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데일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발튼 씨는 숙부를 찾으러 간다고 사라졌어요.”
“빈민가 사람들은? 모두 성 안으로 들어왔나?”
“경비대랑 교단의 사제님들이 바깥으로 나가 시간을 벌었대요. 전부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경비대장 카달, 그 강직한 드워프와 교단의 전투 사제들이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해낸 모양이다.
“…….”
한차례 설명이 끝나자 침묵이 찾아왔다.
각자 생각할 거리가 있어,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이 고요함은 바깥의 혼란과 대비되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 정적 속에서 하켄이 헝겊으로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카일라. 맥주 한 잔만 부탁해.”
“그럴 줄 알고 미리 따라놨어요. 어차피 팔아먹지도 못할 거 같은데. 많이 마셔요. 취할 정도로 마시지는 말고요.”
“어차피 취할 정도로 맛있지도 않아.”
카일라 서늘하게 노려보자, 하켄은 허겁지겁 맥주를 들이켰다.
카일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하켄 덕분에 분위기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그녀가 물었다.
“데일 경. 이제 어떻게 하실 셈이에요?”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다들 입을 다물고 데일의 의견을 기다렸다. 이곳의 리더는 다름 아닌 데일이었다.
그리고 선택은 리더의 몫이다.
“…….”
데일은 바깥을 살폈다.
성벽이 금방이라도 뚫릴 것 같았다.
상위구역에서는 여전히 지원이 없다.
‘버렸군.’
황제는 외곽구역과 빈민가를 버렸다. 아니. 처음부터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도.
‘상위구역만으로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의 생각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해를 포기했다.
황제의 그간 행보를 떠올리면, 그자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건 무용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싸우는 건 미련한 짓이다.’
승산 없는 싸움이다. 목숨을 걸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다들 짐 챙겨라. 도시를 탈출한다.”
“하지만 성벽이 포위되어 있잖아요. 어디로 도망치게요?”
“지하수로에 바깥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다. 그곳으로 가면 된다.”
데일의 결정에 잠시 갈등하던 동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짐 쌀게요.”
“꼭 필요한 것만 챙겨라.”
“알겠어요.”
카일라는 분주히 움직이며 보따리를 쌌고, 엘레나와 프라우도 배낭을 멨다.
하켄은 그런 셋을 거들었다.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들 정말로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 들었다.
단 하나. 데일은 카일라가 챙겨든 쇠뇌를 보고 말했다.
“들고 걷기 무겁지 않겠나? 무기라면 더 가벼운 것들도 있는데.”
“아버지 유품이에요. 이거라도 챙겨야죠.”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여관을 나선 뒤, 한데로 똘똘 뭉쳤다.
혼란 속에서 흩어지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가게를 떠나기 전. 카일라는 마지막으로 가게를 뒤돌아보았다.
“…….”
그 눈가에 희미한 물기가 맺혔다.
데일과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못난 딸이 결국 아빠 가게를 말아먹었네요.”
“다시 돌아오면 될 일이다.”
카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저. 이 일과 적성이 안 맞나봐요. 맥주도 맛없게 만들고…….”
“그렇긴 하지.”
“……데일 경. 보통 이럴 때는 위로를 하는 거예요.”
카일라가 눈을 반개하자, 데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기왕이면 여관을 계속해줬으면 좋겠는데.”
“왜요?”
“안 그러면 나를 받아줄 곳이 없으니까. 또 마구간을 전전하는 건 사양이다.”
카일라는 피식 미소 지었다. 이 흑기사는 이제 어딜 가서 거절당할 인물은 아니다.
당장 상위구역으로 가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데일은 이 허름한 여관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카일라는 그게 조금 고마웠고. 기뻤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나중에 돌아와서 아예 건물을 새로 지어야겠어요. 일단 땅문서는 챙겨놨으니까요.”
역시나 똑 부러진 여인이었다.
마침내 마음을 다잡은 일행은 대로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쳤다.
“공주님!”
“아이렉. 무사했군요.”
빈민가의 장물아비.
아이렉이 부하들을 이끌고 왔다. 근데, 부하들의 숫자가 좀 많았다.
“오랜만이오.”
“아. 데일 경.”
“식구가 많이 늘으셨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다보니…… 어쨌든 공주님이 무사하신 것 같아 다행이군. 경은 지금 어디로 향하는 길인가.”
데일은 계획을 짧게 설명했다.
아이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함께해도 되겠나?”
“알겠소.”
아이렉의 부하들은 모두 빈민가 태생치고는 제법 제대로 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군기도 잘 잡혀 있었다.
빈민가의 큰 세력을 담당했던 이다운 역량이었다.
데일은 하켄에게 말했다.
“먼저 지하수로로 향해라.”
“데일 경은요?”
“에스델을 찾아오겠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하티. 따라와라.”
데일은 하티와 함께 거리를 뛰었다.
그때쯤.
환호와 함께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기사단장께서 나타나셨다!”
“폐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 거야!”
기사단장이 지닌 상징성은 크다.
기사단장은 황제의 오른팔과 같으니. 그가 참전하는 것만으로도 기세가 올랐다.
‘황제가 정신을 차린 걸까?’
그와 동시에. 나쁜 소식이 들려왔다.
“4구역 성벽 일부가 무너졌다! 여유 병력은 전부 4구역으로 가!”
“멍청아! 여유 병력 같은 게 어딨는데!”
악마 셋의 펼치는 공세는 몹시도 파괴적이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성벽들이 빠르게도 허물어졌다.
‘4구역이면 밤의 신전이 있는 곳인데.’
교단으로 향하던 데일은 우뚝 멈춰섰다.
이대로 4구역으로 갈까?
하지만 교단과 밤의 신전은 도시의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한 곳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을 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데일은 고민했다. 그리고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우선 교단으로 간다.’
직감.
데일의 감각이 말한다. 지금 당장 교단으로 가야 한다고.
‘아까부터 성기사와 사제들이 보이지 않아.’
하얀 법복과 갑옷을 입은 그들은 자연히 눈에 띈다.
하지만 거리 어디에도 성직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은 교단 앞에 도착하고서 얻을 수 있었다.
본래 교단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할 병사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데일의 후각을 예민하게 자극하는 이 냄새.
‘피.’
무언가 사달이 났다.